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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대담] "장애우운동의 목표는 지역사회에서 생활과 노동, 사회적 공헌을 일체화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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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1일부터 12월 17일 까지 일본 다치가와(立川)시에서 열린 한 · 일장애인교류대회의 마지막 날, 양국 관계자들은 자립생활과 2003년부터 바뀌는 일본의 사회복지제도 아래에서의 장애우복지의 변화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장애우복지에 관련된 여러 제도를 먼저 도입해 실시하고 있는 일본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주제는 무엇인지 점검하고 한국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관해 논의했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사회: 김정열(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
대담: 노구치 토시히토(일본 장애인차별과 싸우는 전국공동연합 도쿄 대표, 다치가와시 자립생활센터 소장)
        사이토 겐죠(일본 장애인차별과 싸우는 전국공동연합 나고야 대표)
        정일교(가톨릭상지대학 사회복지과 교수)
통역: 정희경(릿쿄대학 사회복지학과 재학)
장소: 일본 동경도 다치가와시 시민회관

 

 

김정열(이하 김): 지금까지 몇년 째 이어지는 한 · 일 교류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한다면 책이나 문건을 통해서가 아닌, 애정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양국 장애우복지의 내용을 접하게 된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전에 소개된 내용들이 현재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장애우복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만나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양국의 교류대회가 갖는 이런 의미들을 토대로 자립생활의 주요 쟁점, 조치에서 계약으로 바뀌는 사회복지서비스 제공방식 등 이번 교류를 통해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노구치 토시히토(이하 노구치) : 일본과 한국의 장애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친밀한 만남의 자리가 되고 일본 사회복지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연수를 준비했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권리옹호나 자립생활, 장애우의 노동과 고용 등 깊은 내용을 다룰 수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사이토 겐죠(이하 사이토) : 저도 역시 지금까지의 교류대회와 비교하여 깊은 내용으로 연수가 진행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특히 일본의 자립생활센터 중에서도 가장 발전된 곳으로 평가받는 다치가와시에서 연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소의 많은 직원들이 다치가와 자립생활센터에서 준비한 내용을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정일교(이하 정) : 저도 이번 연수가 지금까지의 교류대회와 비교해 보다 심도 깊은 내용을 다루었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이제는 이런 내용들이 장애당사자와 어떤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도 운동단체나 장애당사자들의 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부터는 교류를 넘어 장애당사자가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의 자립생활운동,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것과 더불어 노동권 강조

김 : 네, 이번 교류에 대한 여러분들의 느낌을 들었구요. 지금부터는 구체적인 영역별로 이야기를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경우, 수년 전 자립생활에 관한 내용이 일부 소개되면서 장애문제의 해결방향을 자립생활로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자립생활센터의 제도화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디까지를 자기결정권으로 볼 것인지, 자기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가 가진 자원이 충분한가 등에 관해 우려를 표하는 것이지요. 일본의 경우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노구치 : 일본에서는 자립생활센터가 생기기 훨씬 전인 1970년대부터 당사자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당사자운동이 1990년대 자립생활센터라는 결정체를 낳았습니다. 현재 자립생활센터에서 제공하는 동료상담, 자립생활훈련, 개호 서비스들이 장애당사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자립생활센터는 당사자들이 사회에 참여하고 자신의 힘으로 생활하는 부분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장애당사자들이 이런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힘을 키워왔습니다.

일본에서는 장애당사자들이 운동에서 얻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자립생활센터를 만들어 왔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운동을 통한 다양한 경험을 기반으로 자립생활센터가 만들어지고 운영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장애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을 계기로 주변에서 지지자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자세입니다. 자신이 차별받은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지요. 장애당사자 뿐만 아니라 차별에 반대하고 차별을 줄이는데 힘을 합하려는 모든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이토 : 다치가와 자립생활센터는 중증장애우들이 자립생활을 하고 노동을 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자립생활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일본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립생활을 그대로 모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립생활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다른 나라에서 이미 진행된 과정을 참고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중증장애우나 경증장애우들이 스스로 힘을 키워 자립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한국식 모델에 대한 진지한 고민입니다.

김 : 현실적으로 자립생활제도가 잘 되면 잘 될수록 일하지 않고 연금이나 자립생활센터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만으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것이 공동사업장운동과 배치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하게 되는데요.

사이토 : 일할 사람은 일을 해서 생활하고 연금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연금을 받아 생활한다는 식으로 대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능력이라고 할 때 꼭 일하는 것과 연관시켜 이해하는 사고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중증장애우에게도 기본적인 능력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먼저라는 뜻이지요. 일반인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회에서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중증장애인이 생활할 수 있는 소득보장이 필수적입니다. 보통 중증장애우에게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대신 많지 않은 금액의 연금이 주어집니다.

북유럽의 경우 많은 액수의 연금이 주어지지만 소득이 높다고 해서 다른 것들이 보장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서로 돕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사회는 중증장애우들이 일하고 사회참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빼앗고 있지 않습니까? 자립생활운동은 이와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공동사업장도 자립생활과 노동을 함께 지향하지요. 일본의 자립생활운동은 생활방식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노동권을 강조합니다. 물론 노동권의 확대를 위해서는 장애우에게 적합한 노동의 내용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자립생활운동은 노동을 중시하기 보다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안정된 생활기반을 제공하려는 미국식 자립생활운동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 사회에서는 중증장애우가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박탈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장애우에게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노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장애우가 일할 수 있는 사회가 인간적인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사회에서의 생활과 노동, 사회적 공헌이 일체화되야

정 : 연금이나 사회복지서비스가 뒷받침되지 않은 한국의 상황에서 노동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립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오지는 않을 까 우려가 되는데요. 자립생활이 선행되고 노동할 기회가 제공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구치 : 시설에서 자립생활을 하는 장애우들은 평생 한번이라도 지역사회에서 살아 봤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1-2년 정도 연금만으로 생활한 후 실제로 일하고 싶고 사회적 공헌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이야기합니다.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고 노동하고 사회참가와 공헌을 하는 것 세 가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이토 : 저도 자립생활을 먼저 이루어낸 다음, 노동권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자는 의견에 대해 반대합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는 유보해야 한다는 생각은 틀립니다. 자립생활과 노동과 사회적 공헌을 일체화시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구치씨가 자립생활을 확대하는 운동을 하는 분야가 노동입니다. 서비스를 받고 생활하는 것은 진정한 자립생활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사회에 참가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변화되는 것이 참된 의미의 자립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의 상황이 지금 자립생활이나 연금 등 아무런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이루어내고 활동이 진전되면서 그 안에서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운동의 역할이지 않습니까?

일본도 1970년대에는 개호서비스나 연금제도가 전혀 없었지요. 장애우들이 싸워서 지금의 것들을 이루어 냈습니다. 장애우들이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에는 많은 요소들이 필요한데 어느 것 하나를 중시하면 균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일할 장소는 있는데 집이 없으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전철을 타지 못하면 일하러 갈 수 없구요. 전철은 탈 수 있는데 일하러 갈 곳이 없으면 그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 원칙적으로는 모든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회적, 시대적 상황, 경제적 여건, 장애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근거로 현 상황에서 중요한 것에 대한 우선 순위를 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한국 장애우운동의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기선택이나 자기결정은 무의미하다

김 : 일본의 사회복지서비스가 2003년 조치에서 계약으로 바뀌는 제도가 우리에게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일본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로 공무원들은 이 제도로 인해 일본의 사회복지행정이 발전할 것이라고 보고 있고, 학자들은 정부 예산을 감축하려는 신 자유주의적 발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도 변화를 보는 다른 의견들을 소개해 주시지요.

노구치 : 2003년 실시되는 개호보험의 대상에 60세 이상의 장애우들도 포함됩니다. 그렇지만 개호보험에서 장애우들의 사회참여에 대한 욕구를 고려한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개호보험은 전국 어디에서든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장애우에 대한 지원금은 지방자치단체별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조치에서 계약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하지만 서비스 면에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개호보험의 경우 10%의 자기부담금이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은 돈을 내지 않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우들의 자기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사이토 : 저는 많은 사람들이 계약제도에 나타나 있는 자기 선택과 자기 결정이라는 단어에 속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무원들은 자기 선택과 자기 결정을 할 수 있으니 좋은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장애우들이 직업이나 다른 것을 선택할 사회적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택이라는 말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제공되는 서비스의 규모가 아주 작은 현실에서는 선택할 것도 결정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하는 문제를 예로 들더라도 지역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으면 시설에 입소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 일본은 시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시설이 새로 생기면 금방 정원이 마감됩니다. 시설이 많고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지역에서 제공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면 그제서야 시설의 입소인구가 줄어들고 비로소 자기선택이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계약제도의 시행이 장애우 스스로 자신이 어떤 인간이고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력하지 않는 장애우는 아주 제한적인 범위의 서비스밖에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정리 이수지 기자/ 사진 이태곤 기자

작성자이수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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