[세계의장애우]진정한 행복 찾아가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사람들
본문
무슨 호사인가. 일을 시작하고 6년만에 한 달이라는 귀한 나만의 시간을 갖게되었다. 보통 일터에서는 쉽지 않을 휴가를 우리 함께걸음팀은 바다 건너 영국 땅에 있는 남편을 만나보고 오라며 나의 휴가를 너무나 당연히 인정해주었다. 그 덕에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하기는 했지만, 남은 세 사람이 이런저런 고생을 할 걸 생각하니 내 눈과 몸과 마음, 모든 것이 곧바로 취재 꺼리에 열려있다. 그러다가 찾은 곳이 바로 브루더호프(형제들의 처소) 공동체.
2001년 한겨레신문에서 일하고 있는 조연현기자가 쓴 책 "나를 찾아 떠나는 17일간의 여행". "참 나"를 찾기 위한 다양한 수행방법과 공동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진정한 행복과 인간다움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소개한 책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머리로 알기 보다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고 깨닫는 체험을 제안하고 있었다. 그 제안이 아니더라도 당시 대안사회를 이야기한다는 사람들 속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공동체"였는데, 그 실체가 무엇인지 가닥을 잡기는 어렵다. 그리고 왜 결론적으로 공동체인지 그 까닭도 궁금했다. "공동체"는 어느새 내 안의 물음으로 자리했고 구체적 체험의 욕구는 점점 커졌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뇌성마비부모회의 소식지에서 그 곳 회원인 오정환·김지연씨 가족이 정착해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장애아가 있는 가족이 한국의 공동체가 아닌 그 먼 이국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평생 어울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선택이 한국 사회의 장애문제와 관련이 있었을까?
짧은 2박3일의 체험이었지만 그런 물음을 내내 갖고 있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어떠한 질문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어떠한 삶의 장벽도 없이 자유롭고 평화로워 보이는 그들의 일상을 통해 그 이유를 함께 찾아보자.
<비폭력, 형제애 실천하는 공동체>
런던에서 약 1시간 30분 기차를 타고 도착한 ‘로버트브릿지’역에서 10여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평화로운 한 마을이 나타나는데, 그곳이 바로 60여 가족 250여명 정도가 살고 있는 ‘다벨 부르더호프 공동체’다.
우선 그 기원을 살펴보면,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수 천명에 달하는 재침례자들은 삶의 단순성과 형제애, 비폭력을 찾아 제도권 교회를 떠난다. 이 한 줄기가 후터파였고 그들은 모라비아라는 곳에서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러다가 1920년 독일의 저명한 강사이자 작가인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도시에서의 성공적인 삶을 버리고 초대 교회의 순수성을 찾고자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계승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히틀러의 징병을 거부한 공동체 사람들 200여명이 순교를 당하는 등 박해가 이어졌고, 쫒겨나다시피 파라과이로 이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비폭력, 형제애,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의 추구와 실천은 자연스럽게 퍼져나갔다. 현재까지 영국 2곳, 호주 1곳, 미국 7곳, 최근의 처음 발생지였던 독일에서의 움직임까지 모두 11여 개 약 3,000여명이 함께 하고 있다.
<사랑, 말보다 실천으로>
이곳 공동체 사람들은 6시전에 일어난다. 6시 40분경 가족들이 모여 아침식사를 하고 각자가 맡은 일을 한다. 일이란 고정적인 것이 아니고 매번 역할을 바꿔가며 모두가 한번씩은 체험하고 있다. 대체로 7시 30분까지 공동체 안에 있는 Community Plaything(아이들 놀이기구및 가구 생산 공장)으로 출근하거나 공동체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장일, 공동식당 및 강당 청소, 점심식사 준비, 세탁, 아이 돌보기, 학교 가기 등을 한다. 잔소리를 하거나 정해진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알아서들 움직였다. 한국으로 치자면 중학교과정까지의 학교가 있고, 갓난아이부터 학령기 전 아이들은 모두 공동체의 어린이집에 간다. 부모들이 학교까지 함께 가기도 하고 담당선생님이 여러 아이들이 탈 수 있는 유모차를 끌고 집집마다 들려 인사하고 아이들을 데려가기도 한다. 공동체 안에는 의사, 교사, 물리치료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의사선생님도 오전만 진료를 할 뿐 오후에는 공장에서 노동을 한다. 결혼한 여성들은 식당이나 부엌, 세탁실에서 구석구석 티끌하나 없을 정도로 몇 번의 과정을 거치는 청소를 한다. 전체가 이용하는 장소라 힘들고 지치면 대충 할 것 같지만 이들은 꼭 자기 집처럼 몇 번이고 살핀다.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보였다. 몇 몇은 식사 준비를 하고, 몇 몇은 옷을 수선한다. 여성들은 모두 두건을 쓰고 직접 만든 옷가지를 입고 있다. 공동체의 상징처럼 보여지기도 하는 여성들의 두건 쓴 모습은 소박함 그 자체였다. 화장기도 없고 머리 모양새를 신경 쓸 이유도 없다. 겉모습에 대한 미(美)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인이 많아 휠체어도 눈에 자주 띈다. 특히 공동식사를 할 경우 청소년들은 알아서 그들의 자리를 맡고 옆에 앉아 식사를 도운다. 그리고 음식을 거의 남기지 않으며 식사가 끝나면 남은 음식을 따로 모으고 식기들을 모아 설거지를 시작한다. 역할을 맡은 사람이 있지만 아니어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식사 전 찬송가를 부르지만 예수찬양이 아니다. 자연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노래가 대부분이다. 기독교 공동체이지만 교회가 따로 없다. 기도도 강요하지 않는다. 성경공부도 모여서 하지 않는다. 잠시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할 따름이다. 낯선 풍경중의 하나는 누군가 뭘 해도 박수가 없다는 것이다. 김지연씨는 “누군가 잘했다는 것을 애써 표현할 필요가 없지요. 그건 특정 누군가에게 우쭐함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과도한 칭찬을 하지 않는 것과 반대로 누군가에 대한 뒷이야기도 일절 없다. 공동체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인데, 매일 식사와 노동을 함께 하기 때문에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충만함, 무소유로부터>
지난 해 여름, 열흘 정도를 방문했다가 3개월 전 아예 정착하기 위해 한국에서의 17년간 목회생활을 접고 들어온 한국인 정안석·박현옥씨 부부는 이곳의 느낌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꼭 대가족제도에서 사는 것 같아요. 공동식사를 하고 집안의 대소사도 함께 축하하며 슬퍼하고, 사람들 사이에서의 소외와 갈등도 없고, 무시하거나 남의 흉을 보지도 않죠. 공동식사, 오락시간, 게임, 노래하고 춤추고..이곳에서는 기쁨이란 것이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느끼게 해요. 영어를 몰라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도 쓸모 없는 사람이란 느낌이 없어요. 모두가 평등하게 일하고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애초 별다른 고민 없이 남편의 제안에 따라 왔기에 내내 불안하고 두려웠다는 부인 박현옥씨는 현재 가장 잘 적응하고 만족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녀는 매일 이른 아침 6시부터 몸을 놀리며 자잘해 보이는 청소와 식사준비 등 가장 단순한 노동을 하고 있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아이들 교육문제나 물질적 소유욕, 가족에 대한 구체적 성취목표 등이 사라진 지금, 그저 예수의 가르침 그대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는 일상이 소박하고 충만하단다.
<공동체 유지의 힘, 끊임없는 자기와의 대화>
남편 정안석씨는 신학을 공부하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다 궁극적으로 "공동체적 삶의 구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비록 그 모습을 조국이 아닌 곳에서 찾았지만 아직 후회는 없단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모든 세계인이 이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국가란 틀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 정식 멤버가 되지 않았지만 천천히 생각하며 확신을 가지려 한단다. 근본주의자 같은 철저한 이곳 사람들의 내면에 흐르는 그 무엇을 감지하고 자기 것으로 체화됨을 확신할 때까지 그는 조급해하지 않고 일상을 즐길 것이라고 한다. 마음가는 대로...
그러나 한국뇌성마비부모회 총무간사를 맡았던 오정환씨는 이곳을 감상적으로만 이해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주변환경이 아름답고 평온해 보이니까 살기 좋은 천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또 이곳에서는 남에 대한 험담이 공동체 파괴의 근간임을 알기에 어느 곳에서든 다른 사람에 대한 나쁜 말이나 그런 뜻을 비추는 행동이나 말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자기 안에서의 투쟁과 인내는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화하기는 쉽죠. 그러나 진실이 가려집니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내부 사람들은 항상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합니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바, 그 실천 방식 등 공동체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들은 정식멤버가 되기 위해 말이 아닌 끊임없는 영혼의 대화를 시도한다.
“이런 삶이 좋은가? 행복한가?”
<황대권씨, 가장 인상에 남는 한국인 방문객 >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년간 약 1000여명이고 1박 이상을 체험하는 사람은 약 250여명 가량 된다. 놀라운 사실은 그 중 1/2이 한국인이라는데, 교계에서 알려져 있는 공동체이기에 주로 목사님이나 신학생, 그리고 돈이 안들기 때문에(?) 배낭족들이 많단다. 공교롭게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활동하던 한 여성이 일주일간 머무르길 원하며 찾아왔다.(프랑스의 떼제 공동체에서 출발한 그녀는 세계의 공동체를 탐방하며 공동체의 참 모습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싶단다) 한국에서 "공동체"란 유행어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난다. 나를 비롯해 한국 사람들은 무엇을 찾는 것일까.
그러나 어느 누구하나 눈치를 주거나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이곳의 원칙은 방문객도 모두 노동에 참여해야 하기에 숙식을 제공하는 만큼의 대가는 서로가 충분히 만족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짧은 방문에 서운해한다. 좀 더 오래 머물면서 관찰하고 공동체 생활의 참뜻을 진심으로 느끼길 원한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이 대안사회에 대한 고민이 많고 진지한 것 같다며, 방문객 중 가장 인상에 남는 한국인으로 황대권씨(함께걸음 2002. 12월호)를 말한다. 13년간 감옥에서 살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그이의 열망이 전달돼 눈물을 흘린 이도 있었단다.
<장애용품 생산으로 세상과 소통>
이곳 공동체는 재정확보를 위해 목재로 만든 아이들 놀이기구와 가구 제작, 그리고 장애용품(Rifton Equipment for people with disabilities)을 생산하고 있다. 교육적 측면에서 목재용품이 아이들 정서 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점과 장애용품만 제대로 만들어진다면 더욱 쉽게 장애 가진 사람들이 우리의 친구이며 형제, 자매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란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바와 맞는 경제활동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필요 품목을 선택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장애가 특별하지 않다. 그저 부모며 형제고 자매였다. 공장에서도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의 능력에 맞게 일을 주고 환경을 만들어 함께 어울리며 일한다. 조립형태의 일이었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일하고 있었지만 본인이 원하는 한 함께 참여하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세라"는 그냥 "세라">
그리고 이제 갓 5살이 된 세라. 2살까지 한국에서 살았고, 내내 병원만 오가며 지냈다고 한다. 아이의 장애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허둥대고, 막대한 의료비 지출로 생계 위협마저 느꼈고 교육문제 때문에 한국에서는 늘 노심초사했단다. 그래서 오정환씨는 뇌성마비부모회 활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지금 세라는 지역사회의 큰 병원에서 초점을 맞추는 안경이며,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한 속옷, 걷기 편한 신발, 넘어져도 머리를 보호할 수 있는 헬맷 등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맞춤형으로 영국 정부로부터 모두 지원 받았다. 그리고 립톤(Rifton)에서 자체 제작한 휠체어와 보장구, 세발 자전거 등을 이용하며 공동체 안에서 물리치료도 받고 어린이집에서 통합보육을 받고 있다. 또 별도로 세라를 담당하는 보육교사가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저녁에 잠들기까지 항상 옆에 있다. 장애 있는 사람을 그 가족에게만 전가하지 않고 모두 함께 식구라는 생각에서 번걸아 가며 그 역할을 부여한다는 것이 이 공동체의 원칙이다. 실은 그들의 셋째아이인 세린이에게서도 세라와 비슷한 장애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장애아이 때문에 부모들이 갖는 심리적, 경제적 부담을 그들에게서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너무나 담담했고 편안했다. “장애를 제대로 이해하고 살라는 하느님의 축복 같아요”라며 빙긋이 웃을 뿐이다. 공동체에서는 장애에 상관없이 모두가 한 ‘사람’으로 존중받고 있었다.
그래서 애초 가졌던 장애와 공동체 선택에 대한 연관성은 질문할 필요가 없었다. 이곳에서 그 아이들의 장애는‘아무 것도 아닌 것’인데, 새삼 물어서 무엇하리...
동기가 어떻든 목적이 어떻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방된 인간의 모습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서로에 대한 보살핌’그것이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가 행복에 다다르는 길 아닐까. 내내 한국의 장애아 부모들의 눈물이 되살아나 마음 한 구석이 복잡하고 침울하다.
<인간에 대한 경외심은 어디서...>
고백컨대, 그곳에 있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이 이념으로나 실천으로나 ‘참 나’를 찾는 행복한 여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생활하는 내내 ‘나는 어떤가’되돌아본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끄러움 때문에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것조차 힘들다. 진정성을 찾으며 실천하는 삶 앞에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오정환씨 부부는 한국에 가면 한국뇌성마비부모회 분들에게 꼭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부모회 활동을 하면서 변해 가는 아버지들을 보았는데, 그 첫마음 계속 가지시길 바란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는 맘이 무겁기만 했다. 이 땅의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이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우린 어떤 사회를 추구해야 하는 걸까.
“장애우, 환자, 노인은 공동체의 보배입니다. 단 몇 시간 공동작업에 참여하거나 집에 있을 수밖에 없어 사람들의 방문을 받는다해도 이들은 형제, 자매이며, 우리 삶을 활기 있고 풍요롭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장애, 성, 나이, 국적, 피부색 등에 관계없는 인간에 대한 경외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글·사진 여준민기자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