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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개인예산제, 이대로 괜찮은가

장애인 개인예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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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국가를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장애인 개인예산제가 현 정부의 국정 과제로 추진되어 2026년 도입을 앞두고 있다. 본 사업 도입에 앞서 보건복지부는 2023년 개인예산제의 첫 실험인 모의 적용사업을 마무리하였으며, 2024년 하반기부터 2025년까지 시범사업을 거칠 예정이다.
 
공급자 중심에서 장애인 당사자 중심으로 서비스 전달방식이 변화되는 것에 대한 장애계의 기대가 매우 큰 한편, 장애인복지 예산과 서비스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개인예산제의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함께걸음>에서는 본 사업 도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장애계의 갈등과 이용자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인예산제 모의적용 및 시범사업이 제도의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상황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개인예산제는 서비스 이용자의 선택권을 강화하고 재정의 효율화를 실현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복지서비스가 획일적인 수업 시간표처럼 정해져 있었다면 개인예산제는 개인에게 제공될 사회서비스의 총량이 정해지면 이용자가 시장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자유롭게 선택해 구매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개인예산제가 처음 등장한 배경은 1990년대 유럽에서 기존의 사회복지서비스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서 장애당사자가 주체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하면서부터이다. 이후 영국은 2007년부터 16세 이상의 장애인에게 소득과 상관없이 전국적으로 사회적 돌봄과 지원 영역에서 개인예산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장애인복지관이나 자립생활센터 등을 중심으로 자기주도적 지원 계획 수립, 급여 사용의 유연화, 서비스 급여의 현금 지급 등 개인예산제의 핵심요소에 대한 실험이 진행되어왔다.
 
이같이 개인예산제에 대한 논의가 축적되는 상황에서 2022년 1월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윤석열 후보가 장애인 개인예산제 도입을 대선공약으로 발표하고, 당선 이후 국정 과제 47번 ‘장애인 맞춤형 통합지원을 향한 차별 없는 사회 실현’추진을 공식화하였다.
 
2023년 3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23~2027)에서 복지서비스 분야의 주요 과제로 개인예산제의 단계적 도입 방안( (’23) 모의적용 → (’24~’25) 시범사업 → (’26) 본사업)을 발표함으로써 본 제도 도입이 본격화되었다.
 
2023년 6월 시작된 개인예산제 국내 첫 실험,
개인의 선택권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의미 있었으나
활용 범위 및 금액 제한으로 중도포기자 다수 발생
모의적용 참여자··· “아무리 봐도 홍삼 구입 외 살 것이 없어”
 
보건복지부는 2023년 6월부터 6개월간 서울 마포, 경기 김포, 충남 예산, 세종 4개 지자체에서 개인예산제 모의적용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를 위해 투여된 사업 운영 예산은 약 5억 8천만 원이다.
 
사업은 활동지원 수급권자에 한해 신청 자격이 주어졌으며 개인예산 급여는 장애인 활동지원급여의 일부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모의적용 참여자가 지출할 수 있는 예산은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결과 할당받은 활동지원 기본급여의 10% 또는 20% 이내이다.
 
개인예산은 ‘개인예산 이용 계획(개인별 지원계획)’에 근거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용계획은 국민연금공단의 전담 인력이 참여자 대면 면담에 근거하여 수립하고 시군구에서 구성한 '지원위원회’에서 합의하도록 하였으며 사용하는 개인예산은 개인이 선지출하고 사후에 환급받는 시스템으로 하였다.
 
모의적용사업 참여자는 활동지원 기본급여의 10% 이내 범위에서 주거, 일상생활, 신체건강 등 6개 영역에 지출이 가능한 모델 1(급여유연화)과 활동지원 기본급여의 20% 이내 범위에서 수어통역, 보행지도, 안마 등 특수자격을 가진 제공인력을 활용해 서비스를 받는 모델 2(필요 서비스 제공인력 활용)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모델 1과 모델 2를 적용한 예시 사례는 아래 표와 같다.
 
이렇게 정부의 첫 개인예산제 실험은 장애계의 큰 주목을 받은 가운데 시작되었으나 중도탈락자가 다수 발생하는 등 여러 한계점을 드러냈다.
 
2023년 10월 25일 진행된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모의적용 사업 참여를 신청한 123명 가운데 34명(27.6%)이 중도 포기했으며 그 이유는 ‘활동지원 시간 부족’이 10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용 서비스 없음’(8명), ‘본인부담금 납부 부담’(7명), 기타(9명) 등으로 나타났다.
 
또 개인예산제 주요 이용 영역은 건강기능식품 구매 비율이 25.3%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으며 이에 대해 장애계로부터 개인예산제가 건강기능식품 구입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실제 지난해 모의적용사업에 참여했던 A씨(50대 남성, 중증 지체장애)는 “개인예산제로 할당된 40만원 중 대부분을 홍삼 구입에 지출했는데 홍삼을 정말 필요로 했다기보단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중에 도저히 고를 것이 없어 고민 끝에 이걸 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은 “모의적용에서 나타났던 문제점들을 시범사업에 보완해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그리고 정부는 지난 3월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총리 주재로 ‘제25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개최, ‘장애인 개인예산제 시범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국정감사에서 지적되었던 2023년도 모의적용사업과 올해 6월부터 시행되는 시범사업 추진 계획안을 비교하면 아래 표와 같다.
 
 
모의적용의 한계점을 보완하겠다던 보건복지부
서비스 범위는 늘렸으나 급여량 및 급여 대상은 여전히 한정적
 
작년과 올해 사업을 비교해본 결과, 올해는 예년 대비 약 8백만 원의 예산을 증액했으며 사업 규모를 기존 4개에서 8개 시군구로 확대하여 시행한다. 급여기간은 예년과 동일하게 6개월이며 이용방식도 선지출 후 사후정산 방식으로 동일하다.
 
사업 대상도 활동지원급여 수급자로 예년과 같다. 다만 서비스 이용범위를 작년처럼 6개 영역으로 한정하지 않고 지원 배제 항목 이외 모든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활동지원 외 복수의 장애인 바우처서비스를 통합이용하는 모델을 새롭게 추가한 점이 큰 차이점이다.
 
시범사업에 비해 서비스의 종류를 확대해 이용자의 선택권을 넓힌 것은 유의미한 변화로 긍정적으로 판단되지만 이번 시범사업이 본 사업 추진의 기본 토대가 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여전히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다.
 
활동지원제도를 중심으로 한 개인예산제 시범사업,
이대로 가다간 활동지원 쪼개기 정책에 불과할 것
 
앞서 언급했듯 모의적용 사업은 활동지원 수급권자로 대상이 한정되었으며 개인예산으로 사용하는 급여도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결과 할당된 활동지원급여 중 극히 일부(10~20%)로만 사용이 한정되었다. 신청부터 급여량 판정까지의 절차는 활동지원서비스와 동일하다.
 
정부는 개인예산제 운용을 위한 별도 예산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교적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 ‘활동지원 유연화 모델’을 모의적용 사업에 채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다음과 같은 한계를 마주할 우려가 있다.
 
첫째, 활동지원급여를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활동지원급여는 개인의 기능 제약과 사회적 상황을 사정하여 필요 활동지원 시간으로 산출되며, 산출된 급여량은 신체활동과 사회활동을 하는 데에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이 전제이다. 그러나 이 모델은 활동지원급여를 다른 욕구에 지출하게 함으로써 활동지원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할당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되고 활동지원 급여량 확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둘째, 주어진 활동지원급여를 모두 다 사용하고 있거나 부족한 장애당사자에게는 무의미하다.
 
모의적용사업 신청기관(지역 내 활동지원 제공기관) 종사자에 따르면 “지역의 많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처음엔 사업에 관심을 가졌으나 활동지원 급여의 10%를 떼서 사용하여야 하는 것에 매우 회의적이었다”며 특히 “활동지원급여를 지체장애인에 비해 적게 받는 발달장애인은 아예 꿈도 못 꾼 부분도 있다. 안 그래도 부족한 활동지원시간에서 몇 시간이라도 떼어버리면 그 예산으로 바우처를 한 개 더 이용하려고 해도 그곳까지 이동하는 데 활동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용지물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활동지원사와의 고용관계로 인해 고민하는 참여자들도 있었다. 한 참여자(중증 지체장애인)에 따르면 “활동지원사의 급여가 일부 깎이는 것이기 때문에 합의 및 양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이를 보전하는 시스템이 전혀 없었다”며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시스템이라면 활동지원사의 집단 반발 등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셋째, 대상을 활동지원 수급대상으로 한정했을 때 나머지 95%의 장애인은 참여 대상에서 제외된다.
 
2024년 하반기부터 실시되는 개인예산제 시범사업 역시 참여 대상을 활동지원 수급권자로 한정하였다. 그러나 2023 장애통계연보에 따르면 활동지원 수급권자는 전체 장애인 인구의 5.2%(139,509명)에 불과하다. 활동지원을 받지 않는 경증장애인 등은 복지서비스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이 제도에서 소외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서비스 총량 부족 및 전달체계 분절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개별 장애인의 욕구와 선택권 보장을 전제로 한 개인예산제 운영 기대 어려워
 
모의적용사업 참여자 A씨(50대 남성, 중증 지체장애)는 주택 개조, 장애인특별교통수단, 자가용 개조, 재활서비스, 발달재활서비스 추가구매, 장애아가족양육지원, 단기거주시설 등의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차를 사용하고 있고 50대 지체장애인으로 재활서비스는 필요하지도, 서비스 구매대상(만 18세 미만)이 아니기도 했을뿐더러 약 40만 원으로 주택 개조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건강기능식품을 구매하는 것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A씨는 평소에 복용하고 싶었던 건강식품을 구매하고자 했으나 오로지 식품의약안전처에 등록된 것이어야 했고 정해진 구매사이트에서만 이용 가능하도록 하여 여러모로 불편함이 많았다는 것이다. 해당 월에 다 쓰지 못한 금액이 이월되긴 했지만 마지막까지 다 쓰지 못해 결국 일부 금액(약 10만원 상당)은 반환하여야 했다고 전했다.
 
모의적용사업 참여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기된 서비스 한계의 문제는 아래와 같다.
 
첫째, 서비스 지원영역이 장애당사자의 유형과 욕구를 적극적으로 고려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의적용사업 서비스 지원영역은 장애인들의 실질적인 욕구와는 달리 일자리, 문화여가, 안전 및 권익보장을 제외한 6개 영역으로만 한정되었다.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에 비해 소득보장과 의료보장 욕구는 감소하고 고용보장, 이동권보장, 보육·교육 보장, 장애인 인권보장, 장애인 건강관리는 증가’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2023년도 모의적용 사업은 활동지원서비스 체계 내에서 운영되다 보니 지원영역 역시 ‘일상생활 지원’과 큰 관련성이 없고 특히 고용 등의 서비스는 타 부처와의 중복수급, 전달체계 상이 등의 사유로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고용, 문화, 교육 등의 서비스는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서비스 간 급여량 및 전달체계 분절로 인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없었다.
 
서비스가 한정적이었던 또 다른 원인을 살펴보았을 때 먼저 공적 서비스, 바우처 사용과 관련하여서는 서비스 간 급여량과 전달체계가 분절되어있는 것이 큰 원인일 것으로 파악된다. 신청 단계에서부터 각 서비스별로 수급자격을 판정하는 조사도구가 다르고, 지원 방식의 차이, 운영재원의 불일치, 본인 부담금 체계가 상이하다는 점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개인예산제 모의적용을 통해 장애인의 선택권과 자율권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현실에서는 개안예산제 모의적용을 통해 서비스를 신청해도 개별 서비스 이용 대상이 아니라면 모의적용을 통한 서비스 이용은 불가능한 상태다. 사실상 무늬만 선택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개인예산제에 머무는 상황이다.
 
또 서비스 간 분절 문제는 모의적용 사업 전 충분히 예측 가능했음에도 이에 대한 개선 없이 5억 8천만 원이라는 예산을 투입해 실시한 것에 있어 ‘건강식품 구매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비판을 수용, 개선하지 않은 채 올해 8백만 원을 증액해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예산낭비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내 장애 관련 서비스 인프라 자체가 부족한 점과 지역 간 인프라 격차가 극심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지난해 모의적용 사업과 비교했을 때 지원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 및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점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시도로 평가되나 복지서비스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고 지역 간 격차가 큰 상황에서 효과적인 대안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작성자글. 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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