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4]대구참사, 언론의 장애우에 대한 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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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일어난 대구 지하철 참사는 사람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충격을 줬다. 그런데 이 사건은 방화를 저지른 용의자가 장애우임을 부각시킨 언론 때문에 장애우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장애우 입장에서 ‘언론 보도’ 무엇이 문제인지를 살펴본다.
<언론의 마녀 사냥>
대구 지하철 참사의 용의자가 장애우임을 부각시킨 언론 보도는 사건 당일인 2월 18일과 다음날 19일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방송을 살펴보면, KBS TV는 18일 뉴스 속보에서 화면에 ‘정신질환자 소행’ ‘용의자 정신지체 장애 2급’ ‘용의자 뇌경색으로 장애 2급’이라는 단어를 연이어 띄었다. 다른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MBC와 SBS도 용의자가 정신질환자이고 2급 장애를 가지고 있다며, 장애우가 신병을 비관해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한결같이 참사와 장애를 연결시키는 보도를 내보냈다
신문은 더했다. 조선일보는 ‘전동차서 정신질환자가 방화’라는 제목을 뽑았고, 중앙일보는 ‘우울증 뇌졸중 앓은 장애자 평소 불지를 것 자주 말해’라는 글을 큰 제목으로 기사화 했다. 동아일보도 ‘용의자 뇌중풍으로 지체장애 2급, 최근엔 우울증세도’라는 제목을 뽑았고, 대한매일 신문은 기사에서 ‘김 씨는 오른쪽 상하반신이 불편해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으로 자신의 신병을 비관해오다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라고 글을 썼다.
심지어 동아일보는 ‘대구지하철 전동차 방화 대 참사는 뇌졸중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뒤 세상을 비관한 50대 장애인의 어처구니없는 앙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또 한 신문은 ‘아빠, 뜨거워 죽겠어요…’라는 충격적인 제목 아래 ‘한 지체 장애인의 어이없는 방화가 수많은 가족의 단란했던 행복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라며 장애우를 수많은 가족의 단란했던 행복을 한 순간에 앗아간 지옥 같은 광경을 연출한 악마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언론의 장애우를 표적으로 한 ‘마녀사냥’은 19일에도 대동소이하게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대구 참사에 관심을 기울이던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장애우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범행을 저질렀다. 따라서 모든 장애우는 언제 이번 사건 같은 범행을 저지를지 모르는 시한 폭탄 같은 존재다. 장애우를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라는 생각을 각인 시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왔다. 20일자 문화일보는 ‘장애인들 우린 억울’이라는 제목 아래 3급 지체장애인 문모(36·인천시 부평구 부개동)씨는 대구참사 이후 지하철 타기가 겁난다. 19일 오후에도 직장이 있는 서울 여의도역에서 전동차에 오르자마자 승객 서너명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다른 칸으로 옮겨갔다. 소아마비여서 심하게 다리를 저는 문씨가 행여 ‘엉뚱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듯 했다. 문씨는‘저는 (사회에) 불만이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2급 지체장애자 강모(35·경기남양주시 진건읍)씨도 대구참사 이후 되도록 외출을 삼가고 있다. 사건 다음날인 19일 오전 동네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 강씨는 “마치 내가 불이라도 지를까봐 꺼리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노골적으로 ‘장애인들을 사회에서 영구히 격리하자’는 요지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다음사이트의 대구지하철사고 추모카페들에는“장애인을 수용시설로 격리시켜라”, “내가 경찰청장이라면 장애인들을 모두 총살시킬 것”이라는 섬뜩한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장애우는 위험한 사람인가?>
이렇게 장애우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마녀 사냥이 계속되자 급기야 보건복지부가 나섰다. 이번 사건에 대한 복지부의 발빠른 대응은 전에 찾아볼 수 없던 일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복지부는 19일자로 발표한 ‘방화사건 용의자 신상보도에 대한 반박문’에서 ‘통계적으로 정신질환자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우발적 범행을 더 많이 저지르는 것으로 오인시키는 보도는 장애 또는 정신질환을 반사회적 행동과 연결시키는 선입견을 갖게 하고, 또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이지 공격자가 아님. 장애인을 공격자로 각인 시키는 언론 보도는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는 장애인에게 공격자로서의 이미지를 덧씌워서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할 존재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따라서 ‘용의자의 범행동기나 정신질환 병력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와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마치 정신질환이 범행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처럼 보도되는 것은 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우 단체도 성명서를 내는 형태로 반발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한 성명서에서 〈용의자 김씨는 수많은 장애인 중 한사람일 뿐 그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사고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어떠한 확인된 사실도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용의자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뉴스 첫머리에 주요하게 보도하였으며 이로 인해 보도를 접한 많은 국민들은 ‘용의자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결과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위험한 사람’이며 ’격리되어야 할 사람’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대중 앞에 나서기가 두려워질 정도가 되었다고 심경을 토로해 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장애인총연맹도 ‘김씨가 이번 사건을 저지른 동기가 뇌졸중으로 치료를 받은 것이 잘못돼 불만을 품게 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데도 이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김씨의 지체장애를 언론이 자꾸 거론, 전체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퍼뜨리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반발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언론의 대구 참사와 장애를 연결시켜 보도하는 태도는 20일 이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엉뚱하게 유탄을 맞은 장애우들 가슴속에는 이미 씼을 수 없는 상처가 자리잡고 난 후이다.
<문제는 사회지 장애우가 아니다>
이번 사건을 보도한 언론 기사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기사는 한겨레신문의 ‘방화는 계속 된다, 계속될 것이다.’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투고 기사이다.
〈이번 대구지하철 참사를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자는 ‘x같은 세상’, ‘확 불질러 버리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뇌졸중 장애로 직장을 그만두고 환경미화원을 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더불어 어렵게 살았다고 합니다. ‘확 불질러 버리고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지금 대한민국에는 몇 명이나 될까요?
인생의 역전을 ‘팔백 십육만 분의 일’의 확률에 거는 것 말고는 달리 찾을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숫자를 상상이나 해보셨나요? 신용카드 빚 등 경제적 이유로 범죄를 일으키고, 또는 빚에 쪼들려 일가족이 집단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우리는 요즘 거의 매일 접하게 됩니다. 워낙 자주 접하는 터라 이젠 무덤덤 하기까지 합니다.
이들에게도 세상은 또한 ‘x같은...확 불질러 버리고 같이 죽어버리고 싶은’세상과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IMF 구제금융 시대는 지나갔지만 이후 부의 소수에로의 집중은 더욱 심화되어가고, 서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저소득층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고, 많은 수의 장애인과 사회 저소득층들로 하여금 가슴에 맺힌 울분을 "확 불질러 버리고 같이 죽고 싶다"는 충동으로 현실화하게 만드는 사회구조가 지속되는 한 제2.제3의 이 같은 비극은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법망을 피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 성공한 재력가들이 사회적으로 떳떳하게 행세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계속 인구에 회자되는 한, 계층간에 패인 골은 더욱 깊어져갈 것입니다. ‘정직하게 일한 사람이 대접받고 사람답게 살 수 있다’라는 ‘희망’이 없는 한, 부정과 온갖 편법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로 인식되고 이에 대해 좌절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와 같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끔직한 폭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다. 문제는 정직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이지 장애우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장애우가 범인이니까 격리시키고 총살시켜야 한다고? 흡사 중세의 마녀재판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언론 보도를 보면서 좌절감에 빠진 많은 장애우들은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야 위안이 되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면 그래 차라리 나를 격리하고 총살시켜라.”라고.
글/ 이태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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