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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5월 5일 유럽 장애인 자립의 날

여기는 스위스

본문

△ 출처: 스위스 장애인 단체 insiem
 
 
한국에서 5월 5일은 어린이날입니다. 유럽에서 5월 5일은 장애인의 독립된 삶을 축하하고 요구하는 날입니다(European Independent Living Day). 올해는 5월 5일이 목요일부터 그 주 일요일까지 유럽 전역에 장애인의 독립적인 삶을 가능케 하는 법적 및 사회적 조치에 대한 행사들이 있었습니다.
장애인 자립의 주요 쟁점은 무엇보다도 이동권입니다. 지난 2018년 영국 텔레비전쇼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목소리 잃은 남자(Lost Voice Guy)’라는 이름으로 나와 스탠드업 코미디로 우승을 거머쥔 리들리(Lee Ridley) 씨의 이야기가 그중 하나입니다. 리들리 씨는 ‘뇌성마비’가 ‘건물에 화재가 났을 때 내 뒤에 있지 말라는 뜻’이라 합니다. 자신의 장애를 신박하게 코미디로 풀어낸 리들리 씨의 재치는 가히 우승감이었지만, 사실 장애인에게는 매 순간 절감하게 되는 현실입니다.
 
 
피난길과 대피길
 
유럽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을 근접 거리에서 같이 겪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밀 생산량 급감이나 러시아의 무역 제재 등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후폭풍은 아직 오지도 않았습니다.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우크라이나 피난민이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것입니다. 그중 가장 어려운 부분은 장애인의 피난길입니다. 피난 행렬에 장애인이 포함되기 어렵고, 가까운 유럽으로 피난 오더라도 각 개인에게 맞는 이동권 보장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유럽 각국에서 장애인 피난 항공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안전한 공항 접선은 차치하고라도 접선 지점까지 가는 것 자체가 장애인들에게는 목숨을 건 모험입니다.
 
 
 
독일과 스위스 장애인의 이동권
 
전쟁이라는 참담한 인류사를 거들먹거리지 않아도 우리 일상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은 기본 인권의 이야기이며, 때로는 생명이 오가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이번 5월 5일을 맞아 독일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에 거주하는 장애인 3명 중 1명은 독립적으로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답했으며, 장애인 4명 중 1명(26%)은 대중교통 접근이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설문에 응한 장애인의 1/3이 신호등 녹색불이 꺼지기 전에 길을 건너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독일에서는 현재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정치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독일 연방정부 차원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현저히 높이는 정책을 통해 장애인의 사회 참여율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정책 개발을 진행 중입니다. 연 2~4회의 국민투표로 정부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스위스에서는 장애인의 참정권 확대 즉, 지적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골자로 하는 국민 발의가 진행 중입니다. 장애정책 결정권을 더 키우는 노력의 일환으로 말입니다.
 
△ 출처: 독일 IT 소식지 Golem, 2020년 장애인 올림픽에 선보인 토요타 자동차이다. 보행자 사고로 리콜되었다.
 
 
신기술은 장애인 이동권의 해답?
 
유럽은 그 나라 수만큼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적 차이가 현저합니다. 하지만 신체장애를 동반하는 경우 독립적인 이동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장애인의 교육, 취업, 여가 등을 위해 이동 시 보조인을 대동하거나 특수 교통수단을 예약해야 하는 등의 제도적 조치가 있으나, 지속적이고 경제적인 이동권을 위해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바로 자율 운행 이동 수단입니다.
 
완전 자율 주행 기능을 갖춘 고가의 자동차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자동 주차 시스템이나 스마트폰 차량 제어 기능은 장애인용 주차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일반 또는 협소 주차공간에서 활용도가 높습니다. 또한 기계식 케이블 연결로 운행되는 기존 자동차의 steer-by-wire 시스템을 넘어서 전자 센서를 통한 drive-by-wire 시스템이 일반 자동차에 장착된다면, 기어나 엑셀 부품 등 장애인 맞춤형 작동 장치를 자동차에 통합하는 것이 더 쉬워질 것입니다. 2024년 여름부터 유럽연합국가에서 판매되는 자동차는 주차, 속도 조절, 급정지 등을 센서로 감지하고 자동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갖추어야 합니다. 완전 자율 주행 자동차가 유럽에 보편적으로 보급되어 장애인의 독립적인 이동이 가능하게 되는 데에는 최소한 10년은 걸릴 것이라 전문가들은 판단합니다. 센서나 도로 정보 입력 등 기본적인 사항 외에도, 휠체어가 들어가는 구조, 차량 내 휠체어 고정 등 많은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자동차 산업은 차량 디자인과 개인 이동성 영역에 있어서 파괴적인 변화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래의 이동 수단이 근본적으로 장벽이 없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제조사, 연구기관, 기술부서, 보건기관, 정치인 및 사용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두를 위한 이동권
 
스위스의 경우 접근이 쉬운 건축을 위한 건축가 모임이나 장애인 대중교통수단 이용 불편 신고처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이동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심지어 휠체어는 물론이고, 자전거, 씽씽이, 유모차 등 바퀴가 달렸지만, 도보로 다니는 물건의 이용자를 위해 어디든지 도보 한쪽의 턱을 도로와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덕분에 버스와 기차 등 대중교통수단에는 언제나 저상 입구와 내부 열린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기차 안에서 유모차와 휠체어, 자전거가 한 공간에 모여 있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은 비단 장애인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횡단보도를 어렵지 않게 건너고, 어느 상점이나 손쉽게 들어갈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는 사회 전반에 ‘모두를 위한 이동권’을 고려해야 합니다. 모두를 위한 이동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 때 그 혜택을 입는 사람은 우리 모두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유모차를 미는 젊은 엄마일 수도 있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일 수도 있고, 높은 버스에 타기 어려워하는 작은 어린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작성자글. 황효빈/스위스 사회복지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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