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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발달장애인의 좌충우돌 부산 여행기

[기획] 어떤 이들의 여름 - ①

본문

 
↑ 송정해수욕장을 배경으로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는 왼쪽부터 소희, 철호, 예랑, 동철, 국향, 아영 씨의 모습
 
[들어가며]
 
이번 여름 휴가 어디로 가세요?
 
뜨거운 태양의 열기, 후덥지근해진 공기, 밤낮을 가득 메우는 매미의 울음소리.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면 잠시나마 쉼의 시간을 갖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휴가 계획을 세운다. 해수욕 장, 워터파크 등 포털 사이트 역시 수많은 여름 관광상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서로서로 좋은 피서지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포털사이트에 ‘장애’와 ‘여행’의 키워드를 함께 검색했을 때 대부분은 편의시설과 접근성에 관한 정보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발달장애’와 ‘휴가’의 키워드를 검색하면 장애당사자의 여행기, 여행정보 보다는 부모와 형제 등 돌봄제공자들의 휴가 프로그램들이 대다수를 이루었다.
 
발달장애인들은 대체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내는 것일까? 성인발달장애인의 문화, 여가활동에 대해 조사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336명의 성인발달장애인 중 49.7%가 1년 동안 가정 밖에서 문화 및 여가활동 경험을 전혀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달장애라도 장애 정도와 특성, 그리고 상황에 따라 정말 다양한 여름을 보내리라 생각된다.
<함께걸음>에서는 여름휴가 기간을 맞이하여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이 보내는 다채로운 여름 모습을 진솔하고 생생하게 담아내보고자 한다.
 
#여름 이야기 1
[발달장애인의 좌충우돌 부산 여행기]
 
대구에 사는 발달장애인들이 2박 3일 동안 부산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여름 냄새가 가득한 그 포스터에는 부산에서 가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것을 두 차례 사전모임 통해 정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사전모임이 시작됐다. 성별, 나이, 사는 곳도 서로 다른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무엇을 해야 하나.. 서먹한 듯 이리저리 둘러보는 사람들. 이것도 잠시 부산 가서 무엇을 먹을지 정하자는 말에 조금씩 입을 떼기 시작했다.
 
“가서 뭘 먹지?” “부산에만 있는 거!”
“곱창 어때?” “그건 대구에도 있잖아 딴 거” “그럼 낙곱새” “좀 비싸다” “밀면” “가위바위보! 오케이 밀면 탈락!”
“근데 물회는 뭐에요?” “네” “모르면 찾아봐 인터넷에” “오빠야 그거 나 먹어봤다 물회” “난 콜라!”
 
부산의 유명한 음식들을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는 사람, 가격과 위치를 생각하지 않고 막 이야기하는 사람과 이들이 답답한 사람, 가서 뭘 먹을진 모르겠지만 내가 먹어본 물회 맛이 어땠는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 어떤 질문을 해도 ‘네’라고 대답하는 사람,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콜라를 외치는 사람.
 
한 끼 메뉴를 정하는데도 정신이 하나도 없다.
부산 여행은 정말 갈 수 있을까?
이대로 괜찮을까!
 
저마다의 방식으로 바다를 즐기는 이들
 
모두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바다. 다 함께 바닷물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정협 씨는 모래사장에 앉아만 있다. 왠지 아직 내키지 않는 것 같다. 민재 씨도 분명 ‘바다 좋아요’라고 이야기했지만 아직은 준비가 안된 듯 했다. 반면 재표, 혁율, 현미, 윤옥 씨는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 신나게 바다에 뛰어들었다.
 
↑ 정협 씨가 조개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 뒤에 송아 씨, 민재 씨도 함께 웃고 있다
 
“오빠야 내가 조개 갖다주까?”
물놀이를 하던 현미 씨는 모래사장에 앉아만 있는 정협 씨에게 내심 미안했는지 조개를 건넨다. 마치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려는 듯했다. 정협 씨가 조개를 받고 활짝 웃자 “오빠야 좋나? 하나 더 갖다 줄까?”라고 말한다. 자폐성장애가 있는 민재 씨는 한참을 바다에 들어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바다로 들어갔다. 바지가 젖는 것이 싫었는지 긴 바지를 허리춤까지 말아 올렸다. 민재 씨는 다른 사람들이 놀고 있는 무리를 흘깃 쳐다보더니 아무래도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는지 다른 이들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민재 씨는 바다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민재 씨가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느닷없이 내린 폭우, 돌발상황 속 이들의 대처는?
 
즐거움도 잠시, 이들을 비추던 해가 걷히고 갑자기 폭풍우 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숙소로 향했다. 재표 씨는 돗자리를 우산 삼아 머리에 썼고, 민재 씨는 손에 아무 것도 든 것이 없어 그냥 비를 맞는다. 다른 이들도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현영 씨는 도로에 주저 앉아버린다. “아 힘들다! 못가겠다!”
 
“언니 또 와그라노. 같이 가야지. 일어나라.” 현영 씨를 항상 걱정하고 도와주는 윤옥 씨의 설득에도 도통 현영 씨는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인다. 현영 씨가 다시 움직이기까지 30여분이나 걸렸다.
 
↑  현영 씨가 바다를 즐기고 있는 모습
 
“언니야 잘 왔나. 이제 들어와서 씻어라. 같이 씻자” 먼저 들어가서 씻고 있던 윤옥 씨와 현미 씨가 한참 지나서야 숙소로 돌아온 현영 씨의 기분이 풀어지도록 독려한다. “아잇참, 모래를 다 털고 들어왔어야지 와이라노” “아 맞네” “언니 샴푸 여있다” 샤워실 너머로 들려오는 복작복작 떠드는 소리. 한참 나이가 많은 언니이지만 때로는 고집불통인 현영 씨를 나름의 방식으로 존중하고 격려하며 이들은 조금씩 더 가까 워지고 있었다.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찾은 마트와 편의점
긴장과 망설임의 연속, 결국엔 해냈다는 성취감
편안함에 숨겨진 누군가의 수고를 알아가다
 
저녁에 있을 바비큐 파티를 위해 네 명의 당사자(윤 옥, 현미, 정협, 현영)와 지원자가 함께 장을 보러 길을 나섰다. 마트에 가는 길을 찾는 것부터 버스를 타는 과정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비바람도 함께했으니 말이다.
 
“이 길 맞아요?”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요? 왼쪽으로 가요?” 윤옥 씨는 핸드폰에 지도 어플을 켜고 정류장을 찾아 나섰지만 자신이 없었다. 옆에 있던 지원자에게 여러 차례 이 길이 맞는지 확인하며 길을 찾았다.
 
드디어 도착한 마트. 현미 씨와 윤옥 씨는 바쁘다. “고기 몇 인분 사야 되지?” “이 정도면 되나?” “또 뭐 먹어야하지?” “찌개?” “된장찌개! 그럼 된장을 사야겠다” “요즘 그거 있잖아 그거” “밀키트?”
 
저녁준비에 마음이 급한 이들의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영 씨는 “나 사과 주스 살래. 내 남편 갖다줄 거” 라며 주스 구입을 재촉한다. 현미 씨가 “에이 언니 남편 줄 건 언니 돈으로 사야지. 이건 공금이잖아”라고 설득하자 포기하는가 싶었던 현영 씨는 결국 사과 주스를 손에 넣었다.
 
생전 처음 사보는 물건들, 양 조절의 어려움으로 무엇을 사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티격태격했던 시간이 흐르고 나니 네 명의 당사자들의 표정엔 뭔지 모를 뿌듯함이 엿보인다. 스스로 해냈다는 자신감에서 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모두가 힘을 합쳐 임무를 완수했다는 성취감일 수도 있겠다.
 
↑ 적정한 고기 양을 고민하는 현미 씨, 윤옥 씨, 은미 씨 그리고 뒤에 현영 씨
 
마트에서 사온 맥주가 봉투째 놓여 있다. “아니 맥주를 냉장고에 아직도 안넣으면 어쩌노!” “이거이거 시원하게 안 먹을거가? 냉장고에 넣어야 시원해지지 않겠나” 현미씨의 말에 어리둥절해 하던 현영 씨와 윤옥 씨는 “아 글나? 그럼 빨리 넣자”라고 답했다.
 
아마도 현영 씨와 윤옥 씨는 늘 시원한 맥주를 마셨을 것이다. 편의점이나 마트 냉장고에 맥주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맥주를 차갑게 하기 위해 누군가 냉장고에 맥주를 넣는 수고를 한다는 것을 몰랐을 뿐. 이렇게 여행은 당사자들에게 계속해서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신나는 저녁 바비큐 파티!
햇반 데우고. 고기 굽고, 나르고 저마다 역할 찾아
부족한 틈, 당사자들이 손을 내밀다
함께 먹는 저녁, 여행의 참맛을 느끼는 중
 
여행은 역시 바비큐 파티지! 저녁에 바비큐 파티가 시작됐다. 펜션이라 다른 여행객들이 술에 취해 큰소리로 떠들자 윤옥 씨가 귀를 막고 가만히 앉는다. 혁율 씨는 ‘시끄럽다 시끄럽다’ 중얼거리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미 씨가 햇반을 데우고 민재 씨는 다 익혀진 고기를 테이블 위로 나르기 위해 불판 앞에서 기다렸다.
 
생각보다 고기가 익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친 현영 씨가 고기를 굽던 지원자에게 가서 말을 건넸다.
“나 남편한테 전화해야 돼. 숙소 갈게.” 지원자는 고기를 굽느라 정신이 없어 나중에 가자고 설득해 보지만 현영 씨는 “안 돼. 지금”이라고 고집을 피워 실랑이가 길어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윤옥 씨는 현영 씨를 부 축하여 함께 핸드폰을 가지러 숙소로 올라갔다.
 
드디어 다 구워진 고기. 시설에서 오래 살다가 자립한지 얼마 되지 않은 윤옥 씨는 “혼자 밥 먹으면 진짜 맛없거든요. 혼자 있으면 가끔 심심하고 우울하고요. 근데 오늘 다 같이 먹으니까 진짜 맛있네요.”라고 말한다. 윤옥 씨는 오랜만에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라는 여행의 큰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여행 중 돈을 잃어버리다
미안해 자책하는 총무에 분위기 침울
돈보다 총무의 기분이 마음 쓰이는 동료들
 
여행 이튿날 아침,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던 철호 씨가 영 기분이 별로다. 어젯밤 지금까지 쓴 돈을 정산한 결과 9천 원이 부족했다. 철호 씨는 총무로써 그 돈의 출처를 알지 못해 속상한 듯하다.
 
선두에 서서 사람들을 이끌었던 철호 씨는 저 멀리 떨어져 걷는다. 지도를 보며 동료들에게 길을 알려주던 당당했던 철호 씨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잃어버린 9천 원이 자꾸 생각나는 듯하다.
 
반면 동료들은 잃어버린 돈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누구 하나 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없다. 단지 어제와 달리 침울해하는 철호 씨의 모습에 마음이 쓰인다.
 
청각장애가 있어 소통이 어려운 아영 씨는 모두가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에 ‘힘내’라고 적혀있는 이모티콘과 함께 ‘강철호 오빠 힘내요’라고 적어 보내며 철호 씨에게 마음을 보낸다.
 
↑ 카톡 대화방 모습
 
아마도 철호 씨는 자신이 맡은 총무의 역할을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었을 것이다. 카페에 오기 전까지 어떻게 이 상황을 풀어가야할지 난감했던, 또는 풀어야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지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던 당사자들은 여행을 통해 나와 다른 이의 감정을 교류하고 위로하는 방식을 알아간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2박 3일의 여행.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들에게 이번 여행은 어땠을까? “힘들지만 재밌었어요. 대구 가면 힘 생겨요”라고 정확하게 자신을 감정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질문하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짧게 “좋았죠”라고 이야기하고 휙 사라지는 사람도 있었다.
 
비록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는 게 익숙지 않아 때론 무뚝뚝하고 또 단조롭게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표정에서만은 무더위 속을 식혀 줄 시원한 여름 휴가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렵고 떨리는 긴장 속에 실수와 실패를 해가며 경험한 이번 여행은 이들의 일상에서의 또 다른 자신감을 만들어줬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작성자글과 사진. 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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