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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에 쓰여진 그녀의 고민

[주제가 있는 이야기 4] 나와 장애우와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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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우인 나는 지금까지 각종 수련회나 교회활동을 통해 수많은 자원활동자를 만나고 도움을 받고 관계를 지속해 왔다. 그 중에 잊혀지지 않는 한 소녀가 있다. 6년전의 일이다.
  그녀는 10대 후반의 청각쟁우로 큰 키에 짧은 머리, 그리고 예쁘고 정이 많은 소녀였다. 이름도 모르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그녀는 내게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만나보고 싶다.
  나는 그녀를 6년전 가을  장애인체육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는 아마도 육상부산대표로 트랙선수였고 나는 필드의 투포환선수였다. 나는 갑작스러운 선수결정으로 충분한 연습을 하지 못하고 출전한 탓에 힘든 경기를 해야만 했다.
  결국 등수에도 들지 못하고 힘없이 경기를 끝내고 벤치에 앉아 식어버린 점심을 먹던 차였다. 그때 이리저리 다니면서 친구를 사귀고 장난을 치던 명랑한 소녀로만 보이던 그녀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가 밥을 먹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러지않아도 힘이 빠져있던 상황이라 더없이 고맙고 반가웠다.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첫만남은 서로가 속한 팀을 따라 단체이동하는 잠깐사이에 끝나버렸다.
  그러던 중 모 선교단체에서 주최한 여름캠프에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처음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잘 대해주는 자원활동자려니 하고만 생각하다 2박3일의 일정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녀를 알아보았다. 첫만남이 있은 후 2년만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신학대학을 다니고 있엇다. 그녀는 말을 잘 하지 못했으므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아마 직장생활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단 두 번의 만남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웬지 정이 들고 낯설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한결 성숙하고 예쁜 아가씨로 변해 있었고 외모로나 정식적으로나 변화가 많아 보였다.
  말을 못해도 들을 수는 있었던 건청인인 그녀에게 내가 농담으로 “남자사귀냐?”고 물었을 때 그녀가 갑자기 진지해졌다.
  그리고는 나의 손바닥에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서로 사랑하고 있는 남자가 있는데 그는 비장애우이고 좋은 집안의 청년인데 자신은 언어장애가 있고 집안형편도 좋지 않아 아무래도 사랑만 가지고는 잘 될 것 같지 않아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 중에 나는 그녀가 청순하고 강한 사랑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남자는 그녀와 같이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녀와의 대화를 계속했다. 그냥 웬지 그 남자가 그녀와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나갈 것 같지 않았고 그래서 자신없어하는 그녀가 더욱 안쓰러웠다.
  장애우라면 누구나 이러한 감정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결국 그날 대화는 나자신도 그녀만큼이나 답답한 심정으로 그녀를 한번 안아주며 토닥거리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그러나 그때 느꼈던 답답한 마음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끝나지 않고 있다. 장애우의 결혼문제... 이는 그녀와 나 자신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며 장애우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이다.
  특히 유교문화와 오랜 가부장제로 인해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 유난히 심한 우리나에서 그녀와 같은 장애여성들의 결혼문제는 남성들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 현실이다. 이제쯤은 장애우의 결혼문제를 어떻게든지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어야 할 때가 아닐까?
  혹시 그녀가 이글을 읽은 수 있어 그 이후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세 번째 인연을 가질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녀가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글/ 남학중 (시각장애우, 강남대 사회사업학과 석사과정)
 

작성자남학중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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