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현장이야기 1] 소리 대신 몸으로 나누는 따뜻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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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현장이야기]
소리대신 몸으로 나누는 따뜻한 대화
나무사랑 식구들
말소리를 들을 수 없는 작업장 "나무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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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사랑식구들 |
공장들은 하나같이 같은 겉모습을 갖고 있고, 하는 일마저도 비슷해 밖에서만 본다면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다.
"나무사랑" 역시 천막으로 된 공장 가운데 하나이다. 150평 정도의 비닐천막 속에서 가구를 만들어 내는 것도 다른 공장들과 같다. 그러나 공장 안으로 들어가 보면 주변의 공장들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비닐로 된 공장 문을 밀고 들어가면 우선 접하게 되는 게 기계가 돌아가는 시끄러운 소리다. 나무를 자르는 톱소리, 망치소리, 모형을 만드느라 쇠를 갈아대는 소리, 그리고 공장 안에 가득한 먼지를 빼느라고 돌아가는 환풍기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나무사랑의 작업장에는 기계소리에 더해서 들려오는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시끄러운 기계음 사이로 작업지시를 하는 고참의 목소리도 없고 일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직원들끼리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무사랑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모두 청각장애우들이기 때문이다.
나무사랑 12명의 직원 가운데 이덕권(42) 부장을 비롯한 8명의 장애우는 나무사랑 전신인 "송목"이라는 회사에서부터 함께 일해온 오랜 동료들이다. 송목에서 일할 때에도 직원들 대부분이 청각장애우였기 때문에 일을 하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그러나 가구를 만드는 솜씨가 아무리 좋아도 거래처를 트는 일이 쉽지 않았다. 거래처 직원이 오면 종이에 할 말을 일일이 써가면서 의견을 주고받아야 했고, 그러다 보니 새로운 거래처를 만든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거래처 직원으로 있던 정의철 씨가 송목에 합세하면서 "나무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정의철 사장이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일감이 많아서 좋아요. 송목이란 이름으로 우리끼리 일할 때는 일감을 따내는 일이 가장 힘들었는데, 사장이 우리 대신 거래처를 트고 일감을 만들어 오니까 우린 일만 열심히 하면 되거든요."
이덕권 부장의 말대로 근처에 있는 다른 공장들은 일거리가 없어서 오전에만 일하거나 한두 달씩 노는 곳도 많은데, 나무사랑은 형편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일감이 꾸준히 생기고 있는 편이다.
"사람들이 왜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이 공장을 시작했냐고 묻는데 제가 단지 장애우들을 돕겠다는 마음만으로 공장을 시작한 건 아닙니다. 업계마다 흐름이라는 게 있는데, 제가 가구를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그쪽의 흐름을 알 수가 있었죠. 그래서 시작한 겁니다. 거기다 송목에서 일하던 장애우분들이 성실하고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건 거래처로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을 한 거죠. 제가 사장으로 있으니까 장애우들을 고용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희 직원들이 오래 전부터 하던 일을 함께 하기 위해 제가 왔다고 보시는 게 더 옳은 표현일 겁니다. 전 공장 밖에서 일감을 만들고, 직원들은 공장에서 생산을 맡아서 처리해 주고 있죠."
직원들에게 배운 수화실력으로 열심히 통역을 해준 정의철 사장의 말이다.
손으로, 눈으로 나누는 대화로 생겨난 친밀감
나무사랑에서 일하는 장애우 직원 8명 가운데 현재 6명이 결혼을 했다. 전국장애인체전에 참가할 정도로 달리기 실력이 좋은 김태영(26)씨와 신학대학에 다니고 있는 용석관(21)씨는 아직 미혼이지만, 나머지 직원들은 모두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들이다. 그래서 직장은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용석관씨는 공장에서 일하고 학과수업도 들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가 바쁘기만 하다. 더군다나 자취생활을 하기 때문에 석관씨를 직접 만나는 것 외에는 석관씨에게 연락할 다른 방법이 없다. 자연히 집에도 연락이 뜸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석관씨가 걱정이 돼서 어머니와 형이 공장으로 찾아오신 적도 있다.
그러나 이들 가족은 막상 서로 아무런 대화도 할 수 없다. 석관씨는 말을 못하고 어머니와 형은 수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의철 사장이 석관씨와 어머니 사이에서 서로의 말을 전해준 적도 있었다.
김태영씨는 알아주는 달리기선수다. 올해 있었던 전국장애인체전에도 참가했는데, 김태영씨가 육상선수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었다고 한다.
정의철 사장이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을 때의 일이었다. 홀트복지타운이라면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태영이가 전국체전에 나가야 하니까 열흘 정도 휴가를 달라"는 것이었다. 정 사장이 아직 수화가 능숙하지 못해 직원들과의 대화도 힘들었고 영업 때문에 공장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 태영이가 사장에게 직접 얘기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주위 사람들은 김태영씨가 육상선수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회에서 돌아온 태영씨는 결과를 묻는 직원들에게 "이젠 나이가 들어서 선수생활은 무리"라면서 웃더란다. 직원들은 이런 일들을 통해 서로에 대해 한 가지씩 알아가면서, 서로에게 한 발짝씩 다가서고 나무사랑의 한 부분이 되어 가고 있다.
나무사랑에도 걱정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일감 확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공장부지가 언제 헐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공장 건너편으로 아파트 단지가 생기더니 천막공장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고, 나무사랑 작업장이 있는 곳도 언제 개발이 시작될지 모르기 때문에 올해 안에 옮겨갈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 정의철 사장은 욕심을 부리고 있다. 이왕 옮겨가는 거라면 좀 제대로 된 건물로 공장을 옮기고 싶다는 것이다. 작업환경만 나아진다면 생산성이 높아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무사랑은 청각장애우들이 일하는 공장이라 대화를 하려면 다가가서 손으로 얘기상대를 불러야 한다. 그래야 눈을 마주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장애우들이 비장애우들과 얘기하려고 해도 다가가서 손으로 상대를 불러야 한다. 나무사랑만의 대화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무사랑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친밀감의 비결이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의 몸을 건드리고, 눈길을 맞추면서 이야기 하다보면 장난도 치게 되고, 그런 시간들이 쌓여 서로에 대한 친근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서로를 손으로 부르면서 대화하는 방법은 공천동에 있는 천막공장들 가운데서 나무사랑을 구별지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글/서현주 객원기자
사진/ 조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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