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노동능력상실 핑계. 보상금 한 푼도 못 줘?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특집]노동능력상실 핑계. 보상금 한 푼도 못 줘?

기왕증과 노동능력상실률 들이밀며 장애우 차별하는 보험사

본문

교통사고는 이제 일부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노출되어 있는 일상적인 위험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사회적 연대의식이 약하고 사회적 지원체계가 미흡한 우리나라에서는 교통사고 등의 재난에 대한 준비도 개인이 사보험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사보험을 통해 자신들에게 닥쳐올 지 모르는 위험에 대해 대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보험에서 장애우들이 차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 장애우가 보상을 받아야 할 경우 현재 보험사는 장애를 이유로 제대로 보상을 해주지 않고 있다. 소위 기왕증과 노동능력상실률을 잣대로 들이밀며 장애우들을 차별하는 보험사의 횡포를 고발한다.

 

 

장애를 이유로 교통사고 보상금 낮게 책정

목발을 짚고 다니는 3급 소아마비 장애우인 주부 C씨(만 44세)는 2000년 8월 서울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정류장을 출발한 버스는 20­30미터 떨어진 좌회전 신호를 받기 위해 급좌회전을 했고, 승객이 거의 없던 버스에서 자리에 앉으려고 걸어가던 C씨는 차안에서 나뒹굴어 원래 장애가 있는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다.

C씨가 고통을 호소하며 운전기사를 부르자 운전기사는 차를 잠깐 세우고는 C씨를 일으켜 좌석에 앉히려고 했다. 그러나 C씨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고, 시간이 지체된다고 여긴 운전기사는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넘어진 지 20분 정도 지난 후에도 C씨가 계속 통증을 호소하자 버스 승객 중 한 명이 119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가 도착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C씨는 원래 장애가 있던 왼쪽 다리 대퇴부에 슬관절 골절이라는 진단(12주)을 받고 1개월 간 입원을 했고, 직장에 다니던 C씨의 딸은 직장을 그만 두고 C씨가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한 3개월 정도 그를 간호해야만 했다.

C씨의 담당의사는 22%의 영구장해진단을 내렸고 가해차량이 가입되어 있던 버스공제조합 측에서 소개한 의사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다. C씨는 사고 이전에는 왼쪽 다리가 약하기는 해도 구부리는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사고 후 C씨는 왼쪽 다리가 잘 구부러지지 않아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다. C씨의 사고는 100% 가해자의 과실임에도 불구하고 버스공제조합은 C씨의 과실률이 20% 있다며, 병원비를 포함하여 1000여 만원의 보상금을 제시했다.

턱없이 적은 보상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C씨는 2년 동안이나 버스공제조합 측의 성의있는 조치를 기다렸으나 별다른 회신이 없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버스공제조합은 얼마 전 C씨에게 며칠 간의 유예기간을 달라고 요구해 왔고, C씨는 버스공제조합의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장애우에게 관행적으로 기왕증 적용

목발을 짚고 생활하던 1급 지체장애우인 박찬의 씨도 2001년 1월 말 업무 차 충북 제천으로 가는 도중 관광버스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관광버스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중앙선을 침범해 박 씨의 승용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이 사고로 박 씨는 목발 대신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병원 밖으로 외출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사고 전 5년 동안 외국계 기업의 영업팀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던 박 씨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가 가입했던 S보험회사의 보상규정이었다.

보험사 측은 박씨가 장애를 가지고 있어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데다 척추측만증으로 기왕증(旣往症 : 교통사고 이전에 이미 다친 부분에 있는 장해) 70%가 인정되기 때문에 이 사고로 인한 장애율은 30%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따라 보험사는 박 씨에게 연봉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300만원 정도를 보상액으로 제시했다. 박 씨가 이미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장애우보다 노동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보험사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지난 95년 방송통신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97년 직장생활을 시작한 박 씨는 “대학시절 두 팔로 지리산 정상에 오르기도 했으며, 입사 후에도 최우수사원으로 뽑히는 등 나름대로 인정받았고 5년 차가 되면서 연봉도 3000만원 가량 받았다”며 자신의 장애가 자신이 당한 교통사고에 대한 보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러한 보험사 측의 일방적인 보상규정에 대해 “단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관행적으로 기왕증을 적용하는 것은 신체적 조건만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신체감정이 진행 중이다. 신체감정 결과가 나오는 대로 재판이 계속될 것이라는 박 씨는 “자동차보험이나 산재보험 등에서 중요한 판단 지표가 되는 노동력상실률이나 기왕증을 산출하는데 있어서,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이 사고와의 연관성을 정확히 검토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험사가 제시하는 적은 액수의 보상금 근거는 기왕증

수년 전 한 정신지체장애우가 철도 건널목을 건너다가 기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그 당시 보험사는 보상과정에서 정신지체장애우에게는 노동능력상실률이 100% 적용된다며, 정신적인 위로금 외에 단 한 푼의 보상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보험사(버스공제조합 포함)가 수긍하기 힘든 액수의 보상금을 제시하고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기왕증(旣往症)’이라는 부분이다.

‘기왕력’이라고도 불리는 ‘기왕증’은 ‘환자가 과거에 앓았거나 현재 앓고 있는 질병’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지금까지 걸렸던 질병이나 외상(外傷) 등 환자가 진찰을 받는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병력(病歷)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의사에게 정확하게 알린다면 진단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기왕증이 교통사고 보상금을 산정할 때는 다른 잣대로 모양을 바꾼다.

이는 보상금을 지급하는 보험사(공제조합 포함)가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기왕증을 이유로 보상금을 턱없이 낮게 책정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데서 알 수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보험사가 구체적인 검토 없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장애를 일률적으로 기왕증에 포함시킨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는 교통사고를 당한 적지 않은 장애우들도 보험사에서 장애를 이유로 보상금을 낮게 책정하더라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차별적인 수준에서 합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점차 모든 장애를 일률적으로 기왕증으로 보는 견해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보험사와 적절한 수준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를 이제는 조금씩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보험사의 ‘재량’으로 사고에 대한 기왕증의 기여 정도 판단

법률적인 의미에서 기왕증을 이야기할 때 함께 논의되는 다른 개념으로 기왕의 장해와 소인(素因)이 있다. 기왕증은 소인과 기왕의 장해를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쓰이거나, 기왕의 장해와는 구별되는 소인이나, 소인 중에서 병적 소인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기왕의 장해는 일어난 사건·사고 전에 이미 발생되어 있는 장해를 뜻한다. 소인은 사고로 인한 가해행위가 있었을 때, 손해의 발생·확대에 관여하는 피해자의 속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왕증, 지병, 성격, 기질, 체격, 체질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일반인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연령, 성별 등 생리적 소인과 질환, 기왕증 등 병리적 소인이 특정한 가해행위가 발생하거나 확대되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즉 교통사고 피해자가 연령이 많다면 나이가 어린 피해자에 비해 회복 속도가 늦다고 통상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회복 속도는 보상금의 산정에 어느 정도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예도 가정할 수 있다. 한번 피가 나면 잘 응고되지 않는 질병을 가진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자. 다른 사람이라면 부상을 입을 정도의 교통사고였지만 피해자는 사고 이전에 가지고 있던 질병(기왕증)의 영향으로 사망했다. 이 경우 피해자의 질병이 사고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가해자가 모든 부담을 떠맡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고로 인한 막대한 손해를 모두 가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으면서,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기왕증을 교통사고 등 사고에 따른 보상이나 법률적인 판단을 할 때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등장했다.

그러나 기왕의 장해가 기왕증으로서 얼마만큼의 역할을 했는지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기왕의 장해를 가지고 있으면 이것이 기왕증으로서 당해 사고의 손해 발생·확대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기여 정도를 보험사의 ‘재량’으로 판단하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져 왔다. 따라서 ‘기왕의 장해가 당연히 기왕증으로서 당해 사고의 손해발생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보는 생각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무엇보다 시급히 요구된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 하에서는 개인의 상황(직업이나 노동능력)이 고려되지 않은 채 장애우가 가진 장애를 일률적으로 재단하는 위험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장애우에게 일관적인 노동능력상실률 적용

교통사고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자동차보험의 대인배상 보험금 및 손해액 산출 시 상실수익액은 ‘월평균 현실소득액’과 ‘노동능력상실률’, ‘노동능력상실기간에 해당하는 호프만(라이프니쯔) 계수’를 곱한 금액으로 산출되며, 이 금액에 치료비와 위자료를 더해 보상금이 지급된다. 여기에서 ‘노동능력상실률’은 ‘맥브라이드식 노동능력상실률’을 나타낸다. ‘맥브라이드식 노동능력상실률’이란 미국의 정형외과 교수였던 맥브라이드가 쓴 「노동능력상실평가와 배상 가능한 손상의 치료원칙」에 기재되어 있는 신체장해 평가방법이다. 이 방법은 장해의 부위, 종류, 정도에 따라 정밀하게 노동능력상실률을 세분하고 연령요소, 손잡이(좌,우측) 요소까지 고려하여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맥브라이드식 노동능력상실률’에 따르면, 두 눈을 실명한 사람은 100%의 노동능력을 상실했다고 보며, 한 쪽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45%의 노동능력이 상실됐다고 본다. 그러나 ‘맥브라이드식 노동능력상실률’은 두 눈을 실명했지만 직업생활을 하고 있는 시각장애우의 노동능력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력이 부족하다.


이중으로 기왕증을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장애우에게 일률적으로 기왕증을 적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제점이 있다. 사회적으로 고용기회가 보장받지 못한 장애우들은 수입이 없거나 적다고 판단하며, 앞으로의 수입을 산출할 때도 정당한 평가를 받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기왕의 장해는 이중으로 평가되는 불합리한 면이 계속된다.

또한 장애우들은 피해자의 장래에 예상되는 수입액으로부터 본인의 생활비·소득세 등의 제비용을 제하고 거기에 본인의 근로가능연수를 곱하여 다시 법정금리로 할인(割引)함으로써 중간이자를 공제하여, 앞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에 대한 보상금을 계산하는 호프만식 계산법에서도 현실적으로 자신의 가동(可動 노동가능)기간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실질소득이 없다면 도시일용노임(현재 990,682원)이나 농촌일용노임 등 통계소득을 기준으로 피해자의 소득이 산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또한 제대로 계산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보험사의 불공정한 보상금 지급을 시정하는 판례를 축적해야

이와 같은 보험사의 장애우에 대한 불공정한 교통사고 보상금 지급에 대한 사법부의 법률적인 판단이 드물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불공정한 보상급 지급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를 별로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에 관련된 소송을 전문적으로 하는 한문철 변호사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지금까지 보험사는 노동능력이 없다는 이유를 대며 보상금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지급하지 않았으며,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보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보험사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며, “장애우들도 자신의 장애를 이유로 적절한 수준의 보상을 요구하기를 포기하는 태도보다는, 장애 유무와는 별개로 사고로 인해 실질적인 노동능력이 손상을 입은 경우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다만 노동능력상실율표 같은 경우는 많은 연구를 거쳐 합의된 것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한문철 변호사는 “장애우들이 소송 등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찾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이것이 판례로 축적될 때에 비로소 교통사고 보상에 있어서의 장애우 차별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사고 보상의 근거가 되는 노동능력상실률표 등이 오랜 기간의 연구를 거쳐 많은 이들의 합의하에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보상에 필요한 많은 근거자료에 실질적인 장애특성이 반영되어 있는가 에는 의문을 제기할 필요성이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교통사고 보상 부분에 있어서도 장애우들의 생활양식이나 교통사고의 피해를 입은 장애우에 대한 통계자료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통사고 보상 근거자료를 보완하는 장애특성에 대한 많은 연구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이라 할 지라도 보험사의 불공정 약관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포함해 불편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사법부의 판단으로 열매맺을 때,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차별의 벽을 견고하게 유지시켜 온 교통사고 보상에서의 장애우 차별이 사라질 것이다.


  

글·사진 이수지 기자


 

작성자이수지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