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전의 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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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앙금부터 피어나는 매가 있다. 중학교 1학년때로 기억되니까 지금부터 22년전이 된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유난히 지각을 싫어하시던 여자선생님이셨는데, 난 매일 지각을 해야만 했다.
자고로 지각하지 않는 것이 성실의 기본이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지각만은 안된다고 하시던 성생님, 그런 성생님 눈에 난 불성실한 대표적인 학생으로 낙인 찍혔을 것이었다.
하지만 난 지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나름대로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다. 먼 길을 친구와 함께 통학을 했는데, 그 친구가 다리가 불편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도 집에서 학교까지는 30~40분이 소요됐지만, 그보다도 학교 입구에서 교실까지 올라가는 일이 더욱 쉽지 않았다.
불암산 중턱에 자리한 학교로 오르기 위해 자전거를 묶어두고 목발을 내린 다음 그에 의지해서 걸어가는 길, 길이라기 보다는 산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통학길이었다. 그런 길을 걸어 땀을 뻘뻘 흘리고 교실에서 들어서면 어김없이 지각이었다.
친구와 함게 조용한 교실 문을 빼꼼 열어 들어가면 이미 지각한 몇몇의 친구들이 교탁옆에 손을 들고 서 있었다. 우리 둘이 들어서자 아이들은 ‘그럼 그렇지’ 하는 식으로 교실 바닥이 떠나갈 정도로 웃어 제끼고...
머리 끝까지 화가 치민 선생님 얼굴이 희마하게만 보였다. 매일 하는 지각에 겁이 나서 선생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탓이다.
선생님은 그래도 처음 몇 번은 잘도 참아 주셨었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매일 다반사가 되자 그날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으셨던 것 같다. 함께 등교한 그 친구며, 어쩌다 한 번 지각한 다른 친구들은 들여 보내시고 나만 남겨졌다.
“대체 왜 그러는 거니? 내말이 그렇게 우스워! 이유를 대봐. 대체 왜 이래!!”
친구들 웃음도 싹 가시고 내 손바닥엔 그 무서운 몽둥이가 불붙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유를 못돼? 이유가 뭐냔 말이야?!”
선생님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만 갔지만 불편한 친구 핑계를 대자니 괜히 미안스러워 난 도저히 이유를 댈 수 없었다. 친구도 미안한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후로는 그 친구가 조금 더 일찍 서둘기 시작해서 지각하는 일이 없어졌다.
진작 그렇게 했더라면 그렇게까지 선생님께 미움받아 가며 매맞을 일까지는 없었겠지만 그때는 친구에게 서둘자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혹시라도 내가 귀찮아서 그런 애길 한다고 오해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중에서야 차라리 그런 얘기를 쉽게 했더라면 오히려 더 좋았을 것이란 걸 깨달았다.
친구를 생각한다고 머뭇거렸던 것이 거리감으로 다가올 수 있었음을 그땐 몰랐었다. 중학교 졸업후 그 친구와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배정받았지만 친분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스스럼없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친구와의 추억 가운데 가장 좋았던 기억 하나는 그 친구의 초대로 정립회관에 간 일이었다.
비장애우인 나를 개의치않고 함께 하던 농구, 휠체어를 탄 친구도 있었고 잘 걷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별 문제없이 농구를 할 수 있었다. 간간이 서로의 실수에 웃을 터뜨리기도 하면서.
그때 난 내 친구와 내친구의 친구들은 지나친 배려나 동정 어린시선 보다는 함께 웃고 생활하는게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22년전 중학교 교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담임 선생님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다. “매일 이어지는 지각으로 화도 나셨겠지만 그럴 경우 그 학생과 조용히 대화를 해 보시면 어떠셨을까요.”
글/ 김성수 (MBC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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