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최악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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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영된 한 텔레비전 방송프로그램은 시설 내에서 결혼해 가정을 꾸미고 있는 정신지체인 6쌍의 살겨운 일상의 모습을 담아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불임수술은 이들 결혼의 기본 전제였다.
가정에 있는 정신지체장애우들이 결혼과 육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선택권도 주변 가족들이 생활비를 보태고 가사 일이나 아이 키우는 일을 대신 해주는 등의 뒷감당을 과연 할 수 있겠느냐의 판단에 의해서만 결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결혼은 사회적인 묵인하에 금기시 되어 오고 있을 뿐 아무런 사회적 노력도 더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지체장애우의 결혼, 그것이 온전히 축복 받을 수 있는 때는 언제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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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 |
전체 추정인구 7만9천 명으로 국내 장애인구 가운데 7.8%를 차지하고 있는 정신지체장애우.어쨌든 이들도 성장해서 흔히 말하는 결혼적령기를 맞는다. 그러나 정신지체인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결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을 일륜지 대사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자녀가 갖는 결함이 나이가 차도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 하나로 더욱 확실해지는 듯한 주위의 눈길 때문에 몇몇 부모들은 정신지체인 자녀의 결혼을 위해 적지 않게 고심한다.
‘천사같은’ 비장애우 배우자를 만나 부모가 죽은 뒤에도 돌보며 살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얼핏 가져보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사실 일반인이나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배우자로서의 정신지체인은 어떻게 보면 매력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같은 정신지체인끼리의 결혼은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 가정을 돌봐주어야 하고 자칫 2세 또한 정신지체인이 태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최악의 커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도 정신지체인들은 적어도 구박받지 않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 것이기 때문에 몇몇 가정은 다른 가족들이 조금 힘은 들더라도 여력이 닿는 대로 보살피고 돌볼 각오를 하고 대개는 같은 처지의 정신지체인과의 결혼을 주선하곤 한다.
그러나 취재과정에서 정신지체장애 부부를 찾는 일은 그야말로 ‘서울의 김서방 찾기’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정신지체인을 위한 복지프로그램을 중심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충현복지관, 정신지체인복지관, 다운센타에서도 “현재 복지관을 이용하는 사람이나 졸업생 중에 결혼을 한 사례를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이 똑같은 대답이었다. 우리 사회의 장애우복지의 역사가 짧고 더욱이 복지관 프로그램들이 전반적으로 아동이나 청소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혼 적령기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적어 그만큼 복지관에서도 그들에 대한 인적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청주에 있는 혜원장애인종합복지관 여자 졸업생이 집안의 중매로 올해 정신지체 남성과 결혼을 했고, 서울 어느 동네에 정신지체인 부부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과일 가게를 운영한다더라 하는 식의 얘기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한 쌍의 원앙처럼, 소쩍새처럼
많은 정신지체인이 집단적으로 모여 생활하고 있는 수용시설에서도 결혼한 커플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어렵사리 시설에서의 몇몇 사례를 알아낼 수 있었는데, 충남 보령정심원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33쌍의 정신지체장애우 부부가 원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시설 관계자들이 지난 85년에 13쌍, 90년도에 20쌍을 맺어 줘 합동결혼식을 마련했는데, 이는 정신지체인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결혼과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전 원장의 철학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시설에서 결혼한 정신지체인 부부는 별도의 기숙사동의 독립된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결혼은 잠자리나 기본적인 생필품을 부부가 같이 나눈다는 의미일 뿐 2백37명의 전 원생이 원에서 마련한 음식으로 공동식사하고 또 함께 일하고 있어 결혼 후라도 생활상의 큰 변화는 없는 형편이다.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생활했던 사람 가운데에는 현재까지 23쌍이 결혼했다. 이중 10쌍 정도가 모두 비장애 자녀를 낳아 키우는데, 복지관 직원들이 친정식구들 같이 필요한 도움을 수시로 주고 있다. 또 소쩍새마을에서는 95년 12월 기존의 기숙사를 새롭게 짓는 것과 때를 맞춰 탄생한 2쌍이 있다. 이들 외에도 4쌍의 커플이 알게 모르게 연애를 하며 내심 결혼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들 예비커플들이 결혼 후 생활할 별도의 공간이 없다는 것이 시설관계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장봉 혜림원에서는 이제까지 여자 한 명이 시설 밖에서 중매가 들어와 독립해 나갔고, 현재의 원생 가운데에서는 다음으로 결혼 계획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직 없다.
그리고 최근 방송프로그램에 소개된 대로 안동 애명복지촌에는 6쌍의 정신지체인 커플이 있다.
영원한 어린아이로 살다 가기만 바랄뿐
결혼 후 부부싸움을 하거나 손찌검까지 하는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쉽게 싫증을 내거나 배신하지 않고 서로를 극진히 아끼는 금슬 좋은 부부생활을 한다는 것이 시설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대답이었다.
또한 결혼한 원생들은 여러 면에서 전반적인 원 운영에 플러스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이 없지 않다고 정심원 총무 김경환씨는 말한다. “원생들이 결혼을 하면 원의 전반적인 운영에도 관심이나 애착을 더 많이 가지면서 지신의 일처럼 발벗고 나서곤 한다”는 것이다.
또 알게 모르게 서로 서로의 장단점을 보안하며 아끼고 돌보기 때문에 다른 원생들에 비해 신경도 덜 쓰인다. 실제로 결혼한 커플이 많을수록 필요한 보육사의 인원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부 사람과의 결혼을 통해 시설을 나가 보금자리를 꾸미지 않은 한 정신지체인이 결혼과 함께 완전히 독립해 나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만약 결혼을 시키더라도 계속 시설측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실정이다. 시설에서 원생들을 결혼시키려면 부부만의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장롱이나 침대와 같은 기본 생활도구를 사주는 것뿐만 아니라 피임 혹은 불임수술을 유도하는 등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이들 원생들의 연애나 결혼에 대해서 극히 경계하는 입장이다. 그저 결혼이니 성이니 하는 것들을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생태로 한 평생을 살다 삶을 마감하는 쪽으로 이들을 이끌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많은 정신지체인들은 그저 영원한 어린아이로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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