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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르포] <우리 쌀 살리기 100인 100일 걷기 운동> 현장

진도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1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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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진도에서 서울까지 100일 동안 어떤 교통수단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걷기만 하는 이들이 있다. 넉넉잡아도 꼬박 하루면 오갈 수 있는 거리를 굳이 걷겠다고 나선 이들의 속사정은 무엇일까.

<우리 쌀 살리기 100인 100일 걷기 운동> - 이것이 그들이 걷는 이유이다. 그저 말로만 쌀을 살리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땅을 밟고, 자연을 만나면서, 새록새록 우리농산물의 소중함을 알아가고 있는 그들, 걸음걸음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꿈을 꾸고있는 그들의 행렬에 잠시 동참해보았다.

 

 

장마도 훌쩍 지나간 여름. 햇살과, 아스팔트가 내뿜는 지열이 만나 공기를 후끈 데워오는 8월의 어느 날, 기자는 길 위에 있었다. 길 위를 걷고있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길 위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 기자는 그들을 향한 마음속의 많은 질문들을 잠시간 접어두고, 한나절은, 그저 그들과 함께 걸었다. 살면서 이토록 충실하게 "걷기만" 했던 적이 있었던가. 버스를 타기 위해 걷고, 빨리 도착하기 위해 걷고, 일을 하기 위해 걸은 적은 있어도, 그저 걷기 위해 걸은 적은 없었던 듯 싶다. 주변이 온통 푸르름으로 펼쳐진 한적한 국도를 지나며, 걷는다는 것은 인간과 대지간의 최초의 만남이자,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가장 쉬운 길이라는 당연한 깨달음이 새삼 몸으로 느껴졌다.

 

우리 쌀, 생명입니다.

<우리 쌀 살리기 100인 100일 걷기 운동>의 정경식 위원장은 20년 간 유기농법만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어온 그야말로 "천상 농부" 였다. 자연과 함께 오래 살아온 사람 특유의 선한 눈매만으로는 100일간이나 생업을 접어두고 길을 나선 그의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구구절절 쏟아져 나오는 그의 이야기에 기자 또한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금 현재 우리농산물의 자급률은 3할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 그나마 자급을 해오던 것이 쌀인데 쌀을 빼면 농산물 자급률은 5%도 되지 않아요.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농민이 80Kg 쌀 한 가마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원가는 8만 3천원입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우리나라 원가의 8분에 1 수준인 1만 8백원정도의 원가가 필요하죠. 이런 상황에서 경쟁을 하려다 보니 당연히 농민들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할 수밖에 없구요. 그러다 보니 우리 땅은 갈수록 죽어가는 것이죠. 쌀 농사가 무너지면 차례차례 다른 농산물의 자립도 불가능해 질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결국 식량은 무기화 되고 우리는 거대자본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어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심각한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수입개방이라는 문제를 그리 호락호락 피해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전지구가 단일한 시장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세계의 흐름이 아닌가, 과연 그것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수입개방이라는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와 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 이런 문제에 대비해 사회적 안전망들을 만들어 놓고 있는데, 우리는 전혀 그런 형편이 아니죠. 풍년이 들었을 때 일정분의 양곡을 국가가 적정한 가격에 사 주어서 농민을 보호한다든지,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 급식만큼은 우리 쌀로 해 먹이도록 조례를 제정한다던지 하는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노력은 범국민적인 관심과 정부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요. 그런 것들을 만들어 가기 위해 씨를 뿌리는 과정이 바로 이 걷기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시대, 폭력에 평화로 대응하기

방학을 맞이해서인지 <우리 쌀 살리기 100인 100일 운동>의 식구들이 부쩍 늘어있었다. 100일간 전구간을 걷는 13명으로 시작하였지만 기자가 방문할 당시에는 60여명의 사람들이 부분 부분 참여하여 걸음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물론 이는 수입 개방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걷기"라는 성찰적인 운동방식에 대한 지지 또한 한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스피드의 시대에 한 걸음 한 걸음 제 발로 땅을 디딘다는 것은 어찌 보면 지루하고 한심해 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방식은 어떤 투쟁보다도 깊고 큰 울림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비노바 바베 라는 간디의 제자가 인도에서 토지헌납운동이라는 것을 했었습니다. 그때 그가 선택한 방식은 인도전역을 걸어서 돌아다니면서 땅 주인에게 소작농에게 토지를 돌려줄 것을 호소하는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이 걷기 운동 또한 비노바 바베의 운동에서 착안을 했습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할 때, 그 폭력이 처음에 아무리 정당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새로운 폭력으로의 대체 이상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도 폭력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떄문이죠. 걷기 운동을 통해, 우리는 폭력에 평화로 대응하고자 합니다."

 

인간과 자연, 나 자신과 만나며 걷기

처음 걷기 운동을 취재하러 가기로 했을 때, 사실 걱정이 앞선 것이 사실이다. 한여름이고 땡볕에 하루종일 걷기만 해야 하다니, 군대의 행군이 연상되기도 하고, 햇살이 쨍쨍한 한낮에 대오를 맞추느라 낑낑대야하는 것이 아닌지도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그들과 함께 걸으며 기자의 생각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인간이 걸을 수 있을 만큼, 걸어야 할 만큼을 걷고있었다. 걷는 동안 조용히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가까워진 사람들과 삶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들은 함께 웃고 떠들며 아이들만의 천진난만함을 한껏 뽐내고, 일상에서의 짐을 훌훌 털어 버리고 걸음걸음 깊은 사색에 잠기는 사람도 있었다. 가다가 한 두시간에 한번씩은 마을의 작은 학교나 다리 밑 그늘에서 수박을 쪼개먹으며 더위를 식히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서로 경쾌한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의 모습은 더도 덜도 아닌 자연의 일부였다.

 

그들은 그렇게 걷고있었다. 우리 쌀 살리기라는 하나의 깃발아래 모였지만 그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걷기"에 대한 나름의 목적은 모두 지닌 채로 말이다. 누군가는 쉬기 위해, 누군가는 도시의 삶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지기 위해 누군가는 자연을 만나기 위해 걷고있는 그들에게 걸음은 그 자체가 목적이요 수단이었다. 그들은 걸어서 행복하고 그 걸음걸음이 우리 쌀을 살리는 씨앗이 되어 또한 행복하다. 종래의 운동방식이 개인의 희생을 담보로 하여 세상의 변화를 꾀하여 왔다면 지금 그들의 운동은 그들의 행복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그야말로 win-win(윈-윈) 방식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걷고있는 사람들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함께 걸음을 나누는 걷기 운동 현장, 다양한 이유와 물음을 가지고서 한발한발 걸음을 옮기는 그들 중 몇 명을 만나보았다.

 

· 다큐멘터리 감독 김태일씨

김태일씨는 10년째 다큐멘터리 제작만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전문감독이다. <원진별곡>, <분단을 넘어선 사람들>등 사회와 역사의 문제를 줄곧 영화의 소재로 삼아 온 그는 이번에는 <우리 쌀 살리기 100인100일 걷기> 과정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100일간의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100일전 구간을 걷고있는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이기 이전에 100일 걷기 식구들의 든든한 맏형 같은 존재이다. 우리 쌀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보다 100일동안 대식구들이 함께 살아가며 겪게되는 갈등과 기쁨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진솔한 영상을 담아내려 한다고 전했다. 100일 걷기와 함께 완성되어가고 있을 그의 작품이 자못 기대가 된다.

 

· 보성의 체육선생님 송만철씨

전남 보성에서 체육선생님으로 계시다는 송만철씨는 체육선생님으로는 보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동네서당의 온화한 훈장님같은 그는 기자가 간 날 새벽에는 100일 걷기 식구들에게 요가를 지도하기도 했다. 기자를 한번 더 놀라게 했던 것은 그의 딸이 100일 걷기 팀에서 함께 걷고 있다는 것. 이제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된 송만철씨의 딸 한내는 현재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다. 그저 집에서 놀기도 하고 책도 읽고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한내의 꿈은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다는 그저 현재에 충실하고 순간순간의 행복을 즐길 줄 아는 듯 보이는 한내에게 100일 걷기운동이 소중한 시간이 될 것 같아 흐뭇했다.

 

· 새샘터의 친구들

기자가 도착했을 무렵 걷기 운동 식구들은 총 60여명. 그 중에서 단연 시선을 끄는 친구들은 <새샘터>라는 치유공동체에서 9명이 단체로 참가한 청소년들이었다. 귀농을 생각하고 있는 한 친구의 권유로 시작하여 다른 친구들까지 남은 일정을 모두 함께 걷기로 했다는 이들은 100일 걷기 운동 식구들에게 젊은 기운과 활기가 되 주었다. 편하고 화려한 것만 찾을 것 같은 도시의 청소년들이지만,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으려고 애쓰는 젊은 친구들의 모습에 마음이 든든했다.

 

함께 먹고 자는 것만큼이나 사람인연을 질기게 만드는 것은 없나보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함께 먹는 것, 함께 자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100일 동안이나 한솥밥을 먹고, 한 공간에서 잠들면서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한 식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겨우 1박2일 동안 함께 있었을 뿐인데, 기자는 100일 걷기 식구들과 정이 흠뻑 들어버리고 말았다. 도시에서의 이틀에 비하자면 더없이 깊고 진했던 시간. 고향생각 나듯 자꾸만 떠오르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기자의 이번 늦은 휴가는 그들이 걷고있을 충청도의 어디쯤으로 다시 향하고 있을 듯 하다.

 

7월1일부터 시작된 <우리 쌀 살리기 100인 100일 걷기 운동>은 10월13일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특집기사를 참고하시거나, 참가를 원하시면 농엽회생연대 홈페이지를() 참고하십시오.

 

글 · 사진 박채란 객원기자(rhanair@korea.com)

작성자박채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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