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장애우는 없고 업자들만 있는 판매대 임대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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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라는 공공시설을 매개로 해서 생활이 어려운 장애우들에게 소득 보장을 해주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신문, 복권, 매점, 자동판매기 임대 제도의 애초 취지가 심하게 왜곡되고 있다. 업자들의 개입으로 장애우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고, 신청 서류 위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실상을 들여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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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매대임대제도 |
<업자들, 수 천 부의 신청서류 확보해>
“노원구와 강서구에 사는 장애우들에게 부탁해서 서류를 약 1천5백부 모았습니다. 그걸 다 집어넣었는데 단 한 곳도 안됐습니다. 그런데 10억원을 썼다는 업자는 열 군데 당첨됐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동안 신문 팔아 모은 돈 수천만원만 손해보고 말았습니다.”
지난 11월 말 서울지하철내 신문 복권 판매대와 음료수 자동판매기 임대 신청이 끝난 후 기자는 우연히 한 장애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수천만원을 손해 봤다는 이 장애우의 하소연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한 사람이 1천5백부의 신청서를 모아 접수시킬 수 있었으며, 또 장애우가 아닌 업자가 10억원을 써서 열 군데의 신문판매대에 당첨됐다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우선 장애우의 하소연이 과장이라는 심증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이어진 그의 설명을 듣는 순간, 과장보다는 엄연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데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다.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지하철내 신문판매대 중 한 곳을 운영하고 있던 그는 임대기간 만료일이 다가오자 자신이 목격한 신문 총판 업자들의 행태를 모방하기로 한다. 많은 돈을 써서 장애우들의 신청 서류를 모은 다음 그 서류를 지하철공사에 집어넣어 신문판매대 몇 곳의 임대 운영권을 따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동안 신문을 팔아서 모은 돈을 모두 장애우들의 신청서류를 모으는데 썼다. 말하자면 투자였던 셈이다. 그런데 운이 안 닿았는지 단 한 곳도 당첨되지 않았고 결국 그는 돈만 날린 것이다.
그러면 업자 이야기는 뭘까?
업자가 신문판매대 열 곳에 당첨되려면 신청 서류는 적어도 1만부는 넘게 확보했으리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 과정에 업자가 10억원이 넘는 돈을 썼다는 것인데, 업자는 특이하게도 개별적으로 장애우들을 접촉해서 신청서류를 모으는데 돈을 사용한 게 아니라, 윗선을 평소 관리하는데 그 돈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업자들은 서울시내 구 마다 조직돼 있는 장애우 단체 지회에 매월 후원금 명목으로 꾸준히 돈을 줬고, 업자들의 돈을 받은 지회장들이 앞장서서 서류를 모아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회가 많다보니 소위 업자의 관리비용이 10억원 넘게 들어갔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비단 이 장애우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지하철이라는 공공시설을 매개로 해서 생활이 어려운 장애우들에게 소득 보장을 해주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신문, 복권, 매점, 자동판매기 임대 제도의 애초 취지가 심하게 왜곡되고 있다는 위험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2월 초순 KBS 뉴스는 이 문제를 다루면서 업자에 의한 신청 서류의 위조 가능성까지 내비쳐 충격을 줬다. 본인은 당첨 사실도 모르고 있는데, 엉뚱하게 본인 이름으로 버젓이 신문판매대가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우선은 지하철내 신문판매대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유동인구가 많다보니 잘 되는 역 신문판매대는 한 달 수입이 1천만원이 넘는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데 이런 판매대 임대를 신청할 수 있는 대상은 1, 2급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중증장애우로 제한돼 있다. 중증장애우들은 장애 때문에 판매대 운영이 사실상 어렵고, 결국 이런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업자들에게 판매대 운영권이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신청서류를 업자들에게 넘기지 않고, 본인 이름으로 판매대를 임대 받아, 본인 아니면 가족이 판매대를 운영해서 자립하고자 하는 장애우들의 소망이 업자들의 개입으로 꺾이고 있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게임이 되지 않기 때문인데, 장애우 개인은 1부의 신청 서류를 접수 시켰는데, 업자들은 수 천 수백의 신청서류를 몰아서 접수시키다보니 당첨 확률에서 처음부터 경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실상은 어떨까? 기자는 1월 중순 수소문해서 어렵게 한 업자와 접촉할 수 있었다. 현재 서울 지하철 신문판매대만 놓고 보면 총판업자라고 불리는 업자들이 4-5명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음은 그 중 한 업자인 최모 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업자들의 개입이 지나치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당신 입장은 뭔가?
“왜 장애우들의 불만이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약속한 것은 분명하게 확실히 지키는 사람이다. 복권판매대 종업원은 한 달 60-70만원이면 되지만, 신문은 17시간 근무여서 2-3명이 교대로 일하게 된다. 인건비가 비싸고, 임대료도 비싸다. 수익금은 인건비를 제하고 지급되기 때문에 장애우 당사자들이 생각보다 이익금이 적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다른 불만은 이해할 수 없다.”
- 업자들이 신청서류를 몰아서 접수시키다보니 순수한 취지로 판매대를 임대 받으려는 장애우 개인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서울시 조례에도 위탁운영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기 때문에 절대 위법이 아니다. 나는 장애우들을 대신해서 신청 서류를 접수해준 것뿐이다.”
- 어떻게 신청서류를 모으는가?
“평소에 복지관이나 장애우 단체 지회에 후원을 하고 있다. 임대 시기를 알려주면 사회복지사나 지회장들이 서류를 모아준다.”
- 월 얼마를 후원하는지 밝힐 수 있나?
“많은 액수는 아니다. 복지관 같은 데는 월 20만원 정도, 단체는 밝힐 수 없다. 그리고 휴가나 명절, 연말 등에 별도의 후원금을 주고 있다.”
- KBS 뉴스에 서류 위조 가능성이 보도됐는데?
“억울하다. 지하철공사 측에서도 위조된 서류는 한 건도 없다고 밝혔다. 이 문제는 3년 전에도 기사화 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더 심하게 날조하는 것 같다.”
- 지금 관리하고 있는 신문판매대는 몇 곳인가?
“열 군데가 넘는다.”
- 혹시 복권과 자동판매기 쪽 상황을 아는가?
“취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른다. 그렇지만 그 쪽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관리해 주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한 업자를 아는데, 복권은 신문보다 운영이 쉽고 이익도 더 낫다고 들었다.”
▷소제목 : 신청 서류를 사고 팔기도 해
이런 업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모두 다 운영권이 넘어간 것은 아니지만 지하철내 신문 복권 자동판매기 운영권 상당수가 업자들 손에 넘어간 것은 분명해 보였다. 업자들은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본인이 판매대를 임대 받아서 운영하려고 하는 장애우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이런 행태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기자는 이 문제를 취재하면서 더 충격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하나는 신청서를 둘러싸고 공공연하게 입도선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장애우의 증언이다.“신청서류를 접수시키기 위해 지하철공사에 갔는데 업자들이 접근해 나에게 신청서류 한 장당 5만원을 줄테니까 장애우들의 신청서를 모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당첨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거냐고 물으니까 업자는 투자하는 셈 칠테니까 서류만 모아달라고 했다.”두 번째 충격적인 내용은 지금은 손을 뗐지만 한 장애우 단체 지회장이 장애우들의 신청서류를 모아주는 대가로 업자들에게서 수 억원을 받아서 치부했다는 소문이 단지 설이 아니라 근거가 있는 내용으로 공공연하게 희자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업자와 장애우 단체 사이에 검은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충격적인 내용은 서울시 감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인데, 복권판매대의 경우 한 업자가 20개 가량의 판매대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업자들이 투자한 금액을 건지기 위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당첨자의 무지를 이용해서, 명의를 빌린 당첨자에게는 월 10만원만 주고 나머지 수익금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래서 지하철이라는 공공시설을 매개로 해서 생활이 어려운 장애우들에게 소득 보장을 해주자는 애초 취지는 간 곳 없고, 판매대 임대 제도가 복마전이라는 비난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KBS 뉴스에서 판매대 문제를 보도하자 서울시에서는 서둘러 전면 감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감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더라도 제도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부분적인 개선과 보완만으로는 현재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은 도저히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로‘서울시공공시설내의신문·복권판매대,매점및식음료용자동판매기설치계약에관한조례’라는 이름이 붙은 이 제도는 지난 95년 처음 제정된 후 그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업자들의 개입을 막을 수 있는 조문은 단 한 줄도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서 조례 내용을 소개해본다.
조례는 임대 신청 자격을 "기초생활보호대상자 1, 2급 장애우 및 65세 이상 노인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 모자가정의 여성, 독립유공자유가족"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조례 5조는 "임대 계약을 체결한 자는 신문판매대 등을 직접 관리하여야 하나, 장애인복지법시행규칙 제2조 관련 장애등급 2급 이상인 자는 대리인에게 그 운영을 위탁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5조 내용이 업자들의 개입을 합법화하고 있는 셈이다.
▷소제목 : 서울시 의회에서 단체로 운영권 넘기는 방안 제기
그런데 서울시 의회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시의회 박시하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시의원인 강모 의원이 판매대 운영권을 현재처럼 개인이 아닌 단체에게 주자는 조례 개정안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 시간이 촉박해 심의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박 의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업자들의 개입을 막기 위해 판매대 운영권을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가서 단체에게 주자는 안이 유력한 해결책으로, 현재 조례 개정권을 가진 서울시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박 의원의 말에 따르면, 서울시 지하철공사에서도 관리의 편리성 때문에 개인이 아닌 단체에게 판매대 운영권을 주는 안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개인이 아닌 단체에게 판매대 운영권을 주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라는 것이 기자의 시각이다.
우선 생각나는 것이 단체에게 운영권을 주면 단체장 입맛에 맞는 측근들만 혜택을 보는 나눠먹기식으로 판매대가 운영될 가능성이 무척 높다는 것이다. 이건 백 번 양보해도 개선이 아닌 개악인 것이다.
이런 부작용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현재 서울시 의회에서 단체에 운영권을 넘겨주자는 안이 논의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박시하 의원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조례를 보면 판매대 임대를 신청할 수 있는 대상이 네 부류다. 그 중에서 독립유공자 유가족은 예전에는 신청 자격이 없었는데 4대 시의회 때 조례가 개정되면서 추가됐다. 그런데 현재 판매대를 운영하고 있는 독립유공자 가족은 단 한 명도 없다. 이유는 이들이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신청 자격인 기초생활보호대상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단체에서 조례에는 신청 자격이 있는데 왜 혜택받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느냐고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개인이 아닌 단체에게 운영권을 주면 독립유공자 가족도 혜택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단체에게 운영권을 넘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시하 의원은 이어 독립유공자 단체뿐만 아니라 장애우 단체와 노인 단체에서도 내심 판매대 운영권을 단체에 넘겨줄 것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단체장들이 칼자루를 쥘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런 문제뿐만 아니라 현 판매대 임대 제도는 다른 문제점이 또 있다.
먼저 많은 수익이 예상되는 판매대의 경우 지하철공사에서 책정한 임대료가 지나치게 높아 장애우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1년 임대료를 한꺼번에 내야 하는데 기초생활보호대상 장애우 입장에서는 수 백만원을 한꺼번에 내는 것이 버거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매대 임대에 당첨된 일부 장애우들을 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서 탈락시키는 현 제도 운영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수익이 있다고 탈락시키기 때문에 장애우들이 자립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생계비를 지원 받는 것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업자들의 횡포에 가까운 개입은 반드시 시정되어야만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업자들은 어느 역 판매대가 높은 수익이 예상되는지를 손바닥 뒤집어 보듯이 알고 있다. 그래서 수익이 적은 역 판매대는 제외하고 높은 수익이 예상되는 역 판매대만 집중적으로 선정해 수 백개 신청서류를 집어넣고 있다. 당첨 확률에서 개인은 뒤쳐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높은 수익이 예상되는 역 판매대는 거의 다 업자들 손에 넘어가고 수익이 적은 역 판매대만 장애우 개인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현 판매대 임대 제도를 개선하는 길밖에 없다.
개선책의 하나로 업자들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청 서류를 받을 때 1인 1매로 제한하고, 반드시 본인이 아니면 가족이 신청서류를 접수시키도록 강제화 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겠다. 그리고 임대료도 연 임대료가 아니라 월로 나눠내는 방안을 도입해야 하며, 당첨된 장애우가 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서 탈락되지 않게 수입을 소득공제를 해주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지하철 등 공공시설내 판매대 임대 제도는 저소득 장애우들의 소득보장을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할 제도다. 이 제도가 복마전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도록 개선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글 사진 최희정 이태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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