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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초점] 끝까지 서울시장 공개사과 받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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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8일간 국가인권위원회 교육실을 점거하고 장애우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해온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이동권연대)"가 지난 9월 19일 농성을 풀었다. 이동권연대는 농성 기간 중에 서울 지하철 1호선 철로를 점거해 한때 열차 운행을 중단시키는 극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동권연대가 긴 기간 동안 이어져온 단식농성을 중단한 것은 서울시의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추진위원회 설치 등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농성의 주된 목적인 발산역 사고에 대한 서울시장의 공개 사과는 받아내지 못했다. 이동권연대의 이번 농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 그리고 이동권연대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내막을 들여다봤다.

 

중증장애우의 이동권 보장이 관건

이동권연대(위원장 박경석)가 만들어진 것은 작년 1월 22일이다. 오이도역 사고가 촉매제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동권연대가 출범한 후 눈길을 끈 것은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극한 투쟁방식 때문이었다. 이동권연대는 이번에 시청역 철로를 점거한 것 외에도 작년에는 서울역 철로를 기습 점거해 열차운행을 중단시켰다. 또 버스 타기 투쟁에서는 장애우들이 온 몸을 쇠사슬로 묶는 극단적인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런 과격한 싸움은 그 동안 장애운동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여론은 이동권연대를 주목했다.

▲이동권연대

그런데 이동권연대 내부를 들여다보면 특이한 점 하나가 눈에 띈다. 바로 이동권 확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장애우들 대부분이 중증장애우라는 것이다. 중증장애우들이 싸움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셈인데, 이들이 이동권연대를 만들고 서울시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는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절박한 상황인식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동권연대는 장애우 중 이동의 차별을 가장 많이 받는 대상이 중증장애우들이라고 강조한다. 상대적으로 장애가 가벼운 경증장애우들은 이동의 제약을 많이 받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인데, 그 주장을 옮겨보면, 정부에서 장애우에게 주는 혜택 중 가장 실질적인 혜택은 차량과 관련된 혜택이고, 그래서 경증장애우들은 대부분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 또 경증장애우들은 자기 차가 없어도 충분히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자기 차가 없고 운전을 할 수 없는 중증장애우들에게 유일한 이동수단은 대중교통 뿐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중증장애우들은 대부분 노동을 통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워 택시를 이용하기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러면 이동을 위해 요금이 저렴한 버스나 무료인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는데 근본적으로 버스는 장애우들이 이용할 수 없게 차단돼 있고, 지하철은 이용이 제약돼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결국 가난한 중증장애우들은 이동을 포기한 채 집에 처박혀서 살아야 하는데, 이로 인해 사회성도 떨어지게 되고 나아가 삶의 수단을 전혀 갖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갈 곳은 수용시설 뿐이고,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 중증장애우들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동권 문제는 중증장애우문제 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우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게 이동권연대의 주장이기도 하다. 장애우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도 이동권과 관련이 있고, 장애우가 제대로된 직장을 잡지 못하는 것도 이동권과 연관이 있다. 그래서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장애우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게 이동권연대의 주장이다.

 

서울시, 서둘러 계획 발표한 혐의 짙어

이동권연대는 이번에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 점거라는 초강수를 뒀다. 그리고 박경석 위원장이 38일 단식을 했다. 이런 극한 싸움을 통해 이동권연대가 얻어낸 성과는 2004년까지 서울시의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를 도입하기 위해 서울시에 저상버스 도입 추진위원회를 설치한 것이다.

성과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의 경우 서울시의 예전 입장은 엘리베이터 설치가 가능한 역사에만 늦어도 2004년까지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동권연대의 농성이 있자 서울시는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1대 이상 설치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해 준비하겠다고 설정한 기간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시한으로 바뀐 것이다. 서울시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해 9월말까지 용역을 주는 작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는 것이 이동권연대 주장이다.

저상버스 도입의 경우는 서울시의 예전 입장은 시내버스에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동권연대의 농성이 끝날 즈음 발표된 서울시 입장은 시내버스에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저상버스 도입을 위해 예산을 얼마를 배정할 것인지 등을 논의하는 저상버스 도입 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서울시는 이 추진위원회를 통해 늦어도 내년까지는 시내버스에 저상버스를 도입해서 운행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 역시 이동권연대의 주장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언론발표를 통해 2004년까지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또 저상버스 도입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1차 회의를 연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 이제 적어도 서울시에는 장애우 이동 편의를 위해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시내버스가 저상버스로 운행되는 걸까? 기자는 서울시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실무 부서인 서울시 대중교통과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언론 발표와는 달리 공무원들은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우선 엘리베이터 설치의 경우 관련 공무원은 "역 구조상 엘리베이터 설치가 도저히 불가능한 역이 있다. 엘리베이터 설치가 불가능한 역은 별 수 없이 리프트를 설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 입장은 애초 계획을 수정해 2004년까지 가능한 많은 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저상버스 도입과 관련해서는 대중교통과 담당자는 "지금은 저상버스를 도입하기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가 저상버스를 언제 도입할 건지, 또 예산 확보가 가능한지 여부 등을 묻자 "아무 것도 없다. 백지상태다. 세부 계획은 추진위원회에서 논의해서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런 느낌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시 입장은 이동권연대가 단식농성을 하고,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자 언론이 관심을 보이고 이어 여론의 질책이 이어지자 구체적인 계획과 추진 방안 없이 서둘러 계획을 발표했다는 혐의가 짙어 보였다. 그래서 기자는 서울시의 약속 이행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이동권연대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서울시장의 공개 사과 반드시 받아낼 터

그런데 이동권연대의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농성이 40일 가까이 장기간 이어진 데에는 이동권 보장 외에도 다른 주된 이유가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로 발산역 리프트 사고에 대한 서울시장의 사과 문제였다.

이동권연대 박경석 위원장은 "우리가 점거 농성을 하면서 제기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발산역 리프트 사고에 대한 서울시의 사과 문제였다. 발산역에서 장애우가 리프트를 타다가 떨어져서 사망한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 서울시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인데 지금 서울시는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다. 지하철에 리프트를 설치한 건 전 시장 때 일이다. 왜 우리가 책임을 뒤집어 쓰느냐며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박경석 의원장은 성루시장의 공개사과 필요성에 대해서 "한마디로 서울시는 장애우의 존재 자체를 개 값으로 생각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 장애우가 죽거나 다치는 문제에 대해서 앞으로 잘하면 되지. 미안하다 유감스럽다는 말만 하고 있다. 왜 장애우가 죽었느냐에 대한 책임과 원인 규명 없이 장애우가 죽었기 때문에 불쌍하니까 조문하고 유감스럽다는 건데, 이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드시 공개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이동권연대 박현 조직부장은 다음과 같이 서울시장의 공개 사과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서울시장의 공개 사과를 고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왜냐하면 지하철은 개인시설이 아니고 공공시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하철역에 장애우를 위한 편의시설로 만들어진 리프트가 위험하다고 오래 전부터 경고를 했다. 또 발산역 사고가 처음이 아니고, 1년 에 2-30차례 빈번하게 사고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그 동안 대책을 미룬 채 방관해왔다. 우리는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고 일관되게 경고했다. 실제로 사고가 났고 사람이 죽었는데도 서울시는 사고를 개인의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로 무마하려고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분명히 기계결함으로 인한 사고였다. 그래도 서울시는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그 이유를 전 시장이 잘못한 것을 왜 새 시장이 사과해야 하느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서울시장 개인의 잘못을 묻는 것이 아니라 서울시 행정의 잘못을 묻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서울시 행정 대표가 누구냐면 바로 서울시장이다. 그래서 서울시장의 사과가 당연한데, 이명박 시장 개인의 정치적인 경력에 흠이 생길까봐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끝까지 서울시장의 공개 사과를 받아낼 것이다."

이렇게 이동권연대의 입장이 강경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시장의 공개 사과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보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군이 여중생을 치어 사망하게 한 사건과 비슷하다. 체면 때문인지 몰라도 미국이 사과를 거부하고 있듯이 서울시장도 장애우 사망 사건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동권연대 박현 조직부장은 "서울시가 사과를 끝내 거부할 경우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필요하다면 다시 국가인권위원회에 들어올 수 있다."라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권리 찾기 위해서는 싸움밖에 없어

이동권연대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농성과 함께 병행한 시청역 지하철 철로 점거 싸움의 결과 70명이 넘는 회원이 경찰에 연행됐다. 그 중에서 한 명이 철도법 위반과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장애우 6명이 같은 죄목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작년만 해도 장애우의 경우는 대부분 훈방조치로 나왔는데 경찰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처음 장애우를 불구속입건 했다.

이동권연대 회원들이 경찰에 연행된 건 이번뿐만이 아니다. 작년 버스 점거 농성때는 90명이 넘는 회원이 경찰에 연행됐고, 서울역 철로 점거 때와 광화문역에 천막을 치는 싸움에서도 각각 70명이 넘는 회원이 경찰에 연행돼서 벌금형 등의 처벌을 받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이동권연대의 싸움은 그때마다 언론에 보도되면서 과격한 장애우의 이미지를 사회에 심어줬다. 그러면 이동권연대는 왜 과격하게 싸우는 걸까? 이 질문 자체가 우문일까?

박현 조직부장은 "내가 들은 얘기 중 하나는 장애우들의 과격한 투쟁은 오히려 장애우들을 혐오스럽게 만든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나는 방법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캠페인을 통해서 또 청원을 통해서 이동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이동권 문제는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진작에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서울시가 장애우의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 것은 작게는 장애우를 서울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매한가지다. 장애우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아름답게 캠페인을 벌이고 탄원하고, 그런 식으로만 대처할 수 있겠는가, 쉽게 얘기하면 내가 먹는 밥그릇을 누가 가져가면 당연히 그 밥그릇을 빼앗아 오기 위해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우들이 누려야할 권리를 이 사회는 박탈해 갔다. 그럼 그걸 가져오기 위해서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동안 장애우 계층은 너무나도 온순하게 살아왔다. 이제는 이 사회에 장애우의 무서움을 보여줘야 할 때가 됐다." 라고 말하고 있다.

박경석 위원장도 "더 이상 사회가 만들어 놓은 장애우 이미지, 즉 순수하고 깨끗한 존재라는 이미지는 지워야 한다. 차별과 분노가 있으면 당당하게 싸워야 하는 것이다. 장애우이기 때문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은 장애우 문제를 더 왜곡시키는 것이다. 빼앗긴 부분들에 대해서는 장애우도 비장애우들 처럼 누릴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동냥으로 얻을 필요는 없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라고 강조하고 있다.

박경석 위원장은 이어 "우리가 이동권 투쟁을 통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진보다. 사회의 소수계층이고 약자인 장애우의 눈에 맞춰서 이 사회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만약 서울시 약속대로 대중교통에 대한 장애우의 이동권이 보장될 경우 그 파급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가 선례를 만들면 지방에서도 장애우 이동권이 보장될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사실 장애우 이동권은 미국과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오래전에 해결된 문제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 막 장애우 이동권 보장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동권 확보 논의가 시작되도록 강제한 단체가 바로 이동권연대다. 그래서 이동권연대가 장애우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글· 사진 이태곤 기자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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