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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4차산업혁명에는 ‘장판’이 필요하다

4차산업혁명과 장애 운동 ➂

본문

▲ 모두를 위한 과학기술. 함께걸음에서 ChatGPT-4 DALL-E 3로 생성.
 
한창 석사논문을 작성하던 2020년 1월, “두 번째 걸음마”라는 제목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1) 현대자동차 로보틱스가 공개한 웨어러블 로봇 캠페인이었다. 주인공인 장애인 양궁 국가대표 박준범 선수는 고등학교 때 사고를 당한 후 10년간 휠체어를 탔다. 그는 걸음이 그리워 현대자동차에 자신의 사연이 담긴 편지를 보냈고, 그런 그에게 현대자동차는 로봇을 선사했다. 박준범 선수가 로봇을 입고 일어서는 순간 위로 그의 첫 번째 걸음마 장면이 오버랩된다. 화면이 다시 전환되고 그의 어머니가 등장한다. 어머니는 천천히 걸어오는 그를 안아준다. 장애를 입은 아들의 두 번째 걸음마였다.
 
소위 ‘4차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과학기술이 장애를 해결하리라는 낙관이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다. 휠체어 사용자를 걷게 만드는 웨어러블 로봇, 농인의 목소리를 합성하는 인공지능(AI), 마비된 팔을 대신하여 뇌파로 움직이는 로봇 팔은 더 이상 SF 속 상상이 아니다. 이들은 아주 구체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오고 있다. 대화하는 인공지능이나 음성과 텍스트를 실시간으로 변환하는 앱처럼 이미 생활 속에 자리 잡은 기술도 있다. 과학자와 공학자는 말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세상은 반드시 온다”고(함께걸음, 2023년 12월 15일자). 4차산업혁명 시대에 장애는 점점 과학기술의 문제가 되고 있다.
 
새로운 과학기술은 새로운 삶을 약속한다. 앞서 소개한 로봇 캠페인은 사랑하는 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삶을 약속한다. 또 다른 예시로, 유튜브에는 청각장애를 가진 아기가 인공와우를 처음 사용하는 영상이 자주 올라온다. 스위치를 켜자마자 소리에 반응하는 아기를 보며 사람들은 가족 간 소통의 장벽이 사라진 미래를 상상한다. 어쩌면 이 아기는 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 음악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2월 YG엔터테인먼트는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연구비 1억 원을 기부했는데, 인공와우 이식 환아를 위한 K-POP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기술의 약속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개 사용 첫 순간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로봇 광고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는 모습을 보여주고, 인공와우 사용기는 스위치를 켜는 순간을 클로즈업한다. 반대로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드는 시간과 노력과 비용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그토록 많이 하면서도, 사실 그 현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장애인과 기술의 불화
김초엽과 김원영이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기술과 불화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청각장애인인 김초엽은 보청기를 사용하고 골형성부전증을 가진 김원영은 휠체어를 탄다. 보청기와 휠체어는 이들이 타인과 소통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기술은 그 자체로 완벽하지 않아서, 김초엽은 어디를 가나 보청기 배터리를 챙기고 김원영은 매일 아침 휠체어의 이동 경로를 계산한다. 장애인이 기술에 의존하는 만큼 기술도 장애인에게 의존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김초엽은 다음과 같이 썼다. “현실의 기계는 피부를 짓무르게 하고, 온갖 염증을 일으키고, 끊임없이 잔고장이 나며, 지속적인 관리와 전문가의 점검을 필요로 한다.”2) 광고 속 매끄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기술은 불완전하고 번거롭다.
 
보조기술은 여느 기술과 같이 소모품이어서 정기적인 유지보수가 중요하다. 이로 인해 장애인들은 기술을 생산하는 기업과 특수한 의존 관계에 놓이곤 하는데, 해당 기업이 부품 생산과 서비스를 독점하고 있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인도의 인공와우 실태를 연구한 의료인류학자 미셸 프리드너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 전략이 어떻게 인도의 빈곤층 장애아를 취약하게 만드는지 분석했다. 인도 정부는 국가시책사업으로 청각장애 아동에게 인공와우 기기를 지원하는데, 대부분의 기기를 미국이나 오스트리아 등지에 본사를 둔 해외 기업에서 수입한다. 아동은 전극을 귀에 삽입하는 수술이 끝난 후 2년간 정부로부터 부품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직접 구매해야 한다. 2023년 4월 기준, 이 사업 대상자로 9,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등록되었고, 약 4,600명이 임플란트 삽입 수술을 마쳤다.
 
문제는 인공와우 기업들이 소비자의 지속적인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이전 모델을 단종시키는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전략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인공와우를 잘 사용하기 위해 몇 년간 노력을 들인 아이와 부모는 별안간 그 제품의 부품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고, 서비스를 계속 받기 위해서는 새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새 인공와우를 마련할 수 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에게 이는 사치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렵게 얻은 청력을 포기할 수도 없어서 이들은 인공와우 커뮤니티에서 단종된 부품을 구하거나 암시장을 뒤진다. 미셸 프리드너는 경영의 언어인 “계획적 진부화”가 이들의 경험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계획적 버림(planned abandonment)”으로 말을 고쳐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 제품을 구매할 경제적 여력이 없는 이들이 기업에 의해 계획적으로 버려질 때, 부유층과 저소득층 사이에는 감각의 불평등이 생긴다. 3) 4)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4차산업혁명의 대표 기술 중 하나인 신경보철은 인공와우와 마찬가지로 전극을 신체 내부에 삽입해서 쓴다. 최신 연구가 집약된 기술인만큼 가격이 비싸고 다루는 회사가 많지 않다. 그런데 만약 내 몸에 이식한 기계를 생산하는 유일한 회사가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이는 사고실험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세컨드사이트(Second Sight)는 1998년에 설립된 인공망막 바이오 기업이다. 전 세계에서 약 350여 명의 시각장애인이 이 회사로부터 인공망막을 이식받았는데, 기기 값만 2억 원이 넘고 전체 비용이 6억 원이 훌쩍 넘는 비싼 시술이었다. 문제는 자금 사정이 나빠진 세컨드사이트가 2019년 인공망막 생산을 중단하면서 시작됐다. 회사는 유지보수 팀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이듬해 파산 위기에 처하면서 관련 인력을 해고했다. 눈에 삽입한 인공망막을 더 이상 유지보수할 수 없게 된 시각장애인들은 부품을 수소문해 구하거나 다시 회사가 운영을 재개할 때까지 배터리가 살아 있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IEEESpectrum, 2022년 2월 17일자).
 
이들의 이야기는 기술 사용이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부품을 공급하고 기술을 유지보수하는 인프라에도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새롭게 개발되는 과학기술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삶을 선사할 것이다. 인공와우를 장착한 아이는 청인 아이와 함께 수업을 듣고, 인공망막을 낀 사람은 복잡한 출근길을 혼자 걷는다. 웨어러블 로봇을 입은 마비 장애인은 걸음으로써 하반신 근육을 키우고, 디지털 치료기는 만성 통증을 줄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바로 그 기술로 인해 다른 방식으로 취약해질 것이다. 쓰던 보조기술을 폐기하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애인들은 기술이 선사한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 회사에 비싼 돈을 지불하거나, 암시장을 수소문한다. 이렇게 최선을 다했음에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그 능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기술의 약속은 이런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장판’을 과학기술로 끌어오기
장애학자 에이미 함라이와 켈리 프리츠는 2019년 “크립 테크노사이언스 선언문”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기존의 과학기술이 장애를 교정과 제거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음을 비판하면서, 장애를 지식과 변혁의 원천으로 두는 과학기술을 제안한다. 크립 테크노사이언스에서 장애인은 더 이상 기술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다. 장애인은 그 몸을 살지 않은 사람이 절대 알 수 없는 경험을 지닌 전문가이자, 세상을 다시 설계하는 디자이너이다. 크립 테크노사이언스는 장애인을 중심에 둔 과학기술의 정치를 꿈꾼다.5)
 
이는 ‘장판(장애운동판)’을 과학기술로 끌어오자는 제안이다. 한국의 장애운동은 장애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회구조를 질문하고 변화를 이끌어 냈다.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시설을 폐쇄하는 장판의 역량을 과학기술에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이른바 과학기술 ‘장판’이다. 다만 과학기술 ‘장판’은 예산 문제를 넘어 불화와 의존으로 가득 찬 보조기술의 현실에서 질문을 시작한다. 특정 기술이 왜 필요한지, 이 기술을 쓰기 위해서 어떤 의존이 수반되는지, 예상되는 효과와 대가는 무엇인지 과학자와 공학자와 정책설계자에게 따져 물어야 한다. 만약 소수의 기업이 기술을 독점하는 구조라면, 우리는 그 회사의 운명에 달린 삶을 살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들도 함께 묻고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때로는 장애의 경험을 반영한 기술을 더 잘 만들기 위해 과학자, 공학자와 협업할 수도 있다. 과학기술 ‘장판’은 장애인과 과학기술인이 새롭게 투쟁하고 연대하는 공간이다.
 
장애인은 그 누구보다도 과학기술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지팡이와 휠체어부터 인공와우와 신경보철까지 장애인은 몸 안과 밖에서 불화하는 기술을 달래며 살아간다. 만약 4차산업혁명이 장애인에게 큰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새로운 기술이 장애를 해결하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에 영향받지 않기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이 기술을 선택하든 안 하든, 기술은 우리가 장애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바꾼다. 마치 직접 구매하지 않아도 쓸 수밖에 없는 키오스크처럼 말이다. 과학자와 공학자의 말처럼 “우리가 상상하는 세상이 반드시 온다”면, 그 세상을 상상하는 일에 당연히 장애인도 참여해야 한다. 4차산업혁명에는 과학기술 ‘장판’이 필요하다. 
 
▲ 강미량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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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초엽, 김원영. 2021. 사이보그가 되다. 사계절. 26쪽.
 
3) Friedner, Michele Ilana. 2022. Sensory Futures: Deafness and Cochlear Implant Infrastructures in India.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4) Friedner, Michele Ilana. 2023. “From Obsolescence to Abandonment: Exploring the Precarious Use of Cochlear Implants in India.” Science, Technology, and Human Values. online first.  
 
5) Hamraie, Aimi, and Kelly Fritsch. 2019. “Crip Technoscience Manifesto.” Catalyst: Feminism, Theory, Technoscience 5 (1): 1-33. doi:10.28968/cftt.v5i1.29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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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글. 강미량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연구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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