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초생활보장제도 ‘내실화방안’인가 ‘예산축소방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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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복지부(2001년 7월)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내실화 방안]이라는 것을 내놓았는데, 그 배경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놀고 먹는 복지”, “부정수급자”, “가짜 빈곤층”, “퍼주는 복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려면 퍼주기식 복지가 되지 않도록 부정수급자 방지 등을 위한 소득, 재산조사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면서 소득, 재산조사를 더 강화하는 지침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번 지침은 그 제목과 달리 오히려 부실화 방안이 될 수 있는 요소가 많이 있다. 이번에 시달된 지침 중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조건부수급자 중 조건불이행자, 조건부과제외자, 자활사업참여자, 취업알선대상자, 신규급여신청자 등에 대한 소득조사를 철저히 하여 이를 반영하고, 확인이 어려울 경우 추정소득 부과
이러한 조치는 근로능력이 있는 자들을 모두다 잠재적 부정수급자로 간주하여 추정소득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몸이 아프지만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실제소득은 없는데, 추정소득이 부과되고 있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데 있다.
일반적으로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 중 장애나 질병으로 인해 거동할 수 없다는 확인서나 진단서를 갖다주지 못하면 추정소득을 부과하고 있으며,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데 추정소득을 부과할 수 있느냐라고 질문을 하면, ‘법(규정)에 그렇게 되어 있다’라고 하거나, 진단서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 경우이다.
따라서 이런 수급자들은 부당하게 추정소득을 부과당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즉,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
2) 진단서 제출자에 대한 근로능력 재확인: 진단서 등에 의해 근로무능력자로 분류되었던 수급자들이 소득활동에 종사하는 사례가 많고 소득을 은닉하여 과잉급여가 발생하고 있으므로 치료기간이 경과하면 근로능력 유무를 재확인하고, 치료기간이 명시 안 된 경우는 담당공무원이 사실확인에 의해 근로능력을 재판정하고, 근로활동에 종사하는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근로능력자로 변경 관리하라고 함.
이러한 지침은 병원에서 받아온 진단서를 믿지 말고 사회복지담당자들이 직접 병이 있는지 없는지, 근로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진단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라는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제도를 운영할 바에야 왜 돈 들여 진단서를 받아오라고 하겠는가? 사실 수급자들 중에는 아파도 의사에 의해 병이 있다는 확인을 받기 어렵고, 일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심한 질병이 있다는 진단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치료기간을 명시하기가 애매한 경우가 많다. 특히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병원 한번 가 보지 못하고 방안에 숨어 지내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데도 불구하고 진단서를 발급받기가 곤란한 사람들이 근로능력자로 인정받아 추정소득이 부과되거나 근로조건 불이행으로 처리되어 생계급여가 삭감되는 상황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불합리한 규정을 개선하기는커녕 비현실적인 지침을 시달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수급자들은 나이가 많아 고혈압, 당뇨, 골다공증, 관절염, 디스크 등의 경우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해 보았자 수족을 못 쓸 정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진단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조건부수급자로 분류되어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에서 분류한 조건불이행자의 상당수가 사실은 근로능력이 모자라는 환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외면한 채 의사가 근로무능력자로 진단한 수급자들의 근로능력 유무를 담당공무원이 재판정하도록 한 것은 너무나 불합리한 처사이고,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 수 있는 조치이다. 설사 진단서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그것을 발부한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문제일 것이다.
3) 추정소득 제외자에게 추정소득 부과: 종전에는 ‘구직등록 후 1개월이 경과한 실업자’, ‘장애 5∼6급의 장애우’와 같은 추정소득 제외자들은 소득이 있을 것으로 인정되어도 추정소득을 부과할 수 없었으나 이를 ‘주거 및 생활실태로 보아’ 새로이 부과하겠다고 함.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기준도 없는 ‘주거 및 생활실태로 보아’라는 단서는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로 담당 공무원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고,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
4) 추정소득 부과 상향조정: 최저임금(1일 14,920원)을 적용받던 수급자는 조건부수급자가 자활사업에 참여하여 받는 소득보다 낮아 현실에 부합하는 소득산정이 어려웠음으로 자활근로임금(20,000원)을 기준으로 소득을 추정하여 산정할 수 있도록 함.
추정소득은 근로능력이 있는 자가 취업 및 근로여부가 불분명하여 소득을 조사할 수 없으나 주거 및 생활실태로 보아 소득이 없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 부과하게 되어 있다. 즉 객관적인 소득자료를 입증하거나, 교통사고 등으로 근로를 할 수 없음이 명백히 드러나는 경우 외에는 소득이 없어도 추정소득을 부과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일을 하지 않거나, 일을 하지 못한 수급자들이 어떻게 객관적으로 소득이 없음을 증명할 수 있으며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아파서 일을 못했다고 증명할 수 있겠는가? 있지도 않는 소득을 있다고 우겨서 소득을 부과하더라도 최저임금보다 높은 자활근로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사실 수급자들의 대부분은 일용직이나 임시직, 파트타임과 같은 일을 하며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5) 취로형 자활근로의 실비인정 범위 축소. 새로운 지침에는 취로형 자활근로 참여자들에게 지급되는 5,000원의 실비가 지역봉사자들에게 지급되는 실비 3,000원과 형평성이 맞지 않아 취로형 자활근로 참여자들의 실비를 3,000원으로 낮추겠다고 하고 있는데…
실비인정 부분이 실제로는 근로소득공제제도의 역할과 기능을 해 오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일을 하게 되면 기피해서 받을 수 있는 급여액 보다 하루 5,000원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활근로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근로유인의 기능을 하는 실비인정액의 금액을 3,000원으로 인하함으로써 수급자로 하여금 근로를 더욱 기피하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상과 같은 복지부의 내실화방안은 정부가 현재의 소득분배악화, 빈곤문제의 심각성, 그리고 기초보장법에 대해 어떠한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정부의 시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는 우리 나라 국민(특히 빈민)을 지원대상이 아니라 통제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수급자들 모두를 잠재적 부정수급자로 간주하여 내려진 지침이 대부분이다.
둘째, 연초보다 수급 자수가 늘어가고 있고, 따라서 예산이 증가 추세에 있는 시점에서 이러한 지침이 시달되었으며, 방치되고 있는 요보호자를 찾도록 하는 실질적인 내용의 지침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번 조치는 올해 정해져 있는 예산을 초과할 것을 우려하여 시달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셋째, 정부에서 법 제정 목적을 충분히 살리지 않고 일부 시민단체에서 제기한 바대로 기초생활보장법을 [부정수급자방지법], 혹은 [요보호자방치법]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넷째, 소득조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은 전담공무원 확대배치 및 소득파악 인프라 구축 등과 같은 대책을 소홀히 해 온 정부에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과 피해를 빈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복지부에서는 ‘퍼주기식 복지’가 되지 않도록 해야 기초보장법이 정착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법이 정착되었는지 아닌지는 그 시행방안이 법 제정 목적에 충실한 제도가 되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기초보장법은 퍼주기식 복지를 지양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 최저생계비 이하의 국민 모두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일 뿐이다. 복지부의 주장대로 정확한 소득파악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정확한 소득파악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소득파악을 위한 행정전산망 구축 등 사회전반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사회복지전담공무원들을 더 확보해서 해결할 문제이지 실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수급권자의 소득을 막무가내로 추정하는 식의 제도는 시행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글/ 허선(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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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삿갓님의 댓글
김삿갓 작성일
내 인척도 장남이 소득 무일푼인데 추정소득 80만원을 부과 하고, 그동안 지급하던 기초생활 수급비를 뚝 잘라 버리니 국가가 빈자는 노숙자로 나서던지 가족 집단 자살 하라는 행위와 같다고 본다. 국가가 선진국 문턱에 들어 섰다고 하면서 빈자에게 이렇게 대할수 있느지
지 참으로 안타까우며, 허선교수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