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집 보도 그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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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7일 SBS 뉴스추적이라는 프로에서는 강원도 정선군의 한 시설의 취재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정선시내에서도 차로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에 자리잡은 그 곳의 이름은 ‘믿음의 집’. 본지 8월호에서 이미 고발한 바 있는 그 곳에서는 여전히 스무 명 남짓의 정신지체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곳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공중파를 타고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이를 보는 시민들 또한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한 번의 고발 프로그램 보도만으로 과연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보도 이 후, 시민들의 반응과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식사는 과자 한 접시에 콜라 한 캔, 아이들의 몸 여기저기에 보이는 상처와 손이 뒤로 묶인 아이들까지.
10년 이상 사용한 낡은 콘테이너박스를 개조해 만든 건물은 보기에도 위험해 보였고, 아이들을 위해 들어온 후원품들은 한쪽 구석의 콘테이너에서 쓰이지 않고 있었다. 대부분 부모가 있는 그곳의 아이들은 보도 이후에도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고 원장은 끝까지 시설을 포기할 수 없다며 반드시 명예회복을 할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보도, 그 이후
SBS 뉴스추적 방송 이후 SBS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시청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접수되었다. 원장에게 법적인 조치를 가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반응에서부터 방송을 통해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무엇보다도 앞으로 그 시설이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이에 대한 SBS 뉴스추적 제작진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 현재 원장은 아동학대방지법 위반, 공문서 위조 조치로 고발조치 당해 정선경찰서에서 수사중에 있음.
- 정선군청은 99년에 정신보건법 위반으로 이 시설을 한번 고발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 재고발하지 못한 채 9월 30일까지 시설폐쇄와 생활자들의 귀가조치를 명령했음.
- 그러나 공문서 위조는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아동학대 방지법에도 적용이 쉽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
일견 간단해 보이는 이 답변은 과연 실행에 옮겨질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원장의 사법처리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원장이 구속된다 하더라도 원장의 친인척 등 다른 누군가가 그 시설을 맡아 운영할 수 있으며 원생들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시설의 폐쇄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설이 폐쇄되지 않으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가 없다. 즉,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믿음의 집에 있는 자폐, 정신지체장애우들의 거처가 확실하게 정해지는 것이다. 보도에서 밝혀졌다시피 현재 믿음의 집에서 생활하는 장애우 대부분은 부모가 있다. 그렇다면 부모가 아이들을 데려가면 될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그러한 시설에 맡길 수 밖에 없는 부모
지난 9월 17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는 특별한 손님 여덟 명이 찾아 왔다. 이들은 믿음의 집에 자신의 아이를 맡겨놓고 있는 부모님들로서 보도 이후 서로 연락이 닿아 대책마련을 위한 부모회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부모들은 시설의 열악한 상황에는 공감하면서도 무작정 아이들을 귀가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했다.
이 날 참석한 어머니 중 하나인 김아무개 씨는 ‘믿음의 집 상황이 열악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이 없다. 얼마 전에도 다른 시설을 알아보고 아이를 옮겼으나 하루만에 아이를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렇게 증세가 심한 아이를 집에서 키우라는 것은 가족도 아이도 모두 죽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고 밝혔다.
아이의 증세가 너무 심해 집에서 키우다보면 각종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가족들 또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아닌 이상 정부가 운영하는 시설에 아이를 맡길 수도 없으니 결국 미신고시설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그도 받아주는 곳이 거의 없다 보니 그런 아이들을 맡아주는 곳인 믿음의 집에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김씨는 ‘이렇게 시설의 비리를 고발하는 일도 마땅히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대책 마련 없이 고발만 했을 때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아이들과 부모뿐이다’라고 밝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매우 시급함을 시사했다.
부모가 중증장애 아동을 도저히 집에서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아동을 시설에 맡기기를 원하지만 그 아이들을 맡아 줄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처럼 수요와 공급이 원활한 흐름을 가지지 못할 때, 수요는 많지만 공급이 이에 상응하지 못할 때, 마치 독과점의 기업들이 횡포를 부리는 것 같은 결과가 초래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장애아동을 맡는 시설은 어떠한 열악한 환경에서라도 아이를 맡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큰소리를 칠 수 있게 되고, 맡기는 부모는 설사 그만한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죄인이 되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속에서 어찌보면 이러한 시설비리는 예견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장사가 아니다. 중증장애아동의 인권이 이러한 경제적 논리에 의해 짓밟혀도 되는 문제인 것인가?
미신고시설 - 복지의 사각지대, 해답은 없는가?
시설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것은 시설을 양성화하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음지에 있는 시설을 양지로 끌어내고 활성화하자는 취지는 간데 없고 관리 소홀로 인한 시설비리문제만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미신고시설의 신고를 독려하고 있지만 신고기준이 높고 지원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없는 현 시점에서 대부분의 시설관계자가 신고를 꺼리고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겠다. 신고를 하지 않은 이상 정부도 시설에 개입할 수가 없게 되고 결국 이러한 미신고 시설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것이다.
현재 정확하게 통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전국의 미신고시설은 약 800여 개소로 추정되고 있다. 그 정도의 인원을 신고시설에서 다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미신고시설을 적극적으로 규제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물론 모든 미신고시설에서 ‘믿음의 집’과 같은 시설비리와 인권유린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설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관리와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제2의, 제3의 믿음의 집이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운영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 동시에 적절하게 잘 운영되고 있는 시설들은 지원을 통해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장애아동을 위한 시설은 왜 존재하는가?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장애아동 부모의 편의를 위해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정부를 위해서? 아니다. 우린 잠시 뭔가를 착각한 듯하다. 장애아동을 위한 시설은 장애아동을 위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잠시 그 큰 명제를 잊고 허둥대는 동안 정작 보호받아야 할 장애아동들은 다시 길을 잃고 서 있다. 우리의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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