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음공간] 독자가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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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서울시민을 붉은악마로 만들며 이곳 저곳의 광장으로 불러내고 있는 월드컵 열기. 지난 6월 22일 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이 있던 날 그 현장에 동참하려고 붉은악마티도 입고 얼굴에 문신도 하고 통신 모임의 동생들과 광화문에 갔다. 호프집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더위를 달래고 서대문역에서 작별인사를 나누었지만 다들 아쉬움에 귀가할 생각을 안하고 한참을 서성거리다 2차를 하자는 합의를 보고 광화문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동화면세점 근처 광화문역을 지날 때 누군가가 갑자기 "아 여기 장애인분 계시네 하며 악수를 청했다." 당황하며 손을 내밀었는데 아니 이럴 수가 정몽준 월드컵 조직위원장이 아닌가. 승리의 기쁨에 술 한잔 기분 좋게 걸친 정몽준 위원장은 대-한민국을 한번 외치자고 제의를 했다. 같이 사진을 찍고 난 다음 위원장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아 여기 이분 준결승 때 상암경기장으로 모셔라며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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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준위원과 함께.. |
아아! 이럴 수가. 이게 꿈은 아니겠지. 정몽준 위원장님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셨군요!! 옆에 동행한 분에게 연락처를 적어드리고 기왕이면 다른 장애우들도 초청해 달라고 청을 넣고 흔쾌히 승낙을 받았다.
그러나 경황이 없어 관계자 명함 하나 받아두지 못했던 게 헤프닝의 시작이었다. 주말을 넘기고 월요일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 조직위에 전화를 넣은 끝에 다음날인 준결승전 당일 경기 불과 몇 시간을 남기고 위원장 비서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몇장이냐고 묻자 한 장이라는 대답. 그러면 보호자도 필요한데 어떻게 하냐고 하자 입장권 관계자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문의해 보라고 했다.
입장권 담당자는 장애우석 두 장에 보호자까지 가능하다는 답변을 했다. 직장내 휠체어를 타는 직원과 모처럼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부모님을 보호자로 동행하고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입장권을 담당하는 인터파크 직원들은 사실 확인이 안됐다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비서실로부터 소개받은 입장권 담당자는 우리에게 사실 확인 전화만 한 차례 한 후 경기 시작 임박해서야 표 네 장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고압적인 태도로 네 장을 주기는 하는데 장 당 220,000원의 티켓값을 정산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항의하자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표는 예매표이고 초청티켓은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정산하지 않으면 표를 넘겨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경기 시작이 임박한 시간이어서 조직위에 연락을 취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결국 우리 일행은 영문도 모르고 감정만 상한 채 귀가해야만 했다.
다음날 자초지종을 알아본 결과 비서실은 우리가 무사히 경기를 관전한 것으로 알고 있었고 의전부에서는 모든 초청권은 의전부를 통하는데 내 이름은 명단에 없다고 했고 인터파크는 우리를 입장권 예매자로 착각하고 있었다. 비서실관계자는 연락을 취하는 과정에서 의사소통이 잘 안되었다고 거듭 사죄를 했다. 그러나, 우롱당한 마음의 상처, 인터파크로부터 받은 불쾌한 대우에 좀처럼 분노가 삭여지지 않는다.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500명에게 6월 22일 한국대 스페인전 귀빈석 초청표를 공짜로 돌리고 왕복항공권까지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은 바있다. 인천시는 외국 투자단 등을 위해 1억여원을 들여 구입한 월드컵 인천경기 입장권을 공무원 또는 친분있는 인사, 시민단체 대표 등에게 나눠준 것으로 드러났다. 차라리 장애우와 소외계층에 귀빈석의 일부를 할애했다면 월드컵이 더욱 빛났을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여론이다.
인터파크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인터파크 예매 공식사이트는 늘 접속 불능 상태인데 수천 장의 티켓이 발매 개시 몇 분만에 매진되는 것에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 네티즌들은 공식 예매 사이트 외에 비밀 사이트가 드러났으며 이 경로를 통해 힘있고 가진 이들에게 표가 우선 빼돌려질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인터파크의 직원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이 서버로 손쉽게 예매를 하고 그 티켓을 암표로 팔았다는 얘기가 사실로 확인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월드컵조직위 홈페이지에는 인터파크에 대한 항의 글들이 적지 않게 올라오고 있으며 아예 안티인터파크 카페까지 생겼다.
우리에게 그토록 원칙을 따지던 인터파크의 입장권 배포 과정의 의혹과 상업주의, 소위 힘있는 사람들의 자기 몫 챙기기 속에서 공석이 수천석이 남아도 장애우나 소외 계층에 대해서는 일푼어치의 아량도 찾아볼 수 없다. 이들에게는 월드컵은 남의 잔치일뿐이다.
글 이현준(함께걸음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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