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도 안되는’ 또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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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도시라고 알려진 진주에서 한 정신지체 초등학생이 전학을 거부당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동이 오면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관할 교육청은 특수교육운영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그 부분은 학교장의 권한"이라며 학교장에게 모든 책임을 떠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공교육으로부터 외면받아 1학기 내내 전학을 할 수 없었던 정신지체아동과 그 부모가 받았던 상처는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현우 군은 정신지체 1급으로 진해의 일반 초등학교에서 1년간 통합교육을 받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며 홈스쿨을 통해 치료 및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혼자서 신변처리도 가능할 정도로 확실히 좋아졌다.
그러다 홈스쿨 선생님이 진주로 옮기게 되었다. 부모님은 아이가 보다 안정적으로 학교와 가정에서 교육을 받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거라는 확신을 갖고 아이를 선생님이 계시는 진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아이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 만큼에 비길 것이 없기에, 아이의 주소지를 진주로 이전하면서까지 전학을 시키기로 결심했다.
장애아가 1명 있으면 40명이 수업이 안된다?
그러나 아이는 전학을 갈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전학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으면 특수학교로 가야지, 왜 우리 학교에 옵니까? 우리 학교에 특수학급이 2학급 있지만 거기엔 학습부진아 아이들이 있는 곳이지, 진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있는 곳이 아녜요. 정말 장애가 있는 아이가 오면 수업을 진행할 수 없어요. 왜 당신들 입장만 생각합니까? 40명이 중요합니까, 1명이 중요합니까? 대답해 보세요!” 전학을 거부하며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전체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 아이의 교육을 위해 다른 부분을 희생(?)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학교장은 장애를 가진 학생이 뭔가 큰 문제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온몸으로(?) 거부의사를 밝혔다. 도저히 대화로는 풀릴 것 같지 않아 특수교육진흥법에 의한 차별금지 조항과 그에 따른 벌칙내용을 전달하며 태도의 전환을 요구했지만 학교장은 막무가내로 “나도 다 안다, 맘대로 해라!”라며 거칠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연구소는 그 즉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 그 속에서 우선 학교장을 고발해서 문제를 풀어가기 보다는 특수교육진흥법에 명시되어 있는 ‘특수교육운영위원회’를 활용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왜냐하면 특수교육운영위원회를 구성해서 특수교육대상자 선정, 배치 등과 관련한 역할을 하게끔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구성조차 되어 있지 않은 곳이 대다수이며, 유명무실하게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빨리 아이가 학교로 들어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법을 최대한 활용해 보자는 뜻에서 우선 법에 명시되어 있는 가능한 모든 절차를 거치기로 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역할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이후 이러한 문제가 또 발생했을 때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로 남을 수 있으-리란 판단에서였다.
또 하나, 교육은 공적 영역이기 때문에 국가의 명확한 책임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보장받지 못한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국가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개인이나 조직에 모든 책임을 떠맡기려는 상황에서는 언제나 약한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전학거부 사건이 비록 일선 교육현장에서 일어났지만 너무나 열악한 우리의 교육환경에서부터 오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국가가 보다 통합교육을 원칙으로 한 장애우교육에 정책과 제도, 예산 확보 등의 책임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즉시 해당교육청에 이 문제를 알리고 적극적으로 중재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는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처음에는 부모님도 만나고 학교장도 만나면서 성의껏 중재를 하는 듯 보여 좋은 결과를 예상케 했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부모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아이는 부모님과 함께 있어야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겠냐, 홈스쿨 교사는 대리인이 될 수 없다, 특수학교에 갈 생각은 없느냐 ”등등의 논리를 펴는 데 그쳤다. 게다가 지나가던 다른 교육청 직원은 어이없게도 “계모 아니야?”란 말을 던져 현우 군 부모들의 가슴에 부담과 절망만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학교에 찾아가 학교장과 면담도 했지만 전학을 받겠다는 언급은 전혀 없이 ‘학교의 모든 책임은 학교장에게 있다. 아이의 안전을 책임지기 어렵다, 우리가 언제 전학을 안 받는다고 했는가’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현실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만 강조하고, 부모님이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리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처럼 대화를 몰고 가 부모님은 잔뜩 위축된 상황에서 통합교육에 대한 강한 입장을 전달하지도 못하고 되려 상처만 안고 학교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교육부 시정조치 후에도 부모에게 ‘동의서’ 요구
그리고 교육청으로부터 온 ‘중재에 대한 결과 통보’ 공문에서는 “관련 법률을 학교장에게 통보했으며, 전학에 관한 건은 학교장의 권한이기 때문에 이첩했으니 협조하기 바람”이라는 짧은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교육청은 위원회를 구성해 논의를 풀어간 것이 아니라 장학사 개인이 부모님 면담과 학교장 면담을 통해 입장을 확인하는 식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전학을 거부할 수 없는 학교장이 장애를 이유로 거부했다는 것이었지만 같은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측의 입장만을 고려해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부담스런 책임론만 강조하다가 끝난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교육청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태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이를 두고 볼 수 없어 교육부에 시·도교육청의 역할에 대해 문의했다. 그러다 대화 도중 이 사건을 알게 된 교육부는 이해할 수 없다며, 직접 교육청과 학교장에게 사실 확인을 거쳐 수습해 보겠다고 했다. 며칠 후 교육부에서는 이야기가 잘됐으니 이제 전학이 가능할 것이라며 부모님에게 학교에 가보시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학교장은 부모님에게 한 통의 전화연락도 없는 상황이었다.
학교장으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도 부모님은 ‘과연 될까’하고 의심하며 학교에 들어섰는데, 아니나 다를까 학교장이 이번에는 ‘동의서’란 것을 내밀며 사인할 것을 요구하고 전학접수증을 받지 않았다. 또다시 학교를 등지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는 지난 청주대에서 황선경 씨에게 요구한 각서의 형태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더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동의서에 별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동의서 내용을 보면 심각한 인권침해 조항도 없고 그렇다고 학교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내용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유독,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만 이를 요구하는 것일까!
장애학생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거꾸로 이제 이 동의서 요구는 이번 사건이 명백한 장애우차별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이번 장애학생의 초등학교의 전학거부 사건은 ▲학생을 거부할 수 없는 일선 초등학교에서 학교장이 일방적으로 거부한 점 ▲입학 전제로 ‘각서와 동의서’를 요구한 점 ▲교육청에 지원사실을 보고해 최종 배치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점 ▲교육청의 중재가 ‘특수교육운영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학교장의 권한’이라며 학교장에게 모든 책임을 떠맡긴 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학교와 교육청은 이현우 군과 부모님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하며, 1학기 동안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 국민은 국가에 대해 4대 기본 의무가 있다. 다들 알겠지만 교육, 국방, 납세, 근로의 의무다. 그 중 교육과 근로는 의무이자 권리에 속한다. 의무란 꼭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을 때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또 권리는 국민 개개인이 그것을 실행할 권한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공적인 교육영역에서 국민이 국가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키지 못하도록, 다시 말하자면 국가가 개인에 대한 자유권과 사회권을 침해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벌써 방학이 가까워졌다. ‘장애’ 때문에 1학기 내내 전학을 할 수 없어 전전긍긍한 현우와 현우 군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공교육으로부터 외면받는 동안 그들이 받았던 상처는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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