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기후위기 정책에서의 장애포용
기후위기와 장애인
본문
기후위기를 ‘78억 명이 참여한 전 세계인의 조별과제’에 비유하곤 한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채택한 유엔기후변화협약을 시작으로 기후위기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각국의 조치가 시작되었지만, 30년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자국의 사정(이라 쓰고 이익이라 읽는다)에 맞게 서로의 눈치를 보며 미온적인 정책만 시행·유지하기 바빴다. 총대를 맨 미국조차 파리기후변화협약(이하 파리협약)에서의 탈퇴와 복귀를 번복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후위기 정책은 이름만 그럴듯하게 탈바꿈되거나 한순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 인류에게는 지구가 버틸 수 있는 마감일 전까지 환경문제를 해결해야 할 공동의 책임이 주어졌다. 그러한 의무는 환경파괴에 대한 책임이 어느 누구에게 더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떠맡게 되었다. 장애인도 예외는 아니다.
“장애를 먼저 돌보지 않고 미래와 기후를 해결하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난해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근육위축증으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스라엘 에너지·수자원부 장관 칼린 알하라르이 휠체어 접근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행사장 밖에서 2시간 가량을 대기하다 참석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간 사건이 있었다. 주최 측은 알하라르 장관이 타고 있는 차량을 가로막고 “걷거나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행사장 안으로 이동할 것”을 안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하라르 장관은 이러한 소동 이후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주장해온 유엔에서 조차 2021년에 자신들이 개최하는 행사에서 장애인 접근권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 이라며 자신의 트위터에 유감을 표했다.
알하라르 장관의 소속 정당인 예시 아티드의 대표 야이르 라피드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게시했다.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 주최자에 대한 참고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을 포함하여 사람들을 가장 먼저 돌보지 않고는 우리의 미래를 보호하고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출처: 트위터 @yairlapid )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장애인이 환경문제에 동참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앞서 그들이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로부터 국가의 충분한 보호를 보장받고 있는지, 사회문제에 앞장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우리 사회가 제공해주고 있는지 반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장애를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차별, 제도적·물리적 장벽과 더불어 기후위기로 인한 생활·주거·삶의 위험으로부터 그들은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기후 문제에서 장애인을 언급한 최초의 검토
캐나다 McGill 대학 연구팀은 지난 6월 <국가기후 변화 공약과 정책에서의 장애포용(Disability Inclusion in National Climate Commitments and Policies) 연구> 보고서를 통해 각 국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얼마나 장 애포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장애포괄적 기후행동 연구에 의해 공동제작·배포된 해당 보고서는 ‘기후 문제에서 장애인을 언급한 최초의 검토’라는 평을 받는다. 본 연구는 파리기후변화협약 당사국을 대상으로 각 이행국이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서 장애인과 장애인의 권리를 포함하는 내용을 얼마나 담고 있는지를 비교분석했다.
2016년 파리협약을 계기로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 위기로 인식되었다. 그동안의 기후위기 대응이 산업화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한 선진국에게 그 책임을 부과하고 개발도상국에게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꽤할 수 있는 지원 의무를 부여하는 차원에 머물렀다면, 파리협약으로 모든 당사국에게 적용되는 공동의 기후위기 대응 목표가 설정되었다.
파리협약은 인위적인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제한하고 1.5도를 넘지 않는 것을 우선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또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뿐만 아니라 기술이전, 역량 배양, 투명성 등을 강조하며 후속 협상을 통해 협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이행 지침을 의무화 했다. 이에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제시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5년 단위의 기후변화 대응 기본 계획을 수립 이라는 역할 분담을 끝냈다. 파리협약에 따라 각 당사국은 자체적으로 정한 온실가스감축목표를 5년마다 제출하여야 하며 그 이행상황을 점검받아야 한다.
미국은 「2005 에너지정책법」, 「청정대기법」, 「기반 시설투자 및 일자리법」을 토대로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50~52% 감축 및 2050년까지의 탄소중립을 제시했다.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인 중국은 「대기오염 예방· 퇴치법」 및 <2030년 이전 탄소배출정점 행동방안>, < 기후변화 대응정책 및 행동백서>를 발표하며 2030년을 기점으로 2005년 온실가스배출량을 65%까지 감축 하고 2060년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온실가스감축 목표를 내놨다.
영국은 「2006 기후변화 및 지속가능에너지법」과 「2008 기후변화법」을 중심으로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68% 감축을, 프랑스는 「에너지기후법」을 통해 39.5% 감축을, 독일은 「연방 기후보호법」 제정 및 <기후보호계획2050>를 수립하고 단계적 감축을 목표로 2030년가지 최소 65%로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 성장 기본법」을 제정하여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을 목표치로 제시하였다.
세계 각국의 장애포용적 기후위기 대응 성적표 “의무소홀”
McGill 대학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세계 각국이 국제법상에 명시된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얼마나 시행하고 있는지’와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서 장애인들의 권리를 국가가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지’ 그 여부와 방법을 각 국가가 정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와 이행 계획을 토대로 면밀하게 검토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세계 각국이 전반적으로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서 장애인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기후위기 정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장애을 위한 조항을 만든 나라는 거의 없었으며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파리협정 당사국 192개 중 오직 35개국만이 온실가스감축목표에서 장애인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 중 선진국은 캐나다가 유일했다.
국가 정책이나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을 포용하고 있는 국가는 45개에 불과했으며, 한국·독일·스페인 등 몇몇 국가를 포함하여 선진국은 15개국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소득·다문화가정·장애인·독거노인 등의 거주 환경 개선과 지원, 아토피·천식·알레르기성 비염 등의 진단을 전문화된 보건소를 통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점이 꼽혔다.
유의미한 발견은 멕시코, 짐바브웨, 파나마 등 소수 국가가 오히려 기후위기 정책에서 장애인을 선직국보다 더 포괄적으로 포용하고 있으며,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장애인들의 수요나 편의를 조사하여 정책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개발도상국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뿐만 아니라 기후금융을 통한 장애인·어린이·여성·노인 등의 취약 계층을 특별히 고려하도록 정책을 만들었다. 이들 국가는 장애인도 기후위기 적응을 위한 자원에 공정한 접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된다고 주장했다.
기후위기 대응에서의 장애포용, 왜 중요한가?
많은 국가가 장애인을 기후위기에 따른 변화에 취약한 그룹으로 나열하면서도 기후위기 적응을 위한 프로그램 및 서비스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체계는 장애인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를 연구팀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 번째로, 그것은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다.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기후 위기로 인한 영향은 단순한 불편이 아닌 생사의 문제가 된다. 장애인을 포함하여 유해한 생활·거주환경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음식과 영양, 위생, 질병과 의료 서비스 및 의약품, 교육 및 훈련, 직업 및 사회활동, 적절한 주거, 환경 위험과 관련된 비상사태는 생활에 악영향을 초래하며 이는 그들의 권리를 훼손한다. 두 번째로 친환경적인 사회로의 전환에 있어서 핵심은 모두를 포용하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의 개발이다. 그러나 이것을 설계·실행 및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을 배제하는 것은 신체적·시각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러한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여전히 실현되지 않을 것이 라는 것을 암시한다.
기후위기는 일부의 노력만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한 모두의 문제이다.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 장애인의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며 보호되어야 한다. 국가는 장애인이 겪는 사회적 장벽을 인식하고 그들이 접근가능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여 기후위기와 관련된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물리적·사회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기후위기가 장애인의 인권에 미치는 차별적 영향을 평가하여 정책 반영 시 이를 고려하고, 장애인의 의미있는 참여를 통해 기후위기의 정책 설계·개발·구 현·모니터링 및 평가 단계에서 그들의 참여를 할당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입었을 시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취약계층이 사법적·행정적 절차 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을 보장해야한다. 조별과제와 마찬가지로 기후위기 대응에도 사회구성원 모두의 원활한 협력과 소통, 적극적인 참여 자세가 요구된다.
지구에서 ‘인류’라는 명단에 영원히 삭제되지 않도록..
작성자 이은지 기자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