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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여행을 포기하게 만드는 국내 여행지, 해외여행에서 장애를 넘어 자유와 기쁨을 느끼다

[기획] 어떤 이들의 여름 - ③

본문

 
가족의 희생과 노고 없이 꿈꿀 수 없는 중증장애인의 여행
부모는 제도와 환경에 맞서 싸움꿈이 될 수 밖에 없어
 
윤태준 씨(31)는 선천적으로 뇌병변장애를 갖게 되어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하다. 언어표현도 불가능해 대부분의 소통은 눈빛과 표정(눈살 찌푸림, 웃음 등)으로 이루어진다. 근육 사용이 자유롭지 못해 식사, 신변처리 등 대부분의 일상에서 태준 씨는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런 태준 씨는 국내 명소라면 안 가본 적이 없는 여행자다.
 
태준 씨는 어머니 김경진 씨와 아버지 윤정선 씨와 함께 어릴 때부터 많은 시간을 여행하며 보냈다. 물놀이를 가장 좋아해 여름에는 주로 수영장이나 바닷가를 찾지만 항상 어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강원도 양양의 한 리조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수영장 직원이 태준 씨의 휠체어를 보고는 멈춰 세웠다. “휠체어 들어오면 안돼요. 미끄러워서 위험해요.” ‘안전’을 이유로 댔지만 태준 씨의 어머니는 대안을 마련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입장을 거절한 직원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잖아요. 그래서 제가 신고한다고 했어요. 장애인 차별로.” 결국엔 직원이 상사를 불렀고 긴 논의와 얼굴을 붉힌 끝에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홍천에 있는 워터파크에서는 새로운 핑계를 대며 태준 씨의 입수를 막아 세웠다. 이번에는 “휠체어는 바깥에서 이용하는 거니까 다른 고객들이 싫어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휠체어 바퀴를 충분히 닦아서 사용하면 될 뿐 아니라 휠체어는 다른 고객들의 선호도 와는 전혀 별개로 당사자에게는 신체의 일부이자 꼭필요한 보조기기임에도 수영장 직원의 생각은 거기 까지 닿지 못했다.
 
이번에도 태준 씨의 가족들은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질 수 없는 반응들이었고 갈 때마다 이유가 가지각색인 것이 화가 났다. “수영장을 이용하는 장애인 고객이 적어서 그런지 특히 수영장 갈 때마다 꼭 싸우게 되는 것 같아요. 태준이 같은 사람들이 수영장에 올 거라는 생각을 못하는 거죠. 다들 당황해서 윗사람들 부르는데, 처음엔 조곤조곤 상황을 설명하다가 말이 안통하면 목소리가 점점 커져요.”
 
언성을 높이고 문제를 제기했던 홍천의 워터파크를두 번째 방문했을 때, 수영장용 휠체어 2대가 비치된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미약하게나마 생기는 변화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태준 씨의 가족들은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고 더 당당해지려 노력한다.
 
“장애인들이 스스로 여행을 포기하게 만드는 곳들이 너무 많아요. 여행 계획 세우면서 지치고, 여정에서 두 번 지쳤는데 여행지까지 가서 또 거절당하고.. 그럼에도 계속 맞서 싸워야죠.”
 
​△ 인천 송도 솔찬공원에서 태준 씨의 사진을 찍어주는 아버지 윤정선 씨
 
 
하와이라는 낯선 땅에서 경험한 위로와 환대
비장애인이 하면 장애인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 인식이 주를 이뤄
 
태준 씨네 가족이 싸움닭이 되지 않아도 되는 곳, 오히려 이들을 온 몸과 마음으로 환대해준 곳도 있었다. 그곳은 경진 씨가 몇 년 전 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를 하던 중 함께 떠났던 ‘하와이’였다. 하와이 가족여행은 경진 씨의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장시간 비행과 비싼 물가 그리고 언어의 장벽 등 우려되는 지점도 많았지만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과감하게 결심했다. 장애인 편의시설이나 장애에 대한 인식수준이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태준 씨의 가족들은 하와이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여느 때처럼 경진 씨와 정선 씨는 힙을 합쳐 태준 씨를 휠체어에서 들어 올려 비행기 좌석으로 옮겨 태우려고 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항공사 직원들이 경진 씨와 정선 씨의 행동을 막아 세운 것.
 
‘뭐지? 탑승 거부인가? 또 싸워야하나?’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온전히 태준 씨를 지원하기 위해 찾아온 하와이안 항공사 직원 두 사람은 부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부모님들은 가만히 계세요. 저희가 이 일을 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입니다.”
 
부모가 직접 장애가 있는 자식을 돌보고 지원하는 것이 훨씬 더 익숙한 사회에서 오래 살아왔던 이들에게 항공사 직원의 말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동시에 이게 맞는 방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태준 씨를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지원하는 것이 당연한 행동인 것.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하와이 땅에 도착하고 난 뒤 태준 씨네 가족은 ‘천국’을 다녀온 것 같다고 표현한다. 온갖 종류의 환대를 곳곳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국내 여행할 때는 매번 싸우고만 다녔는데... 하와이를 가보니까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더라고요. 장애인을 인격체로 대우해줘요. 비장애인이 누릴 수 있다면 장애인도 똑같이 누려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의 차이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어요.”
 
△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내 수영장에서 입수용 리프트를 이용하고 있는 태준 씨
 
하와이의 휠체어 접근성과 편의시설에 관한 정책은 놀라울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수영장을 갈 때마다 입수를 거부당하고 매번 갈 때마다 싸워야했던 것과 달리 하와이에 있는 리조트 수영장 에는 전용 리프트가 있어 태준 씨도 가족들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물 안으로 입수할 수 있었다.
 
바닷가도 예외는 없었다. 모래사장에서 휠체어 바퀴가 잘 밀리지 않는 것을 고려하여 바다 바로 앞까지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도록 길을 정비해놓은 곳도 있었고, 더 잘 되어있는 곳은 모래사장에서 전용으로탈 수 있는 휠체어를 비치해놓기도 했다.
 
“국내의 편의시설들도 전보다는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처음 설계할 때부터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열악한 조치들, 현실적이지 않은 편의시설들이 정말 많아요. 위험한 곳도 더러 있고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 하와이의 알라모아나 비치, 휠체어가 편히 이동할 수 있도록 길이 마련되어있다.
 
태준 씨의 가족들은 하와이에서 어떤 곳을 가든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어디에서든 환영 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위로를 주는 환대 방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응원과 언제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는 태도’였다.
 
“사실 태준이랑 같이 여행을 다니는 것이 정말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바다에 들어가는 건 쉬워도 파도가 세지기라도 하면 나올 땐 몇 배의 힘이 더 필요하고요.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여행을 가는 이유는 태준이에게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을 알아주는 건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희 가족들을 향해서 엄지를 척! 치켜세워줍니다. ‘대단하다’고 말도 건네주고 조금 위험해 보이는 것 같을 땐 달려와서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정말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껴요.”
 
태준 씨 가족을 향해 치켜세워진 엄지와 응원의 말들은 동정심이나 어설픈 배려가 아니라, 이 가족에 대한 진심 어린 존중과 존경심이었을 것이다. 그럴 때 태준, 정선, 경진 씨는 이제까지 힘들었던 기억이 싹 사라지고 새로운 힘이 마구 솟아난다고 한다.
 
암 투병과 여행 후유증으로 인한 신체 피로도
아들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멈출 수 없어
 
태준 씨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특별한 표정이나 눈빛을 보이지 않다가 하와이에서 바다 수영을 했던 동영상을 보자 처음으로 잇몸 만개 미소를 보였다. 태준 씨가 얼마나 여행을 좋아하는지, 또 그중에서도 하와이에서의 경험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그의 미소는 충분한 답이 되었다.
 
하와이 여행을 다녀온 후 아버지 정선 씨는 몸이 성한 곳이 없다. 너무 신나게 노느라 그런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스스로 몸에 힘을 줄 수 없는 아들을 하루에도 수십 번 들어 올리는데 허리가 버텨주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어머니 경진 씨 역시 오랜 항암치료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모험은 멈출 줄도 지칠 줄도 모른다.
 
“태준이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안 나갈 수가 있겠어요. 집에 있을 때랑 밖에 있을 때랑 표정이 완전히 달라요. 태준이와 같은 다른 친구들도 집에서더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집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자꾸 나와서 세상과 부딪히고 세상 사람들에 게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다라는 것을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요즘엔 ‘초록여행’도 있고, 장애인 여행을 지원해주는 정책들이 조금씩 생겨나고도 있고요. 저희 가족도 돈이 많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자꾸 부딪히다 보니까 다 되더랍니다.”
 
△ 하와이 쿠아로아 비치에서 찍은 가족 사진
작성자글. 김영연 기자 / 사진제공. 윤정선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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