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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장애인들에겐 어떻게 다가왔나

비상계엄과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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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2월 3일,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출처.YTN)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긴급 담화가 생중계되며 시작된 이 사건은 국회 폐쇄, 계엄사령관 임명, 계엄군의 국회 진입 등으로 이어졌고 당일 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로 사태는 2시간 37분 만에 마무리되었다.
 
헌법 77조 1항은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계엄법에 의거하여 임명된 계엄사령관이 계엄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하게 된다. 계엄법 제9조에 따르면 비상계엄지역에서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할 때 체포ㆍ구금ㆍ압수ㆍ수색ㆍ거주ㆍ이전ㆍ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 또는 단체행동에 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번 비상계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 직후로 1981년 1월까지 이어졌던 마지막 계엄 이후 약 45년 만에 선포된 것이다. 계엄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과거에 겪었던 국가비상사태가 떠올라 불안이 엄습했을 것이고 계엄을 경험한 적이 없는 세대에게는 역사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생중계되는 이 상황이 그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당사자의 경험은 어떠했을까.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점으로는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대국민 담화 생중계영상에서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청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을 제한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에 농인 자녀인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s)들의 모임 ‘코다코리아’는 성명을 발표하며 ‘계엄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소수자 인권이 가장 먼저 위협받는다’며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먼저 접한 농인의 자녀는 급박히 농인 부모에게 연락해야 했다. 혼란스럽게 전개되는 상황을 농인 부모가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계엄, 잘 모르겠어 뭔지”
 
비상계엄 상황에 대해 다섯 명의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이야기를 나눈 결과, 장애정도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도에 따른 차이가 존재했지만 계엄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당사자는 없었다. 찬희 씨는 ‘비상계엄’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 잘 모르겠다며 관련된 질문을 모두 회피하기도 했다.
 
또 철범 씨는 “계엄 잘 몰라 뭔지”라고 이야기하면서도 “티비 보니까 군인이 총을 들고 유리창을 막 부수드만. 그럼 안되지.”라며 당시 뉴스에서 본 장면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또 영화 <서울의 봄>을 언급하며 “그 영화랑 비슷하드만. 저쪽 윗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뭐”라고 말했다.
 
장애인 일자리사업을 통해 재직 중인 대영 씨는 “저는 그 밤에 안 자고 뉴스를 다 봤어요. 내용이 잘 이해되진 않았는데요. 다음날 회사 출근 못 할까봐 제일 걱정됐어요. 저 회사 가야되거든요. 그리고 밖에 마음대로 못 다닐까봐 불안했어요.”라고 이야기했다.
 
한편, 계엄이 선포됐던 당시를 ‘전쟁상황’으로 인지하고 있는 당사자도 있었다. “전쟁나면 준비해야 하잖아요. 식량이 없으면 안돼. 편의점 가서 뭐 사와야 하나 생각했었어요.”
 
다섯 명의 당사자들은 모두 계엄 선포 이후 한 번도 계엄을 주제로 타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답했다. 가족, 친구, 활동지원사들로부터 계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적도 질문을 받아보거나 한 적도 없다고 답변했다.
 
“집에 있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우리 애 걱정부터 앞섰죠.”
 
의사소통이 어려운 최중증 발달장애인과 함께 살고 있고 어릴 때 비상계엄을 경험한 장애인 부모는 보다 선명한 두려움의 감정을 갖고 있었다.
 
발달장애인 부모 박○○씨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어릴 때 계엄을 경험한 적이 있거든요. 제가 그때 광주에 있었는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였으니까 총을 든 군인들이 갑자기 시민들을 때리고 잡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때였어요. 군인들이 너무 무서워서 친구들이랑 막 뛰어다녔던 기억이 나요.”라고 설명했다.
 
장애인 부모는 비상계엄을 경험해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공포감은 아마도 다를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당시에 ‘어안이 벙벙했고 비교적 짧은 시간이었지만 약 두 시간가량 온갖 걱정과 불안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제 아들은 발달장애가 있는데 항상 나가려고 해요 어디든. 계엄 선포 딱 됐을 때 아들 걱정이 제일 먼저 되더라고요. 분명 통금이 생길 거고 돌아다니는 거 통제할 텐데 우리 아들 어떡하지? 나갔다가 어디 가냐는 군인 말에 제대로 대답도 못하면 어떡하지? 이 생각부터 들었어요.”
 
“안 그래도 엊그제 깜짝 놀란 게 우리 아들이 북한 노래를 유튜브에서 본 건지 그런 노래를 흥얼거리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너무 놀래서 다그쳤는데.. 만약 계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쳐봐요. 아들이 길거리에서 저런 노래 부르면 군인들이 잡아가지 않을까요? 군인들 묻는 말에 잘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군인이 우리 아들 말을 잘 알아들어주고 장애의 특성으로 이해해줄까요? 이 걱정이 가장 컸어요. 상상하기 싫은 일이지만 만약 계엄이 또 선포된다면.. 발달장애의 특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행동들이 구금이나 체포의 이유가 되어선 안된다는 법이나 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당시, 국회에 진입한 계엄군 모습 (사진출처. 국회방송)
 
“거주시설은 코로나 때처럼 또 통제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코로나19의 위기를 직격탄으로 맞은 장애인 거주시설 역시 비상계엄의 혼란과 불안에서 예외대상은 아니었다.
 
비상계엄 선포 전후로 계엄 상황 관련 지침이 거주시설에 내려졌는지에 대한 질문에 인천에서 최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은 “그런 지침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모든 판단을 시설장 개인이 내리고 행동에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답변했다.
 
“일단 늦은 밤에 일어난 일이니까 직원들에게는 ‘내일 똑같이 출근해달라’고 회사 단톡방에 올렸고요. 다음 날 아침에 이용자 부모님들에게 ‘다소 염려스러운 상황이긴 했으나 직원들은 서비스 제공에 전념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돌렸어요. 이렇게 제가 행동을 하면서도 이게 맞나, 너무 과도하게 움직이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또 비상계엄 선포 당시에 코로나의 악몽이 떠올라 ‘또다시 시작될 통제’가 두려웠다고 전했다.
 
“사람들마다 온도 차는 있겠지만 이런 일이 너무나도 피부로 잘 와닿는 기관 차원에서는 이번 일이 정말 끔찍하게 느껴졌습니다. 비상계엄이 빨리 해제돼서 다행이지 만약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코로나 때처럼 시설은 또 통제의 대상이었을 것이고요. 단체활동이 제한될 테니까 야외활동 못하고 시간에 쫓기고 그랬겠죠. 자유에 정말 큰 제약이 생겼을 겁니다. 정보에서도 배제가 될 가능성이 컸을 것이고요.”
 
“무엇보다 국가적 비상상황에서는 다들 자기 가족의 안위를 지키고 싶지, 그걸 포기하고 거주시설에서 장애인들을 돌보려는 사람들이 어딨겠어요. 시설장 입장에선 그럼 우리 이용자들 다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1970~80년대 ‘거리정화사업’의 명목으로 ‘부랑인들’에 대한 불법 단속과 강제수용을 했던 부산형제복지원 피해자는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당시 “군사독재시절의 트라우마, 그때의 끔찍했던 고통이 다시 생각났다. 아무리 기사를 읽고 또 읽어도 믿기지 않았다”며 그때의 참담했던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국방부, “포고문이 구체적으로 미치는 영향과 제한에 대해 현재로서 설명 불가한 상황"
 
국방부 정책기획실 측에 비상계엄 선포 당시 장애인들의 상황을 알리고, 실제 계엄 상황에서 장애인 거주시설과 외출 통제 범위에 대해 질의하자 “포고문의 내용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므로 구체적인 함의를 두고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안내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원래는 장애 관련 사안이므로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에 지침이 전달되고 정확한 내용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 맞으나 현재로선 아직 규정이나 이런 게 명확히 정리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위기 속에서 드러난 장애인의 현실과 과제
 
2024년 12월 3일에 선포된 비상계엄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해제되었지만, 장애인들이 겪은 불편과 두려움은 위기 상황에서의 국가 대응체계가 얼마나 개선되어야 하는지 보여주었다. 청각장애인의 정보 접근권 침해부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마주한 공포, 거주시설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장애인들은 다른 시민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혼란과 어려움을 경험해야 했다.
 
국방부의 답변은 국가적 비상상황에서 장애인 관련 지침과 대응체계가 불확심했음을 보여준다. 계엄과 같은 국가적 비상상황에서는 기존의 법률 체계가 일시적으로 정지되고 군사 통제가 강화되면서 장애인과 같은 취약계층의 권리보호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정보접근에 취약한 발달장애인은 비상계엄 선포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울뿐더러 반복적인 생활패턴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에 더 큰 불안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 관계망이 넓지 않은 장애인들은 비상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불안한 마음을 서로 돌볼 기회가 충분치 않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은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장애인의 안전과 권리가 더욱 섬세하게 보장될 수 있는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정책 마련의 필요성을 분명히 한다. 이런 상황일수록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위기 대응체계의 허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작성자글. 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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