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다면, 만들어야죠”
본문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정신치제장애우에게 취업의 길은 여전히 좁다. 고용장려금과 고용보조금 등 그들의 고용을 위한 법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족한 인식과 경제난으로 아직도 일터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월드컵 경기장이 들어선 성산동, 장신지체장애우인 아들을 위해 직접 사업장을 만들고 다른 장애우들도 고용하여 페인트 칠 작업을 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페인트 칠이라면 자신있어요!
용호 씨(29)는 얼핏 봐서는 정신지체장애우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기자가 처음 방문했을 때 용호 씨는 화장실 천장의 몰딩부분에 페인트 칠을 하고 있었다. 칠에 집중한 정교한 손놀림은 정말이지 전문가의 그것이었다. 알고 보니 기자가 감탄해 마지않은 용호 씨의 손놀림은 무려 4년이나 숙련된 숙련공이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 손놀림만 봐서는 아무도 모를 일이 있다. 아직 용호 씨는 신발끈을 혼자 매지 못한다.
신발끈조차 혼자 맬 수 없는 용호 씨가 페인트 숙련공이 된 데에는 어머니의 헌신과 지원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6년 전 철도차량에 페인트 칠을 하는 업체에서 용호 씨는 3년간 일을 했다. 용호 씨 말고도 5명 정도의 정신지체장애우가 함께 한 일이었다. 그때 용호 씨의 어머니는 직무지원의 형식으로 함께 출근하며 3년 내내 그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장애우라서 일을 못한다고 손가락질 받는 게 싫었다’는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아들뿐만 아니라 다른 정신지체장애우까지도 자기 자식처럼 돌보며 사회와 분리시키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3년간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용호 씨의 어머니는 원래 판매만 하고 있던 자신의 페인트가게에서 도장일을 겸하여 시작했고 작업이 있을 때마다 용호 씨와 함께 일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장애우도 2명이나 고용되어 직업훈련을 받고 있다. 이번에 새로 용호 씨네와 함께 일하게 된 정신지체 2급의 고모 씨(28)는 계속 집안에만 있다가 밖으로 나와 일을 하게 되어 매우 즐거워한다고 한다. 다들 몸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페인트 칠이라면 자신이 있다. 이제 용호 씨는 경력 4년에 일당도 꽤 받는 전문 페인트공이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언제나처럼 그의 어머니가 있다.
부모가 직접 만드는 사업장
사실 이처럼 장애아동을 가진 부모님이 직접 사업장을 만들고 고용을 창출하는 예가 요사이 종종 있어 왔다. ‘THE WAY’ 나 ‘성남 발달장애인센터’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자녀들이 특수학교까지 다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할 나이가 되었으나 사회적으로 이 장애우들을 받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사회적 비용으로 감당되어야 될 이 부분이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장애아동의 부모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게 되는 것이다. 사실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 있다. 어차피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고용에 있어서도 효율성을 재고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일정 수준 이상의 효율적 가치를 가진 노동력만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장애아동의 사회화를 포기할 수 없는 부모들은 작업장을 만들고 아이들을 사회화시키고 사회와 분리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갖은 애를 쓴다. 하지만 장애아동의 부모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도저히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있다. 바로, 부모의 사후 문제이다.
부모 사후, 지역사회는 그들을 지지할 것인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최흥수 간사는 “이 문제는 민과 관이 협력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특히, 지역사회 자원의 네트워크화를 통해 사업체를 단순 사업체가 아니라 훈련생활기반의 역할까지도 담보 할 수 있는 사업체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실 부모 사후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지역사회가 그들을 부모의 생전과 다름없이 지지하고 지원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라고 밝혔다.
사실 장애우의 부모가 장애우에게 직업훈련을 시키는 것은 부모의 생전보다도 부모의 사후에 장애우들이 스스로 살아나갈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그런 절박함으로 사업장을 만들고 직업훈련도 했는데, 부모의 사후, 지역사회와 국가가 장애우의 사회적 삶을 지지 하지 않고 방관만 한다면 이야 말로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격이다.
용호 씨의 소원
“저는요, 대한민국 최고의 기술자가 될 거에요! 아, 그리구 저 장가 보내 주세요. 지금 일도 열심히 배우고 있구요. 빨리 장가가고 싶어요”
공개 구혼을 하는 그의 얼굴에 여느 총각들처럼 쑥쓰러움이 번진다. 결혼, 아들을 위해 헌신한 용호 씨의 부모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이다. 어울리는 짝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것.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게 갖는 평범한 소망이 그들에게도 당연히 있다.
그리고 부모의 그 작고도 큰 소원을 이루어 주고 싶은 용호 씨는 오늘도 쑥쓰러움을 무릅쓰고 공개구혼을 해 본다.
“저 장가 가고 싶어요!”
사랑을 듬뿍 받는 대상은 언제나 자신감과 행복이 넘친다. 비록 정신지체라는 장애를 가졌지만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사회적으로는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서는 그런 자신감과 행복의 기운이 넘쳐났다. 이처럼 장애우가 지역사회와 같이 있으므로서 용호 씨는 적어도 세가지의 변화를 만들어냈다. 장애우 아들을 부끄러워하던 아버지의 닫힌 마음을 열었고, 다른 장애우들에게 고용의 기회를 창출했으며, 장애우도 멋진 숙련공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만들어 냈다. 이 세가지 변화만으로도 용호 씨는 훌륭하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