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대한 보호자 동반 강요, 누구를 위한 입장 거부인가? >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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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 대한 보호자 동반 강요, 누구를 위한 입장 거부인가?

판결문에 장애인권 덧칠하기

본문

 
 
 
시각장애인 목욕탕 출입 거부 손해배상청구소송 (2011가소122610)
 
 
판결문의 무게는 고작 5g에 불과하지만, 당사자 간 다툼을 법의 판단으로 마무리 짓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해 나간다는 점에서 절대 가볍지만은 않다. 그런 판결문도 아쉬운 점은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다. 이에 <함께걸음>은 우리나라에서 실제 발생했던 장애 당사자의 분쟁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장애 인권의 현주소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이번 호 판결문은 한 시각장애인이 장애를 이유로 목욕탕 입장을 거부당했다며 업주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을 내용으로 한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법원에서 다뤄진 최초의 장애 차별구제 소송 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시된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에 관한 내용을 다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동성의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시각장애인의 목욕탕 입장을 거부한 행위가 장애인 차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시각장애인 목욕탕 입장 거부 사건의 경위
2010년 12월 14일 오후 3시경, 전맹의 여성 시각장애인 A(원고)는 남성 활동보조인(현 활동지원사) B 와 함께 집 근처 공중목욕탕을 방문했다. A는 2004 년부터 해당 사우나를 이용해왔고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 3~4회가량 동성 보호자 없이 목욕탕을 이용한 사실이 있다. 그때마다 목욕관리사(흔히 세신사)에게 이동·탈의·입욕 등의 도움을 받았다. 이 사건 당일 목욕탕 업주 C(피고)는 “시각장애인이 혼자 오면 어떻게 하느냐? 다음부터 도와줄 사람이 같이 오지 않으면 받지 않겠다.”라며 핀잔을 주었다. 이에 활동 보조인 B가 “혼자 올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인데, 그것 가지고 그렇게 핀잔을 주느냐?”며 C에게 욕설하였고, 언쟁이 계속되자 목욕탕 업주 C는 시각장애인 A의 목욕탕 입장을 거부했다.
 
 
“명백한 차별” vs “모두의 안전을 위한 일”
시각장애인 A는 소장을 통해 “동성의 보호자를 데려오지 않았다고 해서 입장을 거부한 것은 시각장애를 이유로 사우나를 접근·이용함에 있어서 제한하거나 거부함으로써 차별행위를 한 것”이라며 “장애인차별 금지법을 위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목욕탕 업주 C는 “다툼으로 인해 격해진 감정과 소란스러운 상태에서 영업방해가 원인이 되어 목욕탕 입장을 거부했던 것”이며 “시각장애인인 원고가 목욕 도중 넘어져 사고가 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동반자 없는 입욕을 거부한 것”이라고 반박에 나섰다.
 
 
법원 “정당한 사유가 있으니, 차별은 아니야!”
재판부는 목욕탕 업주 C의 손을 들어줬다. 시각장애인 A에 대한 목욕탕 입장 거부가 장애를 이유로 한 부당한 거부행위라고 인정하면서도, 목욕탕 업주 C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봤다. 법원의 판단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시각장애인에게만 거절된 ‘위험을 감수할 권리’
법원은 원고(시각장애인 A)의 주장을 어느 정도 수긍했다. 축축하고 미끄러운 목욕탕 환경은 어린이나 노인, 임산부, 편마비나 청각 등 다른 유형의 장애인 에게도 위험한 장소다. 그럼에도 위험과 안전을 이유로 이들에게 목욕탕 출입 자체를 거부하거나 ‘보호자 동반’을 강요하는 일은 드물다.
 
법원 역시 ‘공중목욕탕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을 함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목욕을 위해 제공되는 시설로 보호자의 동반 여부를 불문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원칙’임을 강조했다. 이어 객관적인 자료 없이, 막연한 추측만으로 장애인의 출입을 거부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하며 “위험성이 높아 출입을 거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피고(목 욕탕 업주 C)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A)가 목욕탕을 이용하던 도중 사고가 난다면, 보호자 없이 목욕을 감행한 원고(A)의 과실비 율을 높게 평가해 적정한 손해배상액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원고의 주장은 어느 정도 수긍할만한 면이 있다”라고 판단했다.
 
 
시각장애인은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 존재?
그럼에도 재판부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판단의 오류를 범했다. 판결문에는 “원고가 공중 목욕탕을 이용하는 경우, 이때의 도움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것” 그리고 “ 업주나 목욕관리인에게 선의의 도움을 제한 없이 요청할 수 없고, 관리인이 본연의 업무에 종사할 경우 그동안 원고는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A는 2004년 부터 이 사건 목욕탕을 이용해왔고, 혼자서 목욕을할 수 있으며, 그동안 한 번도 넘어져 다친 사실이 없다. 그런데도 법원은 다중의 시각장애인이 목욕탕을 방문했을 때를 가정하며 시각장애인 고객으로 인해 “추가 인력이 필요한 경우를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라며 시각장애인을 지속적인 보호와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여겼다.
 
 
 
 
장애인 손님에 대한 편의제공이 영업의 과도한 부담인가?
법원은 “목욕탕 업주인 피고(C 씨)에게 자발적인 도움을 주도록 유도한다면 공익적 성격이 있는 장애인 보호에 따른 비용이나 부담을 사인에 불과한 피고(C 씨)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것이 되어 타당성이나 합리성에 의문이 든다.”라고 하였다. 이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적절한 편의제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 취지를 비추어 볼 때, 아쉬운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목욕탕 시설에 대한 안내는 어린 고객이나 해당 목욕탕을 처음 이용하는 고객에게 자연스럽게 제공되는 서비스다. A가 6년 동안 3~4회가량 해당 목욕탕을 방문한 사실을 비추어볼 때 A는 1년 6개월을 주기로 목욕탕을 방문한다. 이때 장애가 있는 A에게 목욕탕 내 시설안내를 지원하는 것이 목욕탕 영업의 현저한 곤란을 초래할 정도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 대중목욕탕 이용 못 해도 대안이 있으니 분쟁은 끝? 
법원은 일부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장애인 전용 목욕탕’과 ‘장애인 방문목욕 서비스’를 중증 장애인인 A가 이용할 수 있음을 이유로, 피고(C)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줬다. 장애인의 일상이 어떤 특별한 서비 스나 특별히 마련된 장소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법원의 이러한 판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을 구분 짓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장애인의 접근권 향상 및 편의제공에 대한 개선이 이뤄져 오긴 했으나,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여전하다.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놀이공원, 워터파크, 식당 등 공중이용시설에서 장애인 입장객을 거부하는 일은 반복되고 있다. 최근 지역사회 통합돌 봄이 중요해짐에 따라 장애인, 노인 등 지역사회에서 어울려져 살아가는 커뮤니티케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판결은 어떤 의미를 남길까.
 
작성자글. 이은지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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