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장차법을 제정하자 (6)-장애우 차별 어떻게 구제받아야 할까?
본문
강제력이 없는 시정권고에 그칠 경우에는 피해자가 원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소송을 제기하거나 다른 구제수단을 취해야 하는데, 이는 매우 소모적일 뿐 아니라 불합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정명령을 도입하자는 것이지요.
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고도 이를 불복하는 자는 일정기간동안 이행강제금을 부담하게 되고, 이를 다투고자 할 경우 차별행위를 한 가해자가 직접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위원회의 결정 이후에는 피해자가 당사자가 되어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시정명령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것입니다.
현행의 법 제도를 살펴 보면「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의 구제절차에 대하여 원고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이미 함께걸음을 통해 변변치 않은 글을 두 세번 정도 썼던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지는 않을까.
이제는 장애우단체 전체의 목소리로 내야 하는데 나 혼자 어설픈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닐까...이런 걱정을 했던 것이지요. 더 솔직히 말한다면 워낙에 글재주가 없는 저로서는 핑계를 내세워 이를 피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데 저의 바램과는 달리 거절을 잘 못하는 제 성격 탓에 다소 신선감이 떨어지는 글을 싣게 되었습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현행의 법제도 아래에서 장애차별을 받은 당사자가 차별을 시정 받을 수 있는 구제수단, 예를 들어 장애를 이유로 고용이나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였을 때 이를 다툴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먼저 법원을 통한 구제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장애차별을 하였을 경우에는 그 시정을 구하는 이행청구를, 국가기관이 처분의 형태로 차별을 한 경우에는 그 취소를 구하는 취소소송 내지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할 수 있겠지요. 더 일반적인 방법으로서 재산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차별 사실을 입증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지는 실제 소송을 한 번이라도 경험을 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민사에서는 사적자치라는 틀에서, 행정소송에서는 주로 재량행위라는 벽에 부딪히기 때문에 차별임을 인정받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장애에 대한 특별한 이해가 없을 경우에는 장애차별임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우의 무능력에 기인한 것처럼 상황이 왜곡될 가능성도 많을 것입니다.
또한 손해배상 액수가 턱없이 낮다는 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장애대학생이 학교 내의 편의시설이 부재하여 교육권을 박탈당했다는 이유로, 또한 장애우를 위한 투표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투표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를 하여 성과를 올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자료 액수는 각 250만원, 5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두 사건 모두 1년이 넘게 소송이 진행되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당사자가 입은 손해 전체를 배상 받았다기보다는 상징적인 효과가 더 컸다고 보여집니다. 차별을 당한 개인이 이 정도의 위자료를 받기 위해 자신의 비용으로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저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두 번째로는 수사기관에 고소·고발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국가기관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보다 쉬운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차별에 대한 처벌규정이 있어야 가능하며, 또한 장애차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처벌규정이 있을지라도 기소유예로 되거나, 벌금형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처벌규정 이외에 사회인식에 대한 개선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그 실효성을 확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 방법은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에 그칠 뿐, 차별을 당한 피해자의 실질적인 권리를 구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종국적인 절차로도 볼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여 권리구제를 받는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관련해서는 지난 호에서 언급한 바 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의 전문성 및 감수성의 부족, 국가인권위원회법상의 한계로 인해 국가인권위원회를 전적으로 의지할 수가 없다는 저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만을 밝혀 둡니다.
이 외에도 각종의 고충처리위원회나 장애인복지조정위원회 등에 민원형식으로 접수하는 것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인력이나 구조적인 면에서도 제대로 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옴브즈만 형식의 위원회가 현실적으로 장애차별을 얼마나 시정할 수 있을 지 근본적인 장애차별 시정에는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보여집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통해 신속하고 저렴한 권리구제 절차 확보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담아 내고 싶은 것은 차별 당한 장애우가 보다 신속하고 저렴하게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절차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차별행위와 손해액에 대한 엄격한 입증책임을 완화시키고, 장애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장애차별위원회’로 하여금 강제력이 있는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며 이와 함께 이행강제금 또는 처벌조항 등을 규정하여 실효성확보수단을 마련하자는 것이지요.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누가 입증책임을 부담할 것인가
제가 직접 상담을 받았던 내용입니다. 장애우 등록은 하지 않았으나 경증의 장애를 가지고 있던 분이 7급 공무원 시험을 보았는데, 면접에서 탈락되었습니다. 필기시험에서는 상위권이었으나, 면접에서의 점수가 현저히 낮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송을 하고 싶어도, 면접과 관련된 부분에 대하여는 정보공개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관련법상 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면접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이 점수만 나오는 상황이어서 장애차별임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제가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소송을 한 번 하시겠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하셨습니다.
어느 누가 승소가능성도 별로 없는데,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서 소(訴) 제기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미국이나 홍콩 등의 차별금지법에서는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조항을 두고 있으며, 일본의 차별금지법안에도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규정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도 입증책임을 상대방에게 전환시킬 수 있는 규정이 있었다면 아마도 저는 그 분에게 자신있게 소송하자고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안)」에는 이러한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규정을 담아 내야 합니다. 상대방이 장애로 인한 차별이 아니었음을, 또는 합리적인 배려를 하기가 현저히 곤란한 경우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차별로 인정되도록 하는 규정이 필요합니다.
2. 손해배상액의 산정
현행 손해배상제도는 전보배상, 즉 실제로 발생한 손해만큼만 배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손해배상제도에 의할 때에는 차별행위로 인한 손해의 발생 및 손해의 액수를 증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피해를 구제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미법에서는 이론적으로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심각한 범죄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행위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목적은 불법행위자의 처벌 내지 행위의 억제에 있으므로, 단순히 처벌 내지 억제의 측면에서 보면 형벌과 그 성격이 비슷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에 있어서는 가해자가 손해배상금을 국가에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개인에게 지급하고, 또한 민사소송법상의 절차에 의하여 부과된다는 점에서 형벌과는 차이가 납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참 매력적인 제도입니다. 이러한 손해배상이 인정된다면 사업주가 함부로 장애우의 고용을 거부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국가기관이 차별을 할 경우 국민의 세금으로 거액의 손해를 배상하게 되므로, 상급기관 및 국민의 철저한 감독을 받게 되겠지요.
그러나 전보배상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현행법에서 이러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될 것인가에 대하여는 다소 주춤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징벌적 손해배상에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아직 논리적 무장을 갖추지 못해 강력한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향후 이 부분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보다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3. 강제력 있는 시정명령의 도입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의 생성과정에서 시정명령권의 도입여부에 대하여 치열한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에 법원의 판결과 같은 구속력을 부여할 경우에는 인권위원회가 법원을 대체하는 결과가 되어 인권위원회의 설립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견해와 위원회가 구속력 있는 명령을 하게 될 경우 인권위원회의 시정명령 결정에 불복인 사람은 현재의 재판청구제도에 따라 최종적으로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밖에 없고, 이럴 경우 인권위원회의 조치를 법원의 결정에 종속시킴으로써 인권문제에 대한 전향적이고 진보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는 의견들에 밀려 결국 권고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강제력이 없는 시정권고에 그칠 경우에는 피해자가 원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소송을 제기하거나 다른 구제수단을 취해야 하는데, 이는 매우 소모적일 뿐 아니라 불합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정명령을 도입하자는 것이지요.
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고도 이를 불복하는 자는 일정기간동안 이행강제금을 부담하게 되고, 이를 다투고자 할 경우 차별행위를 한 가해자가 직접 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위원회의 결정 이후에는 피해자가 당사자가 되어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시정명령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것입니다.
다만 위원회가 국가기관에게 직접 시정명령을 내릴 수가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는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기관 내부에서 상급기관이 하급기관에게 발하는 직권명령의 성격을 갖는 것도 아니면서 위원회가 행정처분으로서의 시정명령을 국가기관에게 직접 발할 경우에는 비판의 소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시정요구제도를 도입하거나 선별적인 시정명령제도를 마련하자는 등의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4. 처벌규정의 문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보다 효과적으로 집행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을 위반하는 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현실적으로 특수교육진흥법상에 처벌규정이 신설되고 나서 입학거부에 대한 문제가 많이 사라졌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는 또 다른 인권침해의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으며, 차별금지법이 추구하는 사회통합에 저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처벌규정으로 인해 장애차별 인정범위가 좁아진다거나, 차별시정이 아닌 단순한 벌금납부로 사건을 종결시키지 못하도록 최선의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일 것입니다.
정리하며
저는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대구지하철참사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각종 신문에서 정신지체장애우 운운하는 말들이 나올 때, 단지 장애우에 대한 편견이 조장되면 어쩔까하는 걱정이 좀 되었을 뿐 화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장애우들이 주위의 시선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소식을 들었고, 연이어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가 감히 정신장애우를 격리 수용 또는 별도로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의 현실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일까? 이 사회는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하는데, 어째서 이렇게 편협한 사고를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나마 제 스스로를 위로해 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이렇게 무지한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자, 함께 사는 의미를 알려주자, 그래서 나의 아이들이 이 세상을 꾸려나갈 때에는 보다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하자....아마도 저의 꿈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함께 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부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에 동참해 주십시요.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