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역행하는 "그들만의 대학"
본문
지난 2월 9일 연구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황선경(시각장애1급. 한성신학대 4학년)이라 밝히며, 청주대 편입학 원서지원 마감일인 그날까지 사흘째 찾아가 사정(?)하고 있지만 청주대에서는 자신의 ‘장애’를 이유로 원서지원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가 오후 2시쯤이었다. 5시가 마감이라 그 때까지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황선경 씨는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는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것이다.
연구소는 그 즉시 청주대와 전화통화를 시도하고 관련 법 내용을 공문으로 해서 팩스로 넣는 등 계속 학교 측과 접촉했다. 법률적 근거는 ‘특수교육진흥법 제13조(차별금지) ① 각급학교의 장은 특수교육대상자가 당해 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가 지닌 장애를 이유로 입학의 지원을 거부하거나 입학전형합격자의 입학을 거부하는 등의 불이익한 처분을 하여서는 아니된다’와 ‘제28조(벌칙) 2. 제13조 제1항의 규정에 위반하여 특수교육대상자에게 장애를 이유로 입학의 지원을 거부하거나 입학전형합격자의 입학을 거부하는 등의 불이익한 처분을 한 각급학교의 장은 1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였다.
그러나 끝내 청주대측은 황선경 씨의 원서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특수교육진흥법은 고등학교까지만 해당되며, 대학은 대학자율에 따라 규정을 정할 수 있다”는 아무도 납득 못할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았다.
그렇지만 실망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황선경씨가 의기소침해 있기 보다는 여기서 그만 두지 않겠다며, 연구소가 함께 하면 법적 대응은 물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어 우리는 큰 힘을 받고 즉시 대응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이런 문제에 부딪히면 스스로 포기하고 접어두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개인적인 일로 묻혀버리는 것과는 달리 황선경 씨는 모든 국민의 기본권인 ‘교육권’이 ‘장애’를 이유로 침해되는 부당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에 알려내야 한다며 연구소와 함께 끝까지 해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했다.
이렇게 해서 다음 날 오후 즉시 연구소는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청주대의 ‘장애인 원서지원 거부 사태’를 알려냈고, 곧장 11일 오전 청주지검에 청주대를 특수교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법적 대응을 감행한 것은 이후 판례로 남아 또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소·고발장을 접수한 바로 그 날 청주대측에서는 만남을 제의했다. “많은 학교 중에 왜 하필 우리 학교냐”며 반인권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청주대는 이후 사회적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감을 알고는 황선경 학생의 수학능력에 대해 이런 저런 질문을 통해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52년 개교이래 장애 학생은 처음’이라며 황선경씨의 입학을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면접 과정에서 ‘학교 측에 어떠한 교육환경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요구해, 지성의 전당이라 하는 우리 사회의 대학이 얼마나 장애인에 대한 무이해와 편견으로 똘똘 뭉쳐있는지, 그로 인한 차별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 지 파악할 수 있었다.
청주대 편입학 거부 사태는 이렇게 발 빠른 대응으로 1주일도 안 돼 청주대의 입장을 철회시켜 ‘입학허용’이라는 1차 목적을 달성하게 되었다.
연구소 청주대·서울교대 즉각 고소고발 조치
그리고 다음 날 연구소에는 또 다른 사례가 접수되었다. 원서거부와는 다르게 서울교대에 특차지원에서 합격을 하고도 신체검사에서 탈락한 경우였다. 어려서 백내장에 걸려 한쪽 눈을 실명한 김훈태 학생(시각장애6급)은 ‘공무원 채용규정 신체검사 기준’에서도 결격사유가 되지 않음을 고 1때 확인하고는 줄곧 서울교대를 목표로 공부해왔다.
그러나 서울교대측은 ‘양안의 교정시력이 0.4미만인 자’라는 규정이 한쪽 눈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한쪽 눈이 0.4미만이면 결격사유가 된다며, 한쪽 눈 실명은 원근 조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체육활동에 지장이 있어 초등교사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으로 불합격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아무도 이 논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교대를 나왔다고 해도 초등교사가 되려면 임용고시를 봐야 하는데 그 때 신체검사를 받게 되면 김훈태 학생은 당연히 합격이라는 것이다. 공무원규정에는 ‘양안의 교정시력이 모두 0.3이상인 자’로 명시되어 있어 한 쪽 시력이 0.3이상이면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울교대측은 ‘규정은 학교에서 정할 수 있고 전체교수회의를 거쳐 통과된 것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억측으로 일관해 연구소는 청주대에 이어 또 다시 고소·고발이라는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교대의 경우는 불합격통보 시점이 지난 99년 12월 29일이라 특수교육진흥법을 적용하지 못하고 개정 전 장애인복지법 ‘제 12조(교육) ④ 모든 교육기관은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의 입학지원 또는 입학에 불리한 조치를 취하여서는 아니된다’와 ‘제57조(벌칙) 1. 제12조 4항의 규정에 위반하여 장애인의 입학지원 또는 입학에 불리한 조치를 취한 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청주대의 원서거부 사례가 있은 직후의 일이라 김훈태 씨의 불합리한 불합격 사례는 곧장 언론에서 크게 받아들여져 알려지게 되었다. 청주대와는 달리 서울교대는 국립대학이라 교육부에서는 즉각 서울교대에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빨리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여 입학을 허용하는 쪽으로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서울교대측은 학사 일정이 바빠 모이지 못하고 있다면서 계속 미온적 반응을 보이며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 여론은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인 기준을 갖고 장애를 가진 학생을 탈락시킨 점에 대해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렸고, 사설이나 뉴스 해설에도 주요 논점으로 설명되면서 서울교대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특히나 서울교대의 모집요강에 나타난 꼽추, 곰보, 난쟁이 등 ‘장애인 비하 용어’와 키를 제한 규정으로 하고 있는 등 터무니없는 신체상의 기준들은 분명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며, 앞장서서 사회적 모범을 만들어야 하는 교육계에서 일어난 일이라 모든 시민단체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못 이겨 마침내 24일 서울교대는 ‘장애인의 사회참여 기회 확대’를 위한다는 명분을 빌어 전체교수회의를 통해 합격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처음으로 ‘장애’를 이유로 한 교육권 침해에 대해 소송으로 맞섰던 두 건의 사례는 소송에 대한 결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사회적 여론과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성과를 얻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이제는 ‘장애’를 이유로 한 사회구조적 차별에 대해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것도 하나의 성과가 아닌가 싶다.
그 동안 이런 문제는 개인의 일로 치부되어 잘 드러나지 않았고, 알려지더라도 사태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에 알려져 대응에 어려움이 있었으며, 법적 근거도 미약하여 소송을 통한 적극적 대응이 쉽지 않았다. 기존에 있었던 ‘차별 사실’을 표면화하여 ‘사회문제화’하는 것도 지금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일인 듯싶다.
이번 일들로 인해 우리 연구소는 비단 이는 각 대학의 자의적 해석이나 몇몇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청주대의 경우 모집요강에는 특별한 제한 기준이나 규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장애를 이유로 원서지원을 거부했지만 전국 대학의 모집요강을 살펴본 결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규정이 구조화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외국의 경우, 채용시 ‘신체검사’를 또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신체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각종 시험제도에서 없애버린 낡은 제도임에도 우리는 아직도 엄격한 잣대로 삼고 있으며, 대체로 각 학교 모집요강에는 ‘사전면접’이란 것을 통해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공부할 수 있겠느냐” 라고 물으며, “학교에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여러 가지 항목 중에 포함하여 반강제적으로 사인을 하게 하고 있다.
심한 경우 어느 학교는 ‘우리 학교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음’ ‘장애인판정위원회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이란 문구 표현까지 담고 있어, 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접근 기회 자체를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연구소는 이런 모집요강 규정에 따라 차별받은 구체적 사례를 지속적으로 수집하여 교육부측에 책임을 묻는 행정소송은 물론, 가능하다면 헌법소원까지 할 계획이며, 장애인의 교육권을 확실히 보장하기 위해 활동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우리들의 대학"을 "그들만의 대학"으로 만들 수는 없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