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보건소장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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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시가 공석중인 보건소장 인사를 하면서 승진우선순위였던 장애인 의무과장을 배제시키고 충북도 사무관을 승진발령내자 장애인 의사가 사표를 제출해 파문이 일고 있다.
권희필 제천시장은 이번 인사에 대해 “이 전 과장에게 결격사유가 있거나 장애인란 편견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지난 9월 권 시장은 보건소장 인사가 늦어지는 이유를 추궁하는 제천시의원들의 질문에 “근무연한 등을 고려하면 이희원 씨 밖에 해당자가 없으나 장애인인 이희원 과장에게 16만 시민의 보건과 직원 관리 등을 담당하는 보건소장직을 맡기는 것은 어려움이 클 것 같아 승진에서 배제시켰다”며 장애인 비하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을 더하고 있다.
이 사건이 신문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재천시청 홈페이지에는 연일 시장을 비난하는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고, 장애관련 단체들은 제천시에 방문해 이희원 씨를 원직 복직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보건소장 임명을 둘러싸고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제천보건소의 진상을 확인해 보았다.
제천시 보건소 이희원 씨 ‘인술의 꿈’ 접고 결국 사직서
이번 문제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지난 7월 홍성표(46)전 보건소장이 갑자기 숨진 후 이 보건소 의무과장으로 10년간 재직한 이희원(39) 씨가 내부에서 자격조건을 갖춘 가장 유력한 차기 보건소장의 물망에 올랐다.
보건소장은 의무·보건 4급 서기관에 해당하는 자리로, 보건소 안에서는 이씨가 유일하게 소장승진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제천시장은 인사를 3개월 여 미루다가 결국 지난 10월 25일 충청북도 보건과 노모 사무관을 서기관으로 승진시켜 보건소장으로 발령했고, 이에 이씨는 지난 11월 14일 시에 사표를 제출한 뒤 최근 춘천소년원 의무과장(서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1년부터 제천시 보건소에서 일반의로 일해 온 이희원(39·오른쪽다리마비 장애3급) 씨는 “첫 직장이자 제2의 고향인 제천 땅에 머물면서 농민과 장애인 등 소외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꿈을 키워 왔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같은 인격체로 보지 않은 시각을 다시 느꼈을 따름”이라는 씁쓸한 뒷말을 남기고 지난 11월 14일 10년 동안 정든 직장에 사직서를 냈다. 이 한마디에는 장애인들이 몸으로 느끼고 있는 ‘절망’이 담겨 있다.
이희원 씨가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은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때인 87년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면서부터였다. 1년 반 동안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다 기적적으로 깨어났으나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마비된 것이다.
“뇌출혈로 쓰러져 1년 이상 식물인간이었습니다. 다리에 종양이 생겨서 2년 동안은 대소변도 누워서 받아내고 밥도 빨대로 먹고 코로 먹으면서 지냈습니다. 그때는 누워만 있으니까 휠체어에 앉아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다리에 생긴 종양을 수술하면서 휠체어에 앉게 됐고, 목발 짚다가 지팡이 짚게 된 거죠.”
그 뒤 어려움 속에서도 학업을 계속해 의사자격증을 딴 뒤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신천병원에서 인턴생활을 마치고 제천보건소에 부임해 열심히 일해 왔다.
그는 10년 동안 제천시민을 위해 보건소에서 활동하면서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의 벗이었다. 본인이 몸이 불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이 불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져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학생시절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과 노동야학 활동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설움과 아픔, 부당한 차별을 몸으로 겪어 알기 때문에 자리를 옮겨 더 좋은 상황에서 돈과 명예를 얻기보다는 묵묵히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 왔다.
현재 신축한 보건소 건물도 95년 이희원 씨가 지역주민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에 지역의료계획서를 제출해 보건소신축사업 명목으로 지원받은 자금으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건소장 임명권을 갖고 있는 제천시장은 소장 자리가 비어 있고 적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 동안 승진발령을 미룬 채 공공연히 개인의 ‘장애’를 이유로 거부의사를 표명해 온 것이다.
“7월 25일 전 보건소장인 홍승표 소장이 돌아가신 후 후임 보건소장을 뽑아야 했는데 그 당시 제천시 안에서 보건소장 채용직의 규정에 맞는 적합한 후보자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사무관 경력 5년 이상, 의사 혹은 의사가 없는 경우 보건직의 경우입니다. 외부에서 오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그건 내부에 적임자가 없는 경우에요. 관례적으로나 기준상으로나 그럴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라면서 이번 인사의 억울함에 대해 호소했다. 이희원 씨의 얘기로는 보건소장직을 놓고 경합을 벌인 것이 이번뿐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3년 전 홍 소장이 보건소장으로 임용될 당시에도 그는 후보의 물망에 올랐었다.
“시장님은 그 당시에도 분명히 저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보건소장직을 하는 것이 힘에 부치고, 기관장회의에 데리고 다니기 창피하다고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되신 건데 그때는 제가 큰 불만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홍 소장님이 의사는 아니지만 저보다 더 오래 근무하셨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시장은 장애라는 이유를 들이대면서 보건소장직으로 임용할 수 없다는 뜻을 비쳤다는 것이다.
간호과장을 보건소장으로 추천하는 시장 발언, 시의회록에 기록 돼 있어
권 시장은 이희원 씨가 승진적임자임을 인정하고도 장애를 이유삼아 3개월 동안이나 인사를 미루다가 결국 도에서 전임 받은 노모 사무관을 보건소장으로 임명했다.
그렇다면 보건소장직을 3개월 동안이나 공석으로 둔 이유는 무엇인가? 그 3개월의 시간 동안 시청 내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있었던 것일까?
문제는 처음부터 이희원 과장과 노모 사무관이 보건소장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인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당초 두 사람을 두고 경합을 벌인 것이라면 굳이 3개월씩 공석으로 그 자리를 두었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시청 측인 장애인인 이희원 씨가 보건소장이 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시청 내의 간호과장(사무관 급으로 2년 정도 경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건소장직에 앉히려다가 지역의사회와 시의회, 여론 등에 부딪히자 도에 있는 노모 사무관을 급히 영입한 것이라는 얘기다.
이희원 씨는 ‘제천시장이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시청에서는 공석으로 둔 3개월 동안 간호과장을 보건소장으로 앉히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홍 소장님이 돌아가신 후 시장은 제천시 간호과장으로 일하고 있던 유모 과장을 후임 보건소장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은 의사나 보건직이 아닌데다가 사무관으로 승진한 지 2년 반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자격조건이 안 돼는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보건소장대리로 보직을 주고 사무관경력 5년이 되면 보건소장으로 앉히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시장은 시의회를 통해서 조례를 개정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동양일보에도 나와 있고 기자간담회나 시의회를 통해서도 밝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모 과장이 보건소장으로 임명될 경우 앞으로 사무관 경력 5년이 채워지는 2년 반 동안은 대리체제로 운영해야된다고 밝히자 시의원들도 반대를 하고, 의사회가 서명을 해서 추석 며칠 전에 명백한 자격이 되는 이희원 과장을 보건소장으로 임명하라는 성명을 냈죠. 상황이 이렇게 되니 시장도 더 이상은 유모 과장을 밀 수 없게 된 거죠. 그래서 차선책으로 도에 있었던 지금 소장을 임명하게 된 것입니다.”
그 증거는 시의회록에서도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너무 긴 시간 동안 보건소장직이 공석으로 있다는 의원의 질문에 답하면서 권 시장은 ‘보건소장으로 지금 승진소요연수에 해당하는 사람은 의무과장인 의사 하나 뿐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장애인라고 해서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15만 시민의 보건을 향상시키고 보건복지를 책임질 수 있는 힘은 좀 어렵지 않느냐 해서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지금 현재 간호직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상위법(충청북도 의회)에는 간호직도 우리가 규칙만 개정하면, 개정이 아니라 보완하면 간호직도 보건소장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변한 것이 시의회록에 문서로 남아 있다.
이는 이희원 씨가 분명히 보건소장 자격을 갖춘 1순위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이유로 자리에서 밀려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천시, 장애인 단체와 시민들의 비난에 성의 없는 해명으로 일관
장애를 이유로 적격자의 보건소장 임용을 거부한 이번 사건에 대해 장애인단체와 시민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사건을 발생시킨 주체가 사회지도층 인사이며 지방자치단체라는 점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매우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한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단체장의 입에서, 그것도 공식적인 회의석상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제천시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이날 현재 200여 명의 네티즌들이 ‘솔직히 시인하고 공개 사과하라’ ‘한심하고 아둔한 시장’ 등 권 시장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이런 각계각층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제천시청은 오히려 홈페이지에 “장애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시정을 펴왔는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아 당혹스럽다”는 해명글을 실었다.
또한 권 시장은 11월 16일 한겨레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장애인에게 육상을 시킬 수는 없다. 시의 보건소장은 앉아서 진료만 하는 것이 아니라 15만 시민을 찾아다녀야 하고 80여명의 직원을 관리해야 하는데, 장애가 심한 이씨는 적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해 인사위원회를 거쳐 다른 사람을 발령했다”며 “솔직히 다른 결격사유는 없었으나 장애인인 점때문에 적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거듭 ‘소신’을 밝혔다.
권 시장이 자신의 잘못된 인사를 인정하지 않고 성의 없는 해명의 태도만 보이자, 11월 22일 오후 4시 30분 주신기 회장 등 한국장총 회장단 20여 명은 제천시청에서 권희필 시장을 만나 장애를 이유로 보건소장 승진에서 탈락한 사건과 관련하여 긴급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간담회에서 한국장총 주신기 회장은 이번 일은 분명히 장애인의 인권이 무시된 사례이기 때문에 이희원 씨의 명예회복을 위해 본인의 수락의사와 상관없이 제천시 보건소장으로 재발령하여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어떤 방법으로든 이번 일로 큰 상처를 입은 이희원 씨와 가족들에게 제천시장이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권 시장은 “공직사회에서 법규에 어긋나는 인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자신은 이 전 과장을 장애인라고 해서 차별한 적이 없으며, 이희원 씨와 노모 사무관 두 사람을 후임 보건소장으로 추천해서 인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적법한 절차에 따라 보건소장을 임명했다고 인사발령의 정당성만 강조했다. 복직문제에 대해서는 “인사조치를 다시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희원 씨의 원직복직은 어렵다”고 답변했다.
3년 전 보건소장직 자리를 두고 경선할 당시에 이희원 씨에게 장애인이라서 기관장회의에 데리고 다니기 창피하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묻자, “어떻게 면전에서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었겠냐”며 자신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발언을 부정하는 등 계속해서 진지한 사과 없이 형식적 해명으로 일관했다.
이에 장총 회장단은 더 이상 협상이 어렵다고 판단해 11월 말일까지 시한을 줄테니 이번 사태의 수습을 위해 앞서 요구한 원직복직과 아울러 이희원 씨 가족에게 직접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자리를 떠났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식이 전환되지 않는 한 선진형 복지는 공염불
장애인복지법에는‘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인식개선에 앞장서야 한다’등의 조항이 있다.
그런데 이번 제천시 보건소장 임명을 두고 일어난 파문은 10년 넘게 보건행정에 봉직한 사람을 존경하고 사회의 귀감으로 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장애를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시켜 편견을 조장한 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며칠 전 신문에는 미국 패스트푸드 업체의 한국 체인이 중증정신지체장애인 20명을 정규직원으로 채용했다는 기사가 실렸었다. 일의 특성상 장애인고용에 소극적이었던 외식업체가 중증장애인을 채용한 것은 장애인에게 희망을 준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또, 몇 달 전에는 교사로 일하던 중 시각을 잃어버린 한 교사가 교육당국을 상대로 한 싸움 끝에 중도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일반초등학교 교사로 복직하기도 했다.
물론 장애인고용이 대단한 일이라거나 기업체의 선행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차별을 깨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들에게 일할 기회를 준 것이었다. 이제 조금씩 그런 차별과 편견의 벽이 없어지나 싶었는데 정작 장애인 복지에 앞장서야 할 공직사회는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으니 한심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누구든지 뜻하지 않은 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문제 해결의 첫 걸음은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같은 사회의식의 전환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선진형 복지’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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