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1]25억을 어디에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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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계에서 장애우 복지카드 사용으로 조성된 복지기금 관리와 사용처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복지기금을 어디에 사용할지, 그리고 기금을 누가 관리할지 여부를 두고 장애계 양대 연합체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그리고 복지부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매출액의 0.2%로 조성된 기금 25억원 가량 모여〉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복지기금이 어떻게 조성됐는지 알아보자.
지난 2001년 7월 1일부터 장애우 등록증을 개선하여 발급된 카드가 복지카드다. 이 중 신용카드 기능이 있는 복지카드는 장애우용 LPG 승용차를 사용하고 있는 장애우와 그 가족을 위해 발급된 카드이다.
신용카드 기능이 있는 복지카드가 발급된 건 2001년 부터 LPG 요금이 매년 리터당 약 70원씩 인상됐다. 장애우용 LPG 승용차를 사용하고 있는 장애우의 경우, 이 인상 요금을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 이런 경우 장애우가 LPG 요금을 할인 받으려면 결제수단으로 반드시 신용카드 형태의 복지카드나 직불카드 형태의 복지카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어서 신용카드 기능이 있는 복지카드가 발급된 것이다.
당시 LG카드가 사업자로 선정됐으며, LG카드는 독점 사업자로 선정된 대가로 장애우가 사용하는 신용카드 매출액의 0.2%를 장애우 복지기금으로 조성한다는 계약을 정부와 맺었다.
LG카드 측은 신용카드 기능이 있는 복지카드 사용이 시작된 2001년 7월 이후 약 1년 6개월이 지난 2월말 현재 장애우가 사용하는 신용카드 매출액의 0.2%로 조성된 장애우 복지기금이 25억원 가량 모여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장애우와 가족의 주머니에서 나온, 그래서 당연히 장애우 복지를 위해 쓰여져야 할 기금이 복지부나 장애우 단체로 넘어오지 않고 있다. 현재 LG카드 측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25억원이라면 한 달 이자가 아무리 작게 잡아도 월 1천 만원 가량 된다고 하는데, 기금이 카드회사에 있다보니 이 이자가 전혀 발생하지 않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기금이 취지대로 장애우 복지에 사용되려면 복지부나 장애우 단체에 지급되어야 하는데, 기금 관리와 사용처를 놓고 장애우 단체간에 이견이 생겨서 기금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기금을 말 그대로 장애우 복지기금으로 사용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간단하게 말 할 수 있지만 장애계 내부를 들여다보면 속내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그러면 왜 기금의 관리와 사용처를 놓고 장애계에서 잡음이 생기고 있는 것일까?
〈‘공동모금회에 맡기는 안’과 ‘재단법인 설립하는 안’ 대립〉
먼저 기금을 누가, 아니면 어디서 관리하느냐가 쟁점이 되고 있다.
장애계 양대 연합체 중 하나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총연맹)은 복지기금 관리를 정부가 아닌 민간이 해야 한다며, 장애우 단체가 맡던지 아니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금을 예치한 후 필요할 때 가져와서 사용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총연맹 입장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총연맹은 기금 조성의 발단이 된, LPG 투쟁 때 총연맹이 중심이 돼서 정부와 싸웠기 때문에 당연히 기금 관리와 사용처 결정에 장애우 단체의 입장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목적인 기금 사용처를 총연맹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이하 총연합회)가 머리를 맞대고 위원회 형식의 테이블을 만들어 결정한 후 나중에 수단인 기금을 어디서 관리할 지를 결정하자고 말하고 있다.
총연맹 김동범 사무처장은 "한때 총연합회 측이 기금 관리를 총연맹 중심으로 해도 된다고 양보한 적이 있다."면서 "기금 관리를 복지부 안으로 알려진, 정부 산하 별도의 재단법인을 만들어 할 경우 인건비와 운영비 사용으로 기금 낭비가 불가피하고, 또 기금 사용에서 장애우 단체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면서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총연맹 입장에 비해 총연합회는 다른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총연합회는 복지부 안인 재단법인 설립에 대해 "임원 무보수와 경직성 경비를 최소화하며, 의사결정기구에 장애우가 과반수 이상 참여한다는 전제하에 복지부 주도의 기금을 관리하는 재단법인 설립을 수용한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총연합회 측 박춘우 사무국장은 "총연맹 주장대로 기금을 공동모금회에 맡기면 공동모금회가 시행하는 기존의 장애우 관련 사업비가 삭감될 가능성이 높다."며 또 "기금 관리를 장애계에서 합의하지 못하고 공동모금회에 넘기는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 박춘우 사무국장은 "애초 기금 관리 얘기가 나왔을 때 기금을 총연맹과 총연합회 측에서 공동 관리하는 방안과 제 3 단체에 맡겨서 관리하는 방안, 그리고 복지부에서 관리하는 방안, 이 세 가지 방안 얘기가 나왔는데, 단서로 장애계에서 합의하지 못하면 복지부에 위임하자고 총연맹 측과 합의했다."며 "변수가 없는 한 기금을 관리하는 재단법인 설립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총연합회 측은 기금 사용처에 대해서는 "예산이 없어서 수행하지 못하는 사업, 예컨대 자립생활운동이라든지 연구사업을 지원하고, 가능한 한 법인이 아니라 장애우 자조단체에 기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 복지부 입장은 뭘까?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권오상 사무관은 "복지부가 LG카드와 작성한 협약서 21조에 보면 수익금 운영과 절차에 관해서는 보건복지부장관이 결정한다고 되어 있다."면서 먼저 기금 관리와 사용처에 대해 복지부가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권 사무관은 이어 "그렇지만 기금 사용처는 복지부에서 단독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장애우 단체 의견을 들어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기금 사용처에 대해서는 "장애우 복지를 위해 쓴다는 원칙은 있지만 구체적인 사용처가 논의된 것은 없다. 아직까지 목적만 정해졌지 세부 목적은 정해지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내로 기금 사용처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복지부가 기금을 관리하기 위해 별도의 재단을 설립할 예정이라는 설에 대해서는 "재단을 만들 수 있고 재단 설립이 검토되고 있지만 이 안이 유일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권 사무관은 대답했다.
장애계에서 기금 관리와 사용처에 대해 합의하면 기금 사용에 대한 결정권을 넘겨줄 수 있느냐고 묻자 권 사무관은 "두 단체가 합의했다고 해도 안이 합리적일 수 있고 비합리적일 수 있다. 따라서 장애계에서 합의했다고 해서 복지부가 무조건 따라갈 수는 없다. 장애계 안이 나오면 개별적인 검토를 한 후 수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열과 주도권 다툼으로 파생된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
정리하면 복지부와 총연합회 측은 기금을 관리할 재단법인 설립에 비중을 두고 있고 총연맹 측은 이에 반대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그럼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김정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은 "지금 기금 사용처 보다는 기금을 누가 관리하느냐가 문제가 되고 있다."며 "기금을 어떻게 필요한 곳에 잘 쓸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해야지 누가 기금 관리의 주도권을 가지느냐에 신경을 쓰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 후 "기금은 아직은 한시적이다. 복지부와 LG카드와의 계약이 3년이기 때문에 내년 7월말 만료된다. 만약 재계약이 이뤄질 경우 특혜 시비가 제기될 것이고, 때문에 다른 카드사가 복지카드 관리를 맡을 경우도 상정해 봐야 한다. 그럴 경우 지금처럼 기금이 모인다는 보장이 없다. 즉 기금이 계속 들어온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기금이 계속 들어온다는 전제하에 복지부가 재단법인을 만드는 건 여러 가지 변수를 따져봤을 때 무리가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정열 소장은 이어 "재단이 생기면 재단의 속성상 기금을 모아두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기금은 들어오는 대로 써야 되지 말 그대로 기금화 하는 건 문제."라며 "복지부가 재단을 만들면 이사들이 무보수로 일 한다고 해도 사무실 유지비 등 운영비로 최소한 1년에 2억은 쓰일 것."이라고 지적한 후 "장애우와 가족들 주머니에서 나온 기금은 될 수 있는 한 다른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정열 소장의 입장은 총연맹 측 주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김 소장은 "기금이 최소한의 경비로 쓰여져야 한다는 전제하에 공동모금회는 투명하게 운영되는 곳이니까, 기금을 공동모금회에 특별기금으로 맡기고 위원회와 결정권 집행 과정에 장애우 단체가 적극 참여해서 사실상 기금 관리를 장애계에서 맡으면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단 전제는 "기금을 공동모금회에 맡기면 모금회에서 지원하는 장애우 복지사업이 줄어들지 않을까 라는 우려를 모금회에서 불식시켜야 한다."는 게 김 소장 말이다.
기금을 공동모금회에 맡기는 안 외에도, 한 때 복지부는 기금 관리를 장애우 단체가 하려면 총연맹과 총연합회 두 단체가 합의해서 협의회를 만들어라 라는 권고를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기금을 장애우 단체에서 관리하는 안은 기금 관리의 주도권을 어느 단체가 가지느냐 여부를 놓고 벌어진 두 단체의 신경전 때문에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총연맹과 총연합회 그리고 복지부는 세 차례나 만나 기금 운영방안과 관련 협의를 했지만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3월 10일 복지부 주도로 열린 세 번째 회의에서도 재단법인 설립 방안과 공동모금회 예치 방안 등을 놓고 토론을 벌였지만 앞에서 언급한 서로의 입장차이만 확인하고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면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기금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두 가지 예상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겠다. 먼저 복지부가 기금 관리와 사용처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안이다. 이 안의 경우 기금을 관리하는 재단법인 설립이 유력하고, 기금 사용처에 대해서도 장애우단체 보다는 복지부 입장이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장애우 단체가 반발할 것이 분명한 만큼 큰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기금과 관련해서 장애계 양대 연합체인 총연맹과 총연합회측이 극적인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기금 관리와 사용처를 민간인 장애우 단체가 주도하는 방안이 마련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양대 연합단체가 주도권 다툼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구체화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안이다.
결국 기금 관리와 사용처는 지금으로서는 장애우 단체의 의견을 듣는 수준이지 장애우 단체 주장대로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힌 복지부 말대로 상반기인 6월내에 관리와 사용처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데, 수단은 전망을 해보면 복지부가 선호하는 재단법인이 설립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겠다.
장애계 일부에서는 이 문제가 장애계가 총연맹과 총연합회로 분열되고, 또 거기에 그치지 않고 서로 주도권 다툼에 골몰함으로써 파생되고 있는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로 꼽고 있다. 두 연합단체가 서로를 인정하고 양보하는 대신 밀릴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때문에 문제 해결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금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우리 나라 장애우 단체가 아직까지는
미성숙 단계에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라는 지적도 있다. 외부에서 기금 형태로 돈이 들어왔을 때 주도적으로 관리하고 배분할 능력이 장애우 단체에는 없다는 것이다.
LG카드 측에 따르면 장애우와 가족이 신용카드 형태의 복지카드를 사용해서 적립된 기금은 초기에는 한 달에 수 백만원에 그쳤지만 지금은 한 달에 1억원이 넘는 돈이 쌓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된데는 장애우와 가족들이 다른 신용카드를 없애고 복지카드를 집중해서 쓰는 경향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엄밀하게 말해 장애우와 그 가족의 호주머니에서 나와 쌓이고 있는 기금은 어느모로보나 정부 일반 예산과는 다르게 쓰여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치의 의혹도 없게 투명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사용처가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장애계는 기금에 대한 이자도 한 푼 받지 못하고, 목적인 사용처를 결정하기 전에 누가 기금을 관리하느냐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이런 한심한 상황을 장애우와 가족들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기금에 대한 작금의 잡음과 논란은 하루 속히 종결되어야 할 것이다.
글 이태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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