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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난민 이주계획에서 아쉬운 서사의 부재

로힝야난민과의 공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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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정론지 중 가장 많은 구독자를 가지고 있으며, 대표적인 진보주의 성향 언론으로 국제사회에도 잘 알려진 더 가디언(The Guardian). 2004년 조지 W. 부시 재선 발표 당시, 타블로이드판인 G2의 표지면 전체에, ‘Oh, God.’ 한 줄만을 넣어 또 한번 주목을 받았고, 아주 최근엔 윤석열 대통령의 청와대 무속 논란에 대한 기사도 다루었다.
 
평소 영국 내 언론 보도 행태에 대한 미디어 비평도 꾸준한 편이고, 그 내용도 상당히 신랄하고, 수준도 높아 많은 팬과 적을 동시에 보유한 언론사이기도 하다. 나는 대학원 유학 시절 더 가디언에서 30년간의 기자 생활을 마친 교수님의 탐사언론의 역할과 기자윤리에 관한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정말 그 학기 수업 중 가장 적극적으로 수업 시간에 교수님과 토론했고, 자주 부딪혔으며, 결국 내 인생 학교에서 받아본 가장 최악의 성적을 받았다. 그때 나는 절대로 더 가디언을 보지 않겠다고 소심한 복수의 계획을 세웠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여전히 더 가디언을 구독하는 회원이다. 끝까지 고집불통이었던 교수님의 승리다. 이런.
 
 
영국의 르완다 계획
 
나에게는 애증의 언론사인 더 가디언이 2022년 4월 14일 지면을 통해 한 장의 사진을 공개한 이후 현재까지 날카로운 시각으로 영국 정부의 새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주제가 있다. 바로, 영국의 르완다 계획(U.K’s Rwandan Plan). BBC 보도에 따르면, 이 계획은 영국 정부가 난민 신청자를 포함한 불법 입국 이주민들을 아프리카의 르완다로 보낸다는 것이고, 르완다 정부는 이미 이 내용에 합의했으며, 그 대가로 1억 2천만 파운드, 한화로 약 2천억 원의 지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 수년간 영국은 작은 고무보트를 타고 영불해협을 건너오는 불법 이주민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건 사실이다. AP 연합통신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28,000명의 이주민이 보트를 타고 입국했으며, 이는 2020년 8,500명에 비해 많이 늘어난 숫자임은 분명하다. 영국의 보리슨 총리는 매년 증가하는 이러한 불법 입국과 관련해 많은 위법/불법 행위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작년에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례가 있으니,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영국의 르완다 계획은 실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연히 국제사회의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 가디언은 이번 계획에 대해 ‘비인간적이고’, ‘악마적인’ 정책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영국 내 정치인들의 발언을 소개했으며, 유엔난민기구 및 많은 인권단체에서는 이번 조치를 ‘1951 난민조약(The 1951 Refugee Convention)’ 및 영국의 데이터 보호법 등의 국내법에 심각한 위반 소지가 있음을 지적했다. 특히, 보리슨 총리가 이번 조치의 중요 내용 중 ‘왜 르완다인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질문에, 르완다는 지난 20년간 ‘완벽하게 변화된, 전반적으로 안정되고 안전한 나라’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최근까지 르완다의 정세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을 아끼지 않았던 영국의 외교채널의 내용과 전면적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국제사회는 지난 2018년 르완다 경찰에 의한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난민을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번 조치가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영국이 대부분의 영불해협을 건너는 이민자의 국적이 이란과 같은 중동 및 아프리카 국가 출신임을 고려했을 때 인종차별적인 조치라는 비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유엔난민협약 33조 1항
난민을 그 생명 또는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해서는 안 된다.
 
 
방글라데시의 바샨차르 이주계획
 
지난 한 달간 이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와 마음을 괴롭혔다. 그중 하나가 현재 내가 사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과 내 업무 중 일부가 이 문제와 참으로 닮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부터 현재까지 방글라데시 정부는 약 20,000명에 달하는 로힝야 난민을 바샨차르란 섬으로 이주시켜왔다. 정부가 밝힌 이주계획의 주된 이유는, 현재 약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거주하고 있는 콕스바자르는 캠프 내 심각한 과밀과 토양 붕괴로 인한 사망사고 가능성, 장기화되고 있는 체류에 의한 콕스바자르 원주민들의 불만 축적에 따른 치안 약화 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총 100,000명의 난민을 바샨차르로 이전시키기 위해 3.5억 달러를 투자하여 2017년부터 주택 1,440채와 120개의 대피소, 도로, 관공서, 병원 등을 건설했다.
 
2017년 정부의 계획이 발표되었을 당시부터 유엔 등 많은 인권단체는 심각한 우려를 표출했다. 주요 내용은 첫째, 바샨차르 섬의 위치가 육지에서 배로 3시간에서 5시간 이동해야 다다를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며, 둘째, 교통수단 또한 해군이 운영하는 하루 한 편의 군함밖에 없어 이동에 심각한 제한이 예상되며, 셋째, 바샨차르는 지난 20년간 퇴적물이 쌓여서 형성된 섬이라는 점에서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며, 넷째, 뱅골만의 기후 특성상 심각한 태풍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형적 특징이 있고, 다섯째, 자연재해 등 인도적 위기 상황 발생 시 필요한 보호 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하는 데 한계가 크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그러한 것들을 모두 고려하여 이른바 ‘리조트’와 같은 곳을 만들고 있으며, 실제로 난민 이주를 시작하기 전 유엔과 국제사회의 점검 절차를 받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20년 12월 콕스바자르 거주 난민 중 일부가 많은 논란과 두려움, 그리고 조금의 기대 속에서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섬으로 이주가 시작되었고, 유엔은 이듬해인 2021년 10월이 되어서야 방글라데시 정부와 인도주의적 지원과 난민 생활 여건 감시 등과 관련한 양해각서를 체결, 곧바로 바샨차르의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출장단이 구성되었다. 나는 유엔난민기구(UNHCR) 및 국제이주기구(IOM) 중심으로 구성된 첫 번째 출장단의 임무를 위해 섬으로 이주한 장애를 가진 난민의 생활 조사를 위한 설문내용을 작성해 전달했고, 같은 해 12월과 2022년 1월 두 번에 걸쳐 바샨차르섬으로 직접 출장을 다녀온 후 섬에서 거주하는 장애가 있는 난민과 그들의 가족이 처한 상황과 필요(needs)를 국제사회와 공유하기 위한 보고서를 작성·제출했다. 108명의 장애당사자 및 가족들과의 인터뷰 및 설문조사, 7명의 주요 이해관계자와의 KII 및 다양한 유형의 장애당사자, 그들의 가족 및 주요 보호자와 FGD를 실시하면서 그들의 말과 비언어적 표현에 집중했다. 우리 기구의 정책과 내용의 민감함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공유하지는 못하나,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그들의 어려운 삶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사의 부재
 
영국의 르완다 계획과 방글라데시의 바샨차르 이주계획은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서사의 부재. 많은 언론과 국제사회의 주요 구성원들이 영국과 방글라데시의 새로운 난민 정책을 분석하고, 정책 이면의 배경과 이후의 영향력 등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그 논의의 중심에 영불해협을 위험한 고무보트에 의지해 필사적으로 국경을 넘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수년 전 정든 고향을 떠나 콕스바자르로 강제 이주한 사람들이 긴 시간 육상교통을 이용하고, 또 해군이 제공하는 딱딱한 수송선에 올라 제한된 정보만을 가진 외딴 섬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이유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보니, 장애나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다. <함께걸음>에서 내 글에 붙여주신 ‘로힝야 난민과의 공존일기’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 그래도 이 글에서 다루는 ‘사람들’ 안에 ‘그들’도 분명히 있으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
작성자글과 사진 제공. 김광희/유엔난민기구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사무소 장애통합전문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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