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소송으로 세상을 바꾼다!
본문
장애우들의 권리 침해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 공익 소송을 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소송을 통해 장애우들은 더 이상 침묵하는 계층이 아닌 당당하게 권리를 요구하고, 빼앗긴 권리를 되찾는 계층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지금 장애계에는 예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장애우가 심각한 권리 침해를 당했을 경우 이제 장애우와 장애계는 체념하지 않는다. 관련법에 근거해 즉각 소송으로 맞대응하는 양상이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이며, 이런 추세는 장애우 인권 보장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 장애우들이 차별에 맞서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최근 제기된 소송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주목되는 참정권 관련 소송
지난 6월 7일 뇌성마비연구회 ‘바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참여연대 등 4개 단체는 4·13 총선에서 장애우들이 투표소의 편의시설 미비로 투표를 하지 못해 선거권을 침해당했다며 1급 지체장애우 서승연(32) 씨 등 장애우 8명을 내세워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장애우 1인당 2백만원에서 5백만원까지 모두 2천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 전인 4월 26일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두 단체와 서승연 씨는 현직 판사인, 4·13 총선 당시 경기 광주군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임아무개 씨를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성남지방 검찰청에 형사 고발했다.
이들은 고소장에서 “장애인복지법 제23조(선거권 등 행사의 편의제공)에 의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우의 선거권 행사의 편의를 위하여 편의시설·설비의 설치, 선거권 행사에 관한 홍보, 선거용 보조기구의 개발·보급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 라고 명시돼 있다”고 전제한 후 “광주군 선관위는 직무를 게을리, 안일하게 처리함으로써 장애우와 가족이 기본권인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한 점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하며 이를 통해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우가 국민의 기본권을 행사함에 있어 부당하고 불편함을 겪지 않아야 할 것”이라며 피고소인을 조사하여 엄히 처단하여 줄 것을 요구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장애우들이 편의시설 미비로 4·13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건국 이후 수없이 많은 선거가 있었지만 장애우나 장애우 단체가 편의시설 미비로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없다. 그 동안 장애우들은 자신의 장애만을 탓하며 체념하고 말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제 양상은 바뀌고 있다. 이번 소송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애우들은 편의시설 미비로 투표에 참가하지 못한 책임을 선거 관리 주체인 국가에 묻고 있으며, 처벌과 손해배상을 동시에 요구할 정도로 급신장된 권리의식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장애우와 단체들이 이처럼 차별에 대해 체념하지 않고 권리의식에 바탕해서 행동으로 맞대응하고 있는 사례가, 비단 선거권확보에 그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실감하게 하고 있다. 뒤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지만 이제 장애우들은 입학 거부를 당했을 때, 공무원 시험에 탈락했을 때, 심지어는 지하철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도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장애우와 단체들이 이렇게 차별을 묵과하지 않고 싸울 수 있게 된 배경에 대해 장애우 문제 전문가들은 달라진 사회 분위기와 무엇보다 장애우 관련 법이라는, 미흡하긴 하지만 차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을 꼽고 있다. 그러면 장애우 관련법에는 도대체 어떤 조항이 있는 것일까, 자세한 법 조항은 역시 뒤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서는 먼저 최근 장애계 현안인 선거권 확보와 관련된 소송이 왜 제기됐는지 그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지난 4·13 총선 당시 경기 광주군에 살고 있었던 장애우 서승연 씨는 부모님과 함께 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 장소인 도청면 복지회관을 찾았다. 그런데 투표소가 하필 가파른 계단 위 2층에 있었다. 휠체어를 타야 움직일 수 있었던 서승연 씨는 투표를 할까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래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선거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투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랬는데 결국 서승연 씨는 선관위 관계자들에게서 모욕적인 언사를 듣고 투표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 날 벌어진 상황을 서승연 씨를 대신해 도움을 청하러 투표장에 올라갔던 서승연 씨 아버지 서상국 씨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제가 선거 관계자들에게 투표용지를 교부받으면서 밑에 휠체어를 탄 장애우가 와 있으니까 도와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는데 관계자 중 한 명이 태연스럽게 ‘다음 선거는 1층에서 할테니까 그때 하지요’ 라고 말하는 거였어요. 제가 화가 나서 책임자로 지목된 관계자에게 가서 따졌습니다. 장애우가 투표하러 왔는데 ‘다음 선거는 1층에서 할테니까 그때 하지요’ 라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 그랬는데 한술 더떠 ‘그럼 들판에서 하나’ 그러면서 노골적으로 비웃는 거였어요. 정말 화가 났습니다. 그렇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귀중한 한 표를 이렇게 묵살할 수 있느냐, 내가 이 문제는 끝까지 파고 들 것이다’ 이렇게 소리친 다음 투표장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편의시설 미비로 투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당사자 서승연 씨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가 혼자 투표하러 간 것도 아니고 아들까지 데리고 갔어요. 저는 늘 아들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어딜 가나 아이를 꼭 데리고 다녀요. 아들에게 엄마가 불편해도 보통 사람과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투표장에 데리고 갔는데, 결국 투표를 못해서 아이는 아직 어리니까 내막을 모르겠지만 제 입장에선 굉장히 기분이 안 좋고, 서글픈 느낌이 들었어요. 살면서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어딜 가도 그런 대우는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개인적인 볼일을 보러 간 것도 아니고 선거를 하러 갔는데 가족들이 있는데서 모욕을 당한 거죠. 사실 가족들도 평소 제가 장애우라는 생각을 안 하고 있고, 저 역시도 나는 장애우라는 생각을 전혀 안하고 살았어요. 그랬는데 투표장에 가서 내가 장애우임을 확인받게 되고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슬펐고 많이 화가 난 게 사실이에요.”
이어서 서승연 씨는 소송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묻자 “일단 투표할 내 권리를 뺏긴 거니까요. 권리를 뺏겼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자식 데리고 투표하러 갔는데, 거기서 ‘당신 다음에 해’ 하면 누가 가만히 있겠어요? 가만히 있을 사람 없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장애우이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한 게 아니라 내 표와 권리를 뺏겼으니까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거죠” 라고 말했다.
여기서 잠시, 내용과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서승연 씨 선거구인 경기 광주군은 4·13 총선에서 3표라는 미세한 차이로 당락이 갈린 곳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서승연 씨 가족 세 명은 이 날 일로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다. 만약 서승연 씨 가족 3명이 투표를 마쳤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까,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서승연 씨 외에도 이번 소송에 참여한 장애우는 7명이 더 있다.
예를 들면 뇌성마비 1급 장애우인 강정환(34) 씨는 선거를 앞두고 부재자 투표를 신청하려 했으나 통·반장 등의 확인서와 도장을 받아와야 한다는 등 담당공무원의 무성의와 복잡한 절차로 인해 투표를 포기해야 했다. 또 지체장애 1급 장애우인 김지수씨는 투표소가 계단 위에 설치되어 있었지만 다른 투표자들의 도움을 받아 올라가 겨우 투표를 마칠 수 있었는데 투표소에서 내려올 때 선관위 직원들로부터 휠체어가 이렇게 무거운데 어떻게 올라왔느냐는 등의 모멸감을 받았다며 소송에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소송에 참여한 장애우와 단체들은 장애우들이 선거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것은 선관위가 장애인복지법에 명시된, 장애우 투표를 돕는 조치와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4·13 선거에서 중증장애우들의 부재자투표(거소투표)를 위한 홍보를 게을리 했던 점, 그리고 조사에 따르면 전국 1만3천7백80개의 투표소 중 승강기나 휠체어 리프트가 있는 곳은 62곳에 불과하고 계단 대신 장애우용 통로가 있는 곳도 2천94곳에 불과했다는 점을 들어 선거관리 주체인 국가가 장애우 참정권을 명백하게 침해한 것이 분명한 만큼 이에 대한 보상과 관계자 처벌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하철공사 상대로 소송 내 승소
편의시설과 관련돼서 선거와는 관련 없지만 장애우가 소송을 내고 이긴 사례가 또 한 건 있다. 지하철 리프트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후 서울지하철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 최근 승소 판결을 받은 이규석(31) 씨 사례이다.
작년 6월 22일 오후 7시경 뇌성마비 장애우인 이 씨는 서울 대학로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 씨는 지하철 혜화역에 설치되어 있는 휠체어리프트에 전동스쿠터를 타고 몸을 실었다. 그런데 리프트가 중간쯤 내려가다가 갑자기 안전판이 젖혀지면서 이 씨는 스쿠터와 함께 리프트에서 떨어져 계단에 머리를 부딪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병원에 실려가 전치 3주 진단을 받은 이 씨는 사고 후 지하철공사를 상대로 “공사가 편의시설 관리를 소홀히 해서 사고를 당했다” 며 피해를 보상해줄 것과 리프트 대신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지하철공사는 “사고는 본인 과실이 크며, 엘리베이터 설치는 비용이 많이 들고 장애우들의 이용이 적어 설치할 수 없다”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 씨는 장애우 단체와 함께 공사 앞에서 몇 차례 시위를 벌인 후 작년 9월 지하철공사와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병원비와 정신적 피해 보상비로 3천2백만원을 배상해줄 것과 리프트 대신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줄 것을 요구한 소송이었다.
이 씨 사건은 그 동안 4~5 차례의 재판을 거쳐 올해 5월 26일 최종 판결이 났다. 서울지법 민사38단독 김동윤 판사는 이 날 “지하철공사는 이 씨에게 5백 만원을 지급하라”며 강제조정 결정을 내려 결과적으로 이 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 과정에서 지하철공사측은 “휠체어리프트는 법적 규격에 맞게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이 씨가 조작을 잘못해서 다친 만큼 공사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고, 이 씨는 “편의시설은 중증장애우라도 혼자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돼 있어야 하는데 현재 지하철역에 설치된 리프트는 고장이 자주 나는 등 장애우 편의시설으로서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지하철공사에 책임을 물었다. 이런 상반된 주장에 대해 법원은 일단 지하철공사에 사고 책임을 묻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법원 판결에 대해 당사자인 이규석 씨는 “제 사고를 계기로 서울시와 공사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리프트에도 안전장치를 새로 설치해 소송을 낸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는 지하철역에 설치되어 있는 리프트를 없애고 엘리베이터 등으로 대체하는 편의시설 개선안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장애우복지 5개년 계획안을 얼마 전 내놨다. 서울시의 편의시설 개선 안이 이 씨 사건에 영향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이 씨가 사고를 계기로 소송을 내 지하철 편의시설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나아가 여론화시킨 것이 서울시로 하여금 편의시설 개선 안을 내놓는데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학 입학 거부 사라질 전망
“저는 현재 한성신학대학 종교음악과에 재학중이고 이번 2월에 졸업을 하게 되는 학생입니다. 같은 시각장애우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싶은 꿈에 청주대 음악교육학과에 편입하고 싶으나 학교측에서는 시설과 운영상의 뒷받침이 없다는 이유로 원서조차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하필 우리 학교냐며 기분 나쁜 감정으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장애우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저 한 사람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진학의 꿈을 가진 많은 장애우들이 원서조차 내지 못하고 꿈을 접었던 현실을 이제는 바꾸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장애우들도 자기의 적성과 이상에 따라 교육받을 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설사 이번에 제가 편입학 원서를 내지 못한다 해도 저의 생각이 관철될 수 있도록,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선례가 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입학을 거부하는 그들의 편견과 불공평한 현실을 정말 바꾸어보고 싶습니다.”
열거한 다소 긴 인용은 올해 2월 11일 황선경(28세, 1급 시각장애우) 씨가 자신의 입학을 거부한 청주대 총장 이아무개 씨를 법원에 고소하면서 법원에 낸 탄원서이다. 탄원서 내용을 보면 입학 거부를 당한 장애우의 참담한 심정이 절절이 잘 드러나 있다.
사실 장애우에 대한 입학 거부는 그 동안 한두 건 일어난 게 아니다. 매년 입시철이면 되풀이되어 왔던 대표적이고 고질적인 장애우 차별 사례가 바로 입학 거부였다. 그리고 그 동안은 입학 거부가 있을 경우 여론에 호소한다든가 장애우단체장들이 학교장을 만나 설득하는, 다소 무기력한 방식이 장애계가 보인 대응의 전부였다.
하지만 황선경 씨 입학거부 사건을 계기로 장애계의 대응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래서 황 씨 사건이 장애우 운동에 역사적인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황 씨가 입학거부를 당했을 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여론에 호소하는 대신 당당하게 해당 학교장을 고소하는 소송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이 날 황 씨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청주대 총장을 97년 12월에 개정된 특수교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사실 황 씨 사건은 이미 결론이 나와 있었던 사건이라고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바로 관련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97년 12월 13일에 개정되고 98년 6월 14일부터 시행된 특수교육진흥법 제13조(차별금지 등) 조항은 ‘각급 학교의 장은 특수교육대상자(장애우)가 당해 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가 지닌 장애를 이유로 입학의 지원을 거부하거나 입학전형의 합격자의 입학을 거부하는 등의 불이익 처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또 각급 학교의 장은 특수교육대상자의 입학 전형 및 수학 등에 있어서 특수교육대상자의 장애의 종별 및 장도에 적합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법 제28조 2(벌칙)조항은 ‘법 제13조 1항의 규정에 위반하여 특수교육대상자에게 장애를 이유로 입학의 지원을 거부하거나 입학전형 합격자의 입학을 거부하는 등의 불이익한 처분을 한 각급 학교의 장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라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황 씨 입학을 거부한 청주대 총장은 명백하게 이 법을 위반한 것이어서 법을 들고 소송을 내며 대드는 장애우 단체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청주대는 바로 황 씨 입학을 허가하는 조치를 취했다.
만약 개정된 특수교육진흥법이 없었다면 장애계는 청주대를 상대로 어려운 싸움을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이 있었기 때문에 청주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곧바로 황 씨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황선경 씨 입학거부 사건은 장애우 인권 확보에 있어서 법이라는 근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생생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황선경 씨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차별이 있을 경우 그 동안 포기하고 돌아선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2월 입학 거부 건이 있었을 때는 언제까지 내 권리를 못 찾고 차별을 당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내 자신에게 던졌다. 그리고 시각장애우 후배들한테 내가 겪은 아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용기를 내 소송에 참여했다”며 “장애우라고 해서 불이익을 당하는 것에 대해 자포자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황 씨 입학거부 건이 해결 된 며칠 후 2월 16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이번에는 서울교대 총장 이 아무개씨를 장애인복지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교대측이 시각장애 6급으로 한쪽 눈을 실명한 김훈태(19)군을 신체검사에서 탈락시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울교대는 작년 12월 29일 특차와 면접에까지 합격한 김 군을 신체검사 결과 왼쪽 눈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최종 불합격 처리했다. 사유는 교대 신체검사 판정기준에 두 눈의 교정시력이 0.4 미만인 자는 불합격시킨다고 돼있기 때문이었다.
명백한 장애우 차별 사례를 접한 연구소는 개정 전 장애인복지법 규정을 들어 서울교대 총장을 고발하는 소송을 냈다. 근거 법 조항을 보면, 개정 전 장애인복지법 제12조(교육) 4항은 ‘모든 교육기관은 장애를 이유로 장애우의 입학지원 또는 입학에 불리한 조치를 취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벌칙으로 5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개정된 장애인복지법 18조 4항은 ‘각급 학교의 장은 교육을 필요로 하는 장애우가 당해 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장애를 이유로 입학의 지원을 거부하거나 입학시험 합격자의 입학을 거부하는 등의 불이익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3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이 장애우 입학 거부에 대해 예전 법 보다 훨씬 더 강력한 벌칙 조항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연구소는 개정 전 장애인복지법으로 서울교대를 고소했을까. 답은 서울교대가 김 군을 불합격시킨 시점이 작년 12월 29일이었기 때문이다.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은 시행 시기가 올해 1월 1일 부터여서 불가피하게 연구소는 개정 전 장애인복지법으로 서울교대측을 고발해야 했다고 한다.
김 군 가족과 연구소가 분개하며 소송을 시작하자 이 사건 역시 바로 해결됐다. 언론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고 교육부도 “장애우라고 해서 교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맞지 않다”며 불합격처분을 취소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하자 서울교대측이 김 군을 받아들이겠다고 물러섰던 것이다. 김훈태 군이 합격 처리되면서 막혀 있던 벽이 또 하나 사라졌다. 그 동안 교대는 장애우가 접근할 수 없었던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교대측은 시대에 맞지 않는 교사 품위를 내세우며 장애우 입학을 완강하게 거부해 왔었다. 그랬는데 타의에 의해 교대는 빗장을 풀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교대가 모든 장애우에게 문을 활짝 열 지는 알 수 없지만 장애우가 교대에 합격했다는 근거 하나만을 남겼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사건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는 게 장애계의 평가이다.
이렇듯 장애우와 단체들의 잇따른 소송은 사회에서 차별을 근절시키고 장애우에게 불리한 세상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장애우가 소송을 내 세상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로 정강용(39) 씨 소송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 채용 시 군가산점을 주는 제도 때문에 충청남도 7급 공무원 시험에서 탈락한 게 계기가 된 지체장애우 정 씨의 소송은 94년 충청남도를 상대로 장애인고용촉진법을 제대로 지키라고 낸 행정심판을 시작으로 97년 군가산점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으로 이어졌다.
이런 정 씨의 소송에 대해 작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정 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수십년 이어져온 공무원 채용시 군 제대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정 씨가 낸 소송이 공무원 채용에서 장애우 차별을 없애고 나아가 세상을 바꾼 것이다.(정강용 씨 소송건은 너무 많이 알려져서 더 이상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함께걸음 올해 2월호 특별기획을 참고하기 바란다.)
소송 통해 문제 해결하는 방식 정착될 가능성 높아
이상 살펴본 장애우와 단체들의 소송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개인이 당한 차별에서 시작한 소송이지만 결과는 전체 장애우에게 긍정적인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황선경, 김훈태 씨의 소송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대학 입학에서 장애우 입학 거부 사태는 잦아들지 않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점쳐볼 수 있겠다.
앞에서 장애우 차별을 철폐시키는 수단으로 소송이 각광받고 있는 것에 대해 그 배경으로 달라진 사회 분위기와 장애우 관련 법 이라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을 꼽은 바 있다. 이제부터 그 배경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다만 한 가지 전제할 점은 그렇다고 장애우들의 소송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차별에 대항하는 문제 해결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장애우와 단체들이 소송을 통한 문제 해결의 방식을 택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전제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먼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정열 소장은 장애우들의 소송이 늘고 있는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선 우리 사회의 변화가 주요한 배경이다. 과거의 운동 방식은 주로 힘이 권력에서 나왔기 때문에 법보다는 권력에 기대 해결을 모색했는데 90년대 들어 시민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시민운동의 속성은 권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시민운동이 활발해 지면서 대표적인 게 공익소송, 즉 법을 매개로 한 소송이 이어졌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관련법들의 개정이라든지, 공익을 위해 새로운 법을 만드는 움직임도 같이 활발해졌다. 그 결과로 특히 지난 15대 국회 때 법이 많이 바뀌었다. 장애쪽도 관련법이 대폭 재개정됨에 따라 법을 근거로 차별에 대응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15대 국회에서 제개정된 장애우 관련법이 장애우 소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장애우 관련 3개 소송에 관여한 장애우인권센터 여준민 간사의 말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예전에는 문제가 있고, 장애우가 차별 받고 있는 상태가 심각한데도 싸울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법이 제개정되면서 예전 법과는 달리 의무조항이 많이 들어갔다. 예를 들어 개정된 특수교육진흥법 차별금지 조항은 처벌규정까지 있어서 힘이 실려 있는 법이다. 이렇듯 법을 근거로 차별에 대응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한 건이 해결될 때마다 그 건이 판례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을 근거로 한 싸움이 의미 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15대 국회 때 장애인복지법,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 특수교육진흥법, 편의보장법, 이 4개 법이 제개정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장애우 단체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장애우 직능대표인 이성재 의원의 노고가 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장애계가 16대 국회에 장애우 대표를 선출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앞으로도 차별에 대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법인만큼 국회에서 장애우 입장에서 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쨌든 올해 들어 눈에 띄는 변화는 장애우 관련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열 소장 말대로 장애우들이 아직도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권리라는 개념보다는 국가가 뭘 해주길 기대하는 시혜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지만 차별에 대응하는 소송이 이어지고 소송이 장애우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해 준다면 소송을 통해 장애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방식은 누가 뭐래도 장애우 차별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리매김 될 전망이다.
글/ 이태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