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운동을 시작하며
본문
선진 외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자립생활운동이지만 재가 장애우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거의 전무한 국내 환경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되기는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가운데 뇌성마비연구회 바롬은 지난 해 회원들의 공동출자로 생활 공간을 마련하고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1년간의 자립생활을 통해 진정한 삶의 주체로 살아가기 시작한 기쁨도 크지만 제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바롬 김해원 실장의 자립생활기를 들어본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서의 자립을 위하여 일정 기간 동안의 보호아래 홀로서기를 익히고 보호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책임 하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사람은 영원한 보호의 대상자처럼 인식되기 마련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장애가 있으므로 책임을 지지 못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항상 보호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특히 우리 한국 사회에 있어서는 가족 중심적인 사회 분위기가 가족 책임주의의 복지정책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더욱 그러한 성향이 뚜렷하다고 하겠다.
사회 인식 부족이 자립생활운동의 걸림돌
장애우, 특히 중증(重症)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보호자의 손길이 필요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살기보다는 보호의 대상자로서 타인의 요구에 따라 살아가야만 한다.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들을 재고하기 위해,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고,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운동이 자립생활운동의 근본 취지일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 인권쟁취를 목표로 69년대 미국의 버클리 대학에 재학중인 중증 장애우의 의식적인 행동으로 태동하여 70년대 자립생활센터가 설립되고, 관련 법안을 제정하는 등 자립생활운동이 중증 장애우의 새로운 복지시책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80년대 장애우 수용시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으로 도입되기 시작했고, 이제 선진 외국에서는 중증장애우를 중심으로 한 운영으로 자신들의 욕구에 맞는 여러 가지 서비스를 개발하고 실행해 나가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자립생활운동을 도입하여 전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는 있지만, 선진국과 같이 자립생활 프로그램을 실시하기에는 아직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부족과 더불어 국가적이 정책의 미비,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증(重症)의 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의 의지가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에 우리 뇌성마비연구회 "바롬"에서는 자립생활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우리 나라에서 자립생활 프로그램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문제점과 대안들이 있는가를 연구하기고 했다. 글 첫 시작으로, 지난98년 5월에 본회 임원진들의 공동 출자로 영등포구 양평동에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사무실로 마련하면서 한국뇌성마비연구회 바롬의 실장으로 있는 필자(36, 뇌성마비 1급)의 자립생활 공간으로 꾸며졌다. 이렇게 해서 나이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30년이 넘는 삶을 가족과 같이 살면서 일상의 생활에서 부딪치는 제반 문제들은 가족들이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문제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생활은 모든 부분을 본인이 직접 해결하고 그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스스로 져야 된다고 결심하였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처음 이사왔을 때의 집안 구조는 전혀 장애우에게 편리한 시설이 되지 못했다. 내 힘으로 직접 식사를 해결하려 했지만 높은 싱크대 때문에 식사 준비가 어려웠고 높게 설치된 보일러 스위치조차 마음대로 조종할 수밖에 없었다.
수리를 받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무료로 개ㆍ보수하는 곳에 신청을 했지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3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저런 가사일을 구청에서 실시하는 도우미제도로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만, 생할보호대상자의 자격이 안 되는 나로서는 도우미제도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었다.
계속되는 식사준비, 청소 등으로 내가 해야 할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가 없었다. 세면과 설거지들을 높은 욕실 문턱에서 등을 엎드려 가며 하다가 뼈에 무리가 계속되어 왼쪽 갈비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가는 소동을 벌어지기도 했고, 그 결과 나만의 생활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가족들에게 알릴 수도 없었고, 파출부를 쓸 수 있는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치료도 없이 3개월 이상 무조건 움직이지 말고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도우미 활동비, 소비자가 직접 지불하게
가사 일에 도움을 줄 자원활동자를 구하려고, 여러 곳으로 수소문한 결과 PC통신을 통해 2명의 자원활동자를 확보하여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나마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힘들고 불규칙적인 식사로 인해 생긴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였다. 그렇게 힘들었던 여름을 보내고 남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도우미를 보내주어 식사와 청소 정도 같은 가사문제의 일부분은 해결되었다.
외출은 바롬의 직원과 개인적으로 알게된 자원활동자들의 도움으로 가능할 수가 있었다. 1년여의 생활을 통하여, 우리 나라의 사회 환경에서 중증 장애우가 자신의 의지대로 자립생활을 독립적으로 영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게 되었다.
주택의 구조는 일반적으로 장애우에 대한 배려가 전혀 되어 있지 못하고, 그것을 개보수하는데는 너무 큰 비용이 들어가고 무료서비스는 기간이 너무 늦어 그 기간 동안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나마 불편한 곳만을 고쳐주기 때문에 그 외에 수리가 필요한 곳은 제공받을 수가 없었다. 자원활동자는 무보수로 도움을 주기 때문에 그것을 받는 입장에서는 고맙게만 생각할 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는 96년부터 도우미제도를 실시하여 시간당 3천3백원의 활동비를 주고 생활보호대상자 중 노인이나 장애우의 가정에서 활동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제도 역시 서비스를 받는 대상자에게는 아무런 선택권 없이 제공자의 일방적인 서비스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도우미가 필요한 사람이 활동비를 직접 지급하고 도우미제도를 이용한다면 정당하게 자신이 필요한 부분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자신이 원하는 가사의 필요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필요한 청소나 세탁 등을 하게 하고, 가사를 도와주는 도우미에게 활동비를 직접 장애우가 직접 지불한다면 한 사람의 정당한 소비자로 인정받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실정에서는 가사노동을 장애우가 스스로 해결하면서 한 번의 식사를 위해 3시간을 소비하고, 세탁을 위해 세탁소에 비용을 지불하는 등의 경제적 부담이 과중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장애의 특성을 고려한 주택개조 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예를 들어 실내에서의 활동이 가능한가를 판단하고, 그에 맞는 행동범위를 정한 주택 개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자립생활운동에 필요한 제반 서비스가 절실히 필요하고 그에 따라 경제적 자립도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립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제 진정으로 자신의 삶의 주체로서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나라의 중증 재가 장애우들에게 자립생활운동의 필요성이 무엇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삶의 주체자로서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오는 기쁨과 자신만의 생활이 가능하다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중증장애우들도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든지 자립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이제야 바로선 나의 삶
이에 뇌성마비연구회 바롬에서는 올해부터 자립생활운동을 연구과제로 정하고 필자를 필두로 하여 중증 뇌성마비 장애우 2명을 선정하여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그렇게 자립생활의 사례를 늘려 나가면서 우리 현실에 맞는 자립생활운동을 적용시켜 나갈 것이다.
자립생활을 올바르게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주거공간이 필요하고 생활비도 비장애우 보다 높게 소요된다. 세탁비 식사비용 교통비 등에 다른 사람보다 2배 이상의 생활비가 지출되고 있다. 바롬에서는 올해 자립생활운동을 실천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자립생활센터 설립과 연구에 더욱 바자를 가할 것이며, 이를 위해 우선 자립생활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홍보와 기금마련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3월 21일에는 7명의 바롬위원들이 도아마라톤대회에 출전하여 뛰기도 했다.
장애라는 이유로 말살되어 버린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회복하고자 뇌성마비 장애우들이 이 운동에 앞장서 나갈 때이다.
글/김해원 (뇌성마비연구회 바롬실장) 사진/ 김학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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