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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환경운동과 인권의 연대, 모두가 손을 잡아야 할 때

기후위기와 장애인

본문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환경단체활동가들이 이전에 없던 격렬한 기후행동 시위를 펼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것이다. 영국의 ‘Just Stop Oil1)’ 단체 지지자들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된 빈센트 반고흐의 명작 ‘해바라기’에 토마토수프를 붓고 자신들의 손에 접착제를 발라 벽에 고정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들은 “우리는 예술을 통해 경종을 울리기로 결정했다”라며 “고흐의 작품과 지구 가운데 어느 것을 보호해야 하느냐”고 소리쳤다. 이어 “우리 사회는 기후생태계 붕괴로 향하고 있다”라며 “우리가 예술 유산을 아끼고 돌보는 것처럼 지구를 보호하는 데 힘써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선 세계적인 환경단체 ‘멸종반란(Extinction Rebellion)’ 소속 활동가들이 고야의 두 작품 사이 벽에 ‘1.5°C’라는 글씨를 큼지막하게 쓰고, 접착제 바른 손을 액자에 붙인 상태로 야유하는 관람객들과 대치했다. 이들은 “2015년 파리 기후변화 협정에서 채택한 지구온난화 억제 목표치인 1.5°C가 지켜지지 않는 점을 알리기 위해 이와 같은 행동을 벌였다”라고 주장했다. 모네의 ‘건초더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등 세계적인 명화도 음식물을 뒤집어쓰는 등 환경단체에 의한 ‘명화 훼손시위’는 지속되고 있다.
 
수난을 겪은 것은 예술품만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선 출근길 도로점거 시위가 펼쳐졌다. 환경단체 ‘마지막 세대(Ultima Generazione)’ 회원들은 화석연료 사용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출근길 도로에 주저앉아 교통을 마비시키는 방식의 시위를 펼쳤다. 출근길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시위에 운전자들은 환경단체 활동가들에게 사정과 항의, 협박을 반복하다 결국 분노가 폭발하자 그들의 손에 들린 플래카드를 빼앗고 아스팔트 바깥으로 시위대를 끌어내렸다. 일각에선 이러한 시위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시위 지지자들은 “말로 심각성을 이야기할 때는 아무도 신경 안 쓰다가 과격한 행동을 하니 먼 한국 땅에서도 이 소식을 접하는 게 아니겠냐?”라며 “명화가 훼손되고 도로가 점거당하기 전 받아들였으면 될 일이었다”라고 주장하는 한편, 시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저 사람들이 기후위기의 주범인가? 노동자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고 해서 기후위기가 극복되진 않는다”라며, “기후위기로 인한 책임을당사자 개인에게 묻는다면, 그러한 개인들이 뭉쳐서 시위의 뜻을 함께하기는 힘들 것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운동의 모습은 어떨까?
지난 9월 24일, 시청과 숭례문 일대에서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를 슬로건으로 한 기후정의 행진이 개최됐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진행된 이번 행사는 장애인·노동자·농민·여성·종교·동물권 등 40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며, 우리나라에서 열린 기후운동 가운데가장 큰 규모로 기록된다. 참여자만 3만 5천여 명에 달한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9월 기후정의 행동 조직위원회는 ‘924 기후정의선언’을 통해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는 더 커져야 한다”라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이 날 행사엔 기후위기로 인해 피해를 받는 농민·청소년·장애인을 포함해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데에 최전선에 있는 산업현장 노동자들까지 참여해 목소리를 더했다. 행사 연대 발언에 참여한 문애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마이크를 잡고 “3년 전 코로나가 일어났을 때 국가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장애인이 감옥처럼 거주하고 있는 수용시설과 병원에 코호트 격리를 발동시켜 방치하는 것이었습니다. 8월에도 엄청난 홍수 속에서 발달장애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라며 발언을 이어 나갔다. 이어 “이렇듯 국가와 사회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권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 불평등 속에서 단 하루라도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라며 참여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투쟁의지를 다졌다. 이어진 행진에서는 시위 참여자들이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는 일정 시간 동안 죽은 뜻 땅에 누워 있는 행위를 말하며,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재난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불평등을 초래하는 등 다가올 미래에 대한 우려를 상징한다.
 
말만 쉬운 연대, 어떻게 이뤄낼까? 연대의 시작은 경청에서부터
지난 10월 18일에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한국환경 회의가 모여 NPO지원센터에서 ‘기후위기 워크숍’을 진행했다. 환경 활동가들이 겪거나 다루고 있는 기후위기 의제를 중심으로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기후위기 인식을 확장하고, 두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환경단체 이외의 단체에서는 기후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기후 위기 시대에 앞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교류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그 현장을 <함께걸음> 도 함께 했다.
 
↑ 기후위기 워크숍 현장사진  (사진. 이은지 기자)
 
 
‘한국의 기후운동 현황과 고민’을 주제로 첫 발제를 맡은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현재의 기후위기 운동은 양적으로 성장했고 거의 모든 단체가 기후위기와 관련된 사업을 통해 각자의 의제를 가지고 있다”라며 “다른 한편으론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가고 있느냐’ 했을 땐 불만족스러운 게 사실이다. 연대운동을 통해 내부에서 이런 부분을 조율하고 조정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라며 환경운동의 운동적 고민을 털어놨다. 이어 세션별로 에너지 전환, 교통·수송과 탄소중립, 생물다양성에 관한 발제가 이어졌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인문학적 담론들도 오갔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발제를 맡은 치자(김양희)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홍수, 태풍, 산불 등 기후위기로 인한 직접적인 영향에서부터 코로나19 같은 신종 감염병의 위기, 이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 상황과 분쟁이 일련의 과정처럼 다가온다”라며 “특히 이 과정에서 소수자·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굉장히 심하게 동반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사무처장은 기후위기의 불평등과 관련하여 ‘삼중부정’에 대해 언급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삼중부정 중 첫 번째는 기후위기를 초래하는데 가장 책임이 없는 사람이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하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기후위기로 인해 제일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할 자원이나 역량도 가장 부족한 사람들이란 것이다. 마지막은 기후위기로의 전환 과정에 있어서도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가장 큰 피해와 부담이 전가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삼중부정은 김 사무처장이 밝힌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유엔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후난민 80%가 여성이며, 기후재난 발생 시 여성 사망률은 남성보다 14배가 높았다. 여성에게 아이와 노약자를 돌봐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어 긴급한 상황에서 신속한 피난이 어려웠고 피난에 필요한 적절한 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거나 여성 혼자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 등이 이유였다. 전 세계 빈곤층 70%가 여성인 점도 한몫한다. 저소득은 취약한 주거환경, 그로 인한 질병 노출의 위험, 돌봄노동의 증대로까지 이어지는 문제다. 이러한 취약성은 재난 앞에서 더욱 심화한다. 같은 재난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자원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최고 수준으로, 30년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8년 기준 남성 근로자가 100만 원을 벌 때, 여성 근로자는 66만 원을 번다. 임금 격차는 나이가 들수록 더 커진다. 동일한 조건에도 5년 단위로 10%격차가 발생하며, 50대 이상 여성의 임금은 남성 임금의 절반 수준이 된다. 또한, 여성의 경우 단순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았다. 콜센터, 택배 물류, 보건의료, 청소와 같은 필수노동, 대면 서비스직 등 임금은 낮고 근무 환경은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코로나19 시기에도 밀접·밀집·밀폐된 업무환경으로 인해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생계를 위한 일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김 사무처장은 “여성은 기후위기 취약계층이 분명한 것에 반해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에 불과하고 기후위기 관련 정책의 대상에는 여성이 빠져있다”라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취약계층을 충분히 고려한 보호가 필요하다. 또한,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기후위기 대응에서도 발휘될 수 있도록 기후정책과 행동에서 젠더적 관점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 함께 고려할 것”을 당부했다.
 
치자(김양희)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사진. 이은지 기자)
 
 
한주영 불교환경연대 사무총장은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가치관, 특히 기후위기와 대전환에 있어서 불교적 해석을 곁들인 색다른 접근법을 제시했다. 그녀의 발제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기후위기에 대한 즉각적 대응에 큰 걸림돌이 되는 자본주의는 다른 종에 비해 인간이 특별히 우월하다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 기반한 창조물이다. 인간의 탐욕으로 자본이 자연을 착취하는 구조를 당연시하게 되었고, 자연에 대한 속박을 야기하는 기계론적 이원론과 결탁하여 시너지를 더 했다. 과학기술지상주의, 경제성장, 소비주의, 이기심과 경쟁, 소유권 등 모두 생태 파괴를 합리화하고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자본친화적 키워드들이다. 한 사무총장은 “기후위기의 뿌리는 자본주의에 있어요. 자본주의는 이윤을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하고 시장을 개척해야 하죠.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정부는 그 기업에 맞춰줘야 해요. 그래서 이 기후위기에 대한 해법을 정부나 기업에 맡길 수는 없는 거예요.”라며 이러한 자본성장주의로부터 탈피하고 시민사회로부터 도출되는 새로운 담론이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문제임을 언급했다.
 
한 사무총장은 ‘6도 윤회’, ‘공생’, ‘무아(無我)’와 같은 불교적 가치관이 기후위기를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좋은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뜻도 전했다. 6도 윤회란 천상,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이라는 6가지 세계에서 계속 태어나고 죽고를 반복한다는 뜻으로, 인간이나 천상계의 신, 작은 동물까지 모두 윤회하는 중생으로서 차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불교에서는 ‘내가 없다.’ 즉, ‘나’라고 하는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의 개념이 있다. 내가 없으므로 ‘내 것’도 있을 수 없다. 흔히 말하는 무소유(無所有)의 가치를 말한다. 이러한 불교적가치관을 바탕으로 자본주의로부터 한 발짝 멀어질 수 있는 용기 얻고 이를 통해 기후위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앞으로가 아닌 ‘지금’의 기후위기 운동이 되려면
환경계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대응의 키워드로 ‘연대’를 꼽는다. 기후위기로 인한 불평등은 형태만 다를 뿐 차별의 양상이 같기 때문이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인들의 이해와 공감이 모여 집단이 되고 집단들이 모여 거대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면 요지부동인 기업과 정부도 바뀔 수 있다. 다만, 서로의 이해관계 속에서 공동체적 해답을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 된다. 지구에서의 안전한 Live-in이 지속될 수 있도록 지금의 환경 운동의 역할과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일까. 결국 이러한 담론은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크고 작은 소란을 키우며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작성자글과 사진. 이은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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