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필요한 것은 재활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일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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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장애계에 자립생활의 열풍이 불고 있다. 자립생활은 장애우 스스로가 자신이 결정하고 선택한 삶을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립적인 삶의 모습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바람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경우, 장애우를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볼 뿐만 아니라 구조적이고 뿌리 깊은 차별로 인해, 장애우 스스로가 판단하고 선택하며 결정할 수 있는 자립적인 삶을 이루는 것은 참으로 멀고 어렵게 느껴졌었다.
이런 현실속에서도 자립생활이 이슈화되는 것은 이것이 인권운동이자 이론이며 실천모델일 뿐만 아니라 장애우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전문가 중심의 재활’에서 ‘장애우 중심의 자립’으로 변화했다는 점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자립생활은 특히 그동안 자기 결정권을 누리지 못하고 의존적이거나 폐쇄적인 삶을 살았던 중증장애우들에게 더욱 강하게 다가서고 있다.
자립생활의 의미와 실제로 자립생활센터에서 체험홈을 운영하고 있는 광주의 우리 이웃 장애우자립생활센터를 찾아 한국에서의 자립생활 가능성을 가늠해 보았다.
미국의 버클리 자립생활센터에서 시작된 자립생활 운동
자립생활운동은 1970년대 초 미국 최초의 자립생활지원센터인 버클리 자립생활센터(the Center for Independent Living-Berkeley)를 중심으로 본격화된 장애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자립생활의 발단은 1960년대 초 미국의 흑인 공민권운동과 시민권리회복운동이 절정기를 이루고 있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2년 가을, 애드 로버츠라는 전신마비 중증장애우가 버클리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는 폐근육의 마비 때문에 호흡보조장치에 의지해 생활해야 했다. 입학 후 그는 대학병원인 코웰병원의 병실을 기숙사로 사용하며 학업을 계속했고, 또한 캘리포니아 정부로부터 학생지원프로그램인 유료도우미서비스를 제공받았다. 중증장애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한 첫 번째 사례가 된 로버츠는 유료도우미서비스로 인하여 대학원까지 졸업할 수 있었는데 그는 이후 지속적으로 장애학생 차별금지운동과 장애우 인권운동을 교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나아가 1972년 로버츠와 장애우 동료들은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일상생활공간에서 유료도우미서비스를 받으며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제반 여건을 향상시킨다는 확신을 가지고 중증장애우 서비스와 권익옹호의 양자를 결합한 지역사회 중심의 소비자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체인 장애우 자립생활센터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런 자립생활운동은 중증장애우가 주체가 된 복지서비스 개발을 가능하게 했고, ‘행동하는 장애우’라는 모토 아래 장애우가 직접 나서 사회개혁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후 애드 로버츠와 그의 동료 쥬디 휴먼은 미연방 재활정책을 지휘하는 관리자로서 자리를 확고히 했고, 1973년 제정된 재활법을 1978년 자립생활을 위한 종합적인 서비스제공을 명시한 법으로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법에 의해 미국 내의 자립생활센터는 연방정부로부터 사업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고 미연방정부의 장애우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을 거듭해 주변 국가들의 장애우복지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장애우를 사회적 약자이고 시혜의 대상으로만 생각해 이를 중심으로 수립되던 장애우정책들이 장애우자립센터 설립을 기점으로 사회속에서의 장애우의 주체적인 삶이 가능해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전환하기에 이른 것이다.
자립생활이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서 살아가는 것을 지역사회에서 실현시키는 것
자립생활의 이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립적(independent)인 것에 대한 개념 정의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자립생활이라 하면 가족이나 사회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순전히 혼자 힘으로 생활하고 취업 생활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곤 했었다. 따라서 경제적인 독립이나 직업재활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장애우 자립생활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립생활운동을 펼치는 이들의 기본적 주장은 직업재활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자기결정권에 의한 장애우의 일상생활에서의 자립이며 기존의 재활과정처럼 장애우 개인의 변화를 요구하거나 개입하는 방식이 아닌 사회 환경의 개선을 요구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즉 유료두우미제도나 이동서비스, 주택개조서비스 등 장애우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각종 지원책 마련을 핵심적인 과제로 본다. 따라서 자립생활 운동가들의 주장은 재활 경로에 편승되지 못한 중증장애우에게 자립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동호 정립회관 기획팀장은 “장애우들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 속에서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살아왔어요. 더군다나 중증장애우들은 더더욱 재활과정에서도 전문가나 가족, 시설, 사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죠. 그러나 의존적인 삶은 자기가 만족하는 다양한 삶이 될 수 없거든요. 장애우가 자기 결정권을 가지는 것은 의존성을 탈피하는 것이고, 설사 실패의 경험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아실현을 위해 소중한 과정인 것입니다.”라면서 장애우의 결정권과 선택권이 자립생활의 핵심임을 강조했다.
또 하나, 자립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장애우가 지역사회에서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필요한 지원을 포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동에 필요한 교통서비스, 활동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보조서비스, 부적절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주택개조서비스, 의존성을 벗어나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하기 위한 동료지원, 자립생활에 필요한 각종 정보 제공, 권리의 침해에 대한 옹호활동 등이 핵심적인 지원서비스이지만, 장애우 개개의 문제가 다르므로 어떠한 문제든지 개별적으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대원칙이다.
결국, 자립생활서비스는 장애우의 권리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결정과 선택에 의한 지역사회생활을 지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왜 자립생활 이슈로 떠오르고 있나?
장애우정책이나 복지에서 자기결정권 문제나 자립생활은 그리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자립생활이 주목받는 배경은 뭘까.
전문가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최우선으로 삼았던 재활의 이념이 새로운 전망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냐며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직업재활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중심재활, 사회통합, 정상화이론도 얘기했었지만 그런 것들이 이론적으로 완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역동성을 갖지 못했던 것은 가장 중요한 장애우 당사자의 역할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장애우를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가 주가 되었지 장애우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또 한 가지는 자립생활이 세계적인 조류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70년대 미국 역시 자립생활센터가 생기기 전까지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장애우재활서비스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자립생활센터가 생긴 것을 기점으로 하여 장애당사자의 선택과 결정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현재 일본의 경우 80년대 중반부터 생기기 시작한 자립생활센터가 90여 개에 이르고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자립생활이라는 것이 전문가와 장애우 사이에 대립을 초래하고 갈등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미국에서도 자립생활운동이 시작되던 1970년대 즈음에는 장애우와 전문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김동호 팀장은 무엇보다 자립생활에 있어서 중심은 장애우라고 잘라 말한다.
“장애우 자립생활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장애우에요. 장애우문제는 장애우가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는 장애우 스스로가 삶을 꾸려가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좋은 지지자 역할을 하는 거죠. 전문가 그룹에서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좋은 전문가라면 장애우 스스로가 자기 스스로의 역량을 가지고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사는 일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어요? 더 이상 도와주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좋은 전문가이죠. 장애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장애우 스스로의 역량강화를 이룰 수 있지요. 자립생활의 메시지는 최대한 장애우들이 참여할 때 제대로 문제 해결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 기존의 복지시스템에 있는 수용시설, 복지관, 직업재활기관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운영의 방향성이 변모해야 한다는 겁니다.”
국내 최초 중증장애우 자립생활 체험 홈 ‘우리 이웃’ 국내에서 자립생활의 가능성 보여 줘
그동안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장애우복지정책과 실천의 주된 관심이 어떻게 하면 장애우를 재활시키는가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비장애우들에게 적합하게 만들어진 사회의 틀에 장애우들이 들어가 적응하고 살아갈 것을 장애우들에게 요구해온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더군다나 사회의 틀속에 맞출 수 없는 장애우들의 경우 그들의 욕구를 무시한채 시설이나 부모의 보호아래 평생을 살아갈 것을 강요해온 것도 사실이다.
우리 나라에서 장애우 자립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은 국립재활원과 정립회관 그리고 제주도 탐라장애인복지관 정도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나라 상황에서 자립생활이 가능한 것일까.
우리 나라에서도 중증장애우들이 당당한 사회 일원으로 자립생활을 준비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지난 7월 광주 북구 오치동 한우리아파트에 문을 연 우리이웃 자립생활센터의 자립생활체험홈은 장애우시설에서 생활해 온 중증장애우들이 자립하기 위한 예비과정이다.
대부분의 중증장애우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가족의 짐이 되어 살거나, 한 번 보호시설에 위탁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설의 생활규칙과 프로그램에 맞춰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이는 ‘장애우가 혼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일반인들의 선입관과 장애우들 스스로의 자신감 상실 때문이다. 장애우자립생활 체험홈은 이같은 사회적 편견과 몰이해에 던지는 도전장인 셈이다. 그동안 몇몇 중증장애우들이 개별적으로 독립생활을 선택하는 경우는 간혹 있었으나 장애우권익운동의 차원에서 사회 적응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고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 이웃 장애우자립생활센터 주숙자 소장은 장애우자립생활이란 “장애우들이 최소한의 도움만으로 자신의 생활에 대한 선택권과 결정권을 행사하며 지역주민의 일원으로서 이웃과 함께 어울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체험홈에는 심기태(42·지체장애 1급), 마동훈(32·지체장애 1급), 박종선(28·뇌성마비)씨 3명이 함께 자립생활센터 간사로 일하면서 자신들의 자립생활을 준비하고 있다. 심씨는 비장애우였으나 군 제대 이후 원인 모를 발병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고, 마씨는 최근 시집을 냈으며, 박씨는 방송통신대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다.
주 소장의 경우 이론적인 필요성보다는 몸으로 자립생활의 필요성을 느낀 경우다.
“제가 17년 전에 작은 장애우시설에서 양재를 가르치는 직업재활교사 일을 했어요. 지금 체험홈에서 자립생활을 준비하는 동훈 씨를 18년 전에 그 재활원에서 만났는데 그 긴 시간동안 성장하는 걸 지켜봤거든요. 성인이 된 후에도 직원들이나 자원봉사자들의 꾸중이나 반말을 들어가면서 자기 의지를 꺾인 채 살아가는 걸 볼 때면 가슴이 아팠어요.
또 한번은 3급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 시설로 실습을 가서 성인 장애우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못 먹고 살아도 내 의지대로 인간답게 살아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나는 늙어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아야 되는 거냐고 저한테 묻는데 그게 제 가슴 속에 박혀서 잊혀지질 않았어요.”
주 소장은 그렇게 시설에서 생활하는 중증장애우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자기 의지로 평범한 일상생활을 누리는 자립생활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가닥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뜻 용기가 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주변에 조언을 구하면 ‘그것이 물론 필요하긴 하지만 어떻게 가능하겠냐’면서 ‘국가에서 시설에 있는 사람들 먹을 것 입을 것 다 해결해 주는 데 왜 그 사람들을 굳이 고생시키려 하냐’며 주 소장의 용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세미나나 신문 잡지에서 자립생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오지만 실제로 주변을 돌아보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져 오곤 했다.
“이때껏 중증장애우에게는 직업이나 경제적 자립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립생활 못하고 시설에서 평생을 보낸 분들이 많죠. 자립생활을 하고 싶다고 하면 ‘직업은 있냐, 혼자서 신변처리가 가능하냐’하면서 자꾸 주저앉혀 버리잖아요.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자립생활에 대한 실천이 늦어진 것 같아요.”
주 소장 자신도 다리에 보조기를 단 장애우지만 지난해 6월 ‘장애우자립생활센터’를 창립한 뒤 1년 여 동안 재가장애우들을 찾아다니고 시설, 관공서 등을 돌아다니며 설득과 준비작업을 해왔다.
그때마다 “장애우들이 힘든데 왜 나와서 사려고 하느냐?” “장애우들의 사회복귀와 자립생활은 선진국 이야기다”라며 냉대를 받아야 했다. 구청이나 시청을 수없이 찾아가고 공문을 보냈지만 지원은 커녕 단체로 인정도 하지 않으려 했다.
주씨는 그러나 “장애우가 아니면 아무도 먼저 이 일을 시작할 수는 없다”는 확신으로 교회를 돌아다니며 당면을 판매하기도 하고 하루 6000∼7000원을 벌기 위해 추운 겨울 노상 판매를 하기도 했다. 그녀의 절실한 마음이 통하기라도 한 건지 얼마 되지 않아 등록회원 120여명의 후원금과 지난 해 방한한 일본 도쿄의 자립생활센터(휴먼 캐어협회·대표 나까니시 쇼우지)의 후원금 700만원을 보태 20평짜리 아파트에 집을 얻어 자립생활체험 홈을 마련했다.
“가장 어려운 건 정부 지원이 없는 거죠. 자립생활홈으로 쓰고 있는 아파트의 경우 문도 좁고 턱도 있는 내부를 개조하지 못해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요. 또 한가지 걱정은 자원활동자 문제에요. 일본의 경우 유료도우미를 쓸 수 있는 돈이 장애우에게 지원되기때문에 장애우 스스로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 유료도우미제도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고 자원활동자들을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장애우들을 불쌍하기 때문에 도와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거나 아이 취급하는 경우가 있어서 마음이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자립생활을 준비하며 체험홈에서 지내는 장애우들은 자립생활 이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얻었다고 입을 모은다.
18년동안 시설에서 생활하다가 자립생활을 시작한 마동훈 씨는 “자립생활체험홈에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사는 게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설에서는 아무래도 단체생활이니까 제 목소리를 내면서 살 수 없잖아요. 개인적인 생활이 생겼다는 게 가장 기쁘고 좋아요. 게다가 찾아오는 학생자원봉사자들이 뇌성마비인 저를 보고는 ‘너 몇 살?’하면서 아이 취급할때는 정말 너무 서러워서 울기도 많이 했거든요. 자립생활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땐 시설에서는 ‘네가 돈이 있냐, 가지고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자립생활을 할 거냐’고 걱정을 하셨지만 실패하더라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자립생활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제 결정에 후회는 없어요”라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활이 아니라 생활이다
자립생활의 이념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의 대다수 중증장애우들은 자립생활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자립생활을 위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중증장애우복지 발전에 있어 주류를 이루어 온 것이 장애우복지시설 영역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설의 주된 기능은 장애우 가족이나 지역사회가 보호하지 못하는 장애우에게 일정한 주거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특히 가족의 보호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 중증장애우의 경우에는 지역사회내에서의 통합은 더욱 어려운 과제로 생각되어졌다.
따라서 중증 장애우의 자립생활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바로 자립생활 이념의 보급이라 생각된다. 그 대상은 장애우, 관련 공무원, 재활전문가, 일반 국민 등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중증장애우 당사자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중증 장애우의 자립수당, 장애연금, 활동보조인 서비스, 자립생활센터에 대한 지원체계 등은 우선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연구의 중심에는 중증 장애우 당사자가 있어야 된다는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되며, 또 경제적인 논리로 접근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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