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트록슬러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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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록슬러하우스에는 장애 정도가 심해 정규적인 일을 할 수 없는 장애우들이 은퇴한 교육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함께 살고 있다.
독일에 정신지체노인이 흔치 않은 이유
독일에는 60세가 넘는 정신지체인이 드물다. 나치시대의 악명높았던 우생학 중심의 인구정책으로 정신지체인도 예외없이 많은 수가 학살당했기 때문이다. 현재 작업장이나 시설에 살고 있는 60세 이상의 독일의 정신지체인은 전체 인구중 10% 미만, 그러나 앞으로 10년 내지 20년 후에는 40∼50%를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이제 독일의 정신지체인은 인간의 정신자체는 병이 들 수 없다는 기독교에 기인한 새로운 정의에 의해 "영혼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 일컬어진다.
정신지체인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시각과 철학에 입각해 지난 36년 동안 정신지체노인문제에도 심혈을 기울여온 곳이 바로 트록슬러하우스(Troxler Haus)다. 이곳은 1780년 스위스에서 태어나 크레틴병 환자들의 극진한 친구이자 행동하는 의사였던 트롯글러의 이름을 딴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장애자녀를 둔 소수의 부모들이 독일 중부 부퍼탈시 발도르프 학교 근교에 이주하기 시작한 것이 이 트록슬러하우스의 모태가 됐다. 그리고 1950년 한 사립주택에서 시작한 교육치료기관이 발도르프 학교건물로 이주하여 일을 계속 추진한 끝에 행동장애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한 크리스티안-모르스겐스테언학교로 발전된 것이다.
해마다 거듭되는 발전으로 현재 트록슬러 하우스는 법적으로나 운영상 세 개의 독립기관으로 분류되어 있다. 61년 결성된 트록슬러하우스부퍼탈협회, 86년부터 시작된 사회치료작업장, 그리고 93년 출범한 트록슬러학교 부퍼탈협호, 그러나 이 세 기관은 하나의 유일체제로 봐도 무방하다.
8학년까지 같은 담임선생이 지도
트록슬러하우스에는 1968년부터 여러 공동거주지와 외부 장소에 분산되어 현재 유치원에 16명, 학교에 1백10명, 작업장에 3백65명, 프란티스쿠스하우스에는 20명, 도합 5백11명이 생활하고 있다. 또 내년부터 입학생을 받게 될 발도르프유치원은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함께 배우는 통합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중 트록슬러학교의 1백1-명의 학생은 12개의 반으로 나뉘어 교육을 받는다. 특이한 사실은 담임교사가 1학년부터 8학년까지 바뀌지 않는 점이다. 8학년 이후의 과정으로 학생들은 자업반으로 보내진다. 9학년부터 4년동안 주위환경을 논리적으로 인식하며 자주적 판단을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새롭게 추가된 지리, 천문학, 기계학, 경제, 상업과목 외에도 매일 두 시간 반 동안 섬유방직, 도자기와, 양초제조, 종이제조기술 등을 익히는 수공업 수업도 진행된다.
작업장 지도자는 한 장애우가 어떤 작업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작업장소에서 일해야 치료에 효과적인가를 신중히 관찰한 후 결정한다. "일을 하는 도중이나 마친 후에는 자신이 하는 일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과 만든 제품을 사는 단골 손님을 확장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 트록슬러하우스부퍼탈협회 구트란트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을 파는 일도 이들에게는 중요하다. 작업장 관계자는 "일년에 두세번 견본시장에 예술공예품과 장난감을 전시하고 바자회를 통해 제품의 판매망을 계속 뚫고 있다"고 설명한다.
특수학교 작업반을 나온 학생들은 또 다시 작업연습반으로 들어가 4주동안 교육을 받고 여러 작업분야에서 실습을 받는다. 총 3백65명을 위한 세 작업장에는 재봉, 가구공예, 빵제조, 종이제조, 제철공장, 세탁소, 나무악기, 목재장난감, 선물용 목각제재소, 조립장, 직물공장, 가죽공장, 원예, 농업, 삼림등 매우 세분화 된 직업교육을 받는다.
장애우 한 명에 돌보는 사람 두 명
트록슬러작업장은 해마다 15명 내지 20명을 새로 고용하기 때문에 앞으로 그 규모는 더 확장될 전망이다. 중증장애우를 n이한 간호시설을 갖춘 작업장도 설립되며, 치료체조, 마사지, 물리치료 등을 받을 수 있는 건물이 따로 세워질 예정이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마리엔호프농장에 사는 사람들은 걸어서 또는 통근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 각 생활공동거주지에는 각 가정의 훈련교사가 실습생들과 함께 1:4의 비율로 장애우들과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근무가 끝난 후 집에 돌아오면 장애우들도 각자의 역량에 따라 분담된 일을 수행함으로써 서로 도와가며 함께 사는데 이바지 하는 기쁨을 누린다.
한편 마리엔호프농장 농업, 원예, 삼림 분야가 있다. 생물 역학적 재배방법을 사용함으로써 토지건강과 자연유지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야채, 우유 및 우유제품, 육류 등이 생산되어 자체적인 수요를 충당하고 있다.
완벽한 간호를 수행하기 위해 그에 필요한 통신과 위생시설을 설치했으며 건강상 일부 몇 시간 근무시간을 단축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집에서도 낮에 적당한 일거리를 찾아 생활할 수 있게끔 구조가 되어 있다. 평생을 장애우들과 함께 살다가 퇴직한 교육자를 위해서도 살 방을 마련하여 죽을 때까지 서로 돌봐주며 함께 살 수 있도록 한 것도 이곳의 특징이다.
이 건물은 작업장에 다니고 있는 장애우 부모인 건축가 백클러 씨가 대지값을 제외한 건축비 520만마르크(약 26억원)을 들여 손수 지은 삼층 건물이다. 승강기를 타고 2층과 3층으로 가서 내리면 식사하는 곳과 개방된 부엌 그리고 아름답게 장식된 안방이 바로 나온다.
20명의 정신지체인을 위해 이곳에서는 20명의 직원이 일을 한다. 전 직원수는 30명에 이르지만 실제 1:2의 비율로 정신지체인을 돌봐주고 있는데 주 정부에서는 병원시설 이전의 간호하우스의 고용비율을 1:1.68로 정했다. 주 정부와 사회관청에서 프란치스쿠스하우스에 사는 정신지체인들의 경제적인 부담을 밭고 있다.
프란치스쿠스하우스는 생활공동거주지에서 살다가 건강상태가 안좋아 장애정도가 심해져 정규적으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과 늙은 사람들을 그들이 죽을 때까지 정들어 살던 곳에서 돌봐주자는 뜻을 안고 10년 계획과 건설기간 끝에 1994년 두 그룹에 20명이 살 자리를 만들었다.
프란치스쿠스하우스를 돌아보는 중 이인용 중환자실에 들어서자 사무총장 구트란트씨는 누워서 아무말도 못하고 눈을 깜박거리며 겨우 손을 내미는 빌리를 여러 번 허리를 구부려 꼭 껴안았다. "어떻게 지내니. 빌리? 내가 또 올께"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트록슬러하우스 전체를 감싸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바로 그 말에 담겨있는 따뜻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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