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과 활동보조인
본문
일본에 있는 나에게도 요즘 우리 나라의 장애인계에서 자립생활이 붐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이런 소식은 자립생활의 이념에 홀딱 반해서 5년째 그 일만 하고 있는 나에게 굉장히 반가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5년째하고 있는 그 일이라는 것은 바로 활동보조인(개호인 또는 개조인) 일이다.
활동보조인은 우리 나라의 유료도우미처럼 정해진 시간에 이용자(장애인)의 집에 가서 가정주부가 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유료 도우미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내 이용자가 시키는 일만 한다는 것이다. 시키지 않을 때는 아무리 집안이 지저분하고 할 일이 산 떠 미 같이 쌓여 있어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이용자의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활동보조인으로서의 역할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돈을 받는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아니 미안했지만 지금은 돈을 받으니까 시키지 않아도 무슨 일이든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건 분명 이용자의 자기결정권과 자기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나 스스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우리나라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간단히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면 자기 집 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하자. 그런데 몸은 많이 피곤해서 꼼짝하기 싫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 결벽증이 아닌 사람이라면 일단은 쉴 것이다. 이것처럼 내 이용자도 그날은 몸이 피곤해서 시키기조차 힘에 겨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다치가와 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있는 나의 생활
나는 사비 유학생이다. 학비야 장학금 제도가 잘되어있는 덕분에 걱정을 안 해도 되지만 생활비가 굉장히 비싼 이곳 일본에서 나는 활동보조인 아르바이트만으로 먹고 산다. 가끔은 먹고사는 돈이 남아 옷도 사고 여행도 가고 영화도 본다. 나는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열 시간씩 활동보조일을 한다. 평일에는 시급이 960엔(우리 돈으로 9600원), 휴일에는 1140엔(11400원)을 받는다.
이 금액은 사무실 수수료를 제외하고 받은 돈이다. 그렇게 해서 한 달에 대충 10만엔 정도의 돈을 받는다.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유학생들은 이 금액을 벌려면 일주일에 나흘동안 5시간을 나가야한다. 덕분에 우리학교 학생들은 나에게 부잣집 딸이냐고 묻기도 한다. 아르바이트를 별로 안 하는데 여유있게 산다고 말이다. 그럴 때 난 이번에 시골집 땅을 팔았다고 농담삼아 이야기하고 웃어넘긴다.
나는 일본에서도 오래 전부터 장애인운동이 활발했고 그래서 연금이 많이 나오는 곳, 그리고 장애인들이 많이 사는 다치가와센터에 등록해서 일을 하고 있다. 센터는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을 연결시켜주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그 외에도 이송서비스, 정보제공, 권리옹호, 복지기구의 대출 등의 업무를 담당하기도 하고, 지역주민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을 위해서 초등학교나, 각 공공기관들을 나가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 간단한 휠체어의 조작 방법 등을 가르치기도 한다.
다치가와 센터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자립생활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장애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시설이나 가족들에 의해서 보호받아오고 관리 받아온 존재였기에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면서 인생을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자립이라는 것은 자신의 신변처리를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가 결정해야하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단 하나의 생명으로써 즐겁게 인생을 빛내며 살아야하는 것이 자립생활의 의미인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는 신변적 자립(옷을 자기가 입을 줄 알아야하고 밥도 스스로 먹어야 하는 일상적 생활동작), 경제적 자립(생활하기 위한 돈을 본인이 벌어야 하는 것)이 자립이라고 되어져 왔지만 자립생활에서는 이것과는 다른 것이다. 즉 자기결정, 활동보조의 보장, 소득보장 등 장해인이기 때문에 필요한 도움을 받아 가면서 자기의 생각으로 자기의 생활을 디자인해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중증장애인이라도 자립생활은 가능한 것이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장애우의 자립생활에 있어서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은 듯하다. 자기 결정과 자기선택을 어디까지 보아야 하고, 많은 연금으로 인해 일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일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냐고… 정확히 말하면 이 부분은 이곳 일본에서도 고민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하지만 난 고민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 한 부분을 이야기 하다보면 복잡한 일본의 복지제도 시스템를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이유는 5년 동안을 가장 가까이에서 자립 생활하는 당사들의 자기결정과 자기 선택을 아주 잘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기회만 있으면 일하면서 사회참가를 꿈꾸는 사람들을 거의 매일 보았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자립생활센터가 2001년 3월 현재 97군데가 있다. 그리고 2-3년 내에 전국에 300군데가 되도록 지금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아마 일본은 당사자가 전문가인 장애인 천국이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키워준 활동보조인 경험
자립생활센터에는 두 가지 큰 기둥이 있다. 지역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자립생활 프로그램과 감정해방을 통해서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와지면서, 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강한 모습으로 되돌아가도록 도와주는 동료상담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자립생활센터를 통해 자립생활하는 사람은 일정기간 동안 이 두 가지 프로그램에 참가한 후 비로소 자립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기간은 대략 1년에서 2년이 걸린다. 내 이용자들은 모두 이 프로그램을 거친 다음에 자립생활을 하고 있기에 활동보조인인 나를 다루는 솜씨가 대단하다. 그리고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 요구를 잘하는 당당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써 살고 있다.
집에서 20년을 부자유롭게 살다가 또 10년을 시설에서 부자유롭게 살다가 30년만이나 40년만에 처음으로 자유롭게 지역 속에서 보통의 삶을 시작했을 때 그들은 어떤 마음이였을까? 난 순간순간 일이 힘들어지거나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장면에 부딪혔을 때 버릇처럼 생각한다.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것들이 그들의 삶에는 있었다고… 생각에 따라서 분명 이것은 편견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인인 나 사이를 좋게 해주는 좋은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내가 늘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지만 이곳에서는 난 늘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다. 어리광도 피우고 외로운 유학생활에 대한 고민도 이야기하며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가끔은 같이 여행을 간다. 그럴 때 나는 내 이용자에게 예쁘게 화장도 해주기도 하고 나이를 떠나서 친구가 되어 맛있는 것을 먹으러 좋은 곳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타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될 때나 내 이용자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내가 이용자를 지켜야 한다는 강한 생각에 당당하게 이용자 대신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 그들을 위로하면서 같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이 모든 행동들은 시간과 함께 돈으로 계산이 되어 나는 활동보조비를 받는다. 내 이용자의 발과 손이 되고 가끔은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당사자가 되어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외출시에는 전동휠체어를 탄 이용자의 몇 발자국 뒤에 서서 걷는다. 거리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난 대답 대신 무서운 눈으로 ‘이 사람에게 말하세요’ 라는 표시로 내 이용자를 본다. 이렇게 되기까지 3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와는 다르게 아무리 일하는 시간이라도 이용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반드시 내 기분을 이야기한다. “내가 지금 이런 서운한 마음이 드는데 이것은 제가 착각하고 있는건가요?”라고. 이것은 내가 편해야 내 이용자와의 관계가 편하고 더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장애인이기에 무조건 참아야한다는 생각을 버린지는 벌써 오래다. 그렇게 지난 시간이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내 이용자의 집에 가는 길에 가슴이 떨리고 가끔은 긴장도 한다. 친구와 같이 편안한 관계이기보다는 나는 그들에게 고용된 사람이고, 친구가 되어야 하지만 결코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되는 묘한 경계선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활동보조인 일은 나에게 인간의 존엄과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바라 볼 수 있는 힘을 키워주었다. 이것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소중한 지식이고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귀중한 경험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사회에 나가기 전에 이런 경험의 기회를 빨리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애인복지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감히 한마디… 장애인 연금제도를 만들지 않고 무엇을 생각하고 계시나요?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