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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답이 아닌 정답을 맞추기를

UNCRPD 2·3차 최종견해 이행방안 제13조 사법접근권을 중심으로

본문

 
지난해 8월, 대한민국 정부의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상황에 대한 유엔의 2·3차 병합 심의가 유엔에서 열렸다. 9월, 유엔은 심의결과를 토대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최종견해’를 채택했다. 심의는 지난 2014년에 1차 심의 후 8년 만에 열린 것이며, 다음 심의는 2031년으로 4·5·6차가 병합하여 열릴 예정이다.
 
 
제13조 사법접근권(Access to Justice)은 협약이 보장하고 있는 모든 권리를 사법기관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 중요한 조항이다. 아무리 법에 권리가 나열돼 있어도 그것을 실제로 실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죽은 권리, 문자로만 기록돼 있는 권리일 뿐이다.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권리’가 바로 사법접근권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법접근권에는 형사 피의자와 피고인, 그리고 구금시설 수용자로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공정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1차 심의 최종견해에서 유엔은 ①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 제공 에 있어서의 차별금지)의 이행을 위해 노력할 것, ②사법종사자들의 훈련 프로그램에 ‘장애인 업무에 관한 표준모듈, 절차상에서 연령에 적합하고 성 인지적인 합리적 조정(reasonable accommodations), 사법접근성 보장’을 포함할 것, ③그리고 대법원의 ‘장애인사법지원가이 드라인’이 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이행되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2·3차 병합 심의에 앞서, 유엔은 대한민국 정부에 1차 심의 시 권고했던 내용의 이행상황 에 대한 보고를 요청했는데, 1차 권고사항 ①, ②, ③에 대해 이행상황을 물어 왔고, 추가 로 구금시설의 수감자를 포함한 모든 사법절차의 참여자들에게 절차적 조정(procedural accommodation)을 제공하고 관련한 전문가들에게 훈련을 실시한 사항에 대한 보고, 그리고 장애가 있는 사람이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사법기관에서 일할 수 있도록 취한 합리적 조정을 포함한 조치들에 대한 보고를 요구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보고1) 는 다음과 같았는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 이행을 위한 노력에 대한 질의에는 기존부터 있었던 신뢰관계자 동석 제도와 발달장애인지원법, 인권보호수사준칙, 진술조력인 등의 제도를 나열하였고, 교정시설에 설치돼 있는 일부 편의시설에 대해 보고 했고, 사법종사자들에 대한 훈련(training)의 제공 현황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실시한 인식개선교육(awareness improvement education)의 일부 내용을 보고했다. 
 
 
 
▲ 대한민국 정부의 UNCRPD 2·3차 병합 심의 현장(출처. UN Web TV) 
 
 
장애인사법지원가이드라인에 규범력을 부여하기 위한 조치의 경우, 일률적으로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기에는 일부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면서 추후 검토를 통해 규범화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답변했으나 실제 진행된 사항에 대한 보고는 없었다. 또 구금시설의 수감자를 포함하여 ‘절차적 조정’을 제공한 사항과 이에 대한 훈련을 보고하라는 질문에는 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그것도 피고인에게만 적용되는 국선변호사 제도를 보고했고, 그 밖에 직원이 서류를 대신 작성해 주는 등 돕고있다는 답변을 했다. 그리고 장애당사자가 사법기관에서 일할 수 있도록 취한 조치에 대해서는 시각장애인 법관이나 척수장애을 위한 시설과 인적 지원, 편의시설 설치 등을 보고했다.
 
 
이러한 정부의 답변사항을 보면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협약은 사법시스템의 전반적인 변화, 특히 ‘합리적 조정’ 및 ‘절차적 조정’ 개념의 전면적인 도입을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는 자꾸만 ‘이것도 저것도 있다’라면서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이미 존재하는 제도를 보고하고 있다. 이것은 ‘reasonable accommodation’과 ‘procedural accommodation’에 대 한 정확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 현상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accommodation을 ‘편의’로 오역한 것이 국내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실수인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훈련’을 의미하는 training을 ‘교육’으로 번역한 것도 문제이다. 그래서 훈련사항을 보고하라고 요구했더니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보고한 것이다. 한 마디로 동문서답이다.
 
 
이번 2·3차 최종견해에서는 1차 최종견해의 권고사항과 결을 달리하는 권고가 나왔다. CRPD 위원회는 1차 권고사항을 참고하고 ‘장애인의 사법접근권에 관한 국제원칙과 가이드라인’, 그리고 지속가능발전목표 16.3을 상기하라면서, ①협약에 따라 모든 사법절차 단계에서 장애인의 효과적인 참여를 제한하는 모든 제한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법적, 행정적, 사법적 조치와 같은 장애인의 사법 접근을 위한 행동계획을 채택할 것, ②장애인이 법적 절차의 다양한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개인별 지원의 제공을 포함한 절차적 조정을 마련할 것, ③점자, 수어, 읽기 쉬운 형태(Easy Read)와 음성 및 화면해설 등 사법적 절차 전반에 걸쳐 사용할 수 있는 보완 대체 정보 및 의사소통 수단을 마련하고 모든 법정 시설에 물리적 접근이 보장되도록 접근가능한 이동수단을 포함하여 유니버설 디자인 원칙을 적용한 이행계획을 수립할 것, ④협약에 관한 훈련을 법관과 사법 종사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 ⑤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법조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이를 보장하 기 위한 개별화된 지원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단순화하자면 ‘행동계획 채택’, ‘절차적 조정’, ‘정보 및 의사소통 수단 마련’, ‘유니버셜디자인’, ‘협약에 대한 훈련’, ‘당사자가 법조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조치’가 우리 정부가 유엔에서 부여 받은 임무인 것이다.
 
 
다음 심의는 2031년으로 예정되어 심의까지는 긴 시간이 남았지만,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 는 것이 유엔 보고를 위한 것은 아니니 심의와 상관없이 정부는 즉각 CRPD 권고사항 이행에 나서야 한다. 그중 13조 권고 이행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첫 번째, 협약과 사법접근권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취지와 사법 접근권의 의미, 특히 협약의 핵심적인 개념인 합리적 조정(Reasonable Accommodation)과 접근성(Accessibility), 법적권리(Legal Capacity)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유엔에서 2020 년 발간한 사법접근권 가이드라인을 숙지하고 국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두 번째,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장애인정책종합계획’, ‘교통약 자이동편의증진계획’, ‘정신건강증진계획’ 등 이미 있는 국가계획과 마찬가지로 연차별 목표 를 포함한 국가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여기에는 당사자의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세 번째, 법과 제도를 강화하고 개별화된 지원을 위한 절차적 조정을 도입해야 한다. 개인의 필요와 욕구를 파악하고 개인별 지원계획을 수립한 뒤 이를 위해 사법의 전 과정을 유연하게 조정시키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네 번째, 정보접근이나 물리적 접근은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이다. 공공서비스인 사법서비스 는 모두를 위한 보편적 디자인이 적용돼야 한다.
 
 
다섯 번째, 단지 장애인을 따뜻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인식개선교육을 넘어서 사법 의 모든 참여자에게 장애인의 권리와 특히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해 교육해야 하고, 유엔 이 요구하는 표준모듈(매뉴얼, 지침 등)을 만들어 이를 의무적으로 숙지하고 훈련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를 사법기관에서 일하는 당사자들이 주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당사자들이 법조계에 진출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한다.
작성자글. 김강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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