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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리포트]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속에서 비장애우인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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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립생활에 무섭게 관심을 갖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서 일본에서 먼저 알아서 다행이었는지 아니면 불행인지, 나 자신에게 되물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너무 빨리 자립생활이라는 물이 끓고 있다면 빨리 식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나는 5년 간 자립생활센터에서 6명의 활동보조인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5년 간 계속 만나온 사람은 2명이고, 4명은 긴급할 때나 한 달에 2번 정도로 만났다. 어찌 보면 나는 내 이용자와 함께 유학생활을 해온 셈이다. 나 또한 이용자들을 바라본 시선이 해마다 달라졌음을 기억한다.

활동보조인 일은 장애우복지를 공부하는 나에게 가끔 내 한계성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지식이 없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기 이전에 전문가로서의 도덕성과 연관된 문제임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달콤한 만족함도 맛보게 해주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일본이야기를 이곳에 쓰게 되기까지 도움을 준 사람들인, 현장에서 만나 같이 울고, 웃고, 떠들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내 이용자들에게 감사한다. 무엇보다도 자립생활 속에서 비장애우이면서 전문가로서의 내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중에 평생 잊혀지지 못할 한 분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40대의 뇌성마비 1급인 N상. 지금은 한 달에 2번 정도 만나는, 내게는 영원히 잊혀지지 못할 내 이용자이다. N상은 고양이와 단둘이 살고 있다. 그녀는 시설에서 20여 년을 살다가 자립생활을 한 지 7년 정도 되어간다. N상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것이 너무 많다. 울었던 기억, 어이없었던 기억, 황당한 기억,그녀를 목욕시키고 허리를 다친 기억. 그리고 무서운 기억도 있다. 그녀의 집에 저녁 9시부터 아침 9시까지 일했던 지난 일년동안, 나는 다음날 반드시 친구들에게 이야기한다. 어제도 기가 막힌 영화를 찍었노라고…

약간의 피해증과 환청증세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최근의 화제작 「뷰티풀 마인드」에서처럼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와 항상 같이 있었다. 그 존재는 어떤 경우에는 스토커이기도 했고, 복지예산을 깍으려는 정부의 어느 고위관계자이기도 했으며, 어떤 경우에는 그녀와 이혼했던 과거의 남편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횟수가 늘어나면서 밤11시에서 2시까지는 소주를 사이에 두고 나와 내 이용자 그리고 보이지 않은 존재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가끔은 분노와 무서움에 떠는 내 이용자의 보호자가 되어 보이지 않는 존재와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다음날이면 나는 쓰러져 몇 시간이고 잠을 잔다. 그렇게 자기와 잘 놀아주는 내 이용자는 늘 나에게 “고마워. 내 마음을 알아주어서”라며 쓸쓸히 웃곤 했다.

 

그렇게 그런 시간들이 아무렇지도 않을 즈음의 어느 날, 저녁 9시 교대시간에 맞춰 레스토랑으로 갔다. 혼자 있던 내 이용자는 그 날도 어김없이 술에 반쯤 취해 있었다. ‘교대할 사람이 화장실이라고 갔을까’ 생각하며 인사를 건넸지만 반응이 없었다. ‘교대할 사람이 또 쫓겨났구나’생각하고 그녀의 옆에 앉아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혼자서 화를 내다가 욕을 하다가 20분쯤 지나자 집으로 가자고 했다. 5년째 가끔은 자기가 즐기는 놀이에 기꺼이 참여하는 나에게 무섭기로 소문난 그녀는 관대했다. 수동에 전동을 단 휠체어를 타고 있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신호등을 건너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속도가 빨라 뒤따라 뛰기도 하고 갑자기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멈추기도 하고, 나를 향해 휠체어를 타고 달려드는 N상을 피하기 위해 화단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여느 때처럼 담담했다. 분명히 낮에 한 활동보조인이 N상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한적한 공원을 끼고 2차선 도로로 접어들 무렵 N상이 아주 무서운 속도로 신호등 한가운데로 달려갔다. 내가 일하는 시간에는 내 이용자의 목숨은 내가 지켜야 하기에, 나는 잽싸게 달려들어 휠체어를 잡아당기면서 N상의 얼굴을 보았다. 짓궂게도 N상은 웃고 있었다. 장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차가 보이지 않아 나는 휠체어를 잡았던 손을 놓고 조금 떨어졌다. 그리고 무표정하게 N상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빨간 신호등과 파란 신호등이 바뀌는 순간, N상이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그대로 두었다. 한참을 지켜보자니 화가 났던 N상의 얼굴이 온화하고 웃는 얼굴로 변해가고 있었다. 또 나는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때 저쪽에서 차 한 대가 불빛을 보이며 오고 있었다. 순간 나는 그 차 앞으로 달려가서 양팔을 벌려 차를 세웠다. N상만의 시간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저쪽 골목으로 돌아가주십사’하고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몇대의 차를 다른 골목으로 인도하고 있는 사이, N상은 지쳤는지 빙글빙글 도는 것을 서서히 멈추었다.

순간 나는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N상을 저렇게 만든 이 사회에, 학대 속에서 키웠던 N상의 부모님에대해서, 그리고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지금의 복지 시스템에. 그리고 N상을 향해 걸었다. N상은 내가 하는 행동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던 듯, 웃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나도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을 향해 걸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났던 모든 상황들에 놀라면서도,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지? 나는 왜 N상에게가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화가 났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그런데 잘 가던 N상이 또 철도 건널목에서 가지 않고 멈추어 서 버린 것이다. 우선 11시가 넘어서 전철이 드문드문 다니는 때라는 것에 안심하고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N상! 죽고 싶나요?” 나는 직접적으로 약간 웃으면서 물었다. 그러자 N상이 ‘그렇다’고 했다. 나는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유학생이고 이곳 일본에서 죽고 싶지는 않다고. 이곳에서 죽으면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는 동안 냉동을 시켜야 하기 해서 돈도 많이 든다’며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죽고 싶으냐고? 그러면 오늘말고 내일 일본 활동보조인이 오거든 같이 죽으라고. 나 이대로 죽으면 시집도 못 가고, 불쌍하지 않느냐고.’N상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고마워. 이해해주어서. 오늘은 속이 시원하네.”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향했다.

그날 후부터 우리는 더욱 친해졌다. 매일 짜릿하게  영화를 찍는 일보다, 환각 속에 보이는 존재와 술을 마시는 것보다,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고양이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늘 N상의 집에서 활동보조인 일을 한다. 반쯤은 즐기면서 말이다.


2년 전 겨울, 나는 일주일간 화와이에서 열렸던 세계 자립생활 세미나 참가한 적이 있었다. 비장애우으로 자립생활속에서 활동보조인으로 일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을 즈음이였다. 한계라기보다는 화도 나고 비장애우에 대한 차별을 몸으로 느끼던 때였다. 그러면서도 자립생활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떠나지도 못하고 주위를 맴돌고만 있었던 그 무렵이었다.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선택권, 그리고 그 안에서 비장애우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보았다. ‘이렇게 많은 중증장애우들 가운데에서 내 역할을 무엇입니까?.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지원하란 말입니까?’라고. 2-3일이 지나가도 누구 한사람 나에게 이렇다 할 대답으로 나를 설득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리고 나도 다 아는 이야기만 계속해주었다. ‘중증장애우, 그들 곁에 오래 있으라고. 그러면 당신과 그 중증장애우사이에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더 많이 허무해졌다. 하지만 N상과 함께 지내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이야기해준 것이 진실이었음을 절감했다. N상의 경우에도 만약 내가 1년만 일하고 그만두었다면 위에서 이야기한 행동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일본 사람들처럼 센터에 불만을 이야기하고 상식없는 사람이어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겠다며 내 불만만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N상을 집에 빨리 데리고 가서 술만 마시게 해서 재웠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그 상황에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을 N상과 함께 보냈고 그 상황에서 N상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중증장애우 곁에 오래 있으라는 그들의 말을 가슴깊이 새겨두고 있다.


한국에서 너무 빠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자립생활이라는 프로그램. 그 빠름에 나는 가끔 두려움을 느낀다. 그냥 또 이렇게 시끄럽게 하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두려움, 자립생활로 인해 중증장애우들이 모두 잘 살 거라고 생각하고 풍선처럼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두려움. 최근에는 그 두려움이 무섭기까지 하다. 너무 빨리 물이 끓었다면 빨리 식었으면 한다. 유행이라면 빨리 지나갔으면 한다. 유행을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가버린 한적한 곳에서 정말 진정으로 중증장애우의 자립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어울려서 멋지게 한번 판을 꾸며보게 말이다.


글 정희경(릿쿄대학 코미니티복지학부 코미니티복지학과 nizasi@hanmail.net)


 

작성자정희경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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