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닮은 이 사람들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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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불화의 여파로 후원자들이 끊겨 전국에 있는 복지시설은 월동준비가 힘겹기만 하다.
특히 정부로부터 재정적인 후원을 받지 못하는 비법인 단체들이 운영하는 시설의 어려움은 더할 나위 없이 크기만 한다.
재정자비도 50%를 채 넘지 못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비인가시설 중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김제 "영광의 집"을 찾아가 그들이 사는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1986년 김석규(44) 목사가 길가에 버려진 정신지체장애우를 데려다 설립한 것이 김제 영광의 집(김제시 입석동 653-10번지)의 출발이었다. 당시 살림공간으로 제일 먼저 지어진 영광의 집 외에도 현재는 50명의 식구들이 먹을 식량을 제공하는 논밭과 살림에 보탬이 되고 있는 가축사육장, 그리고 최근에 지어진 자립공장과 교회 등으로 살림살이 공간이 늘어났다.
시로 승격된 지 얼마 안되는 김제시 시내를 조금 벗어나면 논과 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 농가들 한켠에 영광의 집이 있다.
3층 건물에 엘리베이터 설치
올해 영광의 집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바로 자립작업장이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성경구절대로 장애우들도 남에게 얻어먹을 것만이 아니라 직접 일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이다.
자립작업장에서 하는 일은 쇼핑백 제작과 버섯종균마개 뚜껑을 뚫는 일이다. 쇼핑백과 버섯마개 작업은 사고가 날 위험성이 적고, 고가의 기계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영세한 작업장에서 하기 안성맞춤이다. 더군다나 버섯마개 작업은 전북지역에서 영광의 집에서만 생산하도록 전북도로부터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판로가 부족한 현실에서 그나마 큰 힘이 되고 있다.
작업장에는 영광의 집 식구말고도 인근지역에 사는 장애우들이 함께 일을 한다. 일하고 싶어도 마땅히 취업을 못한 장애우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 김 목사가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전주지소의 협조를 받아 함께 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영광의 집 식구들은 식당이 있는 자립장 2층으로 이동한다. 놀라운 것은 3층짜리 작은 자립장 건물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체장애우도 편하게 2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현재 3층에 수영장을 짓는다고 하니 앞으로 이 엘리베이터는 더 유용하게 쓰여질 것이다.
2층엔 식당과 휴게실이 있는데, 영광의 집 식구들은 5시에 일을 마치고 이곳에서 여가를 즐긴다고 한다. 휴게실에는 대형 텔레비전과 오디오, 쇼파, 탁구대, 당구대도 있어 여러 명이 한꺼번에 다양한 취미를 살리며 쉴 수 있다.
"정신지체장애우의 평균 수명은 40에서 50세라고 알려져 있죠. 왜인지 아세요? 집에만 앉아서 아무것도 안하니까 오래 못사는 거예요. 병도 잘 걸리고, 그래서 저희는 최대한 식구들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운동에 신경을 씁니다. 수영장을 만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이렇게 영광의 집 식구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김 목사는 정작 자신의 건강은 챙기지 못하고 있었다. 영광의 집 건축공사에 직접 참여했는데, 그러다가 그만 2층에서 떨어져 두 번이나 개업기념품 등을 인쇄하느라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있다.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 목사는 영광의 집을 시작한 이후 장거리 외출은 삼가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밖에 일이 있어 영광의 집 문을 나선 적이 한 번 있었어요. 집에 담당 간사도 있고, 다 큰 딸도 둘이나 있으니까 큰 문제가 없겠지 하고 떠났는데, 출발한지 1시간 후에 호출이 왔어요. 딸 아이 한 명이 식구들한테 맞아 머리가 깨졌다는 거예요. 남자 간사가 말렸는데도 듣지 않아 결국 저한테 알린 거죠."
영광의 집에 처음 들어온 장애우들은 사람들이 다가가면 피하거나, 아니면 달려들어 싸움을 한다고 한다. 오랫동안 버려져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면서 사라들을 무서워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김 목사 내외 외에 다른 사람이 다가가면 흥분해서 사람들을 때린다는 것이다. 하여간 그 일 이후로 김 목사 내외가 함께 영광의 집을 비우는 일은 거의 없다.
자체 수퍼마켓도 운영
자신을 거둬들인 사람도 몰라보고 때릴 정도로 정서가 메말랐던 영광의 집 식구들이 찬양대회에 나가 찬양을 하고 풍물을 친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지난 93년 영광의 집은 "영광 찬양제"를 개최했다. 대소변도 못 가리는 정신지체인들이 노래하고 율동하는 것을 보고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했느냐는 질문이 빗발쳤다. 이에 대한 김 목사의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생활교육이 그 비결"이라는 것이다.
영광의 집 식구들은 풍물도 잘 친다. 일 끝나고 나서 하는 일 없이 텔레비전만 보는 식구들이 안됐다 싶어 김 목사가 학창시설 배운 풍물을 이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풍물을 치면서 자연스럽게 노래도 가르쳐주게 됐고, 또 서로 춤도 추면서 식구들간에 정도 생기고 그들 나름대로 쌓인 스트레스도 풀 수 있었다.
그렇게 꾸준히 풍물을 치다 보니 풍물솜씨도 조금씩 늘어 지난 5월에는 군산아동극축제 폐막식에 참가해 풍물공연을 하기도 했다.
또 작업장 한 쪽에는 10평이 채 안되는 조립식 건물이 있다. 영광의 집에서 운영하는 수퍼마켓이다. 안을 들여다보니 과자와 음료수, 빵 등이 있다. 돈벌 목적으로 만든 것 같지는 않아서 김 목사의 부인 나란희(43)씨에게 물어봤더니 생활교육용 매점이라고 한다.
"버려진 장애우 마음이 닫혀 있더군요. 남에게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이들이라 남에게 베풀 줄도 모르더라구요. 그래서 작업장에서 일하고 받은 월급 중 십일조는 안내더라도 함께 일하는 식구들에게 한턱 사라고 시켰죠. 처음에는 어색해하고 잘 안사려고 하더니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먼저 사오겠다고 해요."
1만원만 가지면 쵸코파이에 우유 하나씩을 영광의 집 식구들 모두에게 돌릴 수 있다. 그렇게 매일 한 사람씩 사면 한 달이면 모두 한 번씩 돌아간다. 그래서 누가 사왔다고 밝히고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영광의 집 장애우들은 이제야 베푼다는 것이 어떤 건지, 그 기쁨을 알아가는 듯했다.
수퍼운영은 뇌성마비장애우 김용학씨에게 맡겼다. 그가 하는 일은 물건을 떼 오고, 판매장부를 정리하고 월말에 결산도 직접 한다. 가금씩 마을 사람들도 물건을 사러 이곳에 오곤 한다. 김 씨는 영광의 집이 처음 생길 때부터 있었던 식구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수퍼에 다니면서 영광의 집 식구들이 셈도 곧잘 하게 됐고, 물건을 사고 파는 것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아주 능숙하지는 않다. 그러는 그들 나름대로 이제는 일해서 돈을 받을 수 있고, 그 돈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 원리를 깨달은 것이다.
특수학교에 16년을 다녔어도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고, 하나 둘 셋까지도 못 세는 경우가 많은데 영광의 집 식구들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교육적인 면에서도 놀라운 성과라 할 수 있다.
성생활 모르고 지내는 정신지체인 부부
영광의 집에는 세 부류의 방이 있다. 결혼을 한 부부가 생활하는 신방과 연고자가 있는 식구들이 사는 그룹홈, 연고자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은 장애우가 성별로 나누어 사는 공동숙소로 나뉜다.
연애로 결혼한 20대 이춘희, 김관영 부부와 중매로 결혼한 30대 정성원, 남영순 부부 사이에는 김 목사 부부만 아는 다른 점이 있다.
이춘희 김관영 부부는 성생활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성원 남영순 부부는 성생활을 한다. 일부러 한 쪽만 가르쳐주고 한 쪽은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김 목사는 처음부터 이들에게 성생활을 가르쳐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정신지체인의 특성상 한 번 뭔가에 몰두하면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고 일상생활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경로에서인지 정성원씨가 성행위를 알게 됐고, 이왕 알게 된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어 이들 부부에게는 성교육을 시키고 있다. 잠자리를 같이 할 때는 청결한 상태에서 해야 하고, 매일 하지 말고 1주일에 한 번만 할 것 등이다.
그리고 이들이 결혼할 때, 여자 쪽에게 불임수술을 해서 임신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글쎄요. 성행위를 가르치는 것이 좋은지, 나쁠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아요. 성관계를 모르지만 서로를 아끼고, 행복해하는 이춘희 김관영 부부를 보면서 굳이 가르쳐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두 부부를 지켜보면서 어떤 방법이 더 나을지 고민 중이에요." 나 씨의 말이다.
그래서 김 목사 내외는 요즘 장애우의 성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한다. 영광의 집은 모두 이런 식이다. 김 목사나 나 씨 모두 직접 부딪치면서 배우고, 터득해 나간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이들도 12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새 장애우문제에 있어서 전문가 못지 않은 식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영광의 집을 짓기 전 3년 동안 장애우시설을 견학하고, 세계적으로 잘돼 있다는 장애우시설을 방문한 것이 큰 몫을 했다. 이처럼 김 목사 내외는 끊임없이 배우면서 영광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재정자립 완성이 남은 과제
영광의 집 거실과 부엌에는 호박과 호도, 감 같은 것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일년 동안 밭에 심은 곡식을 추수해서 진열도 하고, 겨울을 나기 위해 창고에 보관해 놓은 것이다. 커다란 욕실에 들어가 보니 웬 호박천지다. 겨울엔 채소도 나지 않고, 비싸니까 호박을 가지고 겨울을 난다는 나 씨의 말이다.
"우리 식구들이 하루에 먹는 라면이 몇 갠지 아세요? 1박스 반이에요. 식구가 많다보니 부식비도 많이 들죠. 그리고 라면을 끓일 때, 호박을 갈아서 넣어 먹으면 비타민을 공급할 수 있어 좋죠. 또 호박죽도 끊여먹고, 호박전도 부쳐먹죠."
그래서 영광의 집에서는 이 다용도의 호박을 많이 심어 가을이면 습도가 맞는 욕실에다가 크기별로 익은 정도에 따라 분류해 놓는다. 나 씨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그밖에도 영광의 집 벽에는 식구들이 야유회 가서 찍은 사진, 숫자, 동물, 찬송가 등등 또 어항과 꽃 등 뭔가가 빽빽하게 전시돼 있다. 정신지체인 식구들의 교육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나 씨가 신경을 쓴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진은 코팅돼 있거나 유리없는 액자에 걸려 있다. 아이들이 만지다가 깨뜨리는 일이 많으니까 아예 유리를 모두 뺐다. 그리고 액자의 뒷면에도 사진이 있다. 한 사진만 오래 보면 흥미를 잃을 수 있으니까 계절이 바뀌면 돌려서 걸어놓는다. 이렇게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
"저라고 돈에 대한 욕심, 가족에 대한 욕심이 없었겠습니까? 제 딸아이가 정신지체인에게 맞아 머리가 깨졌을 때, 왜 속상하지 않았겠어요? 또 건물만 지으면 교인들이 영광의 집 운영을 도와줄 것이라 믿었는데 오히려 건물이 화려하다고 제가 어디에 돈을 숨겨놓고 있지는 않나 의심하는 눈초리로 쳐다볼 때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신앙의 힘으로 극복해 왔던 김 목사에게는 이제 재정자립도 완성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아무리 설립취지가 훌륭해도 한 달 약 2백만원 가량 되는 적자를 모면하지 못하면, 그 뜻을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문을 연 자립장과 농장, 그룹홈 등을 통해 그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김 목사의 꿈이 조만간 현실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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