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지역 장애인 인권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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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은 전남 서해상 다도해의 군이다. 유인도 72개, 무인도 808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군 소재지는 압해읍에 위치하고 목포시와 가까운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어 행정 구역상 목포와 별반 다를 건 없지만, 여느 군이 다 그러하듯 정서적 문화적인 차이가 도시와는 사뭇 다른 면도 많다.
사실 우리 활동가들은 워크숍이나 교육에 참여해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 대답하기 조금 주저하게 된다. 신안군센터에서 왔다고 하면 굉장히 안쓰럽게 쳐다보며 오지에서 멀리 왔다는 눈길과 함께 왠지 촌스럽게 비춰지는 이미지 탓에 스스로 민망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즉시 목포와의 거리는 멀지 않다며 생각을 좁혀주느라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기도 하는 해프닝도 가끔 있다. 사실 그렇다. 몇 개의 섬은 육지와 연육이 돼 있지만 또 절반 이상의 섬이 배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도시에서만 생활하는 활동가들에게 오지는 오지인 것이다.
섬 지역 활동가로 일한다는 것
전국 최초 전액 지방비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우리 센터는 ‘신안군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라는 이름으로 작년 10월 개소했다. 섬과 육지로 이루어진 신안에서 회원 확보를 위한 정보가 없고, 가가호호 다니며 물을 수도 없는 환경적 상황 탓에 고민을 하다가 2개의 읍과 12개의 면의 장애인업무 담당자를 통해 1,2급 중증장애인에게 기념품과 회원가입신청서를 함께 택배로 전달하고 회원가입을 요청했다. 그렇게 한 분 두 분 회원으로 모시게 됐고, 직접 방문이 어려웠기 때문에 우선 전화로 인사드리며 센터를 알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매일 아침 우리와 출근을 함께하는 지적장애인 회원이 서너 분 계신다. 그 중 한 분은 읍 소재지까지 나오려면 15분 정도 버스를 타고 오셔야 하는데, 특별히 하는 일이 없어 매일 읍 소재지의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머물다 가곤 했었다고 한다. 센터가 생긴 이후부터는 센터에 와서 커피를 마시고 오전시간을 보내다 가시기도 한다. 그런데 점심에는 어느 식당에 주변 상가들 반찬 배달을 무료로 해주고 점심을 제공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반복해 이런 일을 하지 않아야 되는 이유를 당사자 분께 설명했으나, 아버지께서 식당 주인에게 별 다르게 하는 일이 없으니 일을 시키고 점심식사를 주라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지적장애가 있다고 해서 급여도 받지 않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더욱 장애로 인해 무시당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고 더 깊이 들어가면 학대가 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조치를 부탁드렸다.
또 다른 60세 지적장애인 한 분은 친오빠가 자신의 명의로 장애할인을 받을 수 있는 핸드폰을 개설해 사용하고 있어 정작 본인은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금치산자로 지정해 재산을 갈취하고, 원래 살던 지역에서 살지 못하도록 이사 보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수년 전부터 별다른 저항 조차 하지 못하고 당해온 일들이라 아무 곳에도 말하지 못하다가 한을 푸는 듯 우리에게 줄줄 속내를 쏟아낸 일도 있다.
한번은 지적장애인 가족 지원 상담을 의뢰 받아 방문하게 되면서 해당 지역 면사무소에 장애인차별금지 홍보도 함께하기 위해 홍보 액자며 이젤 등을 활동가 둘이 낑낑대며 들고 여객선을 타고 가던 중 목적지에서 배가 멈춘 것도 모르다가 흑산도까지 가게 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마침 활동가의 지인이 흑산도에서 홍어 판매를 하고 있어 흑산을 경유해 홍도 다녀오는 배를 같이 기다렸다. 덕분에 홍어도 얻어먹고 그 지역 면사무소에 보냈던 센터 홍보 현수막도 확인하게 돼 이렇게 업무와 연결이 되는구나 싶었다.
장애인 인권의 사각지대, 섬 지역
그 전에도 섬에서 살아본 적이 있지만,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그땐 미처 보지 못했던 심각한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배는 차량과 화물을 실을 수 있는 철부선과 여객선 두 가지가 있는데 철부선의 경우 차량이 없는 사람은 계단을 올라 여객실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휠체어나 목발을 이용하는 등 이동이 어려운 사람들은 가파른 계단을 이용할 수가 없다. 여객선도 마찬가지로 휠체어는 출입이 어렵고 목발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상당이 위험하다. 그러고 보니 섬에 사는 장애인들은 섬에서 나서 자라고, 갇혀 살아야 하는 한계를 갖다보니 시설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렇듯 불합리한 세상에 녹아 살다보니 나의 권리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주장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못하고 산다. 그래서 외부인인 활동가들이 방문해 권리는 이러하다 이야기 드리면 그저 괜찮다 하시고, 도시와의 왕래를 두려워하며 그렇게 그렇게 지내신다.
섬 지역 공공기관은 편의시설이 눈에 띌 만큼 마련돼 있지 않아 정보가 없는 사람은 영영 알기 힘들다. 있더라도 장애인은 접근하기 힘든 환경인데, 장애인은 오지 않는다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관련 담당자들 조차 장애인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염전에서 “염전 일이 너무 고단해요”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던 장애인의 말에 마음이 아프고 ‘그분들을 위한 일자리 개선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또 그분들이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대우받고 생활하며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과제는 크고 많은 현실 앞에 회원들을 직접 만나고 방문하며 그분들이 더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애독자 여러분들께도 문화, 권리에서 낙후된 섬 지역을 위해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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