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지원인 예산 소진, 장애인은 일하지 말라는 건가?
지금 우리 제도는 -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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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규 씨는 지난 7월 경기도시각장애인복지관에 사회복지사로 취직했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던 조영규 씨는 원활한 업무수행을 지원받기 위해 회사를 통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기북부지사(아래 지사)에 근로지원인을 신청했다.
그런데 지사에서는 근로지원인 예산이 모두 소진되어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근로지원인을 신청해서 대기하고 있는 장애인 근로자 수도 30~40명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이 2022년 9월인데 벌써 근로지원인 예산을 모두 소진했다면, 남은 올해가 끝나기까지 새로 취업하는 장애인 근로자는 모두 근로지원인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도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 제도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영규 “저는 계약에 따라 근로를 해야 하는데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시각장애로 인해 근로지원인의 지원이 꼭 필요한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예산이 소진되었다고 하니까 남은 올해 계속 이렇게 지내야 되나 걱정되어서 고용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아래 공단)에 민원을 넣었어요. 그런데 민원을 받은 공단 지사에서는 근로지원인이 아니라 직무지도원을 배치하는 것을 논의해보겠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제가 알아본 바 지원고용으로 취직하지 않은 장애인 근로자는 직무지도원은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직무지도원은 용어 그대로 장애인 근로지가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는 사람이다. 조영규 씨는 직무를 배우는 게 아니라 본인이 주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주체이고, 그 과정에서 장애로 인해 겪는 어려움을 ‘지원’받기 위해 직무지도원이 아니라 근로지원인이 필요한 것이다.
알고보니 공단의 근로지원인 예산 소진 문제는 경기북부지사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경북 지역의 경우 근로지원인 서비스를 신청했지만 예산 소진으로 대기하고 있는 장애인 근로자가 50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 예산 소진으로 올해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활동지원사를 통해서라도 근로지원을 받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장애인은 활동지원서비스를 생업에 사용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보건복지부에도 문의를 해 봤는데 활동지원사가 근로지원을 하는 것이 규정상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의 회사에 같이 있을 수는 있는데 식사나 화장실 지원과 같은 경우에만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제가 필요로 하는 지원 유형은 아니니까 활동지원사가 회사에 있어도 제가 정작 필요로 하는 지원은 제공받기 어려운 거예요. 그러니까 활동지원사는 일상생활 지원이 되고 업무지원은 안 되는 거죠.”
참 이상한 제도다. 활동지원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제도, 근로지원인은 장애인 근로자의 원활한 업무수행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라는 정의가 있다.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비슷하거나 같은 부분도 분명히 있다.
특히 활동지원은 장애인이 근로지원인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을 때 차선책으로라도 지원이 가능해야 한다. 장애인이 매월 제공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급여 중 기본급여 외에 장애인이 4대보험 가입이 된 직장인인 경우 40시간의 급여가 추가된다. 이는 장애인이 직장생활을 하는만큼 활동지원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추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활동지원은 업무를 지원한다기보다는 출퇴근시 이동지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활동지원제도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응 영위하기 위한 제도인데, 장애인이 근로를 하는 것도 분명 자립생활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으므로 근로지원인으로부터 지원이 어렵다면 활동지원사를 통해서라도 업무지원이 가능해야 한다.
▲ 조영규 씨(사진. 박관찬 기자)
장애인은 일하지 말라는 건가?
“근로지원인이 없으니까 근로지원인한테 지원요청해야 하는 것들을 지금까지 팀장이나 팀원들에게 부탁하면서 일했어요. 시각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시스템에 입력해야 되거나 제가 작성한 문서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는 등의 업무를 지원받아야 되는데,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부탁하면서 하니까 괜히 제가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것 같아서 걱정도 됩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업무 외의 업무를 도와주는 거니까요.”
장애인이 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요즘 시대에서 선천성 장애인과 후천성 장애인의 비율은 거의 1:9에 이른다.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90퍼센트가 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언제, 누가 장애인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장애인이 취업을 하거나, 아니면 비장애인으로 일하다가 한순간에 장애인 근로자가 된다면 꼭 필요한 제도 중 하나가 바로 근로지원인이다. 장애인 근로자가 가진 장애로 인해 업무수행에서 겪는 어려움을 지원해주기 위해서는 근로지원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제도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활용하기 위한 예산이 벌써 다 소진되었다. 적어도 2022년 12월까지는 새로 취업하는 장애인 근로자는 근로지원인이 필요해도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근로지원인이 없어서 업무에서 지원이 필요한 부분을 동료 직원들에게 부탁하면서 일하니까 되게 미안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래요. 저와 같은 상황인 장애인 근로자들도 마찬가지겠죠. 어찌보면 취업하는 장애인 근로자가 있듯이 퇴사하는 장애인 근로자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럼 거기서 발생하는 예산을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이렇게 마냥 대기하고만 있으라는 게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당장 내일부터 예산이 확보된다고 해도 그럼 또 근로지원인을 찾기까지 시간도 걸릴 텐데…. 장애인 근로자에게 근로지원인은 이용하고 이용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입니다. 장애인 근로자에게 생존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예산 소진되었다고 그냥 넋놓고 있으면 안되잖아요. 실태 파악도 제대로 해서 앞으로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얼른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아요. 장애인은 일하지 말라는 걸까요?”
조영규 씨가 민원 넣은 것에 대해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그저 기다리라고, 대기하라고만 하면 장애인 근로자는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걸까? 당장 출근을 해야 하고 업무도 수행해야 하고, 예산이 생기면 근로지원인도 알아봐야 한다. 근로지원인이 없어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활동지원사가 장애인에게 생존권과 직결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듯이 근로지원인도 장애인 근로자에게 꼭,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그 제도를 운영하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이번 일을 계기로 빠른 시일 내에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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