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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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 가시지 않은 추위, 볼 끝에 남는 바람꼬리가 매섭다. 누구에게나 추운 겨울이지만 더더욱 겨울나기가 막막한 사람들이 있다. 영등포 역 옆 쪽방동네 사람들. 제몸 하나 겨우 누일 0.5평 작은방에서의 겨울은 결코 짧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봄은 온다. 세상에 온통 봄꽃이 필 무렵이면 봄은 어디든 찾아온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그들의 방, 그러나 아직은 봄을 기다리며 꽃씨를 품고 있는 그들의 방, 쪽방을 찾아가 그들을 만나 보았다.
두려웠다. 쪽방을 취재해야 하는 것을 안 순간부터 큰 돌덩이 하나가 마음을 내리누르는 것만 같았다. 아주 솔직하게, 그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가난한 그들, 꾀죄죄한 그들, 아픈 그들, 그런 그들이 모여 사는 곳. 그런 모든 결여가 가져다주는 음침한 느낌. 왠지 낮에도 해가 들것 같지 않은 곳, 박쥐가 날아다닐 것만 같은 곳. 퀴퀴한 냄새로 숨도 쉬지 못할 것 같은곳, 아무나 쌍욕을 해 댈 것 만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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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포쪽방을찾아서 |
영등포, 그리고 쪽방
영등포, 영등포의 분위기는 묘하다. 시내임에는 분명한데, 종로나 강남의 그것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품고 있는 듯한, 행과 불행을 동시에 가진 듯한, 백화점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마저도 왠지 쓸쓸해 보이는 그런 느낌.
영등포 역사를 가로질러 뒤로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역 앞의 커다란 백화점들과는 상관없는 듯, 평범한 골목길이 나온다. 그 골목길을 따라서 한 5분이나 걸었을까? 커다란 아파트공사현장이 보인다. 아직도 서울에 아파트 지을 땅이 남아있다니. 잠깐 상념에 젖고서야, 뭔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서 이십 년이 넘게 살아왔는데도 길을 잃다니, 서울은 그런 도시였다. 순간, 누구라도 미아도 만들어버릴 수 있는, 거대한 공룡의 뱃속같은 도시.
몇 번의 전화통화를 통해서 겨우 찾아 든 곳은,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자 및 쪽방거주자를 위한 주간 쉼터인 "햇살보금자리"였다. "햇살보금자리"는 노숙인이나 쪽방거주자들이 낮동안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현재 서울시에는 노숙인들이 입소하여 쉴 수 있도록 하는 쉼터들이 여럿 존재하지만, 이들 쉼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쉼터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 이들을 돕기 위한 취지로 지난 2000년 1월에 문을 열었다.
단순히 노숙인을 쉼터로 입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숙인과 쪽방거주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에게 직접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drop in center" 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특히나 쪽방지역을 가까이 하고있는 "햇살보금자리"에는 찾아오는 아저씨들의 30%이상이 쪽방에 거주하는 분들이다. 그분들과 쪽방과 관련함 상담을 하고 세탁과 이, 미용서비스등을 하는것도 햇살보금자리의 몫이다.
햇살보금자리 정영철 실장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는 남대문, 종로, 용산, 영등포, 창신동 등지에 3500여개의 쪽방이, 전국적으로는 약 8000여개의 쪽방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고 한다.
쪽방이 생겨나게 된 것은 대략 30~ 40년 전쯤으로 보는데 산업화와 함께 생성된 공단 주변을 비롯하여 사창가의 여성들, 이농인구들이 도시 주변에 밀집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주춤하던 쪽방은 90년대 말 구제금융(IMF)이후 더욱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쪽방은 성인 한 사람이 겨우 누워 잘수 있는 0.5평~1평의 방에 화장실, 욕실, 부엌 등의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숙박시설을 의미한다. 일세로는 6-7천원 월세로는 15-20만원정도의 방값을 지불하는데, 일세를 내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쪽방은 행정구역상으로는 "단신생활자용 유료숙박시설"이라는 긴 이름으로 분류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부분의 쪽방거주자가 장기거주를 하고 있어 숙박이라기 보다는 "주거"로 보는 편이 옳을 듯 하다.
쪽방 거주는 노숙인이 되어 거리로 가기 전 마지막 단계로서 쪽방거주자들은 일종의 잠재적 노숙인으로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활의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늘 일거리를 원한다. 일을 찾기 위해 분주하다. 그러나 오랜 가난으로 인해 망가진 몸, 술로 지낸 긴 시간, 학습된 무력감은 빠르게 돌아가는 이 경쟁의 도시에서 자꾸만 그들을 도태되게 하고 있었다.
그들과의 만남
햇살보금자리를 통해 지체장애우인 이영태 씨를 취재하기로 약속을 하고 돌아오는 길목, 사실 기자는 막막했다. 2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그 후유증으로 지체장애2급인 영태 씨는 언어장애까지 가지고 있어서 말을 하지 못하는 분이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분과의 인터뷰라, 도저히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취재 당일 "햇살보금자리"에 앉아 영태 씨를 기다리며 나름대로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3년여의 쪽방 생활과, 장애. 누추하고, 병색이 완연한, 아무에게나 막 시비를 걸 것 같은. 그런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모습에, 기자는 꽤나 당황했다. 그는 몸이 좀 불편하긴 했지만 단정하고, 말끔했으며, 무엇보다도 해맑아 보였다.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이영태 씨를 위해 그의 옆방에 기거한다는 김영철 씨가 동행해 주었다. 그 또한 정신지체장애우. 서로 알게된지 2년여가 되었다는 그는 손짓과 의성어만을 사용하는 영태 씨의 말아닌 말을 기가막히게 통역 해 주었다. "이렇게 서로 도우며 살 수 있는거구나." 기자는 눈물이 찔끔 날것 같았다.
정말 작은 방
영등포 역사를 지난 골목, 얼마나 남았냐는 물음에 다 왔다는 김영철씨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닥에 커다랗고 시뻘건 글씨가 보인다. <청소년출입통제구역> 쪽방지역 입구임을 알리는 표지인 듯 했다. 그들이 범죄자인가? 이곳이 유흥가인가? 잠깐 울컥 올라오려는 화를 가라앉혔다.
골목을 따라 그들이 이끈곳은 낡고 오래된 건물, 난간이 없는 계단에는 군데군데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유심히 살피는 기자에게 김영철 씨가 말했다.
"이거 다 내가 붙인거에요."
흡족하고 자랑스러운 미소가 그의 얼굴에 잠깐 스친 것도 같았다.
4층, 방문을 열자 마치 기숙사 복도처럼 양쪽으로 작은 방문이 4개씩 쭉 늘어서 있다. 이영태 씨와 김영철 씨는 왼쪽 두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후다닥 방을 치우느라 분주하다. 그래도 손님이라고 정돈된 방으로 안내하려는 그들의 성의가 고마웠다.
방은 정말 작았다. 세사람이 둘러앉자 가득차는 그 방의 방세는 15만원,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이씨는 국가로부터 약 30만원을 받는다. 그중 15만원을 방세로 내고 나면 남는 것은 15만원. 몸이 불편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여의치 않는 그에게 그것이 한 달 총 생활비이다. 저축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어떻게든 생계비를 지원 받는다면 그래도 나은 축이다. 쪽방에 거주하며 생활이 어렵지만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거나, 신용불량자가 되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신용불량자 이야기가 나오자 이영태씨가 어디에선가 종이뭉치를 꺼내왔다. 바닥에 펴놓으니 좁은 방안이 가득 찰 지경이었다. 뭐냐고 묻자 이영태씨 앞으로 날라든 고지서란다. 줄잡아 2000만원은 되는 액수였다.
쪽방 거주자들을 상대로 한 범죄 비일비제 해
사연인즉슨, 작년 여름 서울역 벤취에서 잠깐 졸고 있을 때 누군가 이영태 씨의 호주머니에서 그의 인감과 주민등록증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곧 잠에서 깨어났지만 몸이 불편한 그는 날쌔게 도망가는 범인을 잡지 못하였다. 범인은 훔쳐간 인감과 주민등록증으로 차를 사서 되팔아 돈을 챙기고, 핸드폰을 구입하고, 심지어는 사업자 등록까지 한 상태다. 그리고 그에 따른 고지서와 세금은 고스란히 그의 몫이 되었다.
무슨 방법이 없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연신 고개만 흔든다. 손목을 대각선으로 모아 수갑을 찬 모양을 한다. 김영철씨가 거들어 이야기를 잇는다.
"방법이 없어요. 형을 살다 나오는 것 밖에, 거 계산해 봐요 하루에 3만원씩 2000만원 갚으려면 얼마나 있어야 되는지."
차마 그 앞에서는 계산해 보지 못했다. 666일, 2년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는 소리없이 울먹거리고 있었다.
김영철 씨는 노숙인이나 쪽방거주자들을 상대로 한 그러한 범죄가 비일비재하다고 밝혔다. 서울역 주변 등지에서 그들은 노숙인들과 수차례 술을 마시며 친분을 형성한 뒤, 한참 술에 취한 노숙인들에게 주민증과 인감을 100만원에 팔라고 유혹을 한다는 것이다. 술에 취하고 추위에 지친 노숙인들은 그 꼬임에 넘어가게 되고 그 결과 더욱 큰 빚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었다.
취재를 마치면서 그들에게 물었다. 여기를 나가면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김영철씨는 200만원짜리 월세방이라도 가고싶은데 돈이 잘 안모인다 했다. 영태 씨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김영철씨가 통역을 해 주었다.
"그저 죽고만 싶다네요."
이영태씨 방을 나서면서 4층 복도 가득 창문마다 놓여있는 꽃들에 불현듯 눈 앞이 환해 지는것만 같았다.
"이 꽃들 다 제가 가져다 놓은거에요."
흐뭇하게 말하는 김영철씨의 목소리에서 잠깐 희망의 기운을 본 것도 같았다. 그곳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꿈을 일구는 밭이기 때문에 그 꽃들은 비록 조화일지언정 아름다웠다. 그들이 비록 조금 작은 방에서 조금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모두 한 하늘아래에서 꿈을 일구며 사는 진정한 이웃이라는 사실, 쪽방계단을 내려오며 기자가 얻은 새삼스런 교훈이다.
글 · 사진 박채란 객원기자(rhanai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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