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애우들은 정말 세상을 바꾸고 싶다. > 기획 연재


기획 연재

[기고] 장애우들은 정말 세상을 바꾸고 싶다.

본문

장애우에 대한 국가적 인식이나 제도적 처우가 이전에 비해 상당할 정도로 개선되는 추세에 있다는 점은 이제 누구라도 인정해도 좋을 사실이 되었다. 선거 관련 방송이 나갈 때 수화통역을 넣는 것은 이제 영상 화면을 디자인한다는 측면에서도 방송의 신뢰를 높이는 중요한 방도로 거의 정착되었다. 공공 건물에 장애우 전용 주차구역을 설정해 주는 것은 법으로 정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이윤을 도모하는 곳으로 웬만한 규모를 가진 곳에서도 이젠 거의 관행이 되었다.
이 주차장건과 관련해서 최근에 반가운 일이 하나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 건너편에 대형 수퍼마켓이 있는데 이 곳에도 장애우 전용 주차구역이 입구 바로 앞에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물건 사러 차를 몰고 가보면 언제나 장애우 것이 아닌 차들이 그 편한 자리를 선점하고 있어 다른 빈 곳을 찾아야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래도 빈 곳이 있으면 괜찮다. 하지만 저녁 시간 같은 때 베드타운인 의왕시 특유의 현상으로 서울 쪽에서 퇴근한 차량들이 쇼핑하러 한꺼번에 몰릴 때는 좁지 않은 그 주차장이 꽉 차버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실 그럴 경우야말로 장애우 전용 주차구역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럴 경우 으레 수퍼마켓의 경영책임자에게 항의하고픈 생각이 굴뚝처럼 치솟지만, 어디 그것이 생각대로 되는 일인가.
그런데 며칠 전 급히 물건 사러 들렀을 때 그 자리는 비어 있었고, 그 앞에 “이 곳은 장애우 전용주차 장소이니 손님들의 이해를 구합니다”라는 큰 팻말이 리본에 묶여 서 있었다. 연유가 어찌 되었든 시민들의 일상적 차원에서도 장애우에 대한 배려가 시민의 덕목으로 일반화되는 작은 징표라고 아니 할 수 없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아직 멀었다. 그런 데에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제기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이렇게 이웃의 배려가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수준까지는 도달했지만 장애우도 어엿한 국민의 하나라는 인식은 국가 대사를 치를 때마다 아직도 그렇게 당연히 고려되는 사항은 아니다. 꾸준한 개선 추세에 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이번에 총선 투표가 실시되는 전국 1만3천7백80개의 투표소 중 17%를 차지하는 2천3백49개의 투표소가 장애우들의 접근이 어려운 2, 3층이나 지하에 설치된다고 한다. 서울시의 경우 총 투표소 2천2백75개 가운데 장애우 편의시설은 이동통로 3백4개, 승강기 25개, 휠체어리프트는 1개로 턱없이 부족한데, 지방 중소도시로 가면 상황은 더 미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민연대가 벌이는 국회의원 부적격자 낙선운동이나 중앙선관위가 격려하는 선거참여운동에 호응하고 싶어도 유권자로서의 상당수 장애우는 아예 자기 집이나 투표장 문턱에서 국민이기를 거부당하는 실정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장애우 자신도 어느 정도 관련된 사항이다. 장애우에 대한 법적·제도적 처우개선이 이루어지면서 보는 사람 나름에 따라서는 개인적으로 상당한 이익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처가 장애우에게 시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대다수 장애우가 이런 제도적 수혜를 직접 체험하지 못하는 반면에 이런 점에서 앞선 일부 장애우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남용함으로써 공적인 분위기를 오염시킬 여지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앞에서 겪었던 동네 수퍼 주차장에서 어느 날 먼저 주차한 차를 보니 장애우 차량 운전석 쪽 창 아래에 부착하기로 되어 있는 장애우 표시 스티커가 없었다. 마침 운전자가 있어 가서 그 점을 지적했더니 차창 오른쪽에 비닐로 싼 스티커를 기대놓은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장애우 것이 아닌 차량에도 걸어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국가와 국민의 선의와 중지를 모아 시행하는 공적인 규칙을 이렇게 임의적으로 남용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건강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지방자치 단체에 따라서는 자판기 운영이나 일정 구역에서 허용되는 소규모 상행위에 장애우를 참여시키는 문제를 놓고 기존 영세상인들과 심한 마찰을 빚는 일도 일어나는 모양이다. 생계문제를 걸고 장애우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싸움을 조장하여 둘 다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장애우 생활에 대한 진일보한 점도 있다. 이럴 경우 새로운 기회를 갖는 쪽에서 좀더 깊은 사려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상대가 세금을 떡먹듯 포탈하는 큰 도둑놈이나 대재벌이 아닌 이상에는 이 사회에서 같이 소외당한 이들로서 서로의 사정을 보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세상 속에서 모처럼 마련된 기회를 잘 살리는 지혜로운 길이라 믿는다.
 우선은 물론 장애우들 안에서도 아직도 햇볕을 쬐지 못하는 대다수 중증 장애우들에게 더 큰 관심과 배려를 집중하고 확산시켜야 한다. 그러나 장애우의 사정이 나아질 때 그와 나란히 이 사회의 인간적인 사정도 나아진다는 점을 확신시킬 상당 부분의 책임은 점차 장애우 쪽으로 조금씩 넘어오고 있다. 장애우들은 정말 세상을 바꾸고 싶다

장애우에 대한 국가적 인식이나 제도적 처우가 이전에 비해 상당할 정도로 개선되는 추세에 있다는 점은 이제 누구라도 인정해도 좋을 사실이 되었다. 선거 관련 방송이 나갈 때 수화통역을 넣는 것은 이제 영상 화면을 디자인한다는 측면에서도 방송의 신뢰를 높이는 중요한 방도로 거의 정착되었다. 공공 건물에 장애우 전용 주차구역을 설정해 주는 것은 법으로 정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이윤을 도모하는 곳으로 웬만한 규모를 가진 곳에서도 이젠 거의 관행이 되었다.
이 주차장건과 관련해서 최근에 반가운 일이 하나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 건너편에 대형 수퍼마켓이 있는데 이 곳에도 장애우 전용 주차구역이 입구 바로 앞에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물건 사러 차를 몰고 가보면 언제나 장애우 것이 아닌 차들이 그 편한 자리를 선점하고 있어 다른 빈 곳을 찾아야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래도 빈 곳이 있으면 괜찮다. 하지만 저녁 시간 같은 때 베드타운인 의왕시 특유의 현상으로 서울 쪽에서 퇴근한 차량들이 쇼핑하러 한꺼번에 몰릴 때는 좁지 않은 그 주차장이 꽉 차버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실 그럴 경우야말로 장애우 전용 주차구역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럴 경우 으레 수퍼마켓의 경영책임자에게 항의하고픈 생각이 굴뚝처럼 치솟지만, 어디 그것이 생각대로 되는 일인가.
그런데 며칠 전 급히 물건 사러 들렀을 때 그 자리는 비어 있었고, 그 앞에 “이 곳은 장애우 전용주차 장소이니 손님들의 이해를 구합니다”라는 큰 팻말이 리본에 묶여 서 있었다. 연유가 어찌 되었든 시민들의 일상적 차원에서도 장애우에 대한 배려가 시민의 덕목으로 일반화되는 작은 징표라고 아니 할 수 없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아직 멀었다. 그런 데에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제기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이렇게 이웃의 배려가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수준까지는 도달했지만 장애우도 어엿한 국민의 하나라는 인식은 국가 대사를 치를 때마다 아직도 그렇게 당연히 고려되는 사항은 아니다. 꾸준한 개선 추세에 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이번에 총선 투표가 실시되는 전국 1만3천7백80개의 투표소 중 17%를 차지하는 2천3백49개의 투표소가 장애우들의 접근이 어려운 2, 3층이나 지하에 설치된다고 한다. 서울시의 경우 총 투표소 2천2백75개 가운데 장애우 편의시설은 이동통로 3백4개, 승강기 25개, 휠체어리프트는 1개로 턱없이 부족한데, 지방 중소도시로 가면 상황은 더 미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민연대가 벌이는 국회의원 부적격자 낙선운동이나 중앙선관위가 격려하는 선거참여운동에 호응하고 싶어도 유권자로서의 상당수 장애우는 아예 자기 집이나 투표장 문턱에서 국민이기를 거부당하는 실정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장애우 자신도 어느 정도 관련된 사항이다. 장애우에 대한 법적·제도적 처우개선이 이루어지면서 보는 사람 나름에 따라서는 개인적으로 상당한 이익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처가 장애우에게 시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대다수 장애우가 이런 제도적 수혜를 직접 체험하지 못하는 반면에 이런 점에서 앞선 일부 장애우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남용함으로써 공적인 분위기를 오염시킬 여지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앞에서 겪었던 동네 수퍼 주차장에서 어느 날 먼저 주차한 차를 보니 장애우 차량 운전석 쪽 창 아래에 부착하기로 되어 있는 장애우 표시 스티커가 없었다. 마침 운전자가 있어 가서 그 점을 지적했더니 차창 오른쪽에 비닐로 싼 스티커를 기대놓은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장애우 것이 아닌 차량에도 걸어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국가와 국민의 선의와 중지를 모아 시행하는 공적인 규칙을 이렇게 임의적으로 남용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건강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지방자치 단체에 따라서는 자판기 운영이나 일정 구역에서 허용되는 소규모 상행위에 장애우를 참여시키는 문제를 놓고 기존 영세상인들과 심한 마찰을 빚는 일도 일어나는 모양이다. 생계문제를 걸고 장애우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싸움을 조장하여 둘 다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장애우 생활에 대한 진일보한 점도 있다. 이럴 경우 새로운 기회를 갖는 쪽에서 좀더 깊은 사려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상대가 세금을 떡먹듯 포탈하는 큰 도둑놈이나 대재벌이 아닌 이상에는 이 사회에서 같이 소외당한 이들로서 서로의 사정을 보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세상 속에서 모처럼 마련된 기회를 잘 살리는 지혜로운 길이라 믿는다.
 우선은 물론 장애우들 안에서도 아직도 햇볕을 쬐지 못하는 대다수 중증 장애우들에게 더 큰 관심과 배려를 집중하고 확산시켜야 한다. 그러나 장애우의 사정이 나아질 때 그와 나란히 이 사회의 인간적인 사정도 나아진다는 점을 확신시킬 상당 부분의 책임은 점차 장애우 쪽으로 조금씩 넘어오고 있다. 

 

홍윤기 동국대철학과 교수 함께걸음 편집자문위원

 

작성자홍윤기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