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중증장애우, 그들은 누구인가
본문
‘중증장애우’가 뜨고 있다.
함께걸음이 중증장애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에 나타난 어떤 기류 때문이다. 「장애우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는 중증장애우 영역을 인정하면서 구체적 참여를 보장했고, ‘중증장애우독립생활연대’라는 조직에서는 중증장애우인 것을 전면에 내걸고 조직명칭에 사용하고 있다. 장애 전문가들은 중증장애우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다양한 정책과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으며, 시설물을 설치함에 있어서도 중증장애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설계원칙이 합의되어지고 있다. 또 많은 글들에서 중증장애우이라는 표현은 아무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은 애매하다. 도대체 중증장애우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 왜 현실에서 중중장애우라고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 필요한가? 이 물음 전에는 분명, ‘장애’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정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 개념에 대한 의미파악은 이동석씨의 글(중증장애우는 없다)을 통해 잘 전달되고 있다. 다만 장애에 대한 개념을 의료적 접근의 한계에서 벗어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찾아보자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점에서, 현재 우리들이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중증장애우라는 용어를 다양한 맥락 속에서 현상학적으로 파악해 보는 것은 장애우정책의 현주소와 향후 방향을 설정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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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증장애우 |
중증장애우 영역을 인정하라!
얼마 전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회의」1차 전체회의는 중심과 주변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다양한 처지와 목소리의 존재를 인정하려는 변화된 장애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공동대표와 상임집행위원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하는 조직구성(안)을 놓고 힘있는 어조로 다양한 방식들이 제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날 회의에서 여성장애우계는 여성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법인 조직이 아니지만 활발한 활동성을 갖고 있는 조직들은 제3그룹이라는 형태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노들야학의 박경석 교장은 “중증장애우 조직도 하나의 영역을 주어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그 동안 장애우 정책 수립에 있어 소외 받아 그들의 입장이 전달되지 못했는데, 이번 차별금지법에서는 그들의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이 법이 가장 필요한 중증장애우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제3그룹이라는 이름으로 포함되어진다면 그들의 이해와 요구는 또다시 묻혀질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과 제안은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다른 조직들의 동의를 얻어 통과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 각 영역에 속한 단체들은 즉시 회의를 소집해 공동대표와 상집위원 선출을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그런데 장총과 장총련은 회원단체로 이루어져 있고, 여성장애우계는 정체성이 명확하다. 또 제3그룹은 그 밖의 조직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증장애우 영역’을 인정하기는 했으나, 도대체 어떤 조직이 중증장애우 조직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애초 필요성까지는 모두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사항이지만, 실제 ‘중증장애우’이란 무엇인가 하는 개념 정의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직 구성은 현실적 문제이기 때문일까? 중증장애우 조직, 영역이라는 공식선언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의견이 엇갈렸고 결국 합의점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대표로 선출해야 하기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실무자회의에 참여하는 사람이 중증장애우이면 중증장애우 조직으로 인정’하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박경석 교장을 공동대표로, 김명실 사무국장(정신지체인전국부모연합회), 최해선(장애여성문화공동체), 유흥주 회장(한국뇌성마비장애우연합회)을 상집위원으로 선출하였다.
내가 중증장애우이다
우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중증장애우를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지, 본인은 중증장애우라고 생각하는지, 본인을 중증장애우라고 표현하고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직접 그들에게 물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질문했는데, 10명중 8명 꼴로 “나는 중증장애우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자가 보기에 전혀 중증의 장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증장애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장애 때문에 조금 불편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중증장애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 만큼 장애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깊고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중증장애우가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그들은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목발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동과 접근에 있어, 시각장애우는 정보접근, 보행, 보이지 않음으로 인한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을 청각장애우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정신지체나 발달 장애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누군가가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중증장애우라 하고, 뇌병변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언어장애와 신체적 장애가 복합적 양상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2,3중의 어려움이 있어 중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장이나 심장 등 내부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 또한 항시 의료적 처방에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을 들어 중증장애우라고 주장한다. 직업을 갖고 있으며 당당히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듯한 사람도,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사람도 자신이 중증장애우라고 한다. 이는 장애로 인한 삶이 장애정도에 관계없이 힘겹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결국 사람들은 사회적 조건 자체가 모든 장애 가진 사람에게 불평등하고 차별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 관련 정책과 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어떤 방향과 원칙에 맞게 조정되어야 하는지, 장애 개념 정리를 통해 다시 점검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당사자들이 말하는 “중증장애”는 차별과 억압의 정도에 따른 것
그래서 다시 개념을 정리해보기 위해 “그럼 다른 영역의 장애는 중증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거기서 답을 흐렸다. 자신의 장애 영역 외에는 깊게 고민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후 곧 “그들도 중증장애우지요...”라는 답변이 나왔는데, 그 뒤에 던진 말들을 정리해보면, 일상생활을 하는데 있어 누군가의 도움이나 사회적 조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분모가 나온다.‘중증장애우독립생활연대’의 윤두선 회장은“명확한 기준을 고민하지는 못했다. 정책과 서비스가 개별화되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국가가 서비스를 지원함에 있어 1-6등급으로 나누어 너무 획일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대한 지원은 많지만 운전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지원은 부족했다. 가족이 받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본인에게 직접 지원되는 것이 아니다. 경증장애우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체가 경증장애우 중심이기 때문에 중증장애우 정책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 장애가 심하고 어려우면 ‘중증’은 배제되고 차별 받는다. 예를 들면, 서울지체장애인인협회 사무실의 경우에는 문 앞에 계단이 있다. 중증장애우에 대한 고민을 그만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장애우 단체의 무관심이 정부의 무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생각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우리는 도대체 뭐냐?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 뭐냐?”하는 자괴감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서비스와 정책에 있어 중증장애우가 최우선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 조직명칭에 포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증과 경증의 구분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의 배융호 실장은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데 있어서는 유의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야 가능하지만 사회적으로 합의되지도 않은 것을 공식화하면, 이분법적 논리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 작은키모임(연골무형성증)의 김동원씨는 장추련에서 중증장애우 영역을 공식화한데 대해 “차별과 소외로 인한 아픔은 경, 중을 가릴 수 없는 문제이다. 장애유형이나 정도에 따른 지원서비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처럼 장애유형과 현재 처해진 상황에 관계없이 급수에 따라 일괄적으로 혜택을 받게 해서 다른 장애우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지 말자는 것이다. 왜소장애는 걸을 수 있다고 해서 장애등급을 받지 못해 교육과 취업에서의 차별에 개인적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 누가 과연 중증장애우인가? 사회적 차별을 받는 정도는 모두에게 같다”며 장애유형이나 정도 때문에 또다시 차별을 발생시켜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장애계 내에서도 중증장애가 무엇인가와 필요한가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양측의 주장이 모두 설득력이 있다. 두 가지 모두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찬찬히 살펴보자.
정부의 장애개념, 여전히 재활모델
국가의 중증장애우 개념은 당사들이 생각하는 이것과 사뭇 다르다. 다분히 의학적 기준으로만 구분한 현행 장애등급 체계에서 1, 2급, 혹은 3급 중복을 통상 중증장애우이라고 일컫기 때문이다. 물론「장애우복지법」에서 장애우의 정의는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라고 규정되어 있다. 단지 의료적 접근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능까지 ‘장애’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뒤에 단서가 붙는다. ‘∼받는 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라고...이에 따라 시행령에서는 의사들로만 구성된 장애판정위원회를 통해 또다시 의료적 개념만 강화되었다. 장애 당사자들이 말하는 중증장애우이라 함은 ‘사회적 차별과 억압 정도’에 기인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국가는 1-2급이라는 단순한 장애 정도로 중증장애우를 규정하고 있다.
‘한정된 예산안에서...’란 올가미에서 벗어나야
이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서동우 연구원은 “서비스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을 선정하기 위해 1,2급을 중증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게 문제가 있다해도 현실적으로 개념규정과 등급체계는 의학적 판단을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관계와 조건을 고려해서 등급을 나눌 수 있겠는가? 그건 객관적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판단자의 주관적 입장이 개입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사회 전체가 도덕성을 깔고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예산을 집행하는 국가 입장에서는 한정된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며 등급판정 기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하에 현실적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외국의 경우 등록제가 아니고 체크리스트에 따라 점수화하면서 개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서비스 제공하고 있는 형태에 대해서도 “선진국은 장애여부를 떠나 지역 사회 내에서 개인의 욕구를 조사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얼마전 복지부에서 가짜 장애우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있었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더 엄밀한 조건이 요구되고 있다. 7월에 장애범주 확대되는 것과 관련해서도 기획예산처는 등급판정에서의 정확성이 검증되어야 예산을 주겠다며, 보다 명확한 의료적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적인 것 이상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방식이 나오지 않는 한 사회적 합의 수준은 현재에 머물 것이다”고 말한다. 성공회대의 김용득 교수도 “2001년 WHO(세계보건기구)에서 장애를 새롭게 정의한 ICF(Internationml clas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이하 ICF)는 개인적인 장애나 질병과 상황적 맥락(환경적 요소와 개별적 요소)과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기능과 장애를 설명한다. 즉 특정 영역에서의 개인들의 기능 수준은 건강상태와 상황적 맥락의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개별적 모델에서 사회적 모델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는 어느 한 단계에서 한 단계로 뛰어넘는 개념이 아니다. 하나 위에 하나가 얹어지는 형태다. 따라서 의료적 개념과 사회적 개념이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장애개념의 성격을 설명하며, “현실에서의 등급체계는 신뢰와 불신의 문제라 생각한다. 판단자의 논리 개입을 배제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의 접근 자체가 경험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01년 사회적 조건과 관계를 고려한 장애개념인 ICF를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해 갈 것인가의 문제는 중요한 과제이다. 이는 한 연구자에 의해 진행될 수 없다. 종합적 연구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ICF개념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고려해야 할 때
지금까지 장애 가진 사람들, 또는 전문가들의 말을 한데 모아보면, 사회적 조건이나 상황들이 장애 차별을 해소하는 그 날에도 ‘중증장애우’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을 살펴보면, 변화하는 장애 개념과 그에 상응하지 못하는 정부 정책과 서비스, 그리고 당사자들의 높은 의식수준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가고 있다. 개념을 하나로 통일, 정의할 수 없지만 우리 식의 장애정책 수립과 평가를 위한 개념의 기준만큼은 공론화 과정을 통해합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글 여준민기자
보건복지부가 말하는 중증장애인 개념
「장애인복지법」상에는 중증장애우이라는 개념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장애인복지법 제6조(중증장애인의 보호)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의 정도가 심하여 자립하기가 현저하게 곤란한 장애우에 대해여 평생 보호 등을 행하도록 적절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시행내용은 전혀 없다. 중증장애우에 대한 명료한 해석조차 뒷받침되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박민희씨는 “개별법 특성상 중증의 개념이 모두 다르다. 이는 명문화된 개념이 아니다. 편의상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사전적 정의가 없어 등급에 따라 정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법적, 사전적 해석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장애인정책과 박찬형 과장은 “굳이 개념을 정리하자면, 스스로 일상생활을 하는데 지원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 즉 지속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이어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장애판정지침은 의료적 접근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능까지 고려했기 때문에, 변화하는 장애 개념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통상 1-2급을 중증이라고 일컫는 것은 수당이나 연금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필요하다. 우리 나라의 경우 제반 여건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원기준을 먼저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등급체계가 필요하다. 앞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장애를 규정해 서비스를 지원하려면 별도의 새로운 판정지침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그럴 여건이 되지 못한다. 지금 장애범주 확대만도 얼마나 발전인가. 조만간 수당과 연금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루어질 때쯤 장애에 대한 개념과 등급체계 또한 변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는 맞춤형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 공급자 중심의 대량생산공급체계에서 소비자 중심으로의 이동이 필요하다. 장애의 유형과 정도에 맞게 다양한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때를 기다리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 안일한 태도 아닐까? 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은 벌써 구체적 욕구를 갖고 있으며, 장애에 대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복지부가 이야기하는 그 사회적 상황은 벌써 도래해 있는 것이다. 복지부가 1∼2등급을 중증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중요한 정책과 서비스가 가장 중한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정부의 책임을 교묘히 회피, 결국엔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책임부처는 세계적 추세와 동향에 따라 먼저 이념을 연구하고 받아들여 우리 상황에 맞는 정책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려 한다. "복지부는 복지부동(福祉不動)하다"는 세간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장애 관련 법에서의 중증장애인 개념
노동부 소관인「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에관한법률」에서는 중증장애인을 단순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 법 제2조(정의)에서 중증장애우이라 함은 ‘장애인 중 근로능력이 현저하게 상실된 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그리고 그 시행령, 시행규칙에서는 ▲장애인복지법상의 1,2등급 ▲3등급 중 뇌병변장애인·시각장애인·정신지체인·발달장애인·정신장애인·심장장애인 및 상지에 장애가 있는 지체장애인 ▲국가유공자등예우및지원에관한법률시행령 제14조제3항의 규정에 의한 상이등급에 해당하는 자 중 3급 이상의 상이등급에 해당하는 자▲산업재해보상보험법시행령 제31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신체장해등급에 해당하는 자중 제3급 이상의 장해등급에 해당하는 자’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중증장애우를 구분하고 있는 이유는 장애 때문에 노동권을 확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보다 구체적인 지원과 정책을 개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는 2%의무고용을 초과하거나 대상업체가 아님에도 장애인을 고용할 경우 고용장려금을 지원하는데, 바로 이 때 단지 지원금을 더 주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사업주에 대한 지원정책 또한 고용정책이다. 하지만 당사자에 초점이 맞추어진 정책은 분명 아니다. 또 표현은 좀 다르지만 「특수교육진흥법」에서는 장애특성과 장애정도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중도(重度)장애’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요금할인을 하는 철도청은 1∼3등급을(그래서 보호자까지 적용), 장애인용 차량에 대한 특소세 면제를 시행하는 건설교통부는 1-3등급, 시각장애인은 4급까지, 문화시설 감면혜택을 주고 있는 문화관광부는 1∼3급(보호자 적용)까지로 시책을 적용하는 대상 장애인을 규정하고 있다. 이 부처들은 자신들이 정한 기준은 ‘중증장애인’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합리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할진대, 현재의 시책들은 등급에 따라 일괄적으로 적용되고 있을 뿐이다.
중증장애의 개념이 법의 시행목적과 취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출발선이 비합리적인 이라면 이러한 구분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글 여준민기자
독일의 중증장애우 개념과 노동권 보장
중증장애우 중심의 장애우정책
독일은 일찍부터 장애우들의 완전한 사회통합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다. 특히 고용을 비롯하여 독일의 장애우 정책은 ‘중증장애우’를 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산업화과정에서 양산된 수많은 중증장애우들의 재활문제가 가장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중대한 국가적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증장애우의 문제는 19세기 후반부터 발달된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되었고 또 해결이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정책과 서비스는 중증장애우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독일의 모든 장애우들은 장애 정도에 관계없이 일차적으로 의료, 교육, 직업 및 사회 재활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 기본 바탕 위에 중증장애우를 위해 더욱 강화된 노동권(차별금지, 해고보호, 추가 휴가, 조기퇴직, 파트타임근로 등)이 보장되고 있다. 또 각종 개조비용(작업장시설, 장비, 주택, 자동차 등)지원, 직업생활을 위한 다양한 종류의 지원금, 감면혜택(세제, 교통비, 통신료감면 등), 각종 수당, 주차편의 등이 구체적인 서비스가 지원되고 있다.
독일 중증장애우의 현황
한편 독일의 경우 중증장애우에 대한 실태조사가 연방통계청에 의해 2년에 한번씩 이루어지고 있는데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1999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총 6,633,466명의 중증장애우가 있는데, 이 숫자는 전체 국민의 약 8.1%에 해당한다. 전체 중증장애우의 24.7%(1,638,467명)가 장애정도 100에 해당되는 가장 중한 중증장애우이고, 29.3%(1,942,333명)가 장애정도 50의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다. 노동시장에 파급효과가 상당히 큰 중증장애우들의 연령별 분포는 해가 거듭될수록 노령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전체 중증장애우 중 75% 이상이 55세 이상이며 이에 비해 25세 미만의 비율은 불과 3.9%에 머물고 있다.
왜, 중증장애우인가?
장애와 관련하여 기본법의 역할을 하는 사회법전 제9권(Sozialgesetzbuch IX) 제2조제2항에 규정된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schwerbehinderte Menschen, 이하 중증장애우)이란 적어도 장애정도가 50을 넘어서는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장애정도가 30-50%미만이고 장애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적합한 일자리에 취업하거나 이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준중증장애우으로 간주된다. 중증장애우 판정은 부양국(Versorgungsamt)이 담당하는데 비해 준중증장애우 인정 여부는 노동사무소(Arbeitsamt)가 결정한다. 노동사무소는 전문의, 재활전문가, 중증장애우대표 등과 논의하여 준중증장애우 여부를 확정한다. 이처럼 노동권을 확보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장애 정도에 맞게 적합한 직업과 지원내용, 혹은 서비스 제공 등을 위해 ‘(준)중증장애우’개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애판정기준의 구체화는 기본
독일에서 장애판정 기준은 “장애의 의학적 판정을 위한 기준”에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세부 장애영역별로 장애정도에 따라 점수가 차등화 되어 있다. 1986년 중증장애우법 개정 이전까지는 장애의 정도를 ‘근로능력의 상실(MdE)’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였으나 이 개념의 부정적 의미를 제거하고자 1986년 법개정 시“장애의 정도(Grad der Behinderung, GdB)”라는 용어로 개칭하였고 장애정도는 각 장애영역별로 10부터 100까지 10단위로 나뉘어 있다. GdB는 일반적 생업활동에서의 제한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영역에서의 기능제한의 영향과 연관되며 건강손상으로 인한 기능제한의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및 사회적 영향에 대한 척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GdB의 등급으로부터 활동능력의 정도를 추론할 수 없으며 수행하고 있거나 얻으려고 하는 직업과는 무관하다. GdB 판정시 노화현상은 고려되지 않고, 복합장애가 있는 경우 개별장애를 합산하지 않고 개별장애의 연관성을 고려하여 총체적 GdB등급을 결정한다. 장애정도가 20 이상이 되어야 부양국은 확정판결을 허락한다.
장애유형은 모두 17 가지로 나뉘어지고 각 장애유형은 다시 몇 개의 영역으로 세분화된다.
중증장애우 정책은 평등이념 실현하는 것
이상으로 독일의 중증장애 관련 몇 가지 사항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우리나라도 이미 중증장애우문제가 주요 화두로 대두되어 현재도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독일의 사례는 향후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독일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토양이 우리와 매우 다르지만 중증장애라는 주제를 둘러싼 그들의 오랜 고민, 수많은 연구와 토의, 성공 혹은 실패의 경험들이 우리의 논의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선험적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경험들이 심층 분석되어 향후 중증장애와 관련된 우리의 논의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글 남용현 연구원(한국장애우고용촉진공단 고용개발원 연구실)
차별과 억압의 정도에 "중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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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과억압 |
중증을 논하기 전에 장애개념부터
‘중증장애인’ 개념을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증’과 ‘장애’에 관한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증"이라는 개념은 "장애"라는 개념에 부가되는 것이기 때문에 장애의 개념을 먼저 정의하고 장애 개념에 따른 중증의 정의에 따라 "중증장애인"의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장애 개념에 관하여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개별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이다. 개별적 모델은 장애라는 현상을 질병, 종양 및 건강 조건 등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야기된 "개인"의 문제로 간주한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몇 개의 소개념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을 장애가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제한으로 보는 경우 의료적 진단 및 의료적 치료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의료적 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질병(즉, 장애)에 의해 발생되는 심리적 상실, 타인에 의한 정체성의 상실 등에 기인한다고 보는 경우 재활치료 또는 사회사업적 개입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재활 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모델에 의하면 장애라는 것을 개인에게 귀속된 것이 아니고 사회적 환경에 의해 창조된 조건들의 복잡한 집합체로 본다. 즉 장애란 장애인에 대한 제한을 함축하는 모든 것으로서 편견에서 제도적인 차별까지, 접근 불가능한 공공건물에서 사용 불가능한 교통체계까지, 분리교육에서 노동에서의 배제까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장애는 사회 내에 존재하는 것이며 장애인 개인에게 있는 개별적인 제한이 아니고 장애인의 욕구를 사회 내에서 수용하고 이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대한 사회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실패의 결과는 단순하고 무작위로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실패를 경험한 집단으로서의 장애인들에게 사회전체를 통하여 체계적으로 제도화된 차별을 통하여 전달되는 것이다. 즉, 장애라는 것은 질병을 갖은 사람에 대한 무작위적인 차별 및 억압을 의미하는 것으로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현상으로 차별과 억압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해 진다. 이 모델도 문제의 원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몇 개의 소개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사회 구조의 모순에 의하여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는 관점, 특별한 문화적 맥락에서 집단에 대한 문화적 가치관에 의해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는 관점 등 다양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사회적 현상으로 보는 것에서는 동일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사회적 모델을 하나의 동일한 개념으로 바라보아도 무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장애의 개념적 모델을 "의료적 모델", "재활 모델", "사회적 모델"로 구분하고, 각각의 개념에 따라 중증의 개념을 살펴볼 것이다.
개념적 모델에 따른 중증의 개념
의료적 모델 :
‘의료적 모델’의 경우 ‘중증’이라는 개념은 질병의 정도가 심하거나 신체적 기능의 손상이 심한 것을 의미할 것이다. 즉, 팔 하나가 손상된 것보다는 양팔이 손상된 것이 중증일 것이고, 무릎아래 다리의 손상보다는 대퇴부 이하 다리의 손상이 더 중증일 것이다. 결국 신체적‘손상의 정도 또는 질병의 정도에 따라 장애 명칭(예를 들어, 지체장애, 청각장애, 시각장애 등)이 생기고, 장애에 대한 등급이 구분될 것이다. 또한 중증과 경증의 구분은 그 사회의 가치관, 자원의 정도 등에 따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예를 살펴보면 실제적으로는 철저히 의료적 모델에 의존하고 있으며, 장애의 정도를 6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1급과 2급을 중증장애우으로 통상 분류하고 있으나, 장애 수당과 같이 비용이 드는 프로그램은 2급까지,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은 3급까지, 또는 6급까지 지원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프로그램별로 중증장애우의 개념이 변하고 있는 것은 사회의 가치관 및 자원의 크기에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재활모델:
‘재활 모델’의 경우 장애는 의료적 모델에 기반을 하지만,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과 같은 사회적 기능의 손상에 더욱 중점을 둔다. 사회적 기능이 손상된 경우 장애우며, 이 사회적 기능의 손상은 각종 재활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중증’이라는 개념은 재활의 가능성이 더 낮은 경우를 의미할 것이다. 사회적 기능도 분야가 여럿이듯 재활도 직업재활, 교육재활, 치료재활 등 여러 분야가 있기 때문에 각 영역별로 중증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 분야별로 재활의 가능성이 더 낮은 집단이 중증이라고 정의되어질 것이다.
사회적 모델 :
‘사회적 모델’의 경우 ‘장애’라 함은 상해나 질병 등의 신체적 요인, 지적 또는 정신적 요인 등에 의한 개인의 특성에 관계없이, 그 개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상의 능력이나 기능을 요구하는 사회적 환경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장벽이며, 차별과 억압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해 진다. 따라서 사회적 모델에 따를 경우 장애를 구분·분류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상해나 질병 등의 신체적 요인, 지적 또는 정신적 요인 등에 의한 개인의 특성에 관계가 없기 때문에 지체장애, 청각장애 등과 같은 질병, 신체 기능적 장애분류는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사회적 환경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장벽으로 장애라는 것은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에 개인에 대한 분류는 의미가 없어진다. 또한 차별 및 억압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고 그런 차별과 억압을 원천적으로 없애는 것이 장애 문제의 해결방안이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등급 분류도 의미를 잃게 된다. 따라서 사회적 모델에 따를 경우 중증과 경증의 의미는 없다. 사회적 차별을 더 많이 받는 사람이 더 중증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사회적 모델에 의하면 장애라는 것은 개인적 현상이 아니고 사회구조적인 문제 또는 사회 문화적 현상이기 때문에 누가 더 차별을 받는가 하는 문제는 의미가 없다.
결국 우리가 중증장애인을 논하기 위해서는 장애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며, 이 개념에 따라 중증을 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바와 우리가 명칭하는 것에 통일성을 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사회적 모델에 기반한다면 중증과 경증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보여진다.
요즘 장애계에는 장애차별금지법이 화두이다. 장애차별금지법은 사회적 차별을 제거하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상당부분 사회적 모델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장애차별금지법」을 논하면서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체장애, 정시지체 등과 같이 장애를 구분하여 사용하거나 중증과 경증을 논하는 것은 논리상 문제가 있어보인다. 또한 사회적 차별과 같은 사회적 현상을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차별의 대항은‘장애우’가 아니라‘장애’가 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글 이동석(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차별금지법 제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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