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조각하는 서각 공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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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청 지하철역에 내려서 돌담길로 가다보면 가지런히 놓여진 목판 서각들을 보게 된다. 누가 이것을 가져다 놓았을까, 하고 가다보면 눈 앞에서 "탁탁탁" 하는 망치 소리와 함께 이 작품의 주인공이 목판을 쳐다보며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한쪽 팔이 이상하다 싶어 자세히 보니 절단된 손에 망치가 묶여 있었다.
서각공예가 조규연 씨. 현재 나이는 39세, 10살 때 친구들과 같이 있다가 군용트럭이 덮치는 바람에 한쪽 팔을 잃었다.
"1970년 4월 9일 밤 9시30분경 군용 트럭에 치었어요. 저는 친구들과 같이 있었죠. 차량이 덮쳐버린 거예요. 보상은 생각지도 못했죠. 그 때가 박정희 정권 시절 때였으니까 군인들을 상대로 보상해 달라고 말할 분위기가 도저히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치료비로 기백만원이 들어갔어요. 아버지가 저 때문에 집도 파시고 하느라 집안이 완전히 기울었어요. 70년도에 기백만원의 수술비가 들었다면 그 때 물가의 열 배 이상 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난 돈이잖아요."
세월은 흘러서 그는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3D현장의 일은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했다. 쓰레기 청소부, 일당 잡부, 용역에서 나가는 환경미화원 등 그는 어떻게든지 돈을 벌려고 했다. 그러나……
"운이 좋아서 환경미화 용역회사에서 월급쟁이도 했는데, 어느 날은 거기 사장이 비장애우를 채용하고 나서 저한테는 사표를 쓰라고 그러더라구요. 어이가 없었죠. 그런데서 모멸감을 느껴서 아예 그냥 막노동판으로 뛰어들었어요. 막노동판은 일하는만큼 준다고 했지만 현장에 나가서도 남들이 만원을 받으면 보시다시피 제가 한쪽 팔이 없잖아요. 그래서 오천원만 주더라구요. 그래도 불만없이 일했어요. 그런데 결국은 일을 못하게 된 거예요."
그래도 학비를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붓을 사고 나무를 사고 나무에 약품처리할 재료를 사고 작품을 세울 받침대도 사고, 책을 사기 위해서 돈을 벌었다. 일반 사람들과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기술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서각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남들이 물어보면 이름도 없다, 나이도 없다고 말해요. 뭐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멍에도 지고 싶지 않고요. 그런 생각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결혼하고는 멀어지더군요. 저는 그냥 독신으로 살고 싶어요.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요. 여기와서도 기회는 있었죠. 직업이 괜찮으니까요. 몇 번 소개는 받았는데 결혼 생활에 자신이 없어요.
자식들한테 "내가 니 아버지다" 하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가족 부양할 능력이 안되는 것 같아서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제 능력이 닿는 데까지, 죽는 날까지 제 자식같이 여기는 작품을 더 만들어서, 받아만 준다면 좋은 작품은 나라의 보물로 남기고 싶은 것이 꿈이죠."
그가 있는 덕수궁길은 가로수가 무수히 있었는데, 유독 그가 작업하는 장소 양옆의 나무에만 까치둥지가 있있다. 아무 곳에나 집을 짓지 않는 까치가 왜 그 장소에 집을 지었을까?
그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뒤돌아 서는데 들리는 "탁탁탁"하는 망치소리. "세상 사람들아, 나 좀 보소" 하며 외치는 듯 시청앞 광장의 자동차 소음소리가 무색하게 그 망치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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