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게 우리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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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장애우복지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출장은 여러면에서 한국 장애우복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해 준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뉴욕의 길거리에는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우들이 자유롭게 통행하고 있었고, 모든 버스에는 리프트가 장착되어있었다. 이밖에도 장애우들이 쉽게 쓸수 있는 의자와 화장실, 낮게 조절되도록 만들어진 식수대, 장애우 이동을 위한 실내자동차, 청각장애우들을 위한 화상전화와 시각장애우용 점자전화 등 ‘장애우의 천국’이 말뿐이 아님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지난 7월 23일부터 국민일보에 ‘장애인과 함께 더불어’라는 연중기획 시리즈를 연재중인데 매번 기사가 나올 때마다 독자들에게 부끄럽다.‘무식한 놈이 용감하다’는 옛말처럼 장애우문제와 관련해 아는 것도 없는 내가 마치 전문가인 것처럼 쓰고 있으니 말이다.
고백하지만 기사를 쓰기 위해 장애우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우리나라가 장애우들이 살기에 얼마나 힘든 곳인지 알았다.평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것,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 등 무심하게 해오던 일들이 장애우에게는 얼마나 고된 일인지 깨달았다.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임에도 비장애우 중심의 사회가 철저하게 그 권리를 박탈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여름부터 ‘장애우 버스타기 운동’을 벌이며 힘겨운 싸움을 하는 장애우이동권연대를 취재하러 갔을 때 한 장애우가 절규하듯 던진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에는 길에 장애우이 왜 안보이는지 아세요? 나오고 싶어도 편의시설이나 교통시설이 없으니까 나올 수가 없는겁니다. 한번 나오려면 목숨을 걸어야죠”
우리나라 장애우 복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 느끼게 해준 미국 출장
장애우복지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미국출장은 여러 면에서 한국 장애우복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뉴욕과 워싱턴은 미국내 수많은 장애우단체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미국 장애우들의 삶과 복지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지난 8월 29일 뉴욕의 JFK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의 편의시설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공항 어느곳에나 장애우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의자와 화장실, 낮게 조절되도록 만들어진 식수대, 장애우 이동을 위한 실내 이동차, 청각장애우들을 위한 화상전화, 시각장애우들을 위한 점자전화 등 ‘장애우의 천국’이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나게 해줬다.
이러한 충격은 뉴욕의 길거리에서도 이어졌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우들이 자유롭게 보도를 돌아다니고 있고, 비장애우와 마찬가지로 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모든 버스마다 리프트를 장착하고 있는데 장애우가 버스에 타면 좌석을 한쪽으로 들어올려 휠체어를 고정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버스운전사는 뒷문을 열고 리프트를 내려 장애우를 태운 후에야 일반인들이 탈 수 있도록 앞문을 연다. 버스를 기다리던 비장애우들 또한 장애우가 다 탈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는 모습은 뉴욕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장애우가 시 교통국에 미리 이용 신청만 하면 언제든지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트랜스 버스’ 역시 자주 눈에 띤다. 미니버스처럼 생긴 이 버스는 흰색 표면에 큼지막한 휠체어 표시가 있어서 금방 구별이 되는데 아침부터 밤 늦도록 장애우를 실어 나른다. 휠체어리프트를 장착한 이 버스는 요금도 1.5$로 일반 버스비와 같아서 뉴욕의 장애우들은 보통 정기권을 끊어 출퇴근 시간에 이용하고 있다.
중증장애우의 개인 도우미에 대한 국가적인 서비스 요구하는 ADAPT
“장애우복지의 기본은 장애우시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애우가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도록 제반시설을 갖추는 것이죠”
미국 장애우 단체중 급진적이고 실천적 단체로 꼽히는 ADAPT(American Disabled for Accessible Public Transit)의 홍보를 맡고 있는 나디아 라스피나(Nadia Laspina)씨는 장애우 자립생활은 이동권 확보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뉴욕에서 찾아간 ADAPT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난 83년 장애우들의 대중교통 이용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로 지금은 중증장애우 개인 도우미에 대한 국가적인 서비스를 요구하며 5년째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국에서 중증장애우 생활보호대상자인 경우 도우미 비용을 주정부에서 부담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자신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 그 비용이 장애우 대부분에게 부담이 되는 액수여서 ADAPT는 이것을 국가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우 개인도우미는 커녕 이동권마저 확보가 안돼 장애우들이 천막농성을 하다 경찰서에 끌려가는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부럽기 그지없다.
라스피나씨는 “미국도 지난 90년 ADA(미국장애우법)가 제정된 것을 계기로 장애우의 접근권이 보장되게 됐지만 초창기에는 버스 리프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일도 많았고 승객들이 장애우이 버스타는 것을 기다리는데 화를 내기도 했다”며 “우리 장애우들이 버스 앞을 가로막고 시위를 벌였으며 정부와 여러번 협상을 한 끝에 장애우들이 접근가능한 대중교통이란 목표를 달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 7월 26일로 제정된지 12주년 된 ADA(미국장애우법)는 미국 장애우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은 법으로 미국 장애우들은 사회적·문화적 차별을 당하지 않게 됐으며, 법적 권리도 보장받게 됐다.
ADA는 그 미치는 영역이 공공시설과 상업시설의 편의시설에서부터 교통,통신,공공서비스, 고용, 인권까지 거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 법은 우선 작업장,관공서,식당과 그밖의 여러 시설들의 접근권을 완전히 보장함으로써 장애우들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전혀 불편없게 만들었다.장애는 있지만 장애를 못느끼게 하는게 ADA의 취지다.
휠체어 경사로, 거리 턱 낮추기, 장애우 주차장, 버스 휠체어 리프트, 손잡이 설치한 넓은 화장실, 넓은 공공건물 입구와 식료품점 통로 등 도처에서 그 영향력을 볼 수 있다. 뉴욕만 하더라도 모든 가게에 문턱이 없어 휠체어를 탄 채 쇼핑이 가능하다.또 고용문제에 있어서 고용주들은 고용 또는 승진에서 장애우를 차별할 수 없으며 이들의 작업을 위해 ‘적절한 시설’을 갖추도록 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ADA가 잘 지켜지지 않아 이에 항의하는 장애우의 소송이 봇물을 이룰 정도였다. ADAPT 역시 장애우가 온전히 독립생활을 하는데 ADA가 미진한 부분이 많고 또 이마저 지켜지지 않는다며 싸워왔다.
ADAPT 회원들은 대부분 보호시설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자립생활에 도전한 중증장애우들로 이들은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미국에서는 드물게 과격한 투쟁을 하는데, 지난 5월에는 정부에 도우미 비용지원을 촉구하며 전국 회원들이 워싱턴 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7월에는 부시정부가 장애우 고용정책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며 보건사회국 앞에서 연좌투쟁을 벌였다.
ADAPT가 너무 급진적이지 않느냐는 주변의 평가에 대해 묻자 라스피나씨는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대해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며 “우리는 심각한 상황에 이를 만큼 열심히 노력했고, 아무런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강력하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고 덧붙였다.
라스피나씨는 이어 “우리 ADAPT가 다른 기관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어진 일을 해내려는 의지가 더 강하다는 점이다”며 “다른 기관들은 조금의 시도를 해 보다가 그들의 요구가 성취되지 않으면 그냥 뒤로 물러나는데 우리는 해결될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중증장애우들이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애우자립생활센터
ADAPT가 장애우 자립생활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싸우는 단체라면 장애우자립생활센터(Independent Living Center)는 장애우들이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문제가 있을때 지원하는 곳이다.
장애우 자립생활센터는 장애우들을 위해 장애우 스스로 설립한 지역사회 차원의 비영리단체로 미국에만 2천여개가 있고, 뉴욕주에만 40개가 있다. 본부가 따로 없고 지역사회 안에서 자체적으로 운영된다. 규모 역시 그다지 크지 않은 사무실과 훈련시설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자립생활센터가 등장한 것은 1972년 미국 버클리 대학을 졸업한 중증장애우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에 부딪치자 장애우 스스로 지역사회로부터 당당하게 서비스를 받자는 사회운동을 벌인데서 비롯됐다. 이들은 버클리에 최초로 자립생활센터를 세웠는데, 이를 계기로 미국 전역에 급속도로 퍼졌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 큰 영향을 끼쳤다.
뉴욕에서 방문한 퀸즈 자립생활센터 역시 지난 83년 뉴욕 퀸즈지역 장애우들이 자신들 스스로 삶의 방식을 결정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해 만들어졌다.
자신도 시각장애우인 로빈 샤이쿤(Robin Shaikun) 소장은 “장애우 자립생활운동은 선택과 동등이라는 철학을 바탕에 둔 것이다”며 “일, 주거지, 교육, 여가선용에 대해 장애우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 지역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나가는게 우리 목표다”라고 밝혔다.
샤이쿤 소장은 “아무리 잘 만들어진 시설이라도 그곳에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없다”며 “장애우가 주체가 되어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어 나가야 진정한 사회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립생활센터는 말 그대로 장애우의 지역사회 내에서의 자립생활을 극대화하기 위한 센터이기 때문에 프로그램내용 역시 실생활과 밀접한 내용들이다.
아파트나 주택에서 살며 발생하는 문제들을 도와 주는 주거생활 프로그램, 자립생활에 필요한 기술들- 요리하기, 버스타기, 공공시설 이용하기 등-을 지도하는 일상생활 프로그램, 직업생활을 도와주는 프로그램, 집안일이나 사회활동을 도와주는 도우미 프로그램등 아주 다양하다. 심지어 아기를 가진 여성장애우에게 아기를 씻기고 우유 먹이는 것을 지도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이것들은 대부분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우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상담과 훈련을 도와준다. 샤이쿤 소장은 “비장애우 입장에서 간단하게 보이는 일이지만 그걸 처음 접하는 장애우들은 비슷한 경험을 한 동료들로부터 상담을 받고서야 두려움을 떨치게 된다”며 “나도 시각장애우이지만 훈련을 통해 요리에 익숙하게 됐고 우리 가족들이 내가 만든 것을 맛있게 먹을때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자립생활센터가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장애우들이 불리하거나 차별적인 일을 당했을때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퀸즈 자립생활센터에도 비상근 또는 자원봉사로 일하는 변호사가 10여명이나 된다.샤이쿤 소장은 “장애우 자립생활이 보다 보편적이 되려면 각종 법률적 문제를 고쳐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우과 관련된 소송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사회적 제도를 바꿔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외적인 제도가 바뀌어야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다는 것을 미국은 보여주고 있다.
자립생활센터를 운영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재정문제에 대해 묻자 샤이쿤 소장은 “당연히 국가에서 지급한다”며 “한국에서는 이런 센터를 개인이 운영하느냐”고 반문했다. 미국은 재활법 7조에 연방정부가 센터의 운영비를 지급하도록 되어 있으며 각 주마다 자립생활센터에 대한 지원법이 별도로 제정되어 있다. 그래서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전국 곳곳에 생겼으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
샤이쿤 소장은 “미국도 80년대까진 여전히 시설에 수용된 장애우들이 많았지만 자립생활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이제는 3/4 이상이 지역사회 내에서 가정을 꾸리고 산다”며 “미국도 많은 장애우들이 노력하고 투쟁한 끝에 얻어낸 것으로 한국도 장애우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오도록 모두 노력해야 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자립생활운동을 하는 장애우나 단체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샤이쿤소장은 자신들의 정보와 노하우에 대해서 언제든지 제공하겠다며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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