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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일본, "나병예방법" 위헌 판결 "국가 배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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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1907년부터 약 90년간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격리정책이 지속되어왔다. 그런데 지난 5월 11일 이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법부의 판결이 내려졌다.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사회안정, 공중위생이라는 명목으로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행위가 부당했다는 국민적 동의를 얻어낸 일일 것이다.

 

작년 안방극장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허준"을 기억할 것이다. 그 내용 중에 보면 예진아씨가 허준에게 "대풍창 병자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십시요. 그 병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은 세상의 편견일 뿐입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한센병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한 일본 만화 "모노노케 히메"에도 등장한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신들은 돌봐주는 군주를 위해 밤낮으로 총을 만들어 보답하는 이들로 일본에서는 이 한센병(나병, 대풍창) 환자들에 대한 격리 정책이 1996년까지 약 90년 간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지난 5월 11일 이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법부의 판결이 쿠마모토 지방법원에서 내려졌다.

 

본래 한센병은 나균에 의한 감염병으로 피부, 말초신경이 피해를 입어 얼굴, 손과 팔 등이 변형되며 대로는 시력을 잃기도 하는 병이다. 1873년 노르웨이의 한센이 균을 발견해 한센병이라 불리워지게 되었지만 한국, 일본 등에서는 나병, 문둥병이라는 차별용어를 대신해서 널리 쓰여지게 되었다. 이 병은 감염력이 매우 약하고 유전성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현재는 약물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불치병", "유전병"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사회의 차별과 격리를 당해야 했다.

일본에는 현재 15개 요양소에 약 4,500명의 원, 한센병환자가 생활하고 있다. 평균 연령은 74세로 주거, 의료 등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며 월 8만 4천엔이 지급되고 있다. 이들 한센 병환자에 대한 격리는 19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7년에 격리에 관한 기본법률이 제정 되었고 1931년 모든 환자들이 격리되어 1996까지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생활을 해야 했다. 더욱이 유전병이라는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낙태와 불임수술마저도 강요당했다.

 

이번 "한 센병 국가배상소송"이 논점이 되었던 것은 치료법이 개발, 시행된 50년대 이후의 격리정책에 대한 부당성과 그 책임에 대한 것이었다. 국가(정부)는 치료법이 정착되 1981년까지의 격리정책은 정당한 것이었으며 그 이후에는 인권침해, 차별정책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손해배상청구권은 20년이 지나면 자연소멸한다는 민법의 적용을 주장했다.

재판의 결론부터 말하면 1960년대 이후의 격리 정책은 위헌이며 국가는 원고 모두에게 약 18억엔을 지불할 것을 명령했다. 또한 입법부가 법 페지에 노력하지 않았다는 국회의 직무 태만도 지적하였다.

이번 재판은 96년 "나병예방법" 폐지에 관한 한 통의 편지로 시작되었다. 시만단체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한 변호사는 80세의 환자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나병예방법이 존재가치가 없는 법이라고 여겨진 후에도 얼마만의 세월이 지났는지아는 가! 침묵하는 법조계는 이 법의 존속을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을 계기로 한센병 문제가 부각되었고 여러 시민단체가 참여하게 되었다.

 

법정 증언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오타니(77세)씨는 현재 국제의료복지대학의 학장으로 일본 정부의 한센병 대책에 관한 중추적 인물이었다. 그가 증언대에서 "나병예방법은 잘못된 것이다... 법 폐지에 나서지 못한 것은 관료로서의 한계였다. 법 폐지보다 처우개선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일해 왔지만 자기 만족일 뿐이다"라고 반성했다.

1심에서 패소한 국가(정부)는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며(현재 원고단과 정부의 협상이 진행 중) 도쿄, 오카아마 등 다른 지방법원에서의 판결이 어떨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또한 국가가 그 잘못을 인정한다고 해도 원 한센병 환자들의 사회복귀가 가속화되리라는 예상은 하기 어렵다. 이미 평균 연령이 74세로 고령자가 대부분이며 아직 사회의 편견과 차별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사회안정, 공중위생이라는 명목으로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한 행위가 부당했다는 국민적 동의를 얻어낸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국가의 행위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입법부, 국민 일반에 대한 반성의 요구가 받아 들여졌다는 점일것 이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 국민 여론으로 보아 "판결은 인간회복의 첫걸음이다"라는 원고단 단장의 소박한 소망은 아직 모두의 가슴속에 전달된 것 같지는 않다.

 

아사히신문 한 구절에 "개미의 세계에는 일하지 않는 개미가 20%존재한다. 그 20%를 모두 제거해도 남은 개미 중에서 20%의 개미가 일하지 않는 개미가 된다. 그 20%의 개미는 그 사회속에서 무언가의 역할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단지 인간만이 그 20%의 의미를 부정하고 있다”라는 글이 있다. 이번 재판은 그 20%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글/ 이범석(일본 군마대학 의학부 보건학과 직업치료 전공)

 

작성자이범석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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