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위기에 놓였던 국립의료원, 원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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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국정감사 기간 중 보건복지위원회의 핵심사안은 정부의 국립의료원 매각계획, 의료보험관리공단의 연세대학교 병원과의 유착의혹 등이었다.
또한 1년여 농성이 계속되고 있는 에바다사태에 대한 관할관청인 평택시의 책임문제도 국정감사장에서 또다시 성토되기도 했다.
한편 17일에는 정신요양원인 충난 서천군 장항수심원의 인권탄압 실상을 담은 비디오가 국정감사장에서 상영되면서 정부의 정신요양원 관리감독 문제가 큰 파장을 몰고 오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의료보험관리공단 해임건의까지 제기되는 등 팽팽한 논박과 질의가 쏟아졌던 97년 국정감사장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꼬리를 문 의혹 낳은 국립의료원 매각 이유
재정경제원과 복지부 차원에서 매각이 결정됐던 국내 유일의 국립의료기관, 국립의료원의 이전 및 기능전환계획이 무위로 돌아갈 전망이다. 정부의 국립의료원 매각방침이 알려진 후 의학계 전문가나 각 언론, 의료원 직원, 환자 등 사회 각계의 거센 반대여론을 몰고 왔던 이 계획은 결국 국회 예결산위원회에서 사업추진을 위한 예산안이 거부될 것으로 예상돼 사실상 철회가 확실시 되고 있다.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나온 국립의료원 조덕연 원장 또한 "정부의 국립의료원 매각 계획을 8월31일자 일간지에 보도된 후 처음 알았다"며 "매각 계획에 반대한다"고 증언했다. 이는 정부의 결정이 현장 관계자와의 충분한 사전 협의나 검토없이 즉자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더욱이 그 매각결정이 최광 복지부장관이 취임한지 3주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정권 차원의 또 다른 계산이 있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애초 재정경제원과 보건복지부의 계획에 다르면 현재 4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국립의료원 부지를 팔아 서울인근지역으로 옮기고 그 차액으로 국립응급치료센터와 국립암연구소를 새로 건립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민간의료기관이 급속하게 성장했고 2000년까지는 의료보호제도도 더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기 때문에 국립의료기관은 일반진료기능보다 응급의료센터나 암, 에이즈 등 특수질환, 또 노인성 질환 등에 대한 연구나 의료활동을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국립중앙응급의료원 건축물이 완공될 2천년까지는 국립의료원을 현 체제로 운영하되 2001년 응급의료원 개원과 때를 맞춰 문을 닫겠다는 것이 정부측 구상이었다.
그러나 반대여론이 확산되자 국정감사 중 복지부 장관은 신장투석과 같은 일반진료기능은 남겨놓겠다. 4:6의 비율로 일반질료와 응급진료의 기능을 나누겠다는 등의 안을 궁여지책으로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국립의료원 전체 환자 가운데 10.3%가 생활보호대상 환자라는 사실은 앞으로 민간기관이 의료부문을 전부 담당해도 될 것이라는 정부의 예측을 무색하게 한다. 다른 사설병원에서 의료보호수가가 낮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많은 생활보호대상자들이 그래도 국립기관인 이곳으로 몰리는 것이다. 국립의료원 전체 수입 가운데 의료보호환자를 치료한 후에 받는 기금수입이 9.7%로 재벌기업이 소유한 삼성병원 0.2%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
복지부 장관 소신 주장에 의원 집단 거부안 제출
재정경제원이 국립의료원의 매각을 검토하게된 것은 사실 적지 않은 운영상 적자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간 45억원 정도의 적자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립의료원 적자운영의 근본적인 문제는 현행 의료보호체계의 전반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96년 국립의료원의 미수납금액 72억원 가운데 19억원이 의료비체불이었다"는 자민련 김허남 의원의 지적과 같이 저소득의료보험 환자들을 치료해도 그 비용을 보조하고 있는 국가조차 진료비를 제때에 주지 않는 점이 문제였던 것이다.
민주당 김홍신 의원은 정책자료를 통해 "전국 각 시도의 의료보호기금의 총적자 규모가 무려 1천4백억원 가량이나 삭감시켰다"고 재정경제원을 비난했다. 재정경제원은 이러한 진료비체불을 시정하라는 감사원의 지적에도 시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국립의료원 기능전환을 통해 새롭게 설립하고자 했던 응급의료센터는 더욱 큰 적자폭이 뻔히 예상될 뿐더러 특히 한국 지형이나 의료여건을 고려한 보다 근본적인 응급의료체계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았다. "우리나라는 산악지역이 많은데다 모병원과 자병원의 긴밀한 후송체계도 부족한데 이러한 점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헬기만 갖추어 띄우면 응급의료원이 되는 줄 안다"고 의원들은 정부의 비상식적인 구상을 추궁하기도 했다.
국립의료원 노조위원장 허성섭씨도 "응급 환자만으로는 병상을 다 채우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큰 적자가 예상되기는 것은 뻔한 일"이라고 진단했다. "국립경찰병원 부산분원도 건립도중 매각된 사례를 볼 때 국립의료원보다 약 4배자 많은 2백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응급의료센터를 과연 정부가 설립할 것인지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노조측에서 나오고 있다.
결국 국정감사장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최광 복지부 장관에게 매각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전체의료기관 가운데 공공기관의 비율이 13.3%에 불과한 한국의 현실에서 국가마저 의료서비스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수치는 일본 32.8%, 미국 34.6% 프랑스 69%에 비해 비교할 수도 없이 낮은 현실이다. 신학국당 정의화 의원은 "전국의 공립의료기관도 국가가 포기한 일을 지자체가 계속하기에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연이어 문을 닫을 것이고, 응급의료센터가 현실적으로 시립병원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자치단체들이 이것을 운영할 리는 만무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재의 부지가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2, 4, 5호선의 전철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부지를 옮길 필요 또한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지부 장관이 계속해서 자신의 소신이라며 매각계획 철회요구를 거부하자 결국 김홍신 의원의 발의에 의해 16인의 전 복지위 의원의 만장일치로 17일 국립의료원매각에 대한 거부안이 채택됐다. 이 거부안에서 의원들은 "국립의료원의 시설 장비 인력보장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고 민간의료기관이 기피하는 특수의료원에 특수의료기관을 수행하기 위해서 국립의료원에 특수의료기관을 부설기관으로 설치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국립응급의료원 신규건립계획은 민간부문의 권역별 응급체계확충을 먼저 이룬 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결정할 것도 촉구했다.
이미 정부는 국립응급의료원 부지매입비와 설계비등으로 260억원의 예산을 책정해 놓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이 안건이 완전 철회되기 위해서는 국회 상임위 예결산위원회 회의와 국회본 본회의에서의 관련예산안 삭감절차가 남았다. 그러나 예결위에서도 복지위의원 전체의 반대의사를 결코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에 국립의료원 매각계획은 사실상 물건너 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임시 에바다원장으로 공무원을 파견하라
또한 16일 국정감사장에서 1년여 동안 계속되고 있는 에바다사태의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아 직무유기라는 비난까지 제기됐던 김선기 평택시장이 증인으로 나와 관심을 모았다.
김 시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국민회의 이성재 의원은 어제까지 드러난 에바다복지재단의 각종 비리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시 전체 공무원들의 비리재단 감싸기 행정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성재 의원은 아직도 최실자 전 원장이 원내에 머물러 있으면서 시장이 약속한 관선 이사 파견을 미루는 이유에 대해 따져 물었다. 또한 김선기 시장이 지난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에바다 전 원장 최실자가 지난 선거 당시 지지운동을 열심히 했던 사실과 최실자와 김 시장의 부인이 절친한 사이라는 점을 들어 의도적인 재단 감싸기 의혹을 추궁하기도 했다.
김홍신 의원도 농성관계자들이 감시당일 녹음해온 "이사장은 최성호"라는 재단직원들의 육성을 들려주며 "시에서는 승인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재단직원들은 모두 최성호를 이사장으로 인정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진상여부를 추궁했다.
이 자리에서 이성재 의원은 궁극적인 사태해결을 위해 이사 전원에 대한 승인취소 및 관선이사회의 파견, 관선이사회가 신임원장을 결정할 때까지 임시 원장으로 공무원을 파견할 것을 제안했다. 김선기 시장은 이에 11월 말까지 사태해결을 위해 이같은 제안을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이번 복지위 감사에서는 의료보험관리공단 이사장이나 최광 복지부 장관에게 해임건의가 이어지는 등 예전의 봐주기식 질문은 찾아볼 수 없이 통렬한 책임추궁이 진행돼 진정한 국정감사의 정수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전체 행정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시정되기에는 국정감사가 너무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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