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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1] 부산 600원 사건의 진실

"실적 올리기에 급급, 약자 이용한 혐의 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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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부산일보 사회면에는 “600원 훔치다 5천 배 벌금, 장애우 장발장의 눈물”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내용인즉슨, 사리분별이 떨어지는 정신장애우가(언론에서는 정신장애를 정신지체장애와 혼동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600원을 훔쳤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가족들이 외로운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건은 지난 3월 20일에 발생되었고 2개월이 지난 5월에 법원의 약식명령을 통해 3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가족들은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항고를 하였고 10월, 법원에서는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여기서 멈출 수 없다고 한다. 물론 가족들이 남의 차 문을 열고 지갑을 뒤져 돈을 훔친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수사관들의 태도와 언행, 무리한 여죄 추궁 결과 단순 ‘절도’가 아닌 ‘특정범죄가중처벌죄’라는 수사결과 도출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3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된 것도 수사관들이 마음대로 짜집기한 거짓 수사결과보고서가 인정된 것 아니냐는 것이 가족들의 주장이다.

이 사건은 부산일보의 보도와 문화방송의 모 프로그램에 사건의 전황이 나타나면서 여론화되었다. 직접 가족들로부터 상담이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우리 인권센터는 그 동안 수사과정에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정신지체나, 정신장애, 자폐 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부당함을 당하고 인권침해를 당하는 현실을 여러 사례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가족들에게 연락하여 결합하게 되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가공권력으로부터 무참히 침해당하는 약자들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럼, 좀더 자세히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피의자 정00 씨(38세, 무직)는 2002년 3월 20일 오전 8시 50분 경 부산시 부산진구 부암3동, 노상에 주차된 승용차 문을 열고 들어가 600원을 훔치다가 길을 지나던 주민 김00 씨에게 발각되어 현행범으로 경찰서에 인계되었다. 당시 부암동 일대에 차량 동전털이범 신고가 빈번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00 씨는 자신의 이층집에서 동태를 살피고 있다가 정00 씨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정00 씨가 차 문을 쉽게 열고 들어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것을 목격했을 뿐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부산진경찰서로 이송된 정00 씨가 25번의 여죄를 인정하는 자술서를 쓴 것이다. 그리고 차 문을 그냥 연 것이 아니라 철자라는 도구를 이용해 계획을 갖고 억지로 문을 열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00 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죄’적용을 받게 되었고, 범행에 사용된 도구는 하수구에 버렸다고 진술했는데, 찾을 수 없었다는 수사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정00 씨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정신적 장애를 갖고 있다. 80년대부터 정신분열증의 증상을 보이고 92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내내 약물복용을 해왔고, 그 때문에 기억력이 감퇴되고 사회성 기술이 부족해 사회적 관계가 매우 협소하고 단조로웠다. 인간관계를 형성하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것이다. 정신분열증의 특징을 보면, 조발성치매(dementia praecox)를 동반하는데, 이는 노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치매와는 다른 것으로 ‘전반적인 정신 기능의 저하’를 뜻하는 것이다. 그의 가족들의 말에 의하면, 묻는 것에 대해서는 대답을 곧잘 하지만 먼저 말을 길게 꺼내는 적도 없고 때때로 정서장애도 보였다고 한다. 때문에 정00 씨와 몇 분간 대화를 하다 보면, 이상한 감을 느낄 것이고, ‘정신장애’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보통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가족들은 우선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가족 등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의 대동 하에 수사가 진행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의 여죄 25건은 구체적인 피해자도 없을 뿐더러 진술서를 살펴보면, 너무나 자세히 때와 장소, 훔친 돈의 금액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정신장애 특성을 보았을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불러주고 강제로 자술서를 쓰도록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검찰수사결과에서는 가족들이 적극 개입돼 여죄 25건이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가족들이 받은 상처와 아픔은 어디에서도 씻어주지 못했다. 담당형사들은 오히려 큰소리치며, “본인이 다 진술한 것이다. 어딜 봐서 장애우냐? 장애우 같지 않았다. 수사과정에서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장애우등록을 한 것도 지난 8월이었는데, 그것은 일부러 이 사건에서 교묘히 빠져나가기 위해서 받은 것 아니냐, 그 정도로 그 사람은 장애우 같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잘못이 없다. 정식 절차를 밟아서 한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가족들은 “이러한 수사관들의 태도 때문에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의 특수성이 전혀 인정되지 않아 3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된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했고, “정00 씨는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회적 약자인데, 국가공권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할망정 오히려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수사당국이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해 약자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일개의 소시민이 갖는 국가권력에 대한 경외는 두려움과 좌절감으로 바뀐 것이다.

 우리 인권센터가 이 사건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태도를 취해야 하는 수사당국으로부터 한 개인이 받은 상처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혹은 시민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심각한 피해의식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사과정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아 권리를 침해당하는 경우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그 동안 인권센터에 들어온 상담내용을 살펴보면, 시각장애인이 진술할 당시에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는데, 검찰조사를 받을 때에는 “네”라고 대답한 것으로, 그러니까 중요한 부분에서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되었던 사건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과 비슷하게 자폐를 가진 청년이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던 중 불심 검문에 걸려 5개의 절도행위를 했다는 자백을 받아 검찰에 송치되었다가, 이 사건처럼 가족들이 그 과정에서 알게 돼 결국 무혐의로 풀려난 사건도 있다. 이 사건은 인권센터와 함께 소청심사위원회에 진정을 넣어 결국 담당형사 3인이 징계처분을 받았고,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청구소송까지 진행했었는데, 거의 판결이 나올 시점에서 부모가 마음의 상처를 빨리 잊고 싶다며 소를 취하하는 바람에 판례까지 확보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또 얼마 전에는 정신장애우가 진짜 범인으로부터 유아성추행범으로 몰려 재판까지 간 사건도 있었다. 아이들이 진범을 지목했지만 아무런 연고 없는 정신장애우를 진범과 그 주변사람들이 조작하는 바람에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더한 경우에는 부모까지 정신지체를 갖고 있어 아무도 수사과정에서 도움주지 못해 ‘살인죄’를 덮어쓰고 결국 교도소에서 3년째 복역중인데, 진범이 나왔어도 당시 담당 형사들이 인정하고 있지 않은 사례도 있다. 이 사건은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 다시 재심청구를 한 상태이다.
인권센터는 이번 사건을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로 보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은 물론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글/여준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간사 eco-rights@hanmail.net)

작성자여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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