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도심 속 작은 천국
본문
대도시인 부산중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물만골 공동체는 얼마 전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마을이다. 하지만 십 수년전에는 개발이익에 떠밀려 마을을 잃을 위기에 놓인 평범한 철거마을일 뿐이었다. 산자락 밑, 도심에서는 계속해서 짓고 허물기를 반복하는 동안 물만골 공동체의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몸소 익혔다. 자본으로부터, 개발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일구어가는 마을, 물만골 공동체를 찾아가 보았다.
물만골, 골이라 함은 골짜기를 의미하는 것 일테고. 물만이라는 뜻은 물이 많다는 뜻인가.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기자는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어 본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물이 많은 골짜기라, 내륙 갚숙히 산속에 있는 마을인가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자연환경이 지켜졌을테고, 그러다보니 생태마을이 되었나 보다. 그러다가 문득 그곳이 아파트 개발로 사라질위험에 처했던 철거촌이었음을 떠올렸다. 산골짜기에 아파트라, 웬지 말이 안되는 듯 하다. 그리고 어쨌든 부산은 대도시이지 않는가. 대도시, 그리고 생태마을, 어째 영 감이 안왔다.
부산역에서 내렸다. 바다를 못보고 자란 서울 사람에게 부산하면 냉큼 바다가 떠오르던 것은 당연지사. 5년전 처음 부산에 왔을 때, 부산은 역에서 내리자마자 바다가 보일줄 알았으나 그러지 않아 실망했던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부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몇정거장을 가면 부산 시청. 기자는 그곳에서 마을의 위원장님이 알려준대로 마을버스를 탓다. 한참을 들어갈 것이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는데. 5분이나 좀 넘었을까? 생태마을 지정 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다 왔단 말인가? 기자는 눈이 동그래진다. 완전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순식간에 도심의 한복판에서 산과 산이 만나 골짜기를 이룬 아담한 마을까지. 동굴하나를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지금 이쪽 산자락은 거의 생태계가 복원되었습니다. 어이구, 이놈들 또 뛰어 나왔네. 얘들은 산에서 놓아 키우는 산토끼입니다. 가끔 이렇게 마을로 내려와요. 여기는 양계장인데. 이렇게 유정란을 낳아요. 여기있는 가축들에게는 화학사료를 먹이는게 아니라 여기 이렇게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놓는 장소를 마련해서 그걸 줍니다. 이쪽 산자락에는 국내에서는 드물게 고라니가 서식을 하는 걸로 확인이 되었구요. 청솔모도 살고 있어요. 처음에 비하면 정말 많이 좋아졌죠.
마을회관 앞으로 기자를 마중나온 김이수씨는 물만골의 의료복지 상담소를 맡고 있다고 했다. 마을에 들어온지는 4년. 물만골 공동체에서는 드문 외지인이라고 할 수 있다. 겉보기에는 그저 수수하고 털털한 마을의 평범한 아저씨 같아 보이는 그의 직업은 의사. 그러나 그에게서는 일반적인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과 체면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천진한 개구쟁이 같은 모습으로 물만골의 구석구석을 설명 해 주었다.
육안으로도 확인이 되실 겁니다. 이쪽이 생태계가 복원된 쪽 이구요 이쪽이 안된 쪽이에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생태계를 복원했다는 산자락의 색은 살아 있는 산의 색이었다 봄의 온 물기를 머금은 듯한 촉촉한 산 빛. 절로 탄성이 나올 지경이었다. 물만골 공동체가 산을 지키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산에 기대어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 황령산자락을 어머니 품 삼아 살아온 세월이다. 그러니 산이 재산이고, 자연이 젓줄이다. 아니, 지킨다기보다 함께 살아간다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물만골은 물만골공동체의 땅
남쪽으로는 남구, 북쪽으로는 연제구인 물만골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65년부터 이다. 77년 무렵에는 100가구정도의 주민이 있었지만 전기가 들어온 것은 다음해인 78년이고 83년이 되어서야 전화선이 들어왔다. 84년이 되어서야 도로가 포장된 이 작은 마을에 철거민과 이농인구의 정착이 늘자 관청에서 경계를 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일. 급기야 90년대에 이르러서는 강제철거가 진행되고 이에 맞서 주민들은 온몸으로 싸웠다. 여기까지는 보통 있을 수 있는 철거투쟁의 과정이다. 보통의 경우 주민들은 몇 푼의 보상금을 가지고 다른 철거촌으로 밀려나거나, 아주 극소수는 개발로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거주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물만골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어찌보면 가장 위험하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장 평화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주민들이 돈을 모아 땅을 사 버린 것이다. 마을주민들의 명의로 된 땅문서를 받아 쥐던 날, 생에 처음으로 자기이름으로 된 땅문서를 받아들던날, 그들은 많이도 울었다고 한다. 왜 아니었겠는가. 그 서러움과 감격을 말로 다 해 무엇하겠는가.
그들이 땅을 살수 있게 된데 에는 새마을 금고의 도움이 컸다. 일단 땅을 살 때 목돈을 새마을 금고에서 빌리고 마을 주민들이 다달이 돈을 갚는 형식으로 하여 구입한 만큼의 토지 대금을 다 갚으면 또 그 주변 토지를 매입하고, 대금을 다 갚으면 또 그 주변 토지를 매입하는 식으로 하여 마을 중심부부터 서서히 토지를 사 들였다. 총 사려고 하는 땅은 14만평인데 지금까지 사들인 땅은 11만 4천평, 중심지역은 거진 다 사들인 셈이다.
처음 토지 매입이 제일 힘들었어요. 처음 토지매입을 한게 90년 2월이었는데요 그때 요기 마을 회관 근처의 중심부의 3500평을 사들였거든요. 어휴, 처음에는 주민분들 설득하기가 제일 힘들었죠. 그게 되겠느냐, 불가능하다. 에서부터 계속 우리 일을 방해하는 개발조합이 있었구요. 그때 고생은 말로 다 할 수 없죠. 근데 1차 매입을 딱 성공하고 나니까. 또 다르더라구요. 아,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자신감이 주민분들에게 생겼다고나 할까요. 그 이후부터는 좀 나아졌죠 그렇게 해서 지금 물만골에 사시는 분은 400세대 1200여명 정도이구요.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희찬 위원장의 표정에 십 여년 전의 쉽지만은 않은 세월이 언 듯 스치고 지나가는 듯도 싶었다.
모두 함께 꾸려가는 공동체
모든 것은 마을회의를 통해 결정됩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큰 문제까지. 그리고 일단 결정된 문제에 대해서는 그대로 추진하죠. 설사 자신은 동의하지 않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합니다. 공동체가 결정한일이니까. 이게 이유죠. 왜냐하면 우리가 내린 결정이 지금 당장은 불편하고 힘들 수 있지만 멀리 내다본다면 모두 공동체를 위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주민들이 아시니까요.
세제를 쓰지 말자는 이야기에서부터 정화조를 설치하지 말자는데 까지 야생화 화단을 만들자는데서 부터 주민복지차원의 의료서비스를 하는데까지. 어디 하나 주민들의 의견이 속속들이 반영되지 않은 곳이 없다. 왜 불편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공동체를 살리고 산을 살리는 일이기에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모든 사람에게 같은 규범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정화조는 설치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모두 푸세식인거죠. 하지만 전체 마을에서 딱 6가구는 정화조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족주에 장애우가 있는 가구이죠. 물론 이런 사항 역시 주민회의를 통해 결정됩니다. 땅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3년 이상 살아야 부지매입에 참여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부지를 매입했다고 할지라도 절대 개인이 되팔 수는 없습니다. 공동체에 반납하고, 새로 들어온 세입자에게 원래가격만 받을 수 있죠. 하지만 고령의 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같은 경우는 공동체가 거주를 책임지죠.
이쯤 되면 공동체가 국가보다 쓸만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그들에게 거창한 사회복지의 이론이나 학술적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약자를 돌보며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을 뿐이다.
미래를 생각하는 환경운동
지금 물만골에서는 야심찬 계획이 진행중이다. 자연에게 얻을수 있는 것을 최대한으로 얻어 환경오염을 줄이고, 자연에게 돌려줄수 있는 것은 모두 돌려줌으로서 자연을 지키는, 지역사회와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물만골 단일단위로 삶에 필요한것들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이를테면 풍력이나 태양력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집을 짓더라고 바람의 길과 빛의 길을 최대한 이용함으로서 각 가정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개울을 복원하고 습지를 만들어 사라져가는 생태계를 되살리고. 자체하수정화시스템을 통해 더러운 물이 개울로 흘러들지 않도록하고, 미생물처리 방식으로 분뇨를 처리하는 것까지. 일견 허황되 보일지도 모르는 이 계획은 어쩌며 인류가 망가진 지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취해야 할 마지막 행동강령인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조건을 만들어 준다고 할지라고, 자연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오염시킨다면 나머지 것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도시와 따로, 그러나 도시와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물만골이 지금까지 공동체를 이루며 살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약간은 고립된 지형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죠. 또 철거 투쟁을 거치면서 공동의 적과 맞서 싸우다 보니 자연히 공동체 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었구요. 물론 도심에서 7분밖에 걸리지 않는곳에 위치한다는 것이 장점이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도시의 개발을 늘 보게되니까요. 또 물만골 주민 대부분이 부산시내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늘 개발논리를 접하게되죠. 그래서 많이들 도시로 나가실 것 같지만,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도시로 나갔다가 도시의 야박한 인심에 못살겠다고 물만골로 올라오시기도 하는거죠.
도심에서 7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 물만골. 어쩌면 그래서 물만골은 우리에게 희망이 되는지도 모른다. 깊고 깊은 산골자기가 아니어도 땅을 살리겠다면 마음만 있다면 변화 시킬 수 있다는 믿음. 도시와 완전히 고립되지 않고서도 충분히 자연친화적인 삶을 꾸려갈수 있다는 가능성, 이것이야말로, 도심가까이 자리한 물만골이 아직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열린운동이라는 것은 모범을 만들어 가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커다란 사상이나 커다란 지역을 커버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는거죠. 여기서 이렇게 물만골 주민으로 살아가는 것, 물만골이라는 모범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제게는 중요합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안경너머로 보이는 이희찬 위원장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웬지 물만골과 닯아 있었다.
글 사진/ 박채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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