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장애우] 여성장애인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며, 사회적 책임이다.
본문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진보적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여자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심한 차별을 경험하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하게 갖게 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성장애인의 경우는 어떠한가? 비장애여성보다 휠씬 더 절실하게 차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엄마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고, 육아에 대한 책임도 여성장애인 개인에게만 지워지는 안타까운 상황들...
이 같은 현실에서 여성장애인이 임신·출산·육아의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실태를 조사하여 결과를 발표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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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장애우 |
여성장애인의 모성애 담은 시 낭송으로 심포지엄은 시작되고
‘....자식이란 하중에 균열하는 아가페 / 질풍노도와도 같은 몸짓에 / 금이 가는 모성애를 /
끝내는 죄라 고백하며 / 눈물의 재단 위에 푸른 십자가를 세운다’
11월 27일 한국기독교회관 2층 강당, 어느 시각 여성장애인의 모성애를 담은 애절한 시를 충북여성장애인연대 권은숙 활동가가 낭송하는 것으로 「여성장애인 임신·출산·육아의 현황과 대안 모색을 위한 심포지엄」은 시작되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하 한국여장연)이 한국여성연구소와 함께 아름다운 재단의 후원으로 실시한 ‘여성장애인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이를 계기로 여성장애인의 모성권과 육아문제를 사회이슈화 시키고자 마련한 자리였다.
이번 심포지엄을 맞은 권은숙 씨의 감회는 남달랐다. 지난 여름 내내 무더위 속에 낑낑대며 충북지역 여성장애인들의 집을 방문해서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듣고 경험한 여성장애인들의 현실에 얼마나 가슴아팠던가. 저런 몸에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라는 편견과 맞서는 일에서부터 실제로 육아에서 경험하는 말못할 어려움에 이르기까지... 권씨 역시 한 아이의 엄마로써 여성장애인 겪는 힘겨움이 더욱 더 뼈저리게 다가왔고 하루빨리 대안이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권은숙 씨 뿐이겠는가? 지난 7월 15일부터 9월 14일까지 2개월 동안 실시된 전국적 규모의 실태조사에 참여한 한국여장연 전국지부 활동가들과 관련단체 실무자들은 모두가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전국의 기혼 여성장애인 497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실태조사 결과 발표“유산경험 49.6%, 임신을 원치 않는 가장 큰 이유 육아부담 33%”
16개 시·도 지역에서 9개의 장애유형이 고려되어 실시된 ‘여성장애인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실태조사’에는 497명의 기혼 여성장애인(사실혼 포함)이 설문에 참여하였다. 이에 대한 조사결과는 오혜경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책임연구원)와 백은령 총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공동연구원)의 주제발제에서 발표되었다. 주요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결혼상태는 초혼이 72.9%로 가장 많았고 이혼 9.1%, 사별 6.9%, 재혼 3.8%, 사실혼 3.2% 등 다양한 결혼 상태를 보였다. 이혼·별거 비율이 장애유무를 구분하지 않은 기혼여성의 일반적인 조사결과(이하 일반적인 조사)에서는 3.2%인데 비해 여성장애우의 경우는 11.7%에 달했다. 따라서 여성장애인이 가장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경우가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둘째, 임신을 희망하였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81.2%가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에 18.8%가 임신을 희망하지 않는다고 응답하였으며 임신을 희망하지 않은 이유로는 33.0%가 육아부담이라고 대답하여 양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또한 임신·출산과 관련된 지식에 대해서는 25.8%가 별로 지식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응답자의 47.4%가 피임경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00년도 일반적인 조사의 피임실천율 79.3%와 비교해보면 휠씬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응답자의 49.6%가 유산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자연유산의 경험이 있는 경우가 106명, 인공유산의 경우가 118명이었다. 인공 유산 후 몸조리 여부는 54.9%가 하지 않았다고 응답하였다.
넷째, 임신 중 산전관리 경험은 70.4%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29.6%는 별다른 산전관리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일반적인 조사의 산전진찰율(1985년 82.4%, 1994년 99.2%, 2000년 100%)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전부담을 느끼는 경우는 전체 88.0%로 산전관리를 받은 경험이 있는 여성장애인의 대부분이 비용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자녀 출산경험이 있는 경우 분만 방법에 대한 질문에는 57.8%가 자연분만을 했고 42.2%가 제왕절개를 했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제왕절개 비율은 2000년 일반적인 조사의 제 왕절개 비율 37.7%보다 높게 나타났다.
여섯째, 장애로 인한 출산비용의 부담 정도에 대해서는 78.5%가 부담이 된다고 응답하였다. 산후조리 기간은 7일 이하 17.1%, 8 - 15일 18.3%, 16 - 30일 49.5%로 나타나 상당수의 여성장애인들이 산후조리를 충분히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후 진찰을 받았냐는 질문에는 54.2%만이 받았다고 응답해 2000년도의 일반적인 조사 85.0%에 비해 휠씬 낮게 조사되었다.
일곱째, 영유아기 자녀를 돌보는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는 64.0%가 부모역할 수행의 어려움, 61.1%가 양육비 등 경제적 문제를 꼽았다. 아동기 자녀를 돌보는 것과 관련해서는 경제적 문제 62.0%, 부모역할의 어려움 52.6%의 순으로 조사되었다.
여덟째, 모성보호제도에 대한 인지여부는 유급출산휴가 52.9%, 보육시설의 설치 43,9%, 육아휴직 37.5%의 순으로 나타났으며 85%이상이 모성보호제도가 당연한 권리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아홉째, 여성장애인들이 가장 희망하는 정책은 경제적 지원 37.1%, 도우미 파견 제도화 29.9%, 관련정보 제공 12.9%로 나타났다. 가장 희망하는 서비스 프로그램으로는 도우미 파견 21.8%, 의료적 지원 23%, 자녀 양육 및 교육 서비스 20.7%로 나타났다.
최우선 정책과제로 출산·양육수당 지급, 도우미 파견 제도화 등 제시
이와 같은 여성장애인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실태를 토대로 제시된 정책대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장애인 차별금지조항 마련과 모성보호관련법 개정, 경제적 지원책 마련, 도우미 제도 마련 등 법과 제도의 정비 둘째, 여성장애인 인권운동 활성화, 의사·교사 등 관련 전문가 집단에 대한 교육 강화 등 사회인식 개선활동 셋째, 여성장애인 전문병원 지정, 의료비 감면, 적절한 전달체계 구축 등 여성장애인의 생애주기에 알맞은 건강관리체계 구축 넷째, 임신·출산·육아에 관련된 실태조사 실시, 다섯째 관련단체 지원 여섯째, 관련 예산 지원 의 명문화 등이 제시되었다.
또한 여성장애인 임신·출산·육아와 관련된 실천적 대안으로는 사회인식개선 프로그램 개발 실시, 교육과 정보제공 프로그램 개발 실시, 상담활동 강화, 부모역할 지원과 가족관계 개선 프로그램 개발, 보조기구 개발, 자조집단 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실시 등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대안 중에 최우선 정책과제로는 출산·양육 수당 지급, 도우미 제도 확립, 보육시설 우선입소제 실시와 건강관리체계 구축, 정기적인 실태조사 등이 제안되었다(표 참조).
표-<여성장애인 임신·출산·육아의 최우선 정책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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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장애우&육아 |
영유아보육법 개정되고 여성장애인에 대한 사회인식 개선되어야
주제 발표에 이어 벌어진 토론에서 한국보육교사회 이윤경 대표는 현재 보육정책과 연구의 대부분은 비장애부모와 비장애자녀로 구성된 가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하고 여성장애우의 자녀가 보육시설 이용 시 우선권을 가지도록 하자는 제안에 동의하면서 이를 위해서 영유아보육법의 우선입소조항을 개정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장애여성공감의 박주희 운영회원은 여성장애인의 임신과·출산·양육에 있어서의 선결과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제도 정책이 절실한 부분이지만, 그와 함께 여성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의식 개혁이 더욱 더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이어서 보건사회연구원의 변용찬 사회정책연구 실장은 장애인복지관, 여성장애인단체 등이 여성장애우의 임신·출산·육아 관련 자료집이나 매뉴얼을 작성하여 여성장애인에게 배부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정부의 예산지원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국여장연은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제안된 정책과제들을 구체화시키고 여성·장애단체 등과 연대하여 법과 제도 속에 포함되도록 후속작업을 꾸준히 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사회인식개선을 위해 비장애인과 함께 하는 캠페인을 벌여나갈 예정이며 관련 단체들과 장애인복지관 등 복지기관들에서 여성장애인 관련 사업을 실시하도록 여성장애인 운동을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다.
여성장애인의 모성권이 확보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아이를 너무나 갖고 싶지만 용기가 안나요, 낳아서 키울 일이 막막해서...”
“내가 알고 있는 지체장애여성은 의사로부터 낙태 권유를 받았다고 합니다. 물론 낙태를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장애가 주된 이유였다고 아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나는 휠체어를 타는 중증인데요...애를 갖고 출산하기 전에 딱 한번 병원에 가본 게 전부입니다.”
여성장애인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조사연구 과정에서 만나본 여성장애인들이 풀어낸 지난한 삶의 이야기들이다.
한편에서는 여성들에게 모성이 강제되어 왔다는 것에 주목하지만 여성장애인에게는 모성의 권리가 박탈되어 왔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여성계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최근의 모성권 논의도 비장애여성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성장애인의 목소리는 들어갈 틈이 없다. 그만큼 소외되어 있다.
무엇보다 여성장애인의 임신·출산·육아 등의 어려움이 여성장애인 혼자 힘으로 감당해야 할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우리사회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사회적 책임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번 「여성장애인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현황과 대안모색을 위한 심포지엄」이 여성장애인의 모성권과 육아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글/조 옥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인권정책부장)/ 사진 신효섭(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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